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검색 결과

해당 글 6

유목민

category 역사 2015/06/23 01:05

ㅁ이가 [신부 이야기]라는 만화를 좋아해서 내가 사줬는데, 보니까 역시 표지만 봐도 감이 오는 내가 안 좋아하는 류의 만화였다.. -ㅁ-;;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삶을 다루는데 그렇게만 말하면 내가 꽤 좋아할 법 하건만 난 그냥 자잘 소소한 일상 이야기 이런 거 싫어함;; 디테일이 살아있되 큰 이야기가.. 아니 그런 것보다도 캐릭터들이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아서 매력이 없어! 매력이 전무! 얼굴들은 다 이쁜데 (그림이 이쁘니까) 뭐 대단히 설득력 없게 진행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너무 심심하다. 다들 너무 착해! 나쁜 놈은 대놓고 나쁜 놈이야 (눈깔이 작음) 여튼< 뭐 안 볼라다가 최근 다음의 두 개를 보고, 유목민이라고 다 같은 유목민은 아니지만 어쨌든 유목민의 삶 좀 보자<고 읽고 있다.

 

Mongolia kids with precious animals.

Posted by 3dfirstaid visual architecture on Tuesday, 9 June 2015

>ㅅ< 앙 >ㅆ< 애기 너무 이뻐 ;ㅅ;ㅅ;ㅅ;ㅅ;ㅅ;ㅅ;ㅅ;ㅅ; 특히 낙타랑 활짝 웃고 있는 사진ㅋㅋㅋㅋㅋㅋㅋ 너무 귀여워서 출처를 찾아봤는데 원출처인 텀블러는 주소를 바꽜는지 남아 있지 않고 다른 이가 펌한 데를 보니까, 몽고 사람이 찍었다규. 아유 기여워 빵 터졌네 ㅋㅋㅋ 아 이거 다다가 좋아할 것 같으니 보내줘야겠다 'ㅅ'

 

그리고 다른 하나는 왕 충격받았는데..

 

"북아프리카 우루 나일족의 여성은 나이가 차면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중해 연안의 도시로 나가 춤을 선보이거나 가끔은 매춘으로 돈을 벌었다. (뒤에 생략)"

 

이랬다는 것이다 이것에 깜놀했다 진짠가? 그럴 수 있나? 정조보다 혼수 마련이 더 중요? 아라비아가 아니긴 한데 옛날에 아라비안 나이트 봤더니 처년지 아닌지 심하게 따지던데.. 물론 각 사회에 처녀인 척 하는 비책(?)이 다 전해내려오는 것 같긴 하다만.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 나중에 찾아봐야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했던 건지 궁금하다.

 

유목민의 삶은 팔레스타인에서 잠깐씩 베두인족 사람들을 만나며 엿봤었는데..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는 막 진짜 멀리 떨어진 데서 이리 오라고 오라고 괜찮다는데 이리 오라고 하시더니 엄청나게 커다랗고 진짜 태어나 먹어본 가장 맛있는 화덕에 구운 빵을 또한 태어나 먹어본 최고로 맛있는 치즈랑 주셨던 거.. 경치 아름다운 언덕에 앉아 맞은편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바라보며 아랍어도 못 하는 내게 이스라엘 군인들이 어떻게 총을 쏘고 어떻게 양과 염소를 죽였는지 어떻게 이동을 가로막는지 열심히 설명해 주셨던 그 아주머니가 떠오른다. 갑자기 심한 무력함이 엄습해오네-_- 그만 써야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2015/06/23 01:05 2015/06/23 01:05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4년 아프리카예술박물관 노예노동

category 역사 2015/04/25 23:48

최근에 두레방 활동에 관심이 생겨서 홈페이지를 보다가 [자료집]E-6비자 이주노동자 인권실태와 개선방향 토론회를 읽어봤다가 자료집 앞부분의 '아프리카예술박물관' 관련 내용을 보고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 찾아봤다. 당시 내가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건 정당한 임금을 받고 본국으로 돌아갔겠지.. 정도였는데 읽어보니 예술가들이 한국에서 더 일하고 싶어한 것 같고, 그래서 더 나은 노동조건을 요구하고 합의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 일하고 있을지가 궁금했는데. (당시 숙소 등 영상 뉴스는 아프리카예술박물관의 참혹한 숙소 현장, 미디어몽구 참조)

 

포천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에 따르면 아프리카예술박물관은 휴업 중이라고 나오는데 블로그 검색해 보니 영업중이다. 근데 리뷰가 대략 안 좋고, 홈페이지도 지금은 어디 보험 판매업자가 도메인 사서 쓰고 있다. 최근 상황에 대해선 2014년 8월 5일자 기사에 잘 나와있네: ‘매각설’ 홍문종의 아프리카예술박물관 실상, 일요신문

 

특히,

 

논란이 됐던 부르키나파소 공연예술단은 밀린 임금을 받고 귀국했다. 지난 5월 말까지 남아있던 조각가도 계약 만료로 박물관을 나갔다. 이후 아프리카예술박물관에는 단 한 명의 아프리카인이 남지 않게 됐다.

