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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날, 나크바, 땅을 지키려는 오랜 투쟁

가자의 귀환 대행진

3월 30일 가자지구의 귀환 대행진(Great March of Return)에 참여한 팔레스타인 여성 활동가 ‘힌드 아부 올라’(16세)는 이스라엘군의 최루탄 폭격 속에서도 대열의 맨 앞, 이스라엘 저격병들이 포진해 있는 국경을 향해 달려갔다. 최루 가스로 인해 호흡곤란을 겪으며 의식을 잃어가는 시위대 4명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최루 가스에 대비해 집에서 챙겨온 양파와 향수로 4명의 의식을 깨우자마자 이스라엘 저격병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아부 올라가 구한 4인의 시위대는 그녀의 등 뒤에서 서로 손을 맞잡은 채 인간 띠를 만들어, 저격병한테서 아부 올라를 보호하며 함께 뛰었다. 다행히 다섯 명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고, 아부 올라는 팔레스타인 투쟁의 또다른 상징이 되었다.

이스라엘과의 국경 인근에 밭이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군의 주둔과 총격에 익숙해진 지 오래다. 국경 인근은 소위 ‘완충 지대’에 속하기 때문이다.

‘완충 지대’란 이스라엘이 국경선으로부터 가자지구 안쪽으로만 설정한 팔레스타인인 출입 금지 지역으로 땅과 바다를 포괄한다. 국제법은 물론 자국법도 위반하며 임의로 설정한 터라 크기는 지역과 시점에 따라 다르고 아무도 정확한 크기를 알 수 없지만, ‘완충 지대’에 출입을 시도하는 팔레스타인인은 언제든 총포를 맞을 수 있다. 그간 발포 사례를 종합하면 완충 지대는 국경에서 1.5km 안쪽 반경까지 설정되곤 하며, 이는 가자지구 전역의 17%를 차지한다. 밭으로, 바다로 갈 수밖에 없는 농민과 어민이나 비무장 시위대를 쏘는 것이 전쟁 범죄임은 물론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귀환 대행진이라는 비폭력 시위 계획을 발표하자 이스라엘은 저격병을 100명을 배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실제 탱크 등 중화기와 함께 배치해 저격병이 시위대를 쏘고 있는 것도 ‘완충 지대’를 근거로 삼는다.

5월 15일 ‘나크바’까지 예정된 귀환 대행진은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 보장을 호소하는 비폭력 대중 운동으로, 가자 지역에선 1987년 인티파다(민중봉기) 이후 최대 규모의 운동이다. 70년 전 이스라엘 건국을 전후해 자행한 인종청소, 즉 나크바로 당시 팔레스타인 원주민 절반 이상이 난민이 되었다. 가자 주민의 70% 이상은 난민이다. 국경을 따라 ‘완충 지대’ 위에 행진 본부가 지은 텐트촌의 각 텐트에는 70년 전 이들이 쫓겨난 마을의 이름이 붙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팔레스타인의 여러 마을에서 시위를 해오기도 했지만, 귀환 대행진을 시작한 3월 30일 금요일은 또한 ‘땅의 날’이기도 했다. 이번 시위가 땅의 날에 시작된 것은 난민의 귀환권에 더해 팔레스타인 민중의 땅에 대한, 또 서로에 대한 강한 유대감을 보여준다.

 

땅의 날 – 점령지 팔레스타인을 넘어,
팔레스타인인들의 전방위 투쟁

1976년 3월, 이스라엘 정부는 “갈릴리의 유대화” 계획을 발표했다. ‘현대 이스라엘’로 병합된 갈릴리 지역의 팔레스타인 시민권자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그 위에 유대인 마을 50여개를 건설해 갈릴리의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유대인 인구로 대체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항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총파업과 시위를 조직했고, 저항 운동은 갈릴리에서 이스라엘 전역으로, 서안과 가자로, 난민촌으로 퍼져나갔다. 3월 30일과 31일 이틀간 4천 명이 넘는 이스라엘 군인과 경찰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시위대를 잔인하게 진압했다. 그 결과 6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살해당하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고 또 체포됐다. 땅의 날은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공동체의 토지와 정체성,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또 팔레스타인인과 아랍인에게조차 ‘점령자의 땅’으로 보였던 ‘이스라엘’ 안에도 그에 맞서 싸우는 팔레스타인인이 있음을 드러내고 이스라엘의 분열 정책에 시달리는 팔레스타인인 민중의 결속을 높였다.

군사점령지의 팔레스타인인, 팔레스타인 난민,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이란 구분은 팔레스타인인 스스로 만들어내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폭력적인 건국과, 온갖 국제법과 유엔 결의안을 무력화시키는 이스라엘의 식민 정책에 따라 강제로 격리된 것이다. 군사점령 51년, 나크바 70년에 이른 오늘날 ‘팔레스타인’이라고 하면 보통 51년 전 이스라엘에 군사점령당한 동예루살렘·서안·가자를 떠올리고, ‘팔레스타인인’이라고 부르면 점령지에 살고 있는 민중을 일컫는 거라는 대강의 전제도 있다. 하지만 점령지 인구보다 더 많은 난민과, 현대 이스라엘의 소수민족으로 분류되는 팔레스타인인 또한 팔레스타인 땅으로부터 이들을 유리시키려는 이스라엘의 식민 정책에 맞서 싸우고 있다.

