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워커스 6월호에 썼던 글인데, 지난 10월에 팔레스타인의 두 주요 정당 하마스와 파타는 이집트 중재로 드디어(!) 화핸지 뭔지 통합 정부 구성을 위한 합의를 마쳤다. 그렇다고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가 하면 그건 전혀 아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여전히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고, 하마스의 무장 해제도 계속 쟁점이다. 반목을 멈추고 통합 정부를 구성해 독립 국가로 나아갈지는 미지수다. 어쨌든 선거 날짜 잡자는 얘기는 계속 하고 있어서 좀더 지켜봐야 분명해질 것 같다.
하마스, 2국가 해법 채택
5월 1일, 팔레스타인의 주요 정당 ‘하마스’는 카타르 도하에서 새 헌장을 발표했다. 헌장에는 1967년 이스라엘이 군사점령한 서안·가자·동예루살렘, 즉 점령지 팔레스타인에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수립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비록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는 것도,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저항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스라엘과의 어떠한 타협이나 협상도 거부하는 강경한 태도로 팔레스타인 민중의 지지를 받은 하마스가 공식적으로는 처음 이스라엘과의 ‘공존’을 암시하며 입장을 바꾼 것이다.
하마스는 오랫동안 이스라엘과의 타협의 산물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참여하기를 거부했으나 2006년 처음으로 총선에 나섰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총선결과에 불복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기존 집권정당 ‘파타’는 하마스와 내전을 벌였고, 십년이 더 지난 지금도 두 세력은 반목해 하마스는 가자를, 파타가 속한 자치정부는 서안지구를 통치하고 있다. 하마스는 파타가 이스라엘 점령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팔레스타인 해방운동과 저항세력을 탄압하는 것을 줄곧 비판했다. 파타는 이번 하마스의 새 헌장이 그간 하마스가 비판해온 자신들의 입장과 같다며 그간 파타를 ‘배신자’, ‘이단자’라고 부른 것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하마스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이자 좀 더 비타협적인 해방운동 세력으로 평가받는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는 1967년 점령지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립하는 것이 민중의 의사에 반할뿐더러 그간 자치정부를 구성한 세력들이 만들어온 미로를 재생산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측은 새 헌장은 연막일 뿐이라며 이스라엘 총리가 프린트된 문서를 구겨 쓰레기통에 버리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친미국가지만 점령자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단호한 입장 때문에 곤란해 했던 하마스의 주요 후원국 터키는 하마스의 입장 선회를 반겼다. 익명을 요구한 미 국무부의 한 관리는 하마스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며 하마스가 여전히 미국 지정 테러 단체 명단에 올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서방 국가들과 관계 개선의 여지가 생긴 것은 분명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오랫동안 평화적 해법이라며 이스라엘 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가 공존하는 ‘2국가 해법’을 제안해왔는데 하마스가 이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세운다는 것은 현재의 이스라엘 국가는 유대인만을 위한 국가로 존재하고, 이스라엘이 철수한 점령지에 아랍인들이 사는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가 들어선다는 것이다. 이는 서방이 제안해온 2국가 해법에 들어맞는다.
불법적으로 지워진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에 군사점령당한 팔레스타인은 일제강점기의 한반도와 유사하지만,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은 독립운동의 형태로 전개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원주민에 대한 인종청소를 자행한 그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인종청소 당한 이들은 건국 순간부터 존재 자체로 불법이었다. 나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에 대항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상대를 부정해야 했던 것이다.
상위 정치의 흥망성쇠에 따라 오랫동안 그 지배자들은 다양하게 바뀌었지만, 어떤 국가에 지배받든 그 지역의 이름은 ‘팔레스타인’이었다. 19세기까지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엔 다양한 종교를 가진 여러 민족이 살고 있었고, 인구 중 94% 이상이 아랍인이었다. 19세기 말,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의 원주민을 몰아내고 ‘유대 국가’를 세우겠다며 유럽의 시오니스트들이 이주해 들어왔다. 1917년,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 땅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이 전쟁에 패하며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점령 통치하게 됐고, 같은 해 영국은 ‘밸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의 건국을 약속했다. 1946년까지 유대인이 소유한 땅은 팔레스타인 전체의 6%에 불과했지만 1947년 영국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UN에 위임한 뒤 UN총회는 결의안 제181호를 통해 역사적 팔레스타인을 분할, 56%의 땅을 유대 국가에, 나머지는 팔레스타인 국가에 할당하기로 결정했다.
팔레스타인인은 이 결정에 분노했고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오니스트들은 일단은 이 안을 환영한 뒤 이듬해 1차 중동 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78% 차지하며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나머지 22%의 땅은 이스라엘 전쟁 상대국이었던 이집트와 요르단이 통치하게 됐는데 이마저 1967년 3차 중동전쟁에 승리한 이스라엘에 군사점령당한 뒤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고 파타부터 하마스까지, 이들이 건립하겠다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는 이 22%의 땅을 기반으로 한다.
