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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와 “팔레스타인은 원래 그래” 무감각한 인종청소-마사페르 야타

* 작년 9월 기고글. 지금 그대로 유효함



▲  2021년 1월 27일, 마사페르 야타 ‘아즈왓딘’ 마을 이슬람 사원 철거에 사용된 HD현대의 굴착기

지금 이스라엘 점령군은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폭압의 강도와 속도를 높이고 있다. 8월 5일 이스라엘은 3일 동안 가자지구를 대규모로 폭격해 주민 49명을 살해하고 360여 명에 중경상을 입혔다. 팔레스타인 저항세력 중 하나인 ‘이슬람 지하드’ 전투원을 살해하는 게 목적이라고 했지만, 살해된 조직원은 14명인 반면 살해된 아동 청소년은 17명이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뇌관과도 같은 예루살렘의 이슬람 사원 알아크사에 대한 불법 정착민의 침탈도 극에 달했다. 이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점령군(국경경찰)이 사원의 신자와 시위대를 공격한 것은 물론이다. 서안지구 제닌과 나블루스 등 주요 도시에서는 야간 군사작전으로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을, 그리고 ‘부수적으로’ 주민들을 살해하고 있다. 2021년 아무 근거 없이 ‘테러 단체’로 지정한 팔레스타인의 주요 인권·시민사회 단체 6곳에 한 곳을 더한 7개 단체의 활동가들을 심문하며 활동을 계속할 시 감옥에 가두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폭력과 살해의 뉴스 속에 국제 사회는 늘 그렇듯 형식적으로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것 외에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다. 이런 무관심 속에 또 하나의 대규모 인종청소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서안지구 마사페르 야타 지역에서다.

법이 허락하는 인종청소

마사페르 야타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헤브론 남쪽의 산중턱에 위치한 마을군이다. 569명의 아동을 포함해 약 1,150명의 주민이 12개 마을에 거주한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지난 5월 4일, 이스라엘 점령당국의 마사페르 야타 마을 철거 계획을 중단해 달라는 마을 주민들의 청구를 최종 기각했다. 점령군은 바로 철거를 재개했다.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자행된 1948년 나크바(대재앙이라는 뜻의 아랍어. 이스라엘 건국 시 자행된 인종청소) 이후 단일 마을로는 최대 규모의 철거로 인해 이스라엘 건국도 하기 전부터 살아온 주민들은 난민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스라엘 점령당국의 마사페르 야타 철거 계획과 이에 맞선 주민들의 싸움은 이미 1980년에 시작됐다.(이하의 타임라인은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의 보고서를 발췌 요약한 내용이다.) 1981년 이스라엘 점령당국은 마사페르 야타의 일부 지역을 '군사보호구역 918'(Firing Zone 918)로 지정했다. 이후 ‘사루라’와 ‘카루베’ 두 마을이 철거당해 통째로 사라졌다.

1999년 점령당국은 마사페르 야타 주민 700명이 "군사보호구역에 불법적으로 살고 있다"며 퇴거 명령을 내렸고, 그에 근거해 이스라엘 점령군은 주민 대다수를 강제 추방하고 집과 재산을 파괴·몰수했다. 그런데 이 퇴거 명령은 기존에 거주민에게 군사보호구역과 관련된 제한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기존의 이스라엘 군사명령과 배치된다. 주민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몇 달 후 이스라엘 대법원은 최종 판결이 내려질 때까지 주민 대부분이 마을에 돌아가도 된다는 가처분 명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령군은 간헐적으로 퇴거를 실행했다.

2012년 이스라엘 점령군은 자신들에게 마사페르 야타 13개 공동체 중 8개 공동체를 추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며, 주민들이 경작과 방목을 위해 주말과 유대교 명절에만 땅에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했다. 법정 투쟁으로 이 계획은 잠시 중단됐다.