 

우리의 존재가 곧 저항이다 – 밥 알샴스

2013년 1월에 점령지 내외의 팔레스타인 활동가 250여명이 한 자리에 모여 천막 25채를 세우고 ‘밥 알샴스’(Bab al Shams)라는 마을을 만들었다, 이스라엘이 서안지구 주민들의 땅을 몰수해 지은 가장 큰 불법 유대인 정착촌, ‘말레 아두밈’ 바로 옆이었다. 이스라엘은 애초에 건국 당시부터 UN이 국제지구로 지정한 예루살렘의 서쪽을 불법 영토 병합했고, 1967년 남은 팔레스타인 땅마저 군사점령한 뒤엔 동예루살렘도 병합하려 하고 있다(트럼프 정부가 주이스라엘 미대사관을 5월 중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는 건, 국제사회가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기왕의 서예루살렘만이 아니라 점령지 동예루살렘의 불법 병합까지 지지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스라엘은 서안지구 허리에 자리한 ‘말레 아두밈’과 예루살렘을 연결해, 서안지구를 반으로 쪼개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밥 알샴스 마을은 팔레스타인 땅 소유주의 허가를 받아 바로 예루살렘과 말레 아두밈 사이에 지어졌다. 이스라엘이 이 일대에 4천 채의 분양주택 건설을 신규 승인한 데 대한 대응이었다.

밥 알샴스는 ‘태양의 문’이란 뜻으로, 레바논의 한 팔레스타인 난민의 삶을 그린 엘리아스 쿠리의 동명의 소설에서 따온 이름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고향 갈릴리로 돌아가려 시도하고, 마침내 ‘태양의 문’이란 비밀 동굴에서 부인을 만나게 된다. 활동가들은 성명을 통해 “밥 알샴스는 굴하지 않는 우리들의 자유를 향한 문이며,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또 귀환을 향한 문”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마을은 불과 이틀 만에 군인들에 의해 강제철거 당했지만 이듬 해, 서안지구 내에서도 이스라엘 군정의 직접 통치를 받는 ‘요르단 계곡’의 ‘아인 히즐레'(Ein Hijleh)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밥 알 샴스가 최초의 시도였던 것도 아니다. 무참히 부서지면서도 계속되는 시도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마을을 만들고 이 땅에 존재하기 위해 이스라엘로부터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웅변한다.

 

이스라엘 안에 살아도, 돌아갈 수 없는 이크리트

이크리트는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하며 합병한 갈릴리의 작은 마을로 레바논에 가장 가까운 마을이다. 이크리트는 이스라엘군에 의해 파괴된 418개의 마을 중 하나로, 파괴된 마을의 주민들은 강제이주당한 후 지금까지도 귀환이 금지되고 있다. 다른 마을과 차이점이 있다면, 이스라엘 대법원이 이미 건국 3년 후에, 이크리트의 주민들이 마을로 돌아가서 살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는 점이다.

대법원 판결이 있어도, 이스라엘 시민권이 있어도, 이들은 국내실향민이 된 채 지금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 군사법원이 국가안보를 이유로 귀환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인근 마을에 흩어져 살면서 이크리트로 돌아가기 위해 수많은 소송을 진행하고 국회에 호소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며 60년 넘는 세월 동안 돌아갈 수 있으리란 믿음으로 고통을 감내해 왔다. 그러한 노력을 여전히 계속하는 한편, 2012년부터 3세대, 4세대 주민을 비롯한 젊은 활동가들은 이크리트의 상징과 같은 성당에서 미사를 보고 근처에 야영장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당국은 시시때때로 성당에 쳐들어와 활동가를 체포하고 야영장을 부수고 주변 밭의 나무와 농작물을 뽑아 버리곤 한다. 성당을 지키는 젊은 활동가들만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도 주기적으로 방문해 미사를 보고 야영지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며 마을을 가꾸고 있다. 작년에 잠시 마을을 방문했을 때 만난 할머니는 이크리트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죽어서는 이 땅에 꼭 묻히고 싶다고 눈물을 흘렸다.

 

고향 땅으로 돌아가 서로를 만나기 위한
다년간의 귀환 행진

지금 가자의 귀환 대행진은 갑작스러운 이벤트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동체는 1999년부터 국내 실향민을 중심으로 귀환 행진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건국기념일은 동시에 모든 팔레스타인인에게 대재앙의 날이었으므로, “너희의 독립은 우리의 나크바다”라는 모토로 해마다 파괴된 채 여전히 귀환이 금지된 마을로의 귀환 행진을 열고 있다. 재작년엔 120번 강제철거된 베두인 마을 ‘알 아라킵’이 위치한 네게브 사막에서 행진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동체와 레바논, 시리아의 난민, 서안과 가자의 주민 수천명이 국경에서 귀환 행진을 시도했다. 각각의 국경에서, 이스라엘은 시위대에 발포해 십여 명을 살해하고 수백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은 체포했다.

