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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펌]
이번달 후원인 인터뷰에서는 그 스스로 한국사회에서 “빛과 소금” 같은 활동을 하고 있노라 말하길 주저하지 않는 "빛과 소금" 같은 진보네트워크의 활동가이자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하고 있는 뎡야핑 님을 만나보았습니다.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세계 시민 뎡야핑입니다.
뎡야핑 이라는 이름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름의 사연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덩 야핑’이라고 옛날 사람이라면 다 아는 유명한 중국 탁구 선수가 있는데요. 저와 탁구 치며 같이 놀던 친구들이 순전히 얼굴이 닮아서 붙여줬던 별명을 활동명으로도 쓰기 시작했어요.
덕후 기질이 상당히 짙은 분으로 알고 있어요. 다소 키치한 진보네트워크(이하 진보넷) 행사 포스터 등을 보면서 ‘이건 분명 뎡야핑 님의 취향이나 덕질이 반영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기도 했었는데요, 요즘은 어떤 ‘덕질’에 빠져 계신가요?
원래 올 한 해는 처음부터 끝까지 슬램덩크에 빠져서 지낼 예정이었어요. 1월에 <더 퍼스트 슬램덩크> 애니메이션이 한국에 개봉한 이래 9월까지 슬램덩크 원작 만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그 원작에 기반한 2차 창작 작품들을 보고 또 보느라 다른 만화랑 영화는 거의 보지 않았어요. 제가 파는 장르가 20년 만에 흥하다니 너무 즐거워서 이전에 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새롭게 잘 놀았습니다.
제 취향이 키치하다기보다 제가 만들 수 있는 게 그나마 키치한 느낌 뿐이고, 애초에 행사 포스터는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하지 않아서 더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진보넷 행사 포스터는 저 뿐 아니라 다른 활동가도 만드는데, 그 분이 유행에 초민감하셔서 저도 재밌게 보고 있어요ㅎ
올해 25주년 진보넷 후원의밤은 제가 최근 다녀온 후원행사 중 가히 최고로 재밌었습니다. 특히 피날레송 <누가 죄인인가>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작 밖에서 보면 진보넷이 그렇게 재밌는 단체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웃음)) 진보넷 활동과 의미를 짧게 소개해주신다면요?
한국사회에 빛과 소금 같은 존재…? 한국에서 ‘보편적 인권’이라는 가치를 담지하며 인공지능과 빅테크 관련 정책을 생산하는 유일한 인권단체라서요. 외부에 드러나진 않지만 ‘진보넷 없으면 한국사회 어쩔 뻔 했어?’ 싶은 순간들이 많아요. 저희가 팀이 두 개인데, 앞서 말한 인공지능과 빅테크 관련 정책을 생산하는 건 정책팀에서 하고 있어요. 저는 기술팀에서 그러한 기술과 관련된 현안이나 역사를 살피며 비평하는 유튜브 채널 <따져보는 오늘의 기술이야기 :: 따오기>의 영상을 만들고 사회운동의 펀딩을 지원하는 ‘소셜펀치’ 홈페이지도 운영하는데, 말하고 보니 이것도 다 빛과 소금이네요. 허허.
진보넷 25주년 후원의밤 피날레송 <누가 죄인인가 - 정답: 빅테크>
진보넷은 25살이나 먹은 오래된 단체이고, 창립 멤버를 비롯해 연차가 많은 활동가들이 적지 않은 단체입니다. 활동가 재생산에 대한 고민이 많을 거 같은데요. 연차가 다양한 활동가들이 섞여 활동을 잘 만들어가기 위한 본인의 팁 같은 게 있을까요?
제가 볼 때 어느 단체든 창립자들은 그 운동이 자기 삶인 사람들이거든요. 단순히 헌신적인 게 아니고 그게 너무 재밌는 거죠. 그래서 운동과 삶을 구분할 필요를 못 느끼는 거 같아요. 이건 옛날 운동권들만 그렇단 게 아니고, 그냥 요즘 사람들이 스타트업을 만든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창립자나 그에 유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후발대로 들어온 사람들이 이 이슈에 대한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진정성은 사전에 탑재하고 조직에 들어와야 되는 그런 게 아니고 조직 활동을 통해 생기는 거 같거든요. 후발대에게도 이 운동이 자기 삶의 주제가 되도록 선발대들이 많이 노력해야 하는 거 같아요. 삶의 환경이 달라졌고, 그에 따라 가치관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하구요. 활동과 삶을 분리하는 태도가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더 잘 활동하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 놀고 있어요. 죽을 때까지 활동하려면 내가 지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동료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동료가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우리 (단체) 사람으로 안 남아도 다른 분야에서 뭘 하든 혹은 직업적으로 운동을 지속하지 않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시지 않겠는가, 그런 마인드로…
제가 진보넷에서 오래 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자기 활동을 직접 기획할 수 있다는 점이었기 때문에, 뒤에 들어온 제 동료들도 최대한 자기 재량껏 활동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근데 돌아보면 저만 마음대로 살았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시니어(선발대) 활동가로서 뒷받침하는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팁이랄 것도 아니고 다들 그러고 살 것 같네요.