2020년 8월 대법원의 심리에서 이스라엘 점령당국은 군사보호구역 지정 당시 주민들이 마을에 정주하고 있지 않았다며 이들이 계속 마사페르 야타에 살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물론 날조다. 이미 심리가 있기 한 달 전에, 1981년 당시 농업부 장관이던 아리엘 샤론이 이스라엘 점령군에 팔레스타인 주민을 강제 이주시킬 방안으로 군사훈련구역을 지정하라고 지시했던 청문회 내용이 법원에 제출됐다. 주민의 정주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대법원은 2022년 5월 4일, 군사 훈련을 위해 팔레스타인 주민을 추방하는 것에 이스라엘 법상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고 판결했다. 주민들이 가진 토지 권리 문서도 아무 소용 없었다. 이스라엘 대법원은 1999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소를 제기한 후 23년간 판결을 지지부진하게 미루며 그 사이 이스라엘 점령군이 간헐적으로 자행하는 불법 철거를 묵인했다. 그리고는 국제법상 명백한 불법행위를 합법화해 주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판결문엔 소를 제기한 주민들에게 가구당 815만원(2만 셰켈) 씩 소송 비용을 지불하란 내용도 덧붙였다.

불법 정착촌 건설을 위해 마련된 군사보호구역

이스라엘 대법원은 주민들이 정주하지 않는다는 이스라엘 점령당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점령당국은 특정한 계절에만 주민들이 마사페르 야타에 올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주민 중 유목 생활을 하는 이들이 일년의 절반은 마사페르 야타에서, 나머지 절반을 다른 지역의 주로 동굴에서 보내지만 이는 유목 생활의 특성에 따른 것인데다 마사페르 야타에서 보내는 6개월간은 마을에 정주하며 농지도 경작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땅을 소유하고 있다. 이스라엘 점령당국과 대법원의 태도는 애초에 팔레스타인 원주민이 버젓이 살고 있던 땅을 “주인 없는 땅, 황무지”라 날조하며 이스라엘 국가 건설을 정당화했던 건국 초기부터 일관되기까지 하다. 그리고 당시의 인종청소는 오늘의 인종청소와 조응한다.

군사훈련은 표면적 이유일 뿐 이스라엘의 목적은 명확하다.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인종청소하고 그 위에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짓겠다는 것이다. 애초 7년이나 마사페르 야타에서 군사훈련을 하지 않던 이스라엘은 법원에서 유리한 판결을 끌어내기 위해 2021년 갑자기 군사훈련을 재개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목적이 인종청소였음은 여러 문건에서 드러난다. 지난 7월 “일급 비밀” 문서가 발굴됐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당시 농업부 장관 아리엘 샤론이 1979년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의 정착촌 부서와 만난 회의록이다. 2001년 총리를 역임한 샤론은 이 회의에서 군사구역을 지정하는 목적이 오직 이 땅을 유대인 정착민들에게 넘겨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다.

“(1967년) 6일 전쟁이 끝난 뒤 나는 내 부대와 함께 여전히 시나이 반도에 있었습니다. 시나이에서 이 군사구역들을 그렸죠. 이걸 그린 목적은 오직 하나입니다. 정착촌을 위해 땅을 준비해 놓기 위해섭니다.”

