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가 몇 걸음이라도 도망치면 사살하라. 도망자를 사살하는 데 어떤 문제가 있는가.”
중국 당국의 (신장 위구르) 직업훈련학교 운영 방침인데요. 아니, 어떤 직업학교가 도망친다고 사람을 쏘나요..?
안녕하세요. 따져보는 오늘의 기술 이야기 따오기입니다.
위구르족 등 신장 지역의 소수민족 강제 수용소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중국 정부는 직업훈련학교라고 주장해 왔는데요. 최근 중국 정부의 이 “학교” 운영과 관련된 대규모 내부자료가 해킹으로 공개됐습니다. 이름하여 ‘신장공안파일’. 신장 지역 경찰서와 강제 수용소의 컴퓨터/서버가 해킹돼 10기가가 넘는 내부 문건과 사진 수만장이 유출됐습니다. 전례 없는 규몬데요. 중국 당국이 암호화 정책을 강화하기 이전인 2018년까지의 자료들입니다.
중국은 그동안 관련 이야기를 가능한 검열해 왔습니다. 2019년에, 검열을 피하기 위해서 화장법을 알려주다 갑자기 신장 상황을 고발하는 영상이 올라왔는데
(뷰티 틱톡러)
“뷰러를 내려놓고 지금 바로 휴대폰으로 중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찾아봐. 중국은 무고한 이슬람교 신자를 강제 수용소에 보내고, 가족끼리 멀리 떨어뜨리고, 납치하고, 살해하고, 성폭행하고, 돼지고기와 술을, 개종을 강요하고 있어”
이 영상도 삭제됐었죠.
누가 왜 잡혀갔나
그럼 중국 정부는 어떤 사람들을 가둔 걸까요?
유출된 엑셀 문서 452개에는 위구르족 수감자 25만여명의 이름, 주소, 주민번호, 수용소, 수감된 사유와 기간이 적혀 있습니다. 또 마치 용의자인 양 머그샷처럼 찍은 2,884명의 정면 사진도 있는데요.
놀랍게도 가장 어린 수감자들은 2018년 수감 당시 15살.
가장 연로한 수감자의 나이는 일흔 셋이었습니다.
수감된 사유도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무려 1983년에 집에서 아버지랑 이슬람 경전을 공부해서, 누군가는 수염을 길러서, 누군가는 스마트폰에 암호화된 앱을 깔아서, 또 다른 누군가는 스마트폰 사용량이 줄어든 게 당국의 디지털 감시를 피하려는 것 같아서 감금됐습니다.
수감 사유조차 알 수 없는 사람도 있고요.
유출된 운영 방침 중엔 도망치면 사살하라는, 천취안궈 당시 신장지역 서기의 화상연설 녹취록도 있습니다.
수감자가 몇 걸음이라도 도망치면 사살하라. 도망자를 사살하는 데 어떤 문제가 있는가. 특별히 허가한다.
- 2017년 5월28일 천취안궈 신장위구르자치구당위원회 서기의 화상연설 기록
기본적으로 수감자들을 잠재적 테러범, 즉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는데요. 이런데도 직업훈련을 위한 재교육 학교라는 게 말이 됩니까?
데이터 검증
그럼 익명의 해커들이 제공한 이 데이터들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요?
올 초부터 영국의 BBC, 독일의 슈피겔 등 11개 국가의 14개 언론사가 컨소시엄을 꾸려 기자 30인이 데이터를 검증했다는데요.
- BBC News (영국)
- USA TODAY (미국)
-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 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
- DER SPIEGEL (독일)
- Le Monde (프랑스)
- 毎日新聞 (일본)
- EL PAIS (스페인)
- Aftenposten (노르웨이)
- Yleisradio Oy (핀란드)
- Dagens Nyheter (스웨덴)
- Politiken(덴마크)
- L’Espresso (이탈리아)
- Bayerischer Rundfunk (독일)
- NHK WORLD-JAPAN (일본)
1) 친인척을 통한 검증
첫번째로 친인척 몇 분을 인터뷰해 엑셀로 유출된 개인정보가 맞는지를 확인했습니다. 투니사귈 누르메메트 씨의 개인정보를 확인해 준, 현재 망명 중인 압두라흐만 하산 씨. 하산 씨는 이번 유출을 통해, 공안에 잡혀가 고문당한 끝에 사망했다고 들었던 부인이 살아 있었단 걸 처음 알게 됐습니다.
2) 사진의 메타데이터
사진 파일에 담긴 메타데이터로도 검증했습니다. 카메라 본체의 일련 번호가 같고, 사진이 찍힌 시간도 연속적인 걸 확인할 수 있는데요. 예를들어 한 수감자를 붙잡아 머리에 검은 천을 씌운 채 이송해 고문 의자에 앉히는 일련의 사진들은 1분 간격으로 같은 카메라로 촬영됐습니다.
비록 수용소 내부에서 찍은 사진에는 GPS 정보가 없었지만, 수용소 인근에서 경찰이 찍은 사진 60장엔 GPS 정보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성사진과도 대조하고, 경찰이 지도 앱에서 자신들의 운전 루트를 스크린캡쳐한 것과도 대조한 결과 GPS 조작은 없었습니다.