뎡야핑 님은 진보넷 활동가 이전에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계속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향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지,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싶은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그 사람들이 불쌍해서 연대하는 게 아닙니다. 이스라엘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의 해방운동이 정당하기 때문에 연대하는 겁니다.
그간 제 소임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군사점령과 식민지배의 현실을 한국사회에 많이 알리는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며 이슬람과 20세기 다른 해방운동의 역사에 대한 내용도 함께 알렸어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심지어 진보적인 사람들조차 이슬람에 대한 편견, 예컨대 테러리즘 같고 미개한 것 같단 느낌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제노사이드(집단 학살)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프로파간다, 즉 ‘하마스=ISIS(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라는 공식이 먹힌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미국이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계속 펼쳐온 “테러와의 전쟁”, “문명과 비문명(야만)의 대결”과 같은 프레임이 제 생각보다 사람들 무의식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또 20세기 해방운동의 역사에 대해 모르다 보니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의 대응이 마치 새로운 일인 듯 얘기한다는 것도 깨닫게 됐습니다.
그런 영역을 저희가 다 커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이슬람이나 20세기 해방운동의 역사에 대해 많이 공부하면 좋겠어요. 물론 지금은 우리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제노사이드를 중단시키는 게 급선무고요. 자신이 속한 공간들, 교회 소모임이든 학교 동아리든 이름 없는 책읽기 모임이든, 어디서든 간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식민지배를 멈출 때까지 이스라엘을 보이콧하겠다 함께 선언해주세요. 한국 시민들이 이스라엘의 식민지배를 거부한다는 걸 이스라엘 대사관에 보여주세요. 이건 원래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가장 집중하는 영역인데 지금 제노사이드 대응이 급해서 잘 못하고 있습니다. 관련한 내용에 대한 강연 요청하시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폭격으로 키우던 새를 데리고 가족들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 팔레스타인 소년
뎡야핑 님이 계속해서 싸우는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멀쩡한 척하고 있지만 사실 전 지금 인간다움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계속 운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이 변화 가능한 존재라는 깊은 믿음이 있어서인데, 여전히 머리로는 그게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는 믿음이 다 깨졌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쉬는 시간을 가지려고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이러다 성격파탄자 되고 운동도 그만둘 것 같아서요. 누구 좋으라고 운동을 그만두겠어요.
우리를 이렇게 지치게 하는 그 자체가 저들의 목표래요. 이스라엘과 미국이 끊임없이 생산하는 뉴스가 전부 선동을 위해 거짓으로 조작된 정보라는 걸 사람들에게 말하기 위해, 저는 그 프로파간다들을 계속 팔로업해야 합니다. 엄청난 양의 끔찍한 프로파간다가 쏟아져서 정말 지쳐 버렸는데요. 그런데 보스니아 제노사이드 생존자이기도 한 제노사이드 연구자 분의 트윗을 봤어요. 세르비아 극우들이 제노사이드를 자행할 때랑 패턴이 완전 일치한다고. 저들의 목적은, 그 끝없는 프로파간다에 맞서 싸우는 우리가 지쳐서 더이상 맞서지 못할 때까지 우리 힘을 소진시키는 거라고.
그 프로파간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미개하고 악한’ 자들이라는 인식을 만들어서, 우리에게 이들이 죽어도 큰 타격 없는 인간 이하의 존재로 느껴지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프로파간다 중 하나에 대해 따오기에 만든 영상이 있으니 한 번 봐 주세요.* 저에게 지금 유일한 희망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아서 제가 운동을 시작했고 그것이 제 삶을 바꾸는 일이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지금이 그런 순간일 거라는 점이에요.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함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언론에서는 볼 수 없는 10월 7일 하마스 이스라엘 침공의 진실 (2023. 11. 28.)>, 유튜브 따오기 채널
마지막으로 사랑방 활동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저도 백년 전에 인권하루 소식지를 보며 세상을 배운 활동가 중 한명인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실천적이고 급진적이고 또 뒤에서 소리 없이(?) 움직이며 세상에 유의미한 질문을 계속 던지며 한번 시작하면 끝장날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는 불도저 같은 사랑방의 활동에서 많이 배우고 영감도 힘도 얻습니다. 사랑방의 과거와 오늘 같은 미래를 기대합니다.