1980년 세계 시온주의자 기구와의 또 다른 회의에서 샤론은 자신의 고민을 공유한다. “후라(네게브의 베두인 마을)엔 수 천 명의 아랍인이 있고 마을은 커지고 있습니다. 이 마을은 헤브론의 산 지역(마사페르 야타) 쪽 아랍인들과 접촉하고 있고요. 그 경계는 실제로는 베르셰바(유대인 정착민이 많은 네게브 중심 도시) 인근까지 오게 될 겁니다. 예를 들어 내가 수만 명의 유대인을 디모나 혹은 아라드(이스라엘의 노동 계급이 사는 대표적 도시들)로 보낸다고 칩시다. 그러면 이 차이를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요? 네게브의 베두인과 헤브론 산의 베두인을 어떻게 갈라놓을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이 서안지구에 8미터 높이의 장벽을 세워 헤브론과 네게브의 물리적 이동을 완전히 단절시킨 것은 2002년 이후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의 교류를 공식적으로 막은 것은 1987년 전국적인 민중봉기 이후다. 이 때까지는 주민들의 이동과 교류를 전면 통제할 수 없었다. 아무튼 샤론은 마사페르 야타를 군사훈련구역으로 지정했고, 이를 통해 “산중턱의 아랍 주민들이 (네게브) 사막으로 퍼지는 것”을 막아내 이들을 갈라놓는 데 성공했다. 1981년 1월 정착촌 건설을 위한 청문회에선 “헤브론의 산 지역(마사페르 야타)과  네게브의 유대인 거주지를 떼어놓기 위해 정착촌을 건설해(나깝의 메이타르, 헤브론 산의 마온, 수시야 정착촌) 완충지대를 만들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 완충지대엔 “인종 경계”(ethnic border)란 이름을 붙였다. 샤론은 계획대로 네게브와 서안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해 “완충지대”를 만들고 군사보호구역을 설정하며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추방했다.

조용히 쫓겨나지 않겠다 

5월 대법원 판결 후 이스라엘 점령군은 거의 매일 같이 집을 철거하고 압류하고 있다. 떠나지 않으면 차를 압류하거나 벌금을 매기거나 심문하겠다는 통지문도 붙이고 있다. 군사보호구역이라며 지뢰도 매설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떠날 생각이 없다.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무함메드 무사 샤하다(61) 씨는 “나는 여기 알마자즈(마사페르 야타 마을 중 하나)에서 태어났습니다. 왜 내가 원치도 않는데 내 땅을 떠나야 합니까? 왜 나크바를 또 겪어야 합니까?”라며 퇴거 명령이 내려진 1999년 당시를 회상했다. “1999년, 점령군은 트럭을 끌고 와서 사람들을 강제로 태우고 집과 땅에서 쫓아냈지만 우리는 한밤중에 걷거나 당나귀를 타고서 집에 돌아오곤 했죠.”

점령군에 더해 마사페르 야타 인근의 불법 유대인 정착민들의 폭력도 극심하다. 주민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구타하고, 차량의 창문을 깨고, 한밤중에 집에 불을 지르는 건 다반사다. 작년엔 실탄을 쏴서 두 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일도 있었다. 연대하러 오는 활동가들도 공격 대상이 되긴 매한가지다.

이스라엘 점령군은 지난 6월 마사페르 야타 투쟁의 중심이 되고 있는 단체 ‘흔들림 없는 청년들’(Youth of Sumud)의 커뮤니티 센터에도 철거 명령을 내렸다. 연대자들의 숙소로도 쓰인 이곳은 다른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상시적인 철거의 위협 속에 놓이게 됐다. 주민들의 저항 운동을 효과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전략이다.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샤하다 씨의 배우자 아이샤 아부 아람 씨는 마을을 떠나게 되는 날을 상상하기도 싫다며 이렇게 얘기했다. “작년에 남편이 우리집 가까운 데에 무덤 두 개를 나란히 만들었습니다. 죽은 뒤에도 우리는 우리 땅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지금은 몇 년째 여기 동굴에서 살고 있지만, 죽으면 우리 땅에 다시 돌아갈 거예요.”