3) 사진 속 정보
경찰 훈련 사진에 보이는 수용소의 감시탑과 담장, 나무 등의 위치가 위성사진으로 보이는 것과 일치하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또 2,884명의 머그샷 가장자리에는 곤봉을 든 경찰이나 수용소의 문, 배경 등이 보이는데요. 사진 뒤에 찍힌 이 포스터는 신장지역에서 당국이 열었던 ‘극단주의 반대 회화 공모전’의 수상작입니다. 사진이 찍힌 곳이 신장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거죠.
4) 경찰 전화 인증
유출된 문서에는 전화번호 등 경찰의 개인정보도 들어 있었습니다. BBC에서 150여개 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몇 명이 문서와 일치하는 이름과 직위를 댔습니다. 해외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지 말라는 경찰 지침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전화를 안 받은 것 같습니다.
5) 포렌직
마지막으로 포렌직 전문가와 전문기관 여럿이 사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조작 가능성이 없다고 일치된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히려 일부 사진에 보이는 결함은 얼굴인식 소프트웨어를 쉽게 돌리기 위해 보통 하는 작업들로 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눈을 수평으로 맞추거나, 밝기를 조정한 거죠.
엔딩
2,884명의 수감자 사진 외에도 경찰이 찍은 위구르인 사진은 총 5천 장에 달하는데요. 이들 사진 파일에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 수감자 사진에 붙인 것과 같습니다. 앞서 사진 보정도 그렇고, 얼굴인식용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쓰려는 것 같죠? 유출된 경찰 내부 문건을 보면 기우도 아닙니다. (피피티 이미지)
2018년 기준으로 성인 수감자만 120만명으로 추산됩니다. 중국은 2019년에 모든 재교육센터, 즉 강제 수용소를 닫았고, “학생들”이 모두 졸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학생들은 없고, 2020년에도 수용소가 계속해서 새로 건설되고 있는 것을 위성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1년에 신장 주민 전체를 중국 공안이 얼마나 대규모로, 그리고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있는지도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수용소 운영 실태가 다시 드러난 거고요.
중국은 지금 특정 인구집단을 통채로 테러범 취급하며, 일부는 재판도 없이 가두고 일부는 상시적 감시 속에 살게 한 채, 그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감시 기술을 개발해 이윤을 내는 것입니다.
자료 출처
- The Xinjiang Police Files
- Bayerischer Rundfunk
- BBC NEWS, 하나 더
- SPIEGEL
- 마이니치
- The Xinjiang Data Project
- the Intercept
- 新疆 : 新讲 Xinjiang : a New Explanation
이번 신장공안파일을 취재한 14개 언론사의 기사를 다 보진 않았는데 본 데 중에 bbc만 수감자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없이 전면 공개했다. 제일 처음 본 게 bbc 기사였고, 대문짝하게 실린 한 분의 울먹이는 얼굴에 사로잡혀서 꼼짝없이 따오기로 만들고 싶어졌다. 누구나.. 보면 사로잡힐 것 같다. 내가 느낀 이걸 다른 사람도 느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 감금돼 소식을 주고받는 게 불가능할지라도 본인의 의사와 이후의 삶에 영향을 미칠 예상 가능한 피해 시나리오를 무시하고 얼굴을 온라인에 박제하는 건 안 된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본인의 의사를 물을 수 없다고 해서 내가 (위임 받은 적 없는데) 대리해서 이런 크리티컬한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물론 해커들로부터 직접 제보를 받은 연구자나 활동가들의 윤리는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데이터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도 원본 사진을 그대로 올려놓을 필요가 있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막상 당사자들에게 물으면, 물을 수만 있다면, 동의할 사람이 더 많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연대하는 활동가로서, 장기적인 피해에 대한 고려 없이 당사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동의를 간주하고 그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걸 경계해왔고, 위구르 이슈에 연대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다른 기준을 가질 이유는 없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데 얼굴에 사로잡혔을 때는 좀 갈등했다.
내 의도가 그게 아니더라도 선정성으로 승부하게 되는 결과도 경계해야 한다. 기자 아니고 활동가지만 현지 상황을 계속 모니터링하고 한국 사회에 전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선정적인 소식으로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가 있다. 윤리적인 문제는 차치하고 이러면 다음엔 더 자극적인 걸 가져와야 한다. 사람들이 관심 가질만한 더 불행하고 더 끔찍한 소식이 필요해질 거다. 결국 대의를 갉아먹을 뿐 실용적이지가 않다.
내가 느낀 그 강렬함을 전달하기 위해서 그럼 어떡해야 할까? 모른다. 실력이 거기까지인 것이다. 그래서도 있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안 하면서 유튜브 영상이나 만들고 있나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유튜브 영상이나 만들고 있을 때가 아닌데. 종종 이렇게 조급해지고 무력해진다. 그렇다고 뭐 어쩔 건데. 그니까. 누가 답이 있겠냐만은
사실 이 염병 떨면서 작년에 아프간 미군 철수 관련 영상도 준비하다가 엎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아프가니스탄에 연대하는 어떤 행동을 하고 있나?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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