HD현대건설기계의 중장비에 부서진 '앗스파이' 마을의 학교 잔해 위의 뎡야핑. 사진은 해당 학교의 학생이 찍어주었다.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쉽지 않다. 그니까 사람이 어떻게 망가지는 건지 스스로 실시간 체험하고 관찰하고 있다. 물론 그런 자각이 있기 때문에 적정한 선에서 망가지고 끝나겠지만... 정말 매 순간 폭발할 것 같다.
괜찮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거지 괜찮은 게 아니다.
이 영상을 찍은 후에도 10월 7일 노바 뮤직 페스티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련해서 많은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아래 인용글은 비슷한 시기에 쓴 거고, 최근 거는 인용문 아래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날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날 이스라엘의 음악축제가 열린다는 걸 사전에 알게 된 하마스가 군사작전을 짜서, 축제 장소에 쳐들어가 비무장한 민간인을 200명 넘게 살해했다는 이야기에 저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온전히 믿기는 힘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먼저 저는 이슬람 정치 운동의 대척점에 서 있는 세속주의자기 때문에 하마스를 조금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렇대서 하마스를 실제 이하로 깎아내리거나, 반대로 어찌 됐든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이기 때문에 좋게 볼 생각도 없습니다. 제가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하마스는 온건한 이슬람주의 세력으로, 예전에 시리아나 이라크에서 창궐했던 IS 같은 극단적 이슬람 정치 세력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IS와 같다며, 하마스가 아기 머리를 베었다거나 여성의 몸이 부서질 때까지 강간했다는 둥 입에 담기도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고 무수한 프로파간다를 퍼뜨렸지만, 이후 이런 사실이 없다는 게 이스라엘 언론을 통해 속속들이 드러났습니다. 일단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가짜 뉴스(허위 조작 정보)를 퍼뜨려 집단 학살을 자행할 근거를 만든 것뿐입니다. 아무튼 그런 IS나 할 법한 짓을 하마스가 했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서양의 정부들과 언론들이 사실이라고 퍼뜨렸습니다. 일단 퍼뜨리고 나중에는 정정하고 있지만 자극적인 가짜 뉴스가 퍼지는 것과 정정된 뉴스가 퍼지는 속도와 범위는 무서울 정도로 다릅니다. 저는 하마스가 IS와 다르며, 오히려 서로 적대하며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무엇보다 첫 군사작전이 목표로 한 게 고작 민간인 학살이라면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신임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에, 어째서 하마스가 그런 짓을 한 건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더더군다나 한국 언론에는 하마스 단독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지난 몇 년간 오랜 분열을 딛고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들이 단일한 무장 투쟁 전선을 만들었고, 10월 7일 알아크사 홍수 작전은 이들이 함께 계획한 것입니다(참고로 앞서 말한 ‘파타’는 무장 해제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함께하지 않습니다). 하마스도 그렇지만, 좌파 세력이 그런 민간인 학살을 작전으로 짰다는 걸 그대로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또한 하마스는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의혹을 부정하며, 고의적으로 민간인을 노린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군경과 무장한 경비대와 정착민 등과 교전하는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살해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인질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는 영상을 계속 내보냈죠. 이번 군사작전의 목표는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5천에 가까운 해방 운동가들을 석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수감자와 교환 협상하기 위해 이스라엘 인질을 최대한 많이 데려가고, 또 군사 기지를 공격하는 게 그 수단이었고요. 참고로 수감자(인질) 교환은 거의 유일하게, 이스라엘이 협상에 응하는 영역입니다.
전 세계 연대자 중, 저처럼 10월 7일의 일에 대해 의혹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당연하죠. 우리는 하마스가 IS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요. 이스라엘이 공개한 사진과 영상을 보면 자동차와 사람이 완전히 새카맣게 불타 죽고, 키부츠의 집이 완전히 부서져 있었는데, 하마스의 경량화기로 그리고 중장비 없이 그렇게 파괴할 수 없다는 이야기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언론에서, 10월 7일 이스라엘 민간인 일부를 살해한 것은 이스라엘 점령군이라는 보도가 조금씩, 계속해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준 아파치 헬기가 달리는 사람과 자동차에 미사일로 폭격하는 영상과 자신이 이스라엘 민간인을 폭격하지 않았다고 100% 확신할 수 없다는 조종사의 인터뷰도 나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마스는 축제가 있단 걸 몰랐다는 이스라엘 경찰 조사결과가 보도됐습니다. 경찰이 생포한 하마스 대원들의 진술도 그렇고, 원래 목/금 개최 예정이었던 음악축제는 불과 이틀 전에 하루 연장이 결정돼 하마스가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이스라엘 점령군의 아파치 헬기가 음악축제에 온 사람들에게 발포했다는 내용도 나왔습니다. 이스라엘이 고수해 온 내러티브가 깨진 것입니다.