누가 인종청소에 공모하는가: HD현대의 굴삭기

원주민 인종청소는 마사페르 야타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무려 20%가 이스라엘 점령군의 군사 훈련을 위한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애초 서안지구의 62%에 달하는 지역이 1995년 오슬로 잠정 협정 이후 이스라엘 점령군의 직접 통치 하에 있으며 자의적인 군사명령에 종속돼 있다. 인종청소는 피점령지 팔레스타인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네게브/나깝 사막의 베두인 원주민들은 숲을 조성한다는 이스라엘의 국가적 그린워싱 프로젝트 속에 상시적으로 강제이주당하고 있다. 베두인 뿐 아니라 이스라엘 내 모든 팔레스타인 커뮤니티는 같은 위협을 받고 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팔레스타인인의 집이, 사원이, 병원이, 학교가, 삶이 파괴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인류는 과거에 있었던 인종청소에 대해 배운다. 하지만 왜 현재진행 중인 인종청소에는 이토록 무감각할까? 팔레스타인은 원래 그렇기 때문일까? 맞다. 애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원주민 인종청소로 세워졌으니 팔레스타인은 원래 그렇다.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은 계속 그래도 될까?
 
유엔이나 유럽의회는 형식적으로 일단 이스라엘을 규탄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런 규탄은 반 세기 넘게 계속돼 왔고, 아무 효과가 없다. 국제사회의 공허한 외침 속에 팔레스타인 사회는 더 적극적인 연대를 요청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전방위적 제재를 가해달라는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의 식민화에 공모하는 기업들을 보이콧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미 2017년 네게브/나깝 사막의 베두인 공동체를 파괴하는 데 사용되는 HD현대(구 현대중공업)의 굴삭기를 지목하며 HD현대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에 가담하지 못하게 힘을 실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마사페르 야타의 팔레스타인인의 삶을 파괴하는 데도 HD현대의 중장비가 동원되고 있다. 물론 JCB, 볼보, 캐터필러도 마찬가지다. HD현대의 중장비는 불법 정착촌 건설에도 사용되고 있으며, 2012년 유엔 팔레스타인지역 인권 특별보고관 리처드 포크는 HD현대와 위의 세 개 회사를 지목하며 이것이 불법행위에 대한 공모임을 지적했다.

마사페르 야타에 닥친 ‘합법적 인종청소’의 국면에 팔레스타인 사회는 재차 HD현대가 인종청소에 더이상 가담하지 않도록 한국 시민사회가 힘써 주길 요청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이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 불법 유대인 정착촌의 건설, 즉 피점령지에 점령국의 주민을 이주시키는 것은 제네바 협약에 정면 위반하는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비난 속에도 1967년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을 군사점령한 이래 불법 정착촌을 건설·확장하고 있다.
  • 이스라엘은 자국의 빠른 승리를 기념하며 3차 중동전쟁을 6일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은 아랍국가들과 치른 이 전쟁에서 대승해 이집트 시나이 반도와 시리아 골란고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동예루살렘을 군사점령했다. 이후 시나이 반도에선 철수했다.
  • 네게브 사막은 1948년 이스라엘이 전쟁을 통해 건국될 때 차지한 땅으로 헤브론 지역과 이웃해 있으며 현재 이스라엘 영토다. 건국 전부터 팔레스타인 베두인 원주민이 살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마을 거의 전부가 미인가 마을이라며 지금까지 계속 철거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네게브라고, 팔레스타인은 나깝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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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토화, 가옥 파괴 – 인종청소의 다른 이름


※ 2017년 여름, 이스라엘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마을 ‘깔란사와’와 ‘움 알 히란’ 방문 후  2018년 1월 일본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는 모임’의 회지 『미단』에 기고한 글입니다. 번역을 염두에 두고 작성한지라 영어 단어가 많습니다;;

현대중공업(현중)의 굴삭기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을 불법적으로 부수는 데에 사용된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것은 한국에서 BDS 운동(이스라엘을 보이콧Boycott, 투자 철수Divestment, 경제 제재Sanctions하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끝장내도록 압박하는 운동 )을 시작하기 위해 「이스라엘-한국 관계 보고서」를 준비하던 즈음이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이 점령지 팔레스타인에서 자행하는 문제를 한국에 알리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팔레스타인인의 집을 부수는 노란 굴삭기에 새겨진 ‘현대’ 로고는 충격이었고, 자연스레 현대중공업을 주요한 BDS 운동의 타겟으로 삼게 됐다.

