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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대한 오랜 열망을 불법적 방법을 통해 실현해 왔다. 이스라엘 건국의 근거가 된 'UN 결의안 181'이 국제 관리지구로 지정한 예루살렘의 서쪽을, 건국을 전후한 1차 중동 전쟁 중에 점령·병합한 게 그 처음이었다.

이후 1967년 3차 중동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모든 팔레스타인 지역(가자지구·서안지구)을 점령했다. 그리고는 1980년 "온전하고 단일한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는 법을 제정해 점령지 동예루살렘마저 불법적으로 병합했다.

점령국이 피점령국의 땅을 자국 영토로 병합하는 것은 당연히 불법이니, 국제사회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할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당시 UN 안보리는 결의안 478을 통해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선언이 무효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전체가 자국 수도라 주장하고, 국제사회가 이를 인정치 않는 양상은 트럼프의 이번 선언 이전까지 무려 40년 가까이 계속돼 왔다. 다만 미국만은 예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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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3대 성지인 하람 알 샤리프가 보이는 예루살렘 올드 시티 ⓒ팔레스타인 평화연대

미국의 화답 : 1995년 예루살렘 대사관 법

트럼프 미 대통령의 이번 선언은 결코 스스로 고안해낸 게 아니다. 미국은 이미 1995년에 '예루살렘 대사관 법'을 상·하원에서 압도적인 다수결로 통과시키며 이스라엘의 열망에 화답했다. 이 법은 "분할되지 않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며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단 대사관의 이전은 국가 안보를 위해 대통령이 보류할 수 있도록 해, 지난 대통령들은 6개월마다 총 35회에 걸쳐 대사관의 이전을 보류해 왔다.

대선 때의 공약과 달리 올 6월 트럼프도 이 보류안에 처음 서명함으로써 빌 클린턴이나 조지 부시 전 대통령들처럼 선거 공약이 '공약(空約)'이 될 수도 있겠다고 많은 이들이 안심했다. 그런데 다시 6개월이 지나 보류할 시기가 돌아오자 돌연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수도라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이 '예루살렘 대사관 법'이 통과된 1995년 10월은 2차 오슬로 협정이 체결된 바로 직후이기도 하다. 소위 '평화협정'이라 불리는 오슬로 협정은 1987년 이스라엘군의 점령에 맞선 1차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민중봉기) 결과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중재자로 나서며 1993년 체결됐다.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에서 점차적으로 철수하고, 본 협정에 따라 탄생한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에 행정권을 조금씩 이양하는 것이 골자였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에서 철수할 가능성을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국제사회는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고, 이스라엘 군정 통치 속에 살던 많은 팔레스타인 민중은 이 청사진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2차 협정은 서안지구의 60% 이상이 여전히 이스라엘 군정의 직접 통치를 받도록 체결됐다.

예루살렘 문제나 이스라엘 건국 및 팔레스타인 점령 과정에 추방·강제 이주당한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 등 첨예한 이슈를 미루고, 처음의 청사진과 달리 여전히 점령지 팔레스타인의 압도적 면적이 이스라엘 군사정부의 통치 하에 있으며, 모든 것이 이스라엘에 유리한 '평화협정'이 확정된 상태에서 미국은 동-서 통합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 선언한 것이다.

미래 독립 국가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희망은 깨져갔다. 이스라엘은 철수하기는커녕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 UN이 수많은 결의안을 통해 불법이라 규탄한 유대인 정착촌을 신규 승인하고, 확장했다. 특히 동예루살렘의 유대인 정착민은 오늘날 30만 명을 웃돈다.

