요구르트 한 개에 65ml인데 200ml 먹으라니...-_- 요구르트는 매일 먹고 있거등요 큐큐
근데 시옷님 아닌데... 'ㅅ' 님인데.. 쿠쿠쿠쿠쿠
글구 효과는요~~ 한약이랑 침 효과가 있는 듯 오늘 똥 눴어요-ㅁ-v 아직도 한참 모자르지만.. ㅋㅋ 하길 야쿠르트의 힘일지도
그러나 나블루스, 툴 카름, 예닌, 라파, 베이트 하노운에서 돌멩이와 불공정한 싸움을 벌이는 건 지프가 아니라 탱크와 무장 차량들이다.
철제 살상무기에 생명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은 상징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 이 싸움이 절망적이라 해도 움츠러들지 않는다. 이 곳은 세살짜리 아이들에게, 들판에 핀 야생화 이름보다도 무기 이름이 더 익숙한 곳이니까.
아이들에게는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체포당할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 한밤중에 아버지가 깨워서 막 눈을 뜬 아이가 무장 군인들에게 잡혀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끌려가 돌을 던진 것에 대해서 심문당한 뒤, 읽을 수도 없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문서에 서명하라고 강요받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한다.
이 과정에서 군인들이 아이들을 구타하는 경우도 빈번히 일어난다. 때리는 자와 맞는 자는 불과 몇 살 차이일 뿐이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그런 상황에서 그것도 한밤중에 그런 일을 당할 때는 피지배자는 지배자 앞에서 너무나 초라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일주일에서 석달까지 잡혀 있다 돌아오는, 북적대고 악취가 나는 유치장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팔레스타인 아이들이라면 모두 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곳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복무하길 거부해서 감옥에 간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있다는 말을 이 남매가 들었을 때, 아홉 살짜리 동생은 놀란 나머지 “여기 와서 군인이 되는 대신에 감옥에 가는 걸 더 좋아하는 유대인들도 있어?”하고 물었다.
누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 그 사람들은 우리를 해치기 싫어서 차라리 감옥에 갇히는 걸 택했을 거야.”
베들레헴 대학 졸업생인 엘리제 아하자리안은 '베들레헴이여 안녕…'이란 글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돌멩이 하나에도, 풀 한 포기에도,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도 저마다의 영혼과 사연이 있다는 것을… 더 이상의 고통과 피해를 입히기 전에 한번쯤 그들의 사연에 귀기울여 봐야 한다는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있는게 아닐까?
군사공격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면서 내가 느낀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미 가슴이 무너져 버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모든 일에 무관심해져 가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을 때 나는 너무도 슬펐다. 그런 무관심이 분노보다 더 고통스럽고 위험하며, 치유되기도 훨씬 더 어렵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비르제트 대학에 다니는 살림 하바쉬의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그 날 밤에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밤새도록 어머니와 누이는 내 옆에 앉아서 라말라 서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탱크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너무 두려워서 숨을 쉴 수조차 없었고, 내 머릿속에는 도대체 언제쯤 이 모든 것이 끝날까하는 생각만 끝도 없이 맴돌았다. 나는 깨어나자마자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지만, 실제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 건 오후 3시가 지나서였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면서, 방금 전에 벌어졌던 악몽같은 기억에서 빠져 나오려고 애를 썼다. 갑자기 누이가 우리집 부엌과 마주보는 방향에 있는, 다 짓지도 않는 건물 주위를 이스라엘 군인들이 둘러싸고 있다고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누이는 계속해서 외쳤다. 군인들이 우리 집을 향해서 대포를 겨누고 있고, 또 다른 군인들이 다른 방향을 향해서, 아마도 또다른 ‘테러리스트’ 용의자를 향해서 미친 듯이 대포를 발사하고 있다고.
쿵..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집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 완전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나는 이스라엘의 대변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스라엘은 신뢰와 평화를 위한 다리를 건설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당신들이 ‘테러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 라말라에서 저지른 짓에서는 증오와 적의의 냄새가 풍긴다. 그러나 나는 당신들이 아무리 애써봤자 절대 라말라의 정신을 무너뜨릴 수 없으며, 오히려 우리는 거리를 복구하고, 집을 다시 짓고, 라말라를 잿더미에서 다시 웅장하게 일으킬 거라고.
현재 집에 갇혀 있는 남성들, 여성들, 어린이들은 대부분 음식이나 의약품 같은 기본적인 생필품을 구하지 못해 고생하고 있다. 그들은 당신들이 저지른 짓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며, 결코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다.“
예루살렘의 베트 하니아에 살고 있는 17세 소녀 달리아 나마리는 '두려운 내일'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1983년에 태어났다. 1987년 인티파다가 일어났을 때, 나는 너무 어려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집 마당에서 총알을 발견했을 때의 공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총알은 이스라엘 점령군이 우리 민족을 향해 발사한 수많은 총탄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느꼈던 두려움은 아직도 나를 떠나지 않는다.
우리 민족이 어떤 일을 겪어야 했는지 알고 싶어하는 다른 팔레스타인 아이들처럼, 나도 가족 앨범을 볼 때마다 사진 속의 얼굴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탱크와 불도저 때문에 잿더미가 되어서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건물들을 보면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제 그 자리에는 보기 흉하고 아무런 개성도 없는 건물이 지어져 있고, 그 안에는 이제 나의 친족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누가 그들에게 우리 땅을 빼앗고 가족과 친구들을 흩어져 살게 할 권리를 주었는가? 그리고 누가 그들에게 우리 조상들이 심고 정성을 다해 가꾸어 온 올리브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릴 권리를 주었는가?“
3월과 4월에 이스라엘이 군사공격을 실시하고 나서 열 살 먹은 아들 하산은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하산이 다니는 학교 관계자들은 하산이 하루 종일 멍하게 있고,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혼자 남겨진 꿈을 꾸었어요.”라고 하산은 말했다.
“사람들이 총을 쏘고 라말라의 어린이들을 죽이기 때문에 저는 무서워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그런(자살공격을 저지를) 생각을 했었어요.”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16세 소녀 라나 캄레의 얘기다. 라나는 웨스트 뱅크와 가자지구에 배포되는 피얄라라의 신문인 Youth Times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라나가 살고 있는 동 예루살렘 점령지역의 Shofat 아랍 난민촌은 웨스트 뱅크와 가자 지구를 특징짓는 빈곤과 절망의 울부짖음이 메아리치는 곳이다. 소파에 앉아있는 라나의 아버지 모하메드는 딸의 말에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저 애가 말하는 걸 듣고 싶지 않지만, 지금이 어려운 시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한손으로는 묵주를 굴리고, 또 한손으로는 4살짜리 아들 칼리드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섯 아이들의 아버지입니다. 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모두 다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는 평화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