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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7/07
    게토화, 가옥 파괴 – 인종청소의 다른 이름
    뎡야핑
  2. 2010/10/26
    나카브 사막 1(6)
    뎡야핑

게토화, 가옥 파괴 – 인종청소의 다른 이름


※ 2017년 여름, 이스라엘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마을 ‘깔란사와’와 ‘움 알 히란’ 방문 후  2018년 1월 일본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는 모임’의 회지 『미단』에 기고한 글입니다. 번역을 염두에 두고 작성한지라 영어 단어가 많습니다;;

현대중공업(현중)의 굴삭기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을 불법적으로 부수는 데에 사용된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것은 한국에서 BDS 운동(이스라엘을 보이콧Boycott, 투자 철수Divestment, 경제 제재Sanctions하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끝장내도록 압박하는 운동 )을 시작하기 위해 「이스라엘-한국 관계 보고서」를 준비하던 즈음이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이 점령지 팔레스타인에서 자행하는 문제를 한국에 알리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팔레스타인인의 집을 부수는 노란 굴삭기에 새겨진 ‘현대’ 로고는 충격이었고, 자연스레 현대중공업을 주요한 BDS 운동의 타겟으로 삼게 됐다.

현중 측에 판매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고, 현중 본사 앞에서 가옥 파괴 퍼포먼스를 하고, 현중 굴삭기에 집이 부서진 피해 가족을 인터뷰해 단편 영화를 제작하는 등 현중 보이콧 운동을 조금씩 전개해왔지만 중장비를 소비자들에게 불매하자고 제안할 수도 없었고, 제대로 현중을 압박할 특별한 아이디어 없이 그때그때 당면한 이슈에 집중하느라 현중 보이콧 캠페인은 답보 상태에 있었다.

그러다 2017년 2월, 이스라엘 내 베두인 마을 주민들로부터 현중 보이콧 요청을 받았다. 1월 18일, 현중의 굴삭기에 의해 14채의 집이 부서진 네게브 사막의 움 알 히란Umm al-Hiran 마을 소식은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올 여름 현대중공업 보이콧 캠페인의 재가동을 위해 Umm al-Hiran을 방문하기로 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정기적으로 현지에 활동가를 보내고 있다. 이번 방문에선 4명의 활동가가 현중 피해 마을 방문 외에도 ‘올드 시티’ 사진 촬영, 팔레스타인에 대한 한국의 독립 다큐 『올 리브, 올리브』 현지 상영, 핑크워싱Pinkwashing 운동 세력과 연대 구축 등의 활동을 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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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에 앞서 이스라엘, 즉 ‘48년 팔레스타인’에서 새롭게 BDS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BDS48’ 그룹을 만났다. 이들은 현대중공업을 운동의 중요한 타겟으로 삼고 있다. 이미 이전 현지 활동 때 120번(현재 기준) 가옥이 파괴된 네게브의 Al-Arakib 마을을 방문·조사한 적이 있어서 가옥 파괴 문제가 점령지 팔레스타인만이 아니라 48년 팔레스타인에서 역시 심각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20년간 파괴된 가옥이 5천 채에 달하는 등 생각보다 규모가 훨씬 방대했다. BDS48 활동가들의 추천으로 Umm al-Hiran이 공격당하기 8일 전인 1월 10일에 대규모로 가옥 파괴당한 깔란사와Qalansawe도 방문해 피해 상황을 알아보기로 했다.

깔란사와Qalansawa로 가는 길

그동안 현지 활동에 낼 수 있는 시간은 최대 1달 정도로 짧았기 때문에, 우리의 활동 영역은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집중돼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체류한 경험이 없어 교통 시스템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주로 점령지 팔레스타인에 체류하며 servees라는 미니버스나 택시와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뿐이라 차를 렌트하지도 않았다. Qalansuwa에 가기 전 서안지구 나블루스에 머물던 우리는 나블루스와 깔란사와가 거리상 가깝단 걸 지도를 통해 확인했지만 서안지구와 이스라엘을 잇는 대중교통이 없는 줄 알았기 때문에 약속 전날 예루살렘으로 가서 하루를 묵었다. 약속시간에 맞추기 위해 구글 지도 어플이 제시하는 대로 버스를 타고 깔란사와에 가던 중 갈아타야 할 버스 시간표가 구글 시간표와 오차가 있었고, 그 결과 한창 공사중인 고속도로 옆 정거장에 2시간 가까이 서 있어야 했다. 깔란사와로 들어가는 버스의 배차 간격이 1-2시간에 한 대 정도로 길었던 탓이다. 그나마 이 버스도 최근에 생겼단다. 여담으로 이스라엘과 서안지구 내 settlement를 잇는 settler bus 73번이 나블루스 인근 settlement 앞 정류장에서 깔란사와를 거쳐 간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다. 하지만 이 버스는 깔란사와에 정류장을 만들어놓지 않아 유대인 마을까지 더 가야 한다. 아무튼 이렇게 약속 시간에 늦은 탓에 깔란사와는 이후 재방문해야 했다.