현중 측에 판매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고, 현중 본사 앞에서 가옥 파괴 퍼포먼스를 하고, 현중 굴삭기에 집이 부서진 피해 가족을 인터뷰해 단편 영화를 제작하는 등 현중 보이콧 운동을 조금씩 전개해왔지만 중장비를 소비자들에게 불매하자고 제안할 수도 없었고, 제대로 현중을 압박할 특별한 아이디어 없이 그때그때 당면한 이슈에 집중하느라 현중 보이콧 캠페인은 답보 상태에 있었다.

그러다 2017년 2월, 이스라엘 내 베두인 마을 주민들로부터 현중 보이콧 요청을 받았다. 1월 18일, 현중의 굴삭기에 의해 14채의 집이 부서진 네게브 사막의 움 알 히란Umm al-Hiran 마을 소식은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올 여름 현대중공업 보이콧 캠페인의 재가동을 위해 Umm al-Hiran을 방문하기로 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정기적으로 현지에 활동가를 보내고 있다. 이번 방문에선 4명의 활동가가 현중 피해 마을 방문 외에도 ‘올드 시티’ 사진 촬영, 팔레스타인에 대한 한국의 독립 다큐 『올 리브, 올리브』 현지 상영, 핑크워싱Pinkwashing 운동 세력과 연대 구축 등의 활동을 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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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에 앞서 이스라엘, 즉 ‘48년 팔레스타인’에서 새롭게 BDS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BDS48’ 그룹을 만났다. 이들은 현대중공업을 운동의 중요한 타겟으로 삼고 있다. 이미 이전 현지 활동 때 120번(현재 기준) 가옥이 파괴된 네게브의 Al-Arakib 마을을 방문·조사한 적이 있어서 가옥 파괴 문제가 점령지 팔레스타인만이 아니라 48년 팔레스타인에서 역시 심각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20년간 파괴된 가옥이 5천 채에 달하는 등 생각보다 규모가 훨씬 방대했다. BDS48 활동가들의 추천으로 Umm al-Hiran이 공격당하기 8일 전인 1월 10일에 대규모로 가옥 파괴당한 깔란사와Qalansawe도 방문해 피해 상황을 알아보기로 했다.

깔란사와Qalansawa로 가는 길

그동안 현지 활동에 낼 수 있는 시간은 최대 1달 정도로 짧았기 때문에, 우리의 활동 영역은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집중돼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체류한 경험이 없어 교통 시스템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주로 점령지 팔레스타인에 체류하며 servees라는 미니버스나 택시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뿐이라 차를 렌트하지도 않았다. Qalansuwa에 가기 전 서안지구 나블루스에 머물던 우리는 나블루스와 깔란사와가 거리상 가깝단 걸 지도를 통해 확인했지만 서안지구와 이스라엘을 잇는 대중교통이 없는 줄 알았기 때문에 약속 전날 예루살렘으로 가서 하루를 묵었다.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구글 지도 어플이 제시하는 대로 버스를 타고 깔란사와에 가던 중 갈아타야 할 버스 시간표가 구글 시간표와 오차가 있었고, 그 결과 한창 공사중인 고속도로 옆 정거장에 2시간 가까이 서 있어야 했다. 깔란사와로 들어가는 버스의 배차 간격이 1-2시간에 한 대 정도로 길었던 탓이다. 그나마 이 버스도 최근에 생겼단다. 여담으로 이스라엘과 서안지구 내 settlement를 잇는 settler bus 73번이 나블루스 인근 settlement 앞 정류장에서 깔란사와를 거쳐 간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하지만 이 버스는 깔란사와에 정류장을 만들어놓지 않아 유대인 마을까지 더 가야 한다. 아무튼 이렇게 약속 시간에 늦은 탓에 깔란사와는 이후 재방문해야 했다.