가자 대귀환 행진 시작 후 22일간 네 명의 어린이와 한 명의 기자를 포함해 팔레스타인인 37명이 이스라엘군에 살해당했고, 4천명 이상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5월 15일까지 더 많은 사상자가 예상되지만 마침내 모든 팔레스타인인이 고향땅에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귀환 행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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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15 14:24 2018/05/15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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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이 있었기 때문에 워커스는 PLO(파타)의 후신인 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배신과 팔레스타인에서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절망에 대해서 썼다. 원래 워커스에는 팔레스타인 현지 활동 내용을 쓰려고 준비해 놨는데 망할 놈의 트럼프가...ㅠㅠ 이미 써둔 글은 다시 다듬어서 따로 발표해야지

 

서안지구 헤브론에서 매주 토요일 열리는 유대인들의 '정착민 여행'을 군인들이 호위하고 있다. [출처: 뎡야핑]

뎡야핑(팔레스타인평화연대)


2017년 12월 6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언하면서 다시 팔레스타인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트럼프의 이번 선언은 《참세상》 2017년 2월 “이스라엘의 큰 그림, ‘예루살렘 마스터 플랜’”(링크)에서 다뤘듯, 이미 1995년에 제정된 미국의 ‘예루살렘 대사관법’에 기초한 행동이었다. 즉 미국은 애초 동-서를 불문하고 예루살렘 전체를 이스라엘 수도로 인정하고 있었고 단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대사관 이전 등 구체적 행동만을 보류하고 있었을 뿐이다. 언젠가 실행될 조치였다고 해서 팔레스타인 민중이 트럼프 선언에 분노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팔레스타인의 땅, 특히 예루살렘을 온전히 이스라엘 영토로 강제 병합하기 위해 땅을 몰수하고,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주민의 영주권을 박탈하며,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해 온 이스라엘은 결국 예루살렘에 대한 조건 없는 완전한 주권을 미국으로 부터 공식적으로 승인받은 것이다. 반대로 팔레스타인 민중은 미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를, 언제나 처럼 또 빼앗겼다. 물론 이것은 미국이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국제사회는 미국을 규탄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언제라도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국가 혹은 정치세력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12월 19일 UN 안보리의 트럼프 선언 반대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통과를 저지했고, 이에 UN 총회로 안건을 가져가려는 움직임에 UN주재 미국대사가 반대국 명단을 작성해 대통령에게 보고할 거라며 공공연히 협박하고 있다. 그동안의 담론은 가식적으로나마 미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담보로 팔레스타인의 양보를 강요해 왔다. 그러나 이제 미국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모든 권리를 노골적으로 빼앗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예루살렘 대사관 법’이 통과된 1995년 10월은 2차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 직후였다. 소위 ‘평화협정’이라는 오슬로 협정은 1987년 1차 인티파다, 즉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반점령 투쟁 결과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중재자’를 자처하며 시작됐다. 1993년, 이스라엘이 점령지 팔레스타인에서 점차적으로 철수 하고, 본 협정에 의거해 탄생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행정권을 조금씩 이양하는 한편, 팔레스타인 측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1차 협정이 체결됐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에서 철수할 가능성조차 시사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국제사회는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군정통치 속에 살던 많은 팔레스타인 민중은 이 청사진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2차 협정은 서안지구의 60% 이상이 여전히 이스라엘 군정의 직접 통치 하에 있다고 명시했다. 결국 예루살렘 문제나 이스라엘 건국 및 팔레스타인 점령 과정에 추방·강제이주당한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 등 첨예한 이슈를 뒤로 미루고, 모든 것이 이스라엘에 유리하게 ‘평화협정’이 확정된 상태에서 미국은 동-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 선언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협정에 따른 단계적 철수를 이행하기는커녕 오히려 불법 정착촌을 확대하고 영토를 강제 병합해 온 것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혼자 협정을 이행하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트럼프 선언에 대한 반발로 자신들도 오슬로 협정을 더 이상 이행할 의무가 없다고 선언했다. 즉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1948년 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 땅의 78%를 차지한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고, 그 남은 땅에 팔레스타인이란 국가를 세우겠다는, 그리고 그 전까지 자치정부를 구성해 이스라엘에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더 이상 지키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언제나 처럼 말만 강경할 뿐 실질적 조치가 없다. 2015년 말 한 팔레스타인 활동가로부터 “3차 인티파다가 일어난다면 이스라엘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향할 것”이란 얘길 들었다. 이미 2년 전에도 자치 정부에 대한 팔레스타인 민중의 불신과 분노, 절망이 극에 달해 있었지만 2017년 여름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활동가나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치정부에 대한 증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를테면 처음 만나자마자 “아부 마젠(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별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는 최악이라고 생각한다는 내 대답에 동조하며 그가 ‘crazy(미친 듯)’하다고 성토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전에는 나와 같은 외국인에게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해 알리고 싶어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이번 방문에선 점령 당국보다도 자치정부의 문제를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났다.

▲  예루살렘 전경 [출처: 뎡야핑]

자치정부도 해방운동을 탄압

부패와 무능이라는 오랜 이슈 외에 민중들이 가장 분노하는 점은 2003년 압바스가 자치정부 수반이 된 이후 계속 강화되고 있는, 자치정부와 이스라엘 간 ‘안보 공조’다. ‘안보 공조’란 자치정부가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 세력의 무기 소지와 거래를 금지하고 이들을 형사 소추하는 등 이스라엘의 안보에 협력 하는 행위를 총칭한다. 압바스 수반은 안보 공조가 ‘신성’하다고 표현하며 정치 사안에서 이스라엘과 합의에 이르지 못 하더라도 안보 공조만큼은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적도 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신베트의 수장은 자치정부가 안보 공조를 위한 이스라엘의 지시에 언제든 잘 따른다고 칭찬했다. 더군다나 자치정부는 지시가 없을 때도 알아서 점령 통치에 저항하는 활동을 탄압해 왔다. 예컨대 2014년 7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침공해 2,2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당시 서안지구 전역에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던 시위대를 폭압적으로 진압하고 체포했던 것도 자치정부였다. 점령자에 맞서 싸워야 할 지도부가 점령자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치정부는 오슬로 협정을 이행하지 않겠다면서도 안보 공조 중단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 2017년 7월 이스라엘이 알아크사 사원 출입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했을 때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저항이 격화되자 안보 공조 중단을 선언 했던 자치정부는 이후 조금씩 안보 공조를 재개하고 있었다. 안보 공조란 명목으로 자신들의 권력에 위협이 되는 세력을 탄압하고 있었는데 그 때문일까?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자치정부만을 탓할 수도 없지만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점령자에 협조한 책임은 너무 크다. 오랜 세속주의 해방 운동의 전통을 자랑했던 자치정부의 최대 세력 파타는 2006년 하마스 승리라는 선거 결과에 불복하고 내전과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다. 이를 정점으로 내부의 반대파를 대규모로 숙청하고 풀뿌리 활동가를 체포해 가두거나 이스라엘에 넘기는 등 여느 중동의 독재 정권과 다를 바 없는 행로를 걷고 있다. 여러 팔레스타인 사람이 차라리 자치정부가 수립되기 이전, 이스라엘에만 군사 통치를 받던 시절이 더 낫다고 얘기한다. 자치정부의 탄압이 이스라엘보다 덜할 것도 없는데다 해방운동 지도부의 배신은 감정적인 고통까지 더하기 때문이다.