깔란사와 – 마을 확장을 막고 게토화하기

깔란사와는 주민 23,000명의 소도시다.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마을이 확장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이스라엘 내 여느 팔레스타인 마을과 마찬가지로 깔란사와의 땅을 몰수해 건설한 주변 유대인 마을과 고속도로에 둘러싸여 확장이 막혀 있다. 땅을 몰수한 명분은 군사 지역으로 선포됐다거나, 공원 등 녹지를 조성할 거라거나(이스라엘의 공원 기타 녹지의 60%가 팔레스타인 마을 위에 지어졌다), 전기 시설을 설치하겠다거나 하는 둥 다양했지만 마을 발전에 투자된 돈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주변의 settler들 듣기 시끄럽다며 사원mosque에서 아잔도 울리지 못하게 하고, 보기 안 좋다고 놀이터 하나 못 짓게 만들었다.


깔란사와 마을의 부서진 건물 잔해

주로 결혼과 출산을 통해 가족 구성원이 늘어나며 새로운 집이 필요해지지만 당국은 어떤 건축 허가도 내주지 않는다. 대부분이 가족 단위로 땅을 이미 소유하고 있어 그 땅위에 집을 짓고 싶다고 요청해도 허가해 주지 않는다. 운이 좋아 허가를 받더라도 최소 5년은 각오해야 한다. 더 이상 한집에 스무 명씩 부대끼며 살 수 없어 건축 허가 없이 소유한 땅 위에 집을 지은 11개 가구가 1월 10일 화요일 새벽 5시, 800여명에 달하는 경찰과 9대의 불도저의 습격을 받았다. 72시간 내 떠나라는 철거 명령을 받은지 48시간도 안 지난 때였다.

마을 청년들은 불도저가 들어오는 입구에 자동차를 세워 경찰의 호위를 받는 불도저를 막아보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자동차는 부서지고 부상자가 발생했다. 철거 명령에 대한 재판을 진행 중이라는 항의에 경찰은 건축 허가를 받더라도 집을 부수러 올 거라고 대답했다. 이날 전례 없는 대규모 가옥 파괴로 각 집마다 60,000 shekel(약 2천만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집을 부수는 데에 이스라엘 당국이 지출한 비용 역시 피해 가구가 지불해야 한다. 은행으로부터 대출받아 지은 집은 파괴됐어도 대출금은 계속 갚아야 한다. 피해자들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 너무 많은 이 시스템은 서안지구, 예루살렘 어디든 동일하다. 그래서 차라리 직접 자기 집을 부수는 이들이 곳곳에 늘고 있지만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11개 가구가 끝이 아니다. 7월 기준으로 이미 60여개 집이 철거 명령을 받았다. 간혹 철거 날짜조차 적혀 있지 않은 명령서도 있다. 우리가 만난 Ismael씨가 짓고 있는 집은 올 10월에 철거 예정이었다. 20년간 모은 돈에 500,000 shekel의 대출금을 더해 지은 집을 부수는 것은 삶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며, 그는 집이 눈앞에서 부서지는 걸 보느니 죽어 버리겠다고 말했다. 12월인 지금까지 그의 집은 철거되지 않았지만 다행이랄 수도 없는 것은 이젠 언제 철거될지 알 수 없이 내내 불안에 떨어야 하기 때문이다. 철거 명령을 아직 받지 않은 집도 마찬가지로 내 차례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움 알 히란Umm al-Hiran – 인종 청소

48개 가구가 사는 네게브 사막의 작은 ‘미승인’ 마을 움 알 히란. 사실 이 마을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모든 아랍인이 이스라엘 軍政 통치를 받던 1956년, 軍令에 의해 다른 지역에서 이곳으로 이주당했다. 이스라엘 대법원High Court도 이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스라엘 당국은 애초에 건물 짓고 定住하란 뜻이 아니었다고 우기고 있다. 움 알 히란은 총 35개의 네게브 미승인 마을 중 하나로 분류돼 수도, 전기 등 일체의 기반 시설을 갖출 수 없었다.