 

단지 계약기간을 채우고 싶었던 것 뿐이로구나. 암튼 이것저것 검색하다 보니까 여기 소유주인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은 문제된 뒤에도 발뺌을 하고, 언론사에 대응을 하겠다고 했었는데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2014-02-11 홍 사무총장은 "먼저 (이주노동자들에게)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지급해왔는가 하는 부분은 고용당시 박물관으로부터 분명히 공인노무사의 자문을 받아 임금을 결정하고 지급하겠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 홍문종 “아프리카 노동자 착취 논란 국민께 송구”, 동아일보

 

2014-02-27 박물관측은 그러나 '노예노동', '노동착취'라는 표현을 쓴 언론사에 대한 언론중재위 조정신청, 정정보도 청구 등 적극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 아프리카예술박물관 "'노예노동' 표현 언론에 정정보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서는 이 사건 관련해 1년이 지나 올해에야, 홍문종 의원에게 '공개회의에서의 사과' 징계 결정을 내렸다는데,

 

2015-02-25 또 새누리당 홍문종 의원에 대해서는 이사장으로 있던 아프리카예술박물관에 채용된 예술단원들에게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지급한 것 등을 이유로 '공개회의에서의 사과' 징계의견을 냈다.

- 국회 윤리특위, 의원 징계안 9건 징계소위 회부

 

사과를 어떻게 했는지, 최저 임금 미달 기타 최악의 노동조건 부정하던 입장을 뭐라고 설명하고 끝냈는지.. 뭐 더 알고 싶지도 않다.

 

작년에는 홍문종 의원이 박물관을 매각하려 했다는데(자세한 건 "골치 아파서"…'착취 논란' 아프리카박물관 매각진행, 연합뉴스), 아래 최근 조선일보 보도를 보니 여전히 이사장직을 유지하는 모양?

 

2015.03.26 홍 의원은 3000만원짜리 사자 박제와 2500만원짜리 기린 박제를 포함해 영양의 일종인 그레이트 쿠두(550만원)와 일런드(500만원), 누(550만원), 버펄로(800만원) 박제 등을 신고했다. 또 조각상으로 이페전사, 이페왕, 바문, 세누포 칼라오상, 바문왕 의자, 베닌 두상, 무무예 등 조각품 7점을 신고했다. 홍 의원은 경기 포천에 있는 아프리카예술박물관 이사장이다. 조각품과 박제의 가치는 전년과 동일하게 1억2900만원이었다.

- 사자, 기린 등 국회의원의 이색 재산, 조선일보

 

뭐 그냥... 어떻게 됐나 궁금했던 누군가가 검색하면 읽어볼 수 있게 써봤다. 최근의 방문 후기들을 보면 곰팡이내가 난다지 않나.. 공연 아예 접은 줄을 방문객들이 모르지 않나.. 위에 링크한 일요신문 기사에 나오듯이 진짜 관리 안 하는 듯. 아프리카에서 가져왔을 예술품들이 썩고 있을 생각하면... 화딱지가 난다. 귀국한 예술가들에게 홍문종 의원의 징계-이행 사항은 전달이 됐을지.. 불어 통역도 없이 국회에 세워놧었다는 것도 진짜 끝까지 인간을 인간 취급하지 않고. 아 말해 뭐해 화만 나지. 뭐 그렇다고.

"역사" 분류의 다른 글

문종의 두 번째 폐세자비 순빈 봉씨를 폐위한 이유 (0)2014/03/16
유목민 (0)2015/06/23
프랑스 해외 영토 (6)2007/05/08
어떤 승리 (0)2014/04/03
반구대 암각화 잠깐 다녀옴 (2)2015/04/0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2015/04/25 23:48 2015/04/25 23:48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양호실 2015/04/28 02:48

    컥..검색하다 들어왔는데 전에 들려 구경했던 멋진 만화룸의 덩야핑님 댁이네요^^ 그나저나 그 박물관 소유주가 홍씨였다니..몰랐어요 전체 내용 잘보았어요 속이 마이 쓰리네요..