깔란사와 – 마을 확장을 막고 게토화하기

깔란사와는 주민 23,000명의 소도시다.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마을이 확장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이스라엘 내 여느 팔레스타인 마을과 마찬가지로 깔란사와의 땅을 몰수해 건설한 주변 유대인 마을과 고속도로에 둘러싸여 확장이 막혀 있다. 땅을 몰수한 명분은 군사 지역으로 선포됐다거나, 공원 등 녹지를 조성할 거라거나(이스라엘의 공원 기타 녹지의 60%가 팔레스타인 마을 위에 지어졌다), 전기 시설을 설치하겠다거나 하는 둥 다양했지만 마을 발전에 투자된 돈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주변의 settler들 듣기 시끄럽다며 사원mosque에서 아잔도 울리지 못하게 하고, 보기 안 좋다고 놀이터 하나 못 짓게 만들었다.


깔란사와 마을의 부서진 건물 잔해

주로 결혼과 출산을 통해 가족 구성원이 늘어나며 새로운 집이 필요해지지만 당국은 어떤 건축 허가도 내주지 않는다. 대부분이 가족 단위로 땅을 이미 소유하고 있어 그 땅위에 집을 짓고 싶다고 요청해도 허가해 주지 않는다. 운이 좋아 허가를 받더라도 최소 5년은 각오해야 한다. 더 이상 한집에 스무 명씩 부대끼며 살 수 없어 건축 허가 없이 소유한 땅 위에 집을 지은 11개 가구가 1월 10일 화요일 새벽 5시, 800여명에 달하는 경찰과 9대의 불도저의 습격을 받았다. 72시간 내 떠나라는 철거 명령을 받은지 48시간도 안 지난 때였다.

마을 청년들은 불도저가 들어오는 입구에 자동차를 세워 경찰의 호위를 받는 불도저를 막아보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자동차는 부서지고 부상자가 발생했다. 철거 명령에 대한 재판을 진행 중이라는 항의에 경찰은 건축 허가를 받더라도 집을 부수러 올 거라고 대답했다. 이날 전례 없는 대규모 가옥 파괴로 각 집마다 60,000 shekel(약 2천만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집을 부수는 데에 이스라엘 당국이 지출한 비용 역시 피해 가구가 지불해야 한다.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아 지은 집은 파괴됐어도 대출금은 계속 갚아야 한다. 피해자들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 너무 많은 이 시스템은 서안지구, 예루살렘 어디든 동일하다. 그래서 차라리 직접 자기 집을 부수는 이들이 곳곳에 늘고 있지만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11개 가구가 끝이 아니다. 7월 기준으로 이미 60여개 집이 철거 명령을 받았다. 간혹 철거 날짜조차 적혀 있지 않은 명령서도 있다. 우리가 만난 Ismael씨가 짓고 있는 집은 올 10월에 철거 예정이었다. 20년간 모은 돈에 500,000 shekel의 대출금을 더해 지은 집을 부수는 것은 삶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며, 그는 집이 눈앞에서 부서지는 걸 보느니 죽어 버리겠다고 말했다. 12월인 지금까지 그의 집은 철거되지 않았지만 다행이랄 수도 없는 것은 이젠 언제 철거될지 알 수 없이 내내 불안에 떨어야 하기 때문이다. 철거 명령을 아직 받지 않은 집도 마찬가지로 내 차례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움 알 히란Umm al-Hiran – 인종 청소

48개 가구가 사는 네게브 사막의 작은 ‘미승인’ 마을 움 알 히란. 사실 이 마을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아랍인이 이스라엘 軍政 통치를 받던 1956년, 軍令에 의해 다른 지역에서 이곳으로 이주당했다. 이스라엘 대법원High Court도 이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스라엘 당국은 애초에 건물 짓고 定住하란 뜻이 아니었다고 우기고 있다. 움 알 히란은 총 35개의 네게브 미승인 마을 중 하나로 분류돼 수도, 전기 등 일체의 기반 시설을 갖출 수 없었다.