마을이 부서진 움 알 히란

1969년 이스라엘은 아랍인 땅 소유자들에게 소유권을 등록하라고 강제했지만 네게브 베두인의 신청은 한 건도 받아주지 않았다. 지금 네게브 주민에겐 건축 허가를 신청할 관할 기구가 아예 없다. 당국은 미승인 마을의 약 3만명에 달하는 베두인을 7개의 베두인 계획 도시(planned town)로 강제 이주시킬 계획만 갖고 있다. 그나마 미승인 마을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이 계획 도시들 역시 Qalansawa와 마찬가지로 확장은 금지돼 있다.

철거 당일, 노인, 아이 포함해 주민 500여명인 마을에 14채의 집을 철거하러 쳐들어온 경찰은 500명에 달했다. 요아브(Yoav) 경찰 특수 부대는 베두인의 강제 이주를 위해 그 총체적인 계획인 ‘Prawer Plan’이 의회에서 통과되기도 전에 구성됐다. 명찰도 달지 않은 채 요아브 경찰은 철거 당일 차를 운전하던 마을 주민에게 발포했고, 콘트롤을 잃은 주민은 경찰 한 명을 치었다. 두 사람은 모두 숨졌다. 비디오 판독 결과 선후가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이스라엘 경찰은 여전히 주민이 IS에 연계된 테러리스트였고 고의로 경찰을 죽이려 들어서 발포한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철거된 집의 잔해가 나머지 집들과 함께 남아 있는 풍경이 보이는 언덕 반대편으론 유대인 outpost가 보인다. Golden Dog이라 불리는 이 외딴 농장(lone farm)의 인구는 4명에 불과하지만 전기, 수도 등 기반 시설은 물론 개를 위한 호텔과 묘지까지 갖췄다. 우리를 안내해 준 베두인 청년 단체 Haraki Shababi(حركي شبابي) 활동가들은 ‘움 알 히란에 가면 와이파이에 연결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는다고 했다. 언덕에서 보이는 풍경보다 실상은 훨씬 더 극단적으로 대조적이었다.


Golden Dog이라 불리는 외딴 농장(lone farm). 유대인 Settler 4명이 산다.

당국은 움 알 히란을 부수고 지워버린 위에 여전히 마을 이름 ‘Hiran’인 정통 유대인 settlement를 짓겠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7월에 이미 마을 주변에 불도저를 비롯한 건설장비들이 들어와 settlement를 세우기 위한 작업을 재개한 상태였다.

마치며

이번 방문을 통해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점령지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너무나 닮았음을 새삼 깨달았다.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 48년 팔레스타인 커뮤니티, 골란 고원(시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아랍-팔레스타인인들이 가옥 등 건물 파괴와 인종 청소의 위협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48년 국경을 넘어 가옥 파괴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동은 없었다. 점령지 내에서도 A와 C의 사법 관할이 다르고, 이스라엘 내 법적 절차는 또 다를 것이다. 또 공통의 문제로 연결해 대응하지 못하는 건 비단 가옥 파괴만도 아니다.
다만 한국에 있는 우리는 다양한 가옥 파괴의 현장에 현대중공업의 불도저가 사용되는 만큼, 현중의 책임을 묻는 캠페인을 통해 현장을 우리 나름대로 연결해 보고자 한다. 여담으로 깔란사와에서는 현중이 아닌 다른 곳의 불도저가 사용됐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깔란사와의 가옥 파괴에 관심을 덜 가질 이유는 전혀 없다. 현대중공업 보이콧 캠페인의 목적은 단기적으로는 가옥 파괴에 쓰일 장비를 이스라엘에 공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이스라엘이 군사점령을 끝내고 아랍-팔레스타인 시민권자의 동등한 권리를 승인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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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브 사막 1

네게브 사막, 나카브 사막
(네게브 : 이스라엘말, 나카브 : 팔레스타인말)

지난 달에 나카브 사막의 베두인 족 마을의 한 집을 이스라엘 당국이 부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스라엘 안에 사는 베두인족은 이스라엘 국적을 가지고 살지만 이스라엘 내에서 차별받으며, 팔레스타인 내에서도 차별받는다고 알고 있었다. 어쨌든 그 현장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카브 사막을 이스라엘화 된 마을을 통하지 않고, 그냥 (상상 속의) 베두인 마을 그 자체로 바로 가고 싶었고, 특히 뉴스에서 본 알무키엔 마을에 가보고 싶었는데 아무런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무리해서,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힘을 빌려 사막에 왔다.

예루살렘은 동/서로 나뉘어 서쪽은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다. 이 서예루살렘의 터미널에서 나카브 사막의 교통의 중심지인 '베르 셰바Be'er sheva"를 통해야만 나카브 지역 어디든 갈 수 있다. 근데 가는 길에 있는 마을에서 만나기로 한 건데 내가 잘 못 알아들어서 -_- 레하빔 마을에서 중간에 내리랬는데 종점인 베르 셰바까지 더 가버렸다. 암튼; 여차저차 만났다.