    • 앙겔부처 2015/04/28 11:45

      어머나 저머나< 심혜진님 동인지 부러워해 주신 유일한 그 분이시네요♡ 우왕~! 별 거 아니었어도 정리한 보람이 있네용

반구대 암각화 잠깐 다녀옴

category 역사 2015/04/04 20:5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장석호 박사가 2000년 반구대 암각화를 실측한 뒤 색채를 그려넣은 도면

근대 이전의 인류의 역사와 문명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작년에 팔레스타인에 가기 위해 자료 조사 좀 하다가 갑자기 인류 문명이 좋아졌다 -ㅁ-;; 너무 재밌어 수메르 등 왼갖 신화도 다 읽고 왼갖 유적지 다 밟아보고 싶다. 팔레스타인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일부로, 9천 년 전에 사람이 정주했던 흔적(우물)이 있고 7천 년 전에 큰 도시를 이루고 산 동네(제리코)도 있고, 완전 인류 문명의 보고이다. 유적들이 무궁무진하다. 이런 유적들은 비단 팔레스타인의 것만이 아닌데, 주로 이스라엘의 점령 때문에 유적들이 방치/훼손되는 것이 너무 화가 났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건 팔레스타인 것도 이스라엘 것도 아닌데, 인류의 문화인데! (이스라엘이 고고학을 점령과 식민화의 내러티브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꽤 오래 전부터 지적돼 왔으며, 본인도 팔레스타인 여행 가이드북을 시작하며 언급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ㅁ-;; 갑자기 울주군의 반구대 암각화에 꽂혀서 미친듯이 알아보니 5500년도 더 된 암각화가 수몰돼 사라져가고 있다고... -ㅁ- 헐

 

장 박사는 반구대 암각화에 그려진 중간 단계 그림들이 최소 5500년 전 신석기 시대에 새겨졌다고 했다. 몇몇 그림들은 이보다 더 오래 전에 그려졌다는 설명이다. "대곡리 암각화에는 65마리의 고래가 새겨져 있다. 고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11종 이상의 고래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두 척의 배가 한 마리의 고래를 잡는 모습은 전세계에서 유례가 없다."

키네틱 댐 설치하면 암각화 앞에 드러눕겠다

 

ㅁ이 어머니께 전화 드려 설날에 포항 시댁에 방문해 울주군에 가자고 제안 드렸다.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지만 알았다고 하심 ㅋ 그런데 설날에 피치 못하게 시댁에 못 가게 돼서 여차저차 이번에 와서 오늘 다녀왔다. 다녀올 만한 적절한 상황은 아니었는데 그건 나중에 쓰고.

 

검색해서 읽어본 글은 다양한데 몇 개만 링크해 놓음:

  1. 반구대 매거진 - 왜 뒷편 안 나오지? 재밌다!
  2. 국보를 물속에 상시로 담가놓은 나라가 어딨느냐!
  3. 그림으로 쓴 역사책 - 국보 반구대 암각화, 물속에 잠깁니다
  4. 선사시대 한국문화의 기원--울산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특히 반구대 찾아가는 데에는 4번 글이 도움이 됐다. 여행지로서 개발된 곳들이 아니라선지 가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

 

 

뭐 지도 봐도 홈페이지 봐도 가서 뭐 어떻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는데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했는데 뭐 역시 어떻게든 됐다. 그 일대는 잘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천전리 각석부터 공룡발자국, 반구대 암각화와 관련 박물관들 다 걸어다닐 수 있다.

 

천전리 각석 있는 데에는 밥먹을 데가 없는데, 물론 천전리 나와서 옆에 있는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있다. 식당이 있고 없고는 참 중요한 정보라.. 하지만 반구대 암각화에는 암각화 입구에 바로 식당도 있고 민박도 있었다.