이스라엘은 '말레 아두밈' 등 서안지구의 거대한 유대인 정착촌 3개와 그곳 정착민 14만 명을 예루살렘으로 통합시켜 예루살렘의 유대인 주민의 수를 선주민인 팔레스타인인보다 많게 하기 위해 '더 큰 예루살렘 법'을 상정해놨다. 점령지에 지어진 유대인 정착촌의 존재 자체가 불법이며, 그 불법적 정착촌을 예루살렘으로 통합시켜 영토 병합하는 것도 불법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강제철거, 강제이주, 도발 그리고 진압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인구가 우위를 점할 수 있게 이스라엘이 취한 또 다른 정책은 팔레스타인 선주민들을 갖은 구실로 쫓아내는 것이다. 신규 건설 허가를 내주지 않고, 주거지를 강제 철거하고, 결혼이나 유학 등 이유로 잠시 떠난 이들의 영주권을 박탈하는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며 도발도 일삼았다. 2000년 2차 인티파다(민중봉기)는 이스라엘 정치인이 수백 명의 폭동 진압 경찰을 대동한 채 이슬람 3대 성지인 하람 알 샤리프(템플 마운트)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배를 주장한 데서 촉발되었다. 이스라엘은 2015년 9월에도 무슬림의 알 아크사 사원 단체 참배를 금지했다.

이에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이스라엘은 완전무장한 시위 진압 군인을 향해 돌을 던진 시위대에게 "전쟁을 선포한다"며 실탄 발포 기준을 완화하고 최소 4년, 최대 20년에 달하는 징역형을 선고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결과 지금도 10대 청소년들이 계속해서 연행·장기간 감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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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서안지구 헤브론에서 트럼프의 선언에 반대하는 시위 중 팔레스타인 소년(16세)이 20여 명의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연행되고 있다. ⓒAbed Hashlamoun

 

서방 언론의 보도와 달리 현재 분노한 대중들의 시위는 '하마스'와 같은 특정 정치조직이 조직한 게 아니다. 트럼프의 선언에 분노한 팔레스타인의 모든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언제나처럼 자율적으로 시위를 조직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은 1차 인티파다 이래 30년간 다양한 비폭력 투쟁 방법을 개발해왔고, 매주 금요일마다 반(反)점령 시위를 하고 있는 마을도 부지기수다. 이스라엘 인구의 20%를 점하는 팔레스타인인들 역시 이스라엘이 불법적으로 팔레스타인 마을을 철거하거나, 가자지구를 폭격하거나, 예루살렘 문제로 도발할 때마다 마을 단위로 시위를 조직해 왔다.

이 과정에서 이스라엘은 점령지에선 중무장한 군인들로, 이스라엘에선 특수 경찰 부대 등으로 시위대를 잔인하게 진압하고, 살해했다. 그 반동으로 시위는 더욱 격해지고, 다시 그 격해진 시위를 빌미로 이스라엘이 더 많은 폭력을 자행하는 그 끔찍한 일이 수없이 반복되었고 지금 다시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 선언의 의미 : 2국가 해법의 종언

중동 국가들뿐 아니라 미국의 오랜 우방국이나 미국 정치인들이 이번 선언을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방 세계가 오랫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책으로 간주해 온 '2국가 해법'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2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군이 점령지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철수한 뒤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독립 국가를 수립하고, 이스라엘은 유대인 민족으로 구성된 유대 국가를 수립해 두 국가가 공존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오슬로 협정이 바로 그 교두보였다.

그러나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오슬로 협정은 이미 최대한을 양보한 팔레스타인 측에만 더 포기할 것을 요구했고,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는 오히려 더 희미해졌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은 견고하다. 팔레스타인의 자결권 존중을 운운했지만 처음부터 기만적이었던 오슬로 협정은 이미 실패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유대 국가를 수립하면, 지금까지도 귀환의 꿈을 품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과 그 후손이 원래 팔레스타인 땅이었던 이스라엘로 돌아올 가능성을 봉쇄한다.

트럼프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선언하면서도, 예루살렘은 최종 지위 협상 때 양 당사자가 논의할 문제라며 여전히 2국가 해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 법은 전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규정하고 있다. 트럼프의 교묘한 언술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보류돼 있던 법이 27년만에 시행되며 2국가 해법에 종언을 고했다.