베두인 족인 아지즈와 나카브 사막 지역 유대인과 베두인의 공존에 대한 단체의 유대인 활동가 카야 두 분이 마중나와줬다. 어떻게 여기를 알고 왔냐고 해서 뉴스에서 봤다고 하자 카야는 아지즈에게 너 유명해졌다고 농담을.. 두 사람은 어제 이스라엘 당국에 끌려간 알 아리깁 마을 사람의 재판에 가는 중이라며 함께 가겠느냐고 물었다. 베르 셰바란 동네는 엄청 번화한 곳이었는데, 법원도 우와.. 새삥 겁나 좋은 건물 ㅇㅇ 들어가서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히브리어로 진행되는 재판을 한참을 봤는데 보다가 너무 배가 고파서 둘이 중간에 뛰쳐나가서 서예루살렘 터미널에서 샀던 샐러드를 쳐묵쳐묵.

왜 재판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영어 소통의 문제로 -_- 땅 몰수와 관련해서 이스라엘 당국에 항의하다가 잡혀왔다는 것만 확실한데. 내가 폭력을 행사한 거냐고 물었더니 전혀 그런 건 아니라고. 재판 결과는 좋아서 다행히 재판 후 곧바로 풀려났다.

그 카야라는 활동가는 이 문제로 곧 런던에 가야 한다며 우리를 잠시 다른 남자분한테 맡겼는데, 그 분은 우리를 알 아리깁 마을에 데려간다고 했다. 베두인이고, 사업가라는데 차가 벤츠 -_- 세상에 태어나서 벤츠 처음 타 봄 -ㅁ- 승차감이 남달라 =ㅁ= 이런 차를 타고 우리를 비싼 호텔에 데려다주는 건 아닐까 염려도 되고 아 부잣집에 가는 건가 ㄷㄷ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는데 고속도로를 타다가 아무 표지판도 없는 곳에서 샥 우회전을 하더니 사막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우와~~ 갑자기 너무 신남; 풀이 중간중간 송송 사막이 너무 예쁘고.. 참 쥬았지만

마을에 다다르자 부숴진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봤던 바로 그거 -_- 벤츠 소유자는 부숴지기 전의 집과 정원, 후세인과 조지 부시;;;의 사진을 보여줬다. 이스라엘이 이 마을의 기라성같은 집을 전부 부수었다고 얘기해 주며서도, 이스라엘 국가는 좋은 국가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 왜 그런 말을 덧붙인 걸까?? 우리가 이스라엘을 나쁘게 생각할까봐.. 근데 왜 그게 걱정이지?

마을은 정말 초토화되어 단 한 집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설명은 쫌 있다 하고.. 본론도 안 나왔는데 글 너무 기네 본론이 중요한데 이건 뭐 기사로 따로 쓸 거니깐 뭐. 암튼 이렇게 부자집들을 그냥 막 부수다니 정말이지 -_- 도대체 사회/경제적으로도 손실 아닌가 멀쩡한 부잣집을 다 부셔 -_-

그래서 이 사람은 커다란 천막을 지어놓고 지내고 있었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좀 떨어진 곳에 천막을 짓고 지내고 있지만 자기네만 여기 무너진 집 바로 옆에서 지낸다고 했다. 곧이어 또다른 벤츠를 타고 도착한 아내와 아들들은 우리를 보지 않고 마구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대화했다. 파괴 관련한 얘기인 것 같았다. 상황이 안 좋으니까 모두 대화를 소리지르며 화난 얼굴로 했다. 그래서 이렇게 폐를 끼치다니...;; 우리는 둘러보고 호스텔 가서 자려고 했는데 데려다달라는 말을 하기가ㅏ;;;;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남자분은 법원에서 만나서 집에 올 때까지는 젠틀맨;이었는데 집에 오자 갑자기 태도가 급변해서 완벽 가부장 -_- 아들 때리는 거 보고 시껍해서 얼어붙어서 정말 우리 둘이 미치는 줄 알았다 벗어나고 싶은데 너무 사막 안쪽인데다 어두워져서 걸어갈 수가 없는 상황..