 

반구대 암각화는 옛날에는 그 앞까지 갔던 모양인데 지금은 엄격하지는 않게 출입이 금지돼 있다. 그래서 망원경으로 멀리서 봐야 한다. 물 빠진 때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봐도 될 것 같은데 왜 못 가게 해놨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정말 가며 안 되게 해 놓은 건 아니고 갈라면 갈 수 있다니까?; cctv도 있다지만 누가 그걸 실시간 모니터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가족끼리 가서 괜한 무리수를 두고 싶지 않아서 가까이 안 가봄. 그냥 그 경치만으로도, 사실 그 일대가 막 여행다니고 그런 분위기는 아닌데, 너무 아름다워서, 나무도 돌도 강도 다 아름다워서 거기 가만 앉아서 책도 읽고 시도 읊고 ㅎㅎㅎ 정말 그러고 싶었다. 나중에 여유롭게 와서 거기 민박에서 잠도 자고.. 하루이틀 일대를 다 걸어보고 싶다.

 

하지만 차 없이 가기는 당연하지만 불편하다. 버스 정류장이 있긴 한데 내려서 한참 걸어야 한다. 그 안을 걸어다니며 구경할 거 생각하면 사전에 힘 빼지 않는 쪽이 나을 것이 자명하지 아니한가. 자전거 가지고 가면 좋을 것 같은데 35번 국도가 좀 위험한 편이라. 근처 가지산에 '석림사'라고 유명한 비구니 절도 있던데 자전거 타고 다 돌아보면 좋겠다.

 

반구대 쪽은 물에서 수영하고 그런 것도 (당연히 문화재 보호를 위해) 금지돼 있는데, 아직 덥지 않아서 그런지 물에 들어가고 싶다기보다 반구대든 천전리든 물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그냥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뭐 언젠가 기회가 있겠지. 우리 ㅁ이는 이런 풍류를 즐길 줄 모르는 닌겐이라ㅜㅜ 언제 나 혼자 와서 로맨스를... 로맨스 그레이<

 

여기 일억만년 전에 공룡이 걸어다녔었고 신석기 시대에 사람들이 고래를 잡고 그림을 그렸었고 화랑들이 놀러왔었고 정몽주가 유배됐었고 그런 오래된 역사가 너무 좋고< 오래 앉아서 음미하고 싶다 그 역사들을 상상해 보고 싶다. 난 항상 어디든 급하게 여행다니면서 고적하고, 사람 많지 않은 곳을 볼 때마다 다음에 시간 길게 들여서 와서 지내야지 그러고 다시는 안 감 ㅜㅜ 근데 이번엔 너무 잘 못 봐서 다음엔 진짜로.. 여긴 꼭 와야지. 그리고 포항에서 가까운 줄 알고 갔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모두 힘들었음 아오.. 암각화랑 반구대에 대한 책을 읽으려다 잊고 있었는데 조만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2015/04/04 20:53 2015/04/04 20:53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아몬드문어 2015/04/05 04:17

    물에 잠기도록 놔두거나, 눈으로 더듬어보지 못하게 하거나... 관료들은 사람들이 긁힌 바위 속에 있는 그것들을 만나면 다스리기가 힘들어진다는 것을 의식적으로는 알지 못하면서도 잘 막아내는 것 같습니다.

어떤 승리

category 역사 2014/04/03 17:14

잘은 모르지만, 2011년 우리 사무실 근처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 발레오공조코리아 노동조합 분들이 위장폐업과 해고 문제로 일인시위를 하고, 노숙농성을 하셔서 관심 있게 지켜봤었다. 매일 출퇴근 시간에 마주쳐야 하니 항상 미안했다. 특히 겨울에 정말 추울 때 오랫동안 고생하셨는데. 누에고치가 된 발레오 노동자들.

 

2년이나 싸운 끝에 만족스럽진 않아도 소기의 성과를 내고 투쟁은 끝이 났다.

 

노사 합의 내용은 △개인위로금 4100만원 △지회위로금 2000만원 △노사 상호간의 민형사 소송 취하 △회사의 사과 등이다.

발레오공조코리아 노사 합의

 

폐업은 막을 수 없었고, 일정 보상을 받고 해고자들은 새 삶을 찾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쉬움이 남아도 해외로 자본이 튀어버렸는데 더 싸우라는 것도 앞이 깜깜할 것도 같고. 더 싸우자는 조합원도 있었던 것 같지만 어쨌든 그렇게 다수결로 결론이 나왔다. 잘 모르지만 그래도 더 망한 데도 많으니까, 어느 정도 승리하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분이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http://www.cmedia.or.kr/2012/view.php?board=total&nid=78699 내가 어쩔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죄책감이 든다. 우리 사무실에 공용 컴퓨터가 한 대 있어서, 조합원 분들이 가까운 우리 사무실로 컴퓨터를 하러 오곤 했는데 그 분들 중에 한 분일 수도 있을까. 한 명 한 명 서로 얼굴을 익히지 않았던 게 후회가 되고 또 그렇다고 뭐가 뭘 내가 뭘. 그런 생각도 든다.