해방운동이 실패한 자리 – 독립국가론
군사점령은 6월로 꼭 50년이 된다. 어린 아이부터 60대 노인까지 팔레스타인 점령지 민중은 한 번도 점령이 없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이스라엘 건국 당시 추방된, 오늘날 점령지 인구수를 훌쩍 넘은 국외 거주 팔레스타인 난민은 거의 모두가 팔레스타인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점령이 이렇게 오래 갈 줄 아무도 몰랐다. 군사점령을 끝내고 이스라엘군을 철수시키기 위해 팔레스타인 민중은 군사 저항에서 비폭력 투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방 전략을 시도했다. 하지만 군사점령은 오히려 식민주의 정책으로 더 강화됐고 결과적으로 해방운동은 계속 실패했다. 처음, 팔레스타인 땅에 어째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들어서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던 팔레스타인 민중들도 이스라엘이란 국가에 의해 갈라지고 작아진 가자와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에라도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수립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점점 생각을 바꿔 갔다. 애초 불법적으로 건국된 이스라엘을 정당한 국가로 인정해서라도 점령이 끝나길 바라게 된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얘기해온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는 자체 군대를 갖지 않고 다국적군이 주둔한다. 난민의 귀환은 이스라엘 안에 가족이 남아 있는 고작 10만 명에게만 허락된다. 유대 국가를 표방하는 이스라엘이, 인구의 20%를 점하며 법과 제도를 통해 공식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계 이스라엘 시민권자에게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존재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점령이 계속되는 원인을 피점령지 주민에게 떠넘겨 왔다. 하지만 파타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22%의 땅 위에 독립 국가를 세우겠다며 후퇴하자 팔레스타인 땅 위에 유대 국가만이 존재해야 한다는 이스라엘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더 힘을 얻었다. 난민의 지위에 대해선 논의 테이블에 조차 올리지 못하게 됐고, 국제 사회의 수많은 규탄에도 서안지구 내 불법 유대인 정착촌은 팽창일로를 걸었다. 작년 말 UN 안보리의 정착촌 규탄 결의안이 통과될 때 오바마 전 미대통령이 ‘정착촌 확장이 2국가 해법을 시들게 한다’며 전례 없이 거부권 행사를 포기했을 정도다. 점령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예루살렘 전체가 이스라엘, 즉 유대 국가의 수도여야 한다는 것은 심지어 이스라엘의 자유주의자들에게마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스라엘은 유대 국가’라고 선언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기도 하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의 공생과 타협을 얘기하며 정치적으로 후퇴할 때 이스라엘은 유대 국가를 향해 전진했다.
1국가? 2국가? 팔레스타인 민중의 현실
10여 년 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좌파 지식인들은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도 아닌 하나의 국가에 인종이나 종교와 관계없이 모든 주민이 평등한 시민권을 갖는다는 1국가 해법을 본격적으로 제안했다. 이미 이스라엘은 자국과 점령지 전역에서 1개의 국가로 기능하고 있고,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이스라엘에 가서 일하고,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불법 정착촌을 짓고 사는 등 시스템도 사람도 불가분인 지경에 이르러 2국가 해법이 오히려 실현불가능하다며 차라리 이 극도로 불평등한 국가를 민주국가로 만들자는 것이다.
아카데미 탁상공론으로 여겨졌던 1국가 해법은 조금씩 지지를 늘려 올해 여론조사에서 점령지 팔레스타인인 36%과 팔레스타인 계 이스라엘 시민권자 56%의 지지를 받았다. 1국가 해법을 지지하는 이스라엘의 유대인은 19%에 불과했지만, 이 1개의 국가가 점령지 민중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즉 지금과 같은 체제라는 옵션이 추가되자 1국가 해법을 지지하겠다는 유대인이 31%로 늘었다. 한편 꾸준히 줄어들고는 있지만 점령지 팔레스타인 민중 44%와 팔레스타인 계 이스라엘 시민권자 82%라는 여전히 많은 수가 2국가 해법을 지지하고 있다. 유엔 가입국의 70% 이상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승인하고, 바티칸에 팔레스타인 대사관을 여는 등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가 현실화되는 듯한 징후들도 계속 등장한다.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그리려면 우선 난민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민중 스스로가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이 힘은 두말할 것 없이 이스라엘이 군사점령을 멈춘 뒤에야 가능하다. 평화와 공존을 모색하기 위해 협상을 하려면 양측이 형식적으로나마 대등해야 한다. 점령자와 피점령자가, 식민지 본국과 피식민지가 대등할 수는 없다. 2국가 해법이든 1국가 해법이든, 혹은 새로운 연방제 해법이든 평화로의 길을 가려면 이스라엘이 점령지 전역에서 먼저 철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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