많은 평자들이 또다시 3차 인티파다의 가능성을 점친다. 하지만 권력을 잃지 않으려는 지도부가 해방운동을 오히려 탄압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이번 선언의 여파가 해방운동 세력 간 단결 및 공동전선 수립, 민중봉기와 같이 긍정적인 행보로 이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트럼프 선언 후 13일간 이스라엘 군경이 체포한 팔레스타인 사람은 450명으로 이 중 138명이 미성년자였다. 살해당한 사람도 10명에 달한다. 당분간은 이 숫자가 계속 늘 것 같다. 그리고 해방운동으로 수렴되지 못한 분노한 청년들이 자기 몸을 무기 삼아 이스라엘 군인, 경찰, 불법 정착민을 공격 하고 살해당하는-소위 ‘테러’라 불리는 행위도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다.[워커스 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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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4 17:55 2018/01/04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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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대한 오랜 열망을 불법적 방법을 통해 실현해 왔다. 이스라엘 건국의 근거가 된 'UN 결의안 181'이 국제 관리지구로 지정한 예루살렘의 서쪽을, 건국을 전후한 1차 중동 전쟁 중에 점령·병합한 게 그 처음이었다.

이후 1967년 3차 중동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모든 팔레스타인 지역(가자지구·서안지구)을 점령했다. 그리고는 1980년 "온전하고 단일한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는 법을 제정해 점령지 동예루살렘마저 불법적으로 병합했다.

점령국이 피점령국의 땅을 자국 영토로 병합하는 것은 당연히 불법이니, 국제사회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할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당시 UN 안보리는 결의안 478을 통해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선언이 무효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전체가 자국 수도라 주장하고, 국제사회가 이를 인정치 않는 양상은 트럼프의 이번 선언 이전까지 무려 40년 가까이 계속돼 왔다. 다만 미국만은 예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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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3대 성지인 하람 알 샤리프가 보이는 예루살렘 올드 시티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미국의 화답 : 1995년 예루살렘 대사관 법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결코 스스로 고안해낸 게 아니다. 미국은 이미 1995년에 '예루살렘 대사관 법'을 상·하원에서 압도적인 다수결로 통과시키며 이스라엘의 열망에 화답했다. 이 법은 "분할되지 않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며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단 대사관의 이전은 국가 안보를 위해 대통령이 보류할 수 있도록 해, 지난 대통령들은 6개월마다 총 35회에 걸쳐 대사관의 이전을 보류해 왔다.

대선 때의 공약과 달리 올 6월 트럼프도 이 보류안에 처음 서명함으로써 빌 클린턴이나 조지 부시 전 대통령들처럼 선거 공약이 '공약(空約)'이 될 수도 있겠다고 많은 이들이 안심했다. 그런데 다시 6개월이 지나 보류할 시기가 돌아오자 돌연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수도라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이 '예루살렘 대사관 법'이 통과된 1995년 10월은 2차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 바로 직후이기도 하다. 소위 '평화협정'이라 불리는 오슬로 협정은 1987년 이스라엘군의 점령에 맞선 1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민중봉기) 결과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중재자로 나서며 1993년 체결됐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에서 점차적으로 철수하고, 본 협정에 따라 탄생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 행정권을 조금씩 이양하는 것이 골자였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에서 철수할 가능성을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국제사회는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고, 이스라엘 군정 통치 속에 살던 많은 팔레스타인 민중은 이 청사진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2차 협정은 서안지구의 60% 이상이 여전히 이스라엘 군정의 직접 통치를 받도록 체결됐다.

예루살렘 문제나 이스라엘 건국 및 팔레스타인 점령 과정에 추방·강제 이주당한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 등 첨예한 이슈를 미루고, 처음의 청사진과 달리 여전히 점령지 팔레스타인의 압도적 면적이 이스라엘 군사정부의 통치 하에 있으며, 모든 것이 이스라엘에 유리한 '평화협정'이 확정된 상태에서 미국은 동-서 통합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 선언한 것이다.

미래 독립 국가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희망은 깨져갔다. 이스라엘은 철수하기는커녕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 UN이 수많은 결의안을 통해 불법이라 규탄한 유대인 정착촌을 신규 승인하고, 확장했다. 특히 동예루살렘의 유대인 정착민은 오늘날 30만 명을 웃돈다.