그러다 마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아마 대책 회의를 하는 것도 같고) 우리 보고 아지즈네 집으로 가라며 때린 아들에게 데려다주라고 했다;; 우리는 너무 기뻐서 -ㅁ- 아오... 아지즈네 집에 갔더니 아지즈의 부인 싸바와 그 동생인 알리야, 알리야의 딸인 애기가 있었다. 그쪽이 할 수 있는 영어와 우리가 할 수 있는 아랍어가 비슷해서 몇 마디 소개하고 나자 더 할 말이 없었다. 너무... 우리들이 한심했다. 특히 나는 오기 전에 사막에 가서 베두인족을 만나겠다는 마음으로 아랍어를 좀더 공부했는데. 개뿔.. 책을 들고 올 수 있었다면 좀 나았을텐데 검문해서 뒤질까봐 책도 못 갖구 와서ㅜㅜ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머릿속이 새하얘ㅜㅜㅜㅜㅜㅜㅜㅜㅜ 이런 상황에서 대화하려고 아랍어를 배운 건데 이게 뭐임 아는 단어만 파편화돼서 떠오르고 -_- 제기럴~~~~

-ㅅ- 과일을 대접해 주셨는데 자와아(ㄹ)이라는 과일이 정말 참을 수 없이 맛없었다 -_- 그냥 맛없는 게 아니고 익지 않은 떫은 맛에 트리오(세제) 맛이.. 근데 과일을 대접하시고는 우리를 뚫어져라 보셔서ㅜㅜㅜㅜ 바나나랑 사과는 먹었는데 자왈을 먹다 남기고 몰래 버렸다 죄송합니다 천지신명이시여ㅜㅜㅜㅜㅜㅜㅜㅜㅜ 이미 뭔가 주시면 다 먹겠다고 각오는 하고 있었는데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아오 ㅇ<-< 나중에도 그거 트름 나올 때마다 토할 거 같았고;

그러고보니 처음 들른 집에서도 엄청 맛있는 차와 말린 대추같은 걸 주셨다. 처음 2시간 정도는 멀뚱멀뚱; 우리끼리 사진 찍고 돌아다니다가 상황이 너무 불편해서 뭔가 일을 도우려고 했는데 말이 안 통해서;;;; 돕지도 못하고;;;; 이쪽에서는 고개 숙이는 문화가 없는 거 같은데 나는 송구해서 고맙다거나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를 할 때마다 나도 모르고 상체를 앞으로 숙였다;;;; 얼마나 이상해 보일까 쟤 뭐하니 하고;; 근데 송구해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태어나서 죄송하다는 생각을 정말이지 처음으로 했다. 부끄러워 뒤질 것 같았음 죄송합니다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아지즈는 카야와 함께 다른 곳에서 회의를 하다 저녁 늦게 왔다. 생각해 보면 그 회의만 아니면 마을 둘러보고 밖에 하다못해 사막 바깥 버스 정류장까지만이라도 데려다달라고 할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암튼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상대가 늦게 와서 우리를 데리고 가족이 다같이 식사한다며 또 이동했다. 마을을 지어놓고 살아도 집집마다 거리가 멀다. 유목민 문화인가? 신기함. 도착한 곳은 아지즈의 장인의 집이었는데 이미 우리를 위해 요리해 놓고 있었다.

장인어르신<인 스마일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근데 부인이랑은 한 마디도 안 하고... 뭔가 일하시고 아파보이기도 하고 해서 말을 걸기가 좀 그랬음 암튼 오랜만에 먹는 엄청 맛있고 제대로 된 요리가..!! 나는 양고기를 정말 싫어하지만 양기름같은 데다 볶은 볶음밥에 양고기가 마구 섞여 있는 볶음밥을 엄청 맛있게 먹었다 맛있어!!! 이것저것 대접을 받아서(죄송합니다ㅜㅜㅜㅜ) 배도 안 고팠는데 맛있어서 잘 먹었다. 쌀은 숟가락으로 먹는데 양고기는 손으로 뜯어먹는 문화가.. 근데 스마일님께서는 자꾸 양고기를 뜯어서 우리 앞으로 주면서 먹으라고 눈빛으로 빔을 쏘아대셨다. 계속 -ㅁ- 그래서 냐옹씨한테 넘겨줬는데. 소고기나 돼지라면 먹겠지만 양고기랑 닭고기는 고기를 끊기 전에도 원래 안 먹던 거라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냥 심리적인 문제이다-_- 적당히 속여 넘기고 싶었지만 정말 계속 보셔서 조금 먹었다. 소고기같은 맛에 직접 키운 양이라선지 냄새는 조금도 안 났는데. 그래도 한 입 먹었더니 맛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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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는 (2)에서;;;;;; 중요한 건 다 빠지고;;

지금은 다시 동예루살렘,. 쫌있다 최근에 역시 파괴되고 있는 난민촌에 갈 거임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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