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한 이정애 쌤이 절필한 뒤 낸 만화 동인지는 이게 유일하다. 아쉽게도 한 권 짜리는 아니고 단편 하나가 실린 합동지지만, 당시 상업지에서 그릴 수 없었던 성행위 장면을 담아 이후 소설과의 가교 역할을 하는 중요한 사료<다. 그걸 내가 갖고 있다 캬캬캬캬
나는 이정애 쌤의 마지막 상업지 작품 [소델리니 교수의 사고수첩]을 잡지 연재로 봤었다. 당시 잡지에 멀쩡히 게재됐던 남성간 키스씬이 단행본으로 나올 때는 화이트칠돼 있어서 깜짝 놀랐었다. 화이트칠도 깔끔하게 된 게 아니고 분노에 넘쳐 엉망으로 그림을 훼손하고 있다. 아쉽게도 그 때 잡지는 전부 버려서 원본을 갖고 있지 않다ㅜㅜㅜㅜ 서울로 학교를 다니며 연애를 하고 문학작품들을 읽으며 만화에 대한 열의가 희미해졌을 때 아빰이 이사했다고 버리라고버리라고버리라고 난리난리 구박을 해대서 ㅜㅜ 아아 오케이하자마자 거실 한켠에 산처럼 쌓여있던 잡지를 아빠가 1만 오천원에 고물상에 넘겼던 것이다. 아오 말해 뭐해
이정애 쌤의 만화들은 지금 동인녀들이 읽는 판타지인 BL이나 좋아하는 작가라 밝히신 바 있는 하기오 모토식 소년애와도 거리가 있었다. 성별과 무관한 벌거벗은 채로의 인간 대 인간의 사랑, 아니 인간이라는 탈까지도 벗은 존재 대 존재 간의 사랑을 그리기 위해 동성간, 남매간 사랑을 그리고 동물, 외계인, 유령, 시간 패러독스에 빠진 다른 시대의 인간, 인간의 천적인 새로운 지성체와의 사랑을 그린다. 또 이성 연애더라도 여성을 부러 남자처럼 그리거나 성별이 모호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동성애에 대한 메타포로 읽힐 경우에도 지금의 장르화된 BL과는 좌표축이 달랐다 (퀴어 쪽도 아니다). 하지만 이후 소설들이 만화와 단절적인 건 아니다. 존재와 존재의 사랑이란 테마는 소설에서 더욱 극단까지 밀어붙여져 사이비 종교 같다는-ㅁ- 평가마저 있었다. 또 육신을 초월한 인간 대 인간의 사랑이란 주제는 "난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고 널 좋아할 뿐인데 근데 니가 남자다"라는 비엘 장르의 주요 판타지와도 맥이 닿아 소설 쪽에도 매우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요소도 많다).
나는 다른 여자 고딩들과 달리 일본 만화를 거의 보지 않았었고 때문에 비엘의 존재조차 몰랐다. 나 고딩 때 이미 팬픽이 융성했는데 그런 것도 몰랐다. 한국 만화책도 읽을 게 넘나 많아서 다른 데에 관심이 미치지 않았다. 이정애 쌤 절필 소식을 들은 뒤 미친듯이 소식을 찾아헤매다 옥션에서 절필 후 작품을 구할 수 있단 얘길 들었고, 그렇게 해서 이 동인지를 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프리미엄으로 구했다 썩을) 그 다음 수순은 자연스레 성인동 입tothe성으로 이어졌다. 물론 그 전에, 그니까 동인지를 본 후에, 이런 신세계가 있었어...라며 다양한 일본 비엘 만화를 섭렵했고 그러다 몇 년 뒤 흘러들어간 거지만 여튼.
이 단편을 아끼고 가끔 펴본다. 소설로라도 창작 활동을 이어주셔서 팬으로서 고마운 마음이지만 아무리 봐도 만화가 훨씬 좋다. 만화에서 간결하게 연출한 장면들이 소설에서는 구구절절 묘사되기 일쑤다. 혹시 잡지 연재라는 지면의 제약이 없다는 그런 문제도 있을라나. 여튼 자야 되니까 쌤이 다시 만화 그려주시면 좋겠다고 급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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