이스라엘은 '말레 아두밈' 등 서안지구의 거대한 유대인 정착촌 3개와 그곳 정착민 14만 명을 예루살렘으로 통합시켜 예루살렘의 유대인 주민의 수를 선주민인 팔레스타인인보다 많게 하기 위해 '더 큰 예루살렘 법'을 상정해놨다. 점령지에 지어진 유대인 정착촌의 존재 자체가 불법이며, 그 불법적 정착촌을 예루살렘으로 통합시켜 영토 병합하는 것도 불법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강제철거, 강제이주, 도발 그리고 진압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인구가 우위를 점할 수 있게 이스라엘이 취한 또 다른 정책은 팔레스타인 선주민들을 갖은 구실로 쫓아내는 것이다. 신규 건설 허가를 내주지 않고, 주거지를 강제 철거하고, 결혼이나 유학 등 이유로 잠시 떠난 이들의 영주권을 박탈하는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며 도발도 일삼았다. 2000년 2차 인티파다(민중봉기)는 이스라엘 정치인이 수백 명의 폭동 진압 경찰을 대동한 채 이슬람 3대 성지인 하람 알 샤리프(템플 마운트)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배를 주장한 데서 촉발되었다. 이스라엘은 2015년 9월에도 무슬림의 알 아크사 사원 단체 참배를 금지했다.

이에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이스라엘은 완전무장한 시위 진압 군인을 향해 돌을 던진 시위대에게 "전쟁을 선포한다"며 실탄 발포 기준을 완화하고 최소 4년, 최대 20년에 달하는 징역형을 선고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 지금도 10대 청소년들이 계속해서 연행·장기간 감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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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서안지구 헤브론에서 트럼프의 선언에 반대하는 시위 중 팔레스타인 소년(16세)이 20여 명의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연행되고 있다. ⓒAbed Hashlamoun

 

서방 언론의 보도와 달리 현재 분노한 대중들의 시위는 '하마스'와 같은 특정 정치조직이 조직한 게 아니다. 트럼프의 선언에 분노한 팔레스타인의 모든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언제나처럼 자율적으로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1차 인티파다 이래 30년간 다양한 비폭력 투쟁 방법을 개발해왔고, 매주 금요일마다 반(反)점령 시위를 하고 있는 마을도 부지기수다. 이스라엘 인구의 20%를 점하는 팔레스타인인들 역시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팔레스타인 마을을 철거하거나, 가자지구를 폭격하거나, 예루살렘 문제로 도발할 때마다 마을 단위로 시위를 조직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점령지에선 중무장한 군인들로, 이스라엘에선 특수 경찰 부대 등으로 시위대를 잔인하게 진압하고, 살해했다. 그 반동으로 시위는 더욱 격해지고, 다시 그 격해진 시위를 빌미로 이스라엘이 더 많은 폭력을 자행하는 그 끔찍한 일이 수없이 반복되었고 지금 다시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선언의 의미 : 2국가 해법의 종언

중동 국가들뿐 아니라 미국의 오랜 우방국이나 미국 정치인들이 이번 선언을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방 세계가 오랫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책으로 간주해 온 '2국가 해법'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2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군이 점령지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철수한 뒤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독립 국가를 수립하고, 이스라엘은 유대인 민족으로 구성된 유대 국가를 수립해 두 국가가 공존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오슬로 협정이 바로 그 교두보였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오슬로 협정은 이미 최대한을 양보한 팔레스타인 측에만 더 포기할 것을 요구했고,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는 오히려 더 희미해졌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은 견고하다. 팔레스타인의 자결권 존중을 운운했지만 처음부터 기만적이었던 오슬로 협정은 이미 실패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유대 국가를 수립하면, 지금까지도 귀환의 꿈을 품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과 그 후손이 원래 팔레스타인 땅이었던 이스라엘로 돌아올 가능성을 봉쇄한다.

트럼프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하면서도, 예루살렘은 최종 지위 협상 때 양 당사자가 논의할 문제라며 여전히 2국가 해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 법은 전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규정하고 있다. 트럼프의 교묘한 언술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보류돼 있던 법이 27년만에 시행되며 2국가 해법에 종언을 고했다.

이스라엘을 멈추게 할 방법, BDS

하지만 갑작스럽긴 해도 예루살렘 선언은 이미 예정된 상황이었고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 2국가 해법이 실패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10년간 가자지구의 육·해·공을 봉쇄하고, 서안지구에서 군사점령 정책을 강화하고,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계속해서 병합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군사 점령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미국의 중동 정책에 팔레스타인과 국제사회가 휘둘리는 상황은 언제든 다시 올 수밖에 없다.

이미 수백 개의 UN 결의안을 휴짓조각으로 만든 이스라엘로서는 스스로 그만둘 이유를 찾기 어렵다.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해방 운동과 그에 연대하는 국제 시민사회운동은 대화와 협상으로 이스라엘을 설득하기보다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자고 노선을 정립했다.

오랜 비폭력 투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2005년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는 세계 시민사회에 이스라엘에 맞서 폭넓은 보이콧과 투자철회 운동, 이스라엘을 통상금지·제재 대상국으로 지정하도록 자국 정부를 압박하는 운동을 조직할 것을 요청했다. 이른바 BDS (보이콧·투자철회·제재, Boycott·Divestment·Sanctions) 운동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소다스트림(Sodastream) 불매 운동과 같은 소비자 운동을 할 수 있다.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에 공장을 두고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세제 혜택 등을 받던 소다스트림은 BDS 운동의 압박을 받고 공장을 철수했지만 베두인 마을 강제 철거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네게브 사막으로 공장을 옮겨 계속해서 보이콧 대상이다.