 

고인의 명복을 빌기가 쉽지 않다. 정말 죄송스럽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2014/04/03 17:14 2014/04/03 17:14

댓글을 달아 주세요

신랑되는 ㅁ이가 [역사저널 그날]을 추천해 같이 함 보니 진짜 재밌어서 오늘도 시청 중. 문종에 대한 얘긴데 그 아비인 세종이 세자빈을 두 명이나 폐위해서 세 번이나 결혼했다고. 그럼서 그 이유로 나오는 게 신기해서 실록을 찾아보니 과연 토크에 나온 그대로이다. 재밌어서 옮겨둔다.

 

“근일에 폐위한 세자빈의 실덕한 일이 매우 많은데, 내가 낱낱이 들어 공개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전에 교지를 내려 다만 몇 가지 일만 한 나라의 국모로서의 의표에 진실로 적합하지 못한 것으로 들었을 뿐이다. 다만 왕후를 폐하고 아내를 내쫓는 것은 예로부터 삼가는 바이니, 진실로 인륜의 근본이므로 경솔히 바꿀 수 없는 까닭이다. 하물며 지금 세자는 전에 김씨(金氏)를 폐했는데 또 봉씨(奉氏)를 폐하게 되니, 이것은 나와 세자가 몸소 집안을 올바르게 거느리지 못한 소치이다. 아마 나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능히 자기 몸을 반성하지 못하면서, 다만 털을 불어 헤치고 남의 허물만을 찾아내려고 애써서 폐척(廢斥)을 잘 행한다. ’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일이란 경상(經常)을 지킬 수도 있고 또한 권도(權道)를 따를 수도 있으니, 어느 한 가지에만 구애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역경》을 지으면서도, ‘손열(巽劣)로 권도를 행한다. ’고 하였다. 한 사람의 어리석은 부인으로 장차 국모를 삼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끝까지 잘 유지할 수가 없을 것이니, 어찌 상도에 얽매어 세자빈을 폐하고 새로 다시 세자빈을 세우지 않겠는가. 대체로 중인(中人) 이하의 사람들은 착하게 될 수도 있고 악하게 될 수도 있어서, 여울의 물과 같이 동쪽을 터뜨려 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을 터뜨려 놓으면 서쪽으로 흐르게 된다. 다만 아주 어리석은 사람의 기질은 변하지 아니하므로, 비록 성인과 함께 거처하더라도 또한 어찌할 수가 없게 된다. 봉씨의 어리석음은 비록 부지런히 가르쳤지마는 마침내 고치고 뉘우치는 뜻이 없었다. 전번에 대략 그 대강을 설명했지마는 나머지 일들을 언급하지 못하였으므로, 지금 또 이를 다 말하게 되니 마땅히 이를 함께 알아야 될 것이다.
처음에 김씨를 폐하고 봉씨를 세울 적에는, 그에게 옛 훈계를 알아서 경계하고 조심하여 금후로는 거의 이런 따위의 일을 없게 하고자 하여, 여사(女師)로 하여금 《열녀전(烈女傳)》을 가르치게 했는데, 봉씨가 이를 배운 지 며칠 만에 책을 뜰에 던지면서 말하기를, ‘내가 어찌 이것을 배운 후에 생활하겠는가.’ 하면서, 학업을 받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였다. 《열녀전》을 가르치게 한 것은 나의 명령인데도 감히 이같이 무례한 짓을 하니, 어찌 며느리의 도리에 합당하겠는가. 또 생각하기를, 부인이 반드시 글을 배워서 정사에 간여하는 길을 열게 해서는 안될 것이라 하여, 다시 그에게 가르치지 못하게 하였다. 또 세자의 유모가 죽었으므로 이름이 고미(古未)라고 한 늙은 궁궐 여종으로 하여금 궁중의 일을 대신 맡게 했는데, 봉씨가 밤마다 고미를 불러 말하기를, ‘할미는 어찌 내 뜻을 알지 못하오.’ 하니, 대개 이 노파로 하여금 세자를 불러 오도록 하고자 함이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떳떳한 정리이지마는, 그러나 부인이 남편을 잃어도 밤에 울지 않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혐의를 피하는 때문이다. 그런데도 더군다나 매일 밤마다 세자를 보고자 하니, 어찌 부인의 도리에 적합하겠는가. 