마을이 부서진 움 알 히란

1969년 이스라엘은 아랍인 땅 소유자들에게 소유권을 등록하라고 강제했지만 네게브 베두인의 신청은 한 건도 받아주지 않았다. 지금 네게브 주민에겐 건축 허가를 신청할 관할 기구가 아예 없다. 당국은 미승인 마을의 약 3만명에 달하는 베두인을 7개의 베두인 계획 도시(planned town)로 강제 이주시킬 계획만 갖고 있다. 그나마 미승인 마을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이 계획 도시들 역시 Qalansawa와 마찬가지로 확장은 금지돼 있다.

철거 당일, 노인, 아이 포함해 주민 500여명인 마을에 14채의 집을 철거하러 쳐들어온 경찰은 500명에 달했다. 요아브(Yoav) 경찰 특수 부대는 베두인의 강제 이주를 위해 그 총체적인 계획인 ‘Prawer Plan’이 의회에서 통과되기도 전에 구성됐다. 명찰도 달지 않은 채 요아브 경찰은 철거 당일 차를 운전하던 마을 주민에게 발포했고, 콘트롤을 잃은 주민은 경찰 한 명을 치었다. 두 사람은 모두 숨졌다. 비디오 판독 결과 선후가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이스라엘 경찰은 여전히 주민이 IS에 연계된 테러리스트였고 고의로 경찰을 죽이려 들어서 발포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철거된 집의 잔해가 나머지 집들과 함께 남아 있는 풍경이 보이는 언덕 반대편으론 유대인 outpost가 보인다. Golden Dog이라 불리는 이 외딴 농장(lone farm)의 인구는 4명에 불과하지만 전기, 수도 등 기반 시설은 물론 개를 위한 호텔과 묘지까지 갖췄다. 우리를 안내해 준 베두인 청년 단체 Haraki Shababi(حركي شبابي) 활동가들은 ‘움 알 히란에 가면 와이파이에 연결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는다고 했다. 언덕에서 보이는 풍경보다 실상은 훨씬 더 극단적으로 대조적이었다.


Golden Dog이라 불리는 외딴 농장(lone farm). 유대인 Settler 4명이 산다.

당국은 움 알 히란을 부수고 지워버린 위에 여전히 마을 이름 ‘Hiran’인 정통 유대인 settlement를 짓겠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7월에 이미 마을 주변에 불도저를 비롯한 건설장비들이 들어와 settlement를 세우기 위한 작업을 재개한 상태였다.

마치며

이번 방문을 통해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점령지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너무나 닮았음을 새삼 깨달았다.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 48년 팔레스타인 커뮤니티, 골란 고원(시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아랍-팔레스타인인들이 가옥 등 건물 파괴와 인종 청소의 위협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48년 국경을 넘어 가옥 파괴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동은 없었다. 점령지 내에서도 A와 C의 사법 관할이 다르고, 이스라엘 내 법적 절차는 또 다를 것이다. 또 공통의 문제로 연결해 대응하지 못하는 건 비단 가옥 파괴만도 아니다.
다만 한국에 있는 우리는 다양한 가옥 파괴의 현장에 현대중공업의 불도저가 사용되는 만큼, 현중의 책임을 묻는 캠페인을 통해 현장을 우리 나름대로 연결해 보고자 한다. 여담으로 깔란사와에서는 현중이 아닌 다른 곳의 불도저가 사용됐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깔란사와의 가옥 파괴에 관심을 덜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 현대중공업 보이콧 캠페인의 목적은 단기적으로는 가옥 파괴에 쓰일 장비를 이스라엘에 공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이 군사점령을 끝내고 아랍-팔레스타인 시민권자의 동등한 권리를 승인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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