자신이 속한 교회 등 종단에 이스라엘 점령 공모 기업에의 투자 철회를 제안할 수도 있다. 2014년 미국 최대 교단인 미국장로교와 연합감리교가 점령 공모 행위를 이유로 모토로라, 휴렛패커드(HP), 캐터필러에 대한 투자를 철회했던 것도 소속 교인들의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한국의 기업과 대학들도 여러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점령에 연루돼 있다. 특히 이스라엘이 건국되기도 전부터 살아온 팔레스타인인의 집이 무허가 건물이라며 부수는 데에 현대중공업의 굴삭기가 사용되고 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피해 주민들과 함께 현대중공업 측에 이스라엘로의 굴삭기 판매 중단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BDS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군사 점령을 계속하는 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단절할 것을 전방위적으로 선언하는 행동으로, 특정하게 정해진 분야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생활 영역에서 점령 공모 물품이나 행위를 찾아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다. 해가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는 이스라엘의 야만적 점령과 식민화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수단에 한국 시민들이 함께했으면 한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웹사이트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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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5 12:43 2017/12/1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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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대한 글을 쓰다 참고용으로 예전에 쓴 글 찾아봤는데 내 블로그에 옮기지 않았던 글이 있어서 가져온다. 2015년 글이지만 트럼프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선언 후 48년 안팎 할 거 없이 분노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리로 뛰어나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몰리는 작금의 상황과 닮았다.

 

전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올해 팔레스타인에 다녀온 뒤 좀 이상해졌다. 이번에 알게 된 팔레스타인 청년들, 어린이들이 죽을까봐, 다칠까봐 너무 걱정이 되고 무섭다. 아는 얼굴이 집회 사진에 보이면 반가운 게 아니라 덜컥 겁이 난다. 그리고 모르는 얼굴 역시... 너무 무섭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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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bed Hashlamoun

 

트럼프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했다 20명이 넘는 이스라엘 군인들에 눈을 가린 채 연행당하는 열여섯 살 팔레스타인 소년 사진이다... 자세히 보면 얼굴이 상처 투성이다... 멀리서 눈물만 흘리고 있다. 아래 글도 새삼 슬프네 청년들의 몸이 무기가 된다는 거 자체가.

 


※ 이 글은 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글 링크)

작성일 2015.11.14

 

팔레스타인에서 들려오는 소식

9월 이래 팔레스타인에서 들려온 소식들은 여느 때보다 충격적이다.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들이 피 흘리며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소년을 비디오로 촬영하고, 이스라엘 군인들이 차를 타고 가는 70대 할머니에게 총을 쏘는 일이 일어났다. 칼을 소지하고 있지 않다고 외치는 지근거리의 비무장 대학생과 눈앞에서 항의하는 할아버지에게도 발포하였다. 이스라엘 경찰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시민권자인 팔레스타인 여성에게 6발을 쐈다.

10월 한 달 동안만 73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군에 살해당했고 921명이 피격돼 부상을 입었다.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하며 길거리에 나온 이들 중 1,195명이 체포·구금당했다. 5000명 이상이 최루가스로 인한 호흡곤란을 겪고 있고,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한 활동가는 결국 사망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9월,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3대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의 무슬림 단체 참배를 금지했다.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비단 무슬림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상징적인 이 공간의 방문을 금지한 것은 명백히 팔레스타인을 자극할 목적에서였다. 이를 기화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시위가 시작됐고,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투석자들에게 전쟁을 선포한다’며 실탄 발포 기준을 완화하는 한편 시위대를 최소 4년, 최대 20년간 감금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팔레스타인 전역이 들끓는 와중에,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칼로 찌르고, 차로 들이박아 11명을 살해했다.

요즘의 정세를 1987년, 2000년에 이은 세 번째 민중봉기(인티파다)라고들 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식민화’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책임이 없는 이스라엘 민간인들에 대한 ‘테러’ 행위는 잘못이라며 비난한다. 강조하건대 이스라엘인을 살해한 팔레스타인 청년 어느 누구도 목숨을 부지할 것이란 기대를 해선 안된다. 대부분은 현장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즉각 살해당한다. 산 채로 붙들려도 평생 절대로 감옥에서 나올 수 없다. 이것을 너무 잘 아는데도, 자기 몸을 무기 삼아 이스라엘인을 공격하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왜 계속 생겨나는 걸까?

팔레스타인에게 이스라엘은 점령자일뿐

오스만 제국에 이은 영국의 점령을 받던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만을 위한 국가를 세우겠다는 시오니스트들이 UN의 승인을 받아 이스라엘을 건국한 게 70년 전 일이다. 이스라엘이 건국 전쟁을 벌이며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고 죽였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여전히 이스라엘 인구의 20%를 점한다. 이들 이스라엘 시민권자인 경우부터, 1967년 3차 중동전쟁으로 군사점령당한 점령지(동예루살렘, 서안지구,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 그리고 쫓겨나 주변 국가에서 빈민촌에 다름없는 난민촌에서 원조에 의지해 세대를 거듭하며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까지, 이들이 전쟁과 점령으로 국적과 지위가 달라지고 왕래가 불가능해졌어도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정체성과 유대감을 유지 하고 있다.