또 세자가 오랫동안 밖에 옮겨 가 있다가 돌아와서, 궁궐에 들어와 뜰을 돌아다니며 구경하였는데, 빈의 궁에 가까이 이르니, 봉씨가 지게문으로 바라보고 말하기를, ‘저 분이 왜 안방으로 들어오지 않고 공연히 밖에서 걷고 있을까.’ 하면서, 자기 있는 곳에 들어오기를 바랐으니, 이것도 또한 상스러운 일이다. 또 성품이 술을 즐겨 항상 방 속에 술을 준비해 두고는, 큰 그릇으로 연거푸 술을 마시어 몹시 취하기를 좋아하며, 혹 어떤 때는 시중드는 여종으로 하여금 업고 뜰 가운데로 다니게 하고, 혹 어떤 때는 술이 모자라면 사사로이 집에서 가져와서 마시기도 하며, 또 좋은 음식물을 얻으면 시렁 속에 갈무리해 두고서는, 손수 그릇 속에 있는 것을 꺼내어서 먹고 다시 손수 이를 갈무리하니, 이것이 어찌 빈이 마땅히 할 짓이겠는가. 또 내가 중궁과 함께 항상 세자를 가르쳐서 마땅히 빈궁을 접대하도록 했는데, 세자가 며칠 동안 왕래하였다가 그 후에 드물게 가매, 봉씨가 노래를 지어 궁궐의 여종으로 하여금 이를 부르게 하니, 그 대개는 세자를 사랑하는 내용이었다. 또 그 아버지가 죽은 초기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 이를 두었다가 그 어머니 집에 보내므로 세자가 알고 이를 금지시키니, 그 술을 모두 안으로 들여오게 하고는, 말하기를, ‘이 술은 내 몫인데 이미 이것을 집에 보내지 못할진댄, 마땅히 내가 스스로 마셔야 되겠다.’ 하면서, 상이 1백 일을 지나지 않았는데도 평상시와 같이 술을 마시었다. 또 중궁이 궁인을 대우하는데 매우 은혜와 예절이 있었으므로, 궁인이 죄가 있으면 몸소 책망하거나 벌주지 않고 반드시 나에게 아뢰어 이를 결정하였는데, 봉씨는 여러 번 투기 때문에 몸소 궁인을 구타하여, 혹 어떤 때에는 거의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니, 어진 부인이 진실로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시골의 여자로 궁중에 들어왔으니, 마땅히 공손하고 잠잠하여 자기 몸을 지켜 경계하기에 여가가 없을 것인데도, 교만하고 무례함이 이와 같았다. 세자가 항상 말하기를, ‘내가 그를 총애한다면 투기하고 사나워져서, 비록 칼날이라도 또한 가리지 않을 것이며, 만약 그 뜻대로 된다면 옛날의 한나라 여후(呂后)2701) 라도 또한 능히 이보다 더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니, 그 말이 아마 거짓은 아닐 것이다. 무릇 이 몇 가지 일은 전일에는 미처 말하지 못했지마는, 그대들은 마땅히 이를 알아야만 될 것이며, 또 세 대신들에게 전해 말하여 내가 마지못하여 세자빈을 폐출하는 뜻을 알리기 바란다.”

 

 - 세종 75권, 18년(1436 병진 / 명 정통(正統) 1년) 11월 7일(무술) 1번째기사
봉씨를 폐출시킨 이유를 부연하여 대신들에게 알리다

 

폐위 당한 뒤에는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하네. 실록이 참 자세하고 의외로 재밌다.

 

문종은 39 정말 젊어서 죽었구나 문종도 불쌍하다 ;ㅁ; ㅆㅂ 아파서 죽어가고 있는데 신하놈들이 뭘 어쩌네 저쩌네 묻고 자빠졌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불가하다'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돼 안 된다고 아놔 불쌍해 =ㅅ=;;;; 당시에 왕 죽으면 '훙薨하다'라고 표현했네 훙이라니... 훙이라니이...!!!!<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http://sillok.history.go.kr/ 개별 아이템당 퍼머링크는 제공 안 함-_-

"역사" 분류의 다른 글

어떤 승리 (0)2014/04/03
2014년 아프리카예술박물관 노예노동 (2)2015/04/25
프랑스 해외 영토 (6)2007/05/08
유목민 (0)2015/06/23
반구대 암각화 잠깐 다녀옴 (2)2015/04/0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2014/03/16 23:14 2014/03/16 23:14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