이스라엘을 멈추게 할 방법, BDS

하지만 갑작스럽긴 해도 예루살렘 선언은 이미 예정된 상황이었고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 2국가 해법이 실패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10년간 가자지구의 육·해·공을 봉쇄하고, 서안지구에서 군사점령 정책을 강화하고,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계속해서 병합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군사 점령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미국의 중동 정책에 팔레스타인과 국제사회가 휘둘리는 상황은 언제든 다시 올 수밖에 없다.

이미 수백 개의 UN 결의안을 휴짓조각으로 만든 이스라엘로서는 스스로 그만둘 이유를 찾기 어렵다. 때문에 팔레스타인의 해방 운동과 그에 연대하는 국제 시민사회운동은 대화와 협상으로 이스라엘을 설득하기보다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자고 노선을 정립했다.

오랜 비폭력 투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2005년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는 세계 시민사회에 이스라엘에 맞서 폭넓은 보이콧과 투자철회 운동, 이스라엘을 통상금지·제재 대상국으로 지정하도록 자국 정부를 압박하는 운동을 조직할 것을 요청했다. 이른바 BDS (보이콧·투자철회·제재, Boycott·Divestment·Sanctions) 운동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소다스트림(Sodastream) 불매 운동과 같은 소비자 운동을 할 수 있다.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에 공장을 두고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세제 혜택 등을 받던 소다스트림은 BDS 운동의 압박을 받고 공장을 철수했지만 베두인 마을 강제 철거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네게브 사막으로 공장을 옮겨 계속해서 보이콧 대상이다.

자신이 속한 교회 등 종단에 이스라엘 점령 공모 기업에의 투자 철회를 제안할 수도 있다. 2014년 미국 최대 교단인 미국장로교와 연합감리교가 점령 공모 행위를 이유로 모토로라, 휴렛패커드(HP), 캐터필러에 대한 투자를 철회했던 것도 소속 교인들의 부단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한국의 기업과 대학들도 여러 방식으로 이스라엘의 점령에 연루돼 있다. 특히 이스라엘이 건국되기도 전부터 살아온 팔레스타인인의 집이 무허가 건물이라며 부수는 데에 현대중공업의 굴삭기가 사용되고 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피해 주민들과 함께 현대중공업 측에 이스라엘로의 굴삭기 판매 중단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BDS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군사 점령을 계속하는 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단절할 것을 전방위적으로 선언하는 행동으로, 특정하게 정해진 분야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생활 영역에서 점령 공모 물품이나 행위를 찾아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다. 해가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는 이스라엘의 야만적 점령과 식민화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수단에 한국 시민들이 함께했으면 한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웹사이트에 기고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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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5 12:43 2017/12/15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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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대한 글을 쓰다 참고용으로 예전에 쓴 글 찾아봤는데 내 블로그에 옮기지 않았던 글이 있어서 가져온다. 2015년 글이지만 트럼프의 예루살렘 이스라엘 수도 선언 후 48년 안팎 할 거 없이 분노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거리로 뛰어나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몰리는 작금의 상황과 닮았다.

 

전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올해 팔레스타인에 다녀온 뒤 좀 이상해졌다. 이번에 알게 된 팔레스타인 청년들, 어린이들이 죽을까봐, 다칠까봐 너무 걱정이 되고 무섭다. 아는 얼굴이 집회 사진에 보이면 반가운 게 아니라 덜컥 겁이 난다. 그리고 모르는 얼굴 역시... 너무 무섭고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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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bed Hashlamoun

 

트럼프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했다 20명이 넘는 이스라엘 군인들에 눈을 가린 채 연행당하는 열여섯 살 팔레스타인 소년 사진이다... 자세히 보면 얼굴이 상처 투성이다... 멀리서 눈물만 흘리고 있다. 아래 글도 새삼 슬프네 청년들의 몸이 무기가 된다는 거 자체가.

 


※ 이 글은 사회주의 정치신문 해방에 기고한 글입니다. (원글 링크)

작성일 2015.11.14

 

팔레스타인에서 들려오는 소식

9월 이래 팔레스타인에서 들려온 소식들은 여느 때보다 충격적이다. 이스라엘 불법 정착민들이 피 흘리며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소년을 비디오로 촬영하고, 이스라엘 군인들이 차를 타고 가는 70대 할머니에게 총을 쏘는 일이 일어났다. 칼을 소지하고 있지 않다고 외치는 지근거리의 비무장 대학생과 눈앞에서 항의하는 할아버지에게도 발포하였다. 이스라엘 경찰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시민권자인 팔레스타인 여성에게 6발을 쐈다.