단지 특정한 전쟁, 특정한 점령자가 나쁜 거라서 목숨 걸고 저항하는 게 아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가 학살과 추방을 기반으로 세워졌고, 그리고 지금도 그 정책을 유지하는 이상, 중무장한 군인들이나 불법 정착민들이 아니어도 이스라엘은 불법 점령국이고, 그런 이상 팔레스타인 땅의 모든 이스라엘인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점령자인 것이다.

특히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립 이후 오히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화는 더욱 노골화되었고, 제네바 협약 등 온갖 국제협약, 국제기구의 판결 및 온갖 유엔 문서들이 휴지조각으로 전락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강제당한 팔레스타인 청년들에게 어떤 비난이 가능한 걸까.

이스라엘을 보이콧해 점령을 그만 두도록 압박해 줄 것을 요구하는 팔레스타인의 목소리와 그에 호응하는 세계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스라엘 건국 전부터 살아온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이 무허가 건물이라며 부수는 데에 현대중공업의 굴삭기가 사용되고 있는데,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는 현중 측에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계속하고 있다. 강도를 더해가는 이스라엘의 야만적 점령과 식민화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수단에 함께 해야 하고, 또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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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2 23:06 2017/12/12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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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워커스 6월호에 썼던 글인데, 지난 10월에 팔레스타인의 두 주요 정당 하마스와 파타는 이집트 중재로 드디어(!) 화핸지 뭔지 통합 정부 구성을 위한 합의를 마쳤다. 그렇다고 뭔가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가 하면 그건 전혀 아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여전히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고, 하마스의 무장 해제도 계속 쟁점이다. 반목을 멈추고 통합 정부를 구성해 독립 국가로 나아갈지는 미지수다. 어쨌든 선거 날짜 잡자는 얘기는 계속 하고 있어서 좀더 지켜봐야 분명해질 것 같다.

 

하마스, 2국가 해법 채택

5월 1일, 팔레스타인의 주요 정당 ‘하마스’는 카타르 도하에서 새 헌장을 발표했다. 헌장에는 1967년 이스라엘이 군사점령한 서안·가자·동예루살렘, 즉 점령지 팔레스타인에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수립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비록 이스라엘 국가를 ‘인정’하는 것도,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저항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스라엘과의 어떠한 타협이나 협상도 거부하는 강경한 태도로 팔레스타인 민중의 지지를 받은 하마스가 공식적으로는 처음 이스라엘과의 ‘공존’을 암시하며 입장을 바꾼 것이다.

하마스는 오랫동안 이스라엘과의 타협의 산물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참여하기를 거부했으나 2006년 처음으로 총선에 나섰고,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총선결과에 불복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기존 집권정당 ‘파타’는 하마스와 내전을 벌였고, 십년이 더 지난 지금도 두 세력은 반목해 하마스는 가자를, 파타가 속한 자치정부는 서안지구를 통치하고 있다. 하마스는 파타가 이스라엘 점령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팔레스타인 해방운동과 저항세력을 탄압하는 것을 줄곧 비판했다. 파타는 이번 하마스의 새 헌장이 그간 하마스가 비판해온 자신들의 입장과 같다며 그간 파타를 ‘배신자’, ‘이단자’라고 부른 것을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하마스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이자 좀 더 비타협적인 해방운동 세력으로 평가받는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는 1967년 점령지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립하는 것이 민중의 의사에 반할뿐더러 그간 자치정부를 구성한 세력들이 만들어온 미로를 재생산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스라엘 측은 새 헌장은 연막일 뿐이라며 이스라엘 총리가 프린트된 문서를 구겨 쓰레기통에 버리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친미국가지만 점령자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단호한 입장 때문에 곤란해 했던 하마스의 주요 후원국 터키는 하마스의 입장 선회를 반겼다. 익명을 요구한 미 국무부의 한 관리는 하마스의 입장에 변화가 없다며 하마스가 여전히 미국 지정 테러 단체 명단에 올라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다른 서방 국가들과 관계 개선의 여지가 생긴 것은 분명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는 오랫동안 평화적 해법이라며 이스라엘 국가와 팔레스타인 국가가 공존하는 ‘2국가 해법’을 제안해왔는데 하마스가 이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세운다는 것은 현재의 이스라엘 국가는 유대인만을 위한 국가로 존재하고, 이스라엘이 철수한 점령지에 아랍인들이 사는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가 들어선다는 것이다. 이는 서방이 제안해온 2국가 해법에 들어맞는다.

불법적으로 지워진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에 군사점령당한 팔레스타인은 일제강점기의 한반도와 유사하지만,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은 독립운동의 형태로 전개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원주민에 대한 인종청소를 자행한 그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인종청소 당한 이들은 건국 순간부터 존재 자체로 불법이었다. 나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에 대항하고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상대를 부정해야 했던 것이다.

상위 정치의 흥망성쇠에 따라 오랫동안 그 지배자들은 다양하게 바뀌었지만, 어떤 국가에 지배받든 그 지역의 이름은 ‘팔레스타인’이었다. 19세기까지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엔 다양한 종교를 가진 여러 민족이 살고 있었고, 인구 중 94% 이상이 아랍인이었다. 19세기 말,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의 원주민을 몰아내고 ‘유대 국가’를 세우겠다며 유럽의 시오니스트들이 이주해 들어왔다. 1917년,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아랍 땅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이 전쟁에 패하며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점령 통치하게 됐고, 같은 해 영국은 ‘밸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의 건국을 약속했다. 1946년까지 유대인이 소유한 땅은 팔레스타인 전체의 6%에 불과했지만 1947년 영국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UN에 위임한 뒤 UN총회는 결의안 제181호를 통해 역사적 팔레스타인을 분할, 56%의 땅을 유대 국가에, 나머지는 팔레스타인 국가에 할당하기로 결정했다.

팔레스타인인은 이 결정에 분노했고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오니스트들은 일단은 이 안을 환영한 뒤 이듬해 1차 중동 전쟁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78% 차지하며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나머지 22%의 땅은 이스라엘 전쟁 상대국이었던 이집트와 요르단이 통치하게 됐는데 이마저 1967년 3차 중동전쟁에 승리한 이스라엘에 군사점령당한 뒤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고 파타부터 하마스까지, 이들이 건립하겠다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는 이 22%의 땅을 기반으로 한다.

해방운동이 실패한 자리 – 독립국가론

군사점령은 6월로 꼭 50년이 된다. 어린 아이부터 60대 노인까지 팔레스타인 점령지 민중은 한 번도 점령이 없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이스라엘 건국 당시 추방된, 오늘날 점령지 인구수를 훌쩍 넘은 국외 거주 팔레스타인 난민은 거의 모두가 팔레스타인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점령이 이렇게 오래 갈 줄 아무도 몰랐다. 군사점령을 끝내고 이스라엘군을 철수시키기 위해 팔레스타인 민중은 군사 저항에서 비폭력 투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방 전략을 시도했다. 하지만 군사점령은 오히려 식민주의 정책으로 더 강화됐고 결과적으로 해방운동은 계속 실패했다. 처음, 팔레스타인 땅에 어째서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들어서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던 팔레스타인 민중들도 이스라엘이란 국가에 의해 갈라지고 작아진 가자와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에라도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수립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점점 생각을 바꿔 갔다. 애초 불법적으로 건국된 이스라엘을 정당한 국가로 인정해서라도 점령이 끝나길 바라게 된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얘기해온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는 자체 군대를 갖지 않고 다국적군이 주둔한다. 난민의 귀환은 이스라엘 안에 가족이 남아 있는 고작 10만 명에게만 허락된다. 유대 국가를 표방하는 이스라엘이, 인구의 20%를 점하며 법과 제도를 통해 공식적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계 이스라엘 시민권자에게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이 존재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점령이 계속되는 원인을 피점령지 주민에게 떠넘겨 왔다. 하지만 파타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고 22%의 땅 위에 독립 국가를 세우겠다며 후퇴하자 팔레스타인 땅 위에 유대 국가만이 존재해야 한다는 이스라엘 극우 세력의 목소리가 더 힘을 얻었다. 난민의 지위에 대해선 논의 테이블에 조차 올리지 못하게 됐고, 국제 사회의 수많은 규탄에도 서안지구 내 불법 유대인 정착촌은 팽창일로를 걸었다. 작년 말 UN 안보리의 정착촌 규탄 결의안이 통과될 때 오바마 전 미대통령이 ‘정착촌 확장이 2국가 해법을 시들게 한다’며 전례 없이 거부권 행사를 포기했을 정도다. 점령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예루살렘 전체가 이스라엘, 즉 유대 국가의 수도여야 한다는 것은 심지어 이스라엘의 자유주의자들에게마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스라엘은 유대 국가’라고 선언하는 법안이 발의돼 있기도 하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의 공생과 타협을 얘기하며 정치적으로 후퇴할 때 이스라엘은 유대 국가를 향해 전진했다.

1국가? 2국가? 팔레스타인 민중의 현실

10여 년 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좌파 지식인들은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도 아닌 하나의 국가에 인종이나 종교와 관계없이 모든 주민이 평등한 시민권을 갖는다는 1국가 해법을 본격적으로 제안했다. 이미 이스라엘은 자국과 점령지 전역에서 1개의 국가로 기능하고 있고,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이스라엘에 가서 일하고,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불법 정착촌을 짓고 사는 등 시스템도 사람도 불가분인 지경에 이르러 2국가 해법이 오히려 실현불가능하다며 차라리 이 극도로 불평등한 국가를 민주국가로 만들자는 것이다.

아카데미 탁상공론으로 여겨졌던 1국가 해법은 조금씩 지지를 늘려 올해 여론조사에서 점령지 팔레스타인인 36%과 팔레스타인 계 이스라엘 시민권자 56%의 지지를 받았다. 1국가 해법을 지지하는 이스라엘의 유대인은 19%에 불과했지만, 이 1개의 국가가 점령지 민중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즉 지금과 같은 체제라는 옵션이 추가되자 1국가 해법을 지지하겠다는 유대인이 31%로 늘었다. 한편 꾸준히 줄어들고는 있지만 점령지 팔레스타인 민중 44%와 팔레스타인 계 이스라엘 시민권자 82%라는 여전히 많은 수가 2국가 해법을 지지하고 있다. 유엔 가입국의 70% 이상이 팔레스타인 국가를 승인하고, 바티칸에 팔레스타인 대사관을 여는 등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가 현실화되는 듯한 징후들도 계속 등장한다.

팔레스타인의 미래를 그리려면 우선 난민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민중 스스로가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이 힘은 두말할 것 없이 이스라엘이 군사점령을 멈춘 뒤에야 가능하다. 평화와 공존을 모색하기 위해 협상을 하려면 양측이 형식적으로나마 대등해야 한다. 점령자와 피점령자가, 식민지 본국과 피식민지가 대등할 수는 없다. 2국가 해법이든 1국가 해법이든, 혹은 새로운 연방제 해법이든 평화로의 길을 가려면 이스라엘이 점령지 전역에서 먼저 철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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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5 16:00 2017/12/0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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