10월 한 달 동안만 73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군에 살해당했고 921명이 피격돼 부상을 입었다. 이스라엘의 점령에 저항하며 길거리에 나온 이들 중 1,195명이 체포·구금당했다. 5000명 이상이 최루가스로 인한 호흡곤란을 겪고 있고, 호흡곤란을 호소하던 한 활동가는 결국 사망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9월,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의 이슬람 3대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의 무슬림 단체 참배를 금지했다. 이스라엘 정치인들이 비단 무슬림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상징적인 이 공간의 방문을 금지한 것은 명백히 팔레스타인을 자극할 목적에서였다. 이를 기화로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시위가 시작됐고,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투석자들에게 전쟁을 선포한다’며 실탄 발포 기준을 완화하는 한편 시위대를 최소 4년, 최대 20년간 감금한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팔레스타인 전역이 들끓는 와중에,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칼로 찌르고, 차로 들이박아 11명을 살해했다.

요즘의 정세를 1987년, 2000년에 이은 세 번째 민중봉기(인티파다)라고들 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식민화’하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책임이 없는 이스라엘 민간인들에 대한 ‘테러’ 행위는 잘못이라며 비난한다. 강조하건대 이스라엘인을 살해한 팔레스타인 청년 어느 누구도 목숨을 부지할 것이란 기대를 해선 안된다. 대부분은 현장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즉각 살해당한다. 산 채로 붙들려도 평생 절대로 감옥에서 나올 수 없다. 이것을 너무 잘 아는데도, 자기 몸을 무기 삼아 이스라엘인을 공격하는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왜 계속 생겨나는 걸까?

팔레스타인에게 이스라엘은 점령자일뿐

오스만 제국에 이은 영국의 점령을 받던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만을 위한 국가를 세우겠다는 시오니스트들이 UN의 승인을 받아 이스라엘을 건국한 게 70년 전 일이다. 이스라엘이 건국 전쟁을 벌이며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고 죽였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여전히 이스라엘 인구의 20%를 점한다. 이들 이스라엘 시민권자인 경우부터, 1967년 3차 중동전쟁으로 군사점령당한 점령지(동예루살렘, 서안지구,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 그리고 쫓겨나 주변 국가에서 빈민촌에 다름없는 난민촌에서 원조에 의지해 세대를 거듭하며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까지, 이들이 전쟁과 점령으로 국적과 지위가 달라지고 왕래가 불가능해졌어도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정체성과 유대감을 유지 하고 있다.

단지 특정한 전쟁, 특정한 점령자가 나쁜 거라서 목숨 걸고 저항하는 게 아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가 학살과 추방을 기반으로 세워졌고, 그리고 지금도 그 정책을 유지하는 이상, 중무장한 군인들이나 불법 정착민들이 아니어도 이스라엘은 불법 점령국이고, 그런 이상 팔레스타인 땅의 모든 이스라엘인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점령자인 것이다.

특히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립 이후 오히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화는 더욱 노골화되었고, 제네바 협약 등 온갖 국제협약, 국제기구의 판결 및 온갖 유엔 문서들이 휴지조각으로 전락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강제당한 팔레스타인 청년들에게 어떤 비난이 가능한 걸까.

이스라엘을 보이콧해 점령을 그만 두도록 압박해 줄 것을 요구하는 팔레스타인의 목소리와 그에 호응하는 세계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스라엘 건국 전부터 살아온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이 무허가 건물이라며 부수는 데에 현대중공업의 굴삭기가 사용되고 있는데,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는 현중 측에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계속하고 있다. 강도를 더해가는 이스라엘의 야만적 점령과 식민화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수단에 함께 해야 하고, 또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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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2 23:06 2017/12/12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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