- 질라라비에 기고한 글 중에서
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음모론을 제일 싫어하며 음모론에 무조건적인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인데. 그런데 10월 7일에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학살하는 군사작전을 짰다는 얘길 듣고, 실제로 많은 민간인 시신이 발견된 뒤에도, 너무 너무 납득할 수가 없어서 음모론자가 될 것 같아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저항운동이 전례 없이 세계적으로도, 한국에서도 공격받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내 의문을 막 얘기할 수도 없었다.
나 자신이 스스로 도저히 납득이 안 돼서 이런 저런 가능성을 생각해 봤었다. 내가 모르는 새 하마스 내 권력 관계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어서 극단주의자들이 장악을 했다거나? 하마스 정치가 최고 대가리들은 이 군사작전을 거의 마지막 단계에야 알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하부 군사조직인 알까삼 여단이 실권을 장악했다는 것이었다. 근데 위에 썼듯 그렇게 생각하려 해도 하마스만 아니고 팔레스타인 저항 세력 다 같이 하는 건데, 이슬람 지하드랑 좌파 PFLP까지 다 같이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어서 기존과 전혀 다른 노선을 취하게 됐다고? 그게 도저히 말이 안 됐다. 그리고 여러 번 강조했듯 하마스는 극단주의 계열이 전혀 아니다.
다른 음모론들도 있었는데 이스라엘이 위성과 감시 드론으로 촘촘하게 감시하고 있는데, 하마스의 군인이(이스라엘 점령군에 따르면 전투원 3만 명) 대규모로 훈련하고 재배치되는 걸 이스라엘이 몰랐을 리 없다. 때문에 이스라엘이 (여러 이유로) 원했거나 최소 방조한 거다. 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음모론까진 안 빠졌는데 왜냐면 음모론을 싫어하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서는 최근 뉴욕 타임즈에 기사가 나왔다. 알았지만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며 무시했다고. 이건 아슈카르가 지적했듯 행위 주체성을 무시해서 그런 거임.
뉴욕 타임즈: "이스라엘, 1년 전 하마스의 공격 청사진 알고 무시"
—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 BDS Korea 🇵🇸 (@pps_kr) December 1, 2023
이스라엘 점령군이 입수한 40쪽 문서(여리고의 벽)에 공격 날짜는 없었지만 "이스라엘 군기지와 통신 허브, 기타 보안 정보"와 공중과 지상 공격 계획이 담겨 있었고
군은 "하마스 능력 밖의 일", "완전히 상상의 산물"이라며 무시 pic.twitter.com/Y90IGiyA2m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다른 이유는 이스라엘 점령당국이 보인 태도 때문이다. 처음에 다른 공격으로 인한 피해는 미친듯이 선전선동에 이용하면서도 노바 축제에 대해서는 굉장히 뒤늦게 선전전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제일 음모론자가 될 것 같았던 게, 영상 마지막에 빼먹었다고 넣은 저 얘기 때문임
10월 9일 네타냐후 수석 보좌관의 노바 음악 축제에 대한 인터뷰:
“파티는 그 혼란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며 “파티 참가자들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때로는 누적된 조건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누구도 계획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저 인터뷰 후 이스라엘 사회에서 왜 피해자 탓을 하냐고 엄청난 비난을 받은 뒤 보좌관은 자기 말이 사실은 너무 많은 인명 피해 때문에 신원 식별 과정이 더뎌져서 했던 말이지 피해자들 비난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는데, 뭔 소리임? 말이 안 됨. 그래서 저 멘트 때문에 이상하다, 이상하다 계속 이러고 있었음. 그리고 그 뒤에 점령군의 아파치 헬파이어 미사일과 탱크에 일부 이스라엘 민간인들이 살해됐다는 보도가 나온 다음에 역시. 저 말이 그냥 말 그대로, 하마스가 계획적으로 학살을 자행한 게 아니고, 자신들도 (당연히) 민간인을 죽이려던 건 아니고, 그런 누적된 조건의 결과로 누구도 계획하지 않은 교전 중 살해가 있었던 것. 이게 그냥 너무 아다리가 들어맞는다. 하마스가 설명했던 거랑도 일치하고.
그리고 영상에서 조금 말하다 왜 때문에 까먹고 다 얘기를 안 했는데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의 군사작전의 목적은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5천 명(지금은 8천 명)의 팔레스타인 정치 수감자를 석방시키는 것이었다. 즉 최대한 많은 인질을 데려가 최대한 많은 수감자를 교환-석방시키는 게 목적이다. 그런데 많은 민간인을 학살하는 것이 대체 자기네 목적을 달성하는 데 왜 유리하다고 판단하겠는가? 그렇게 비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10월 7일의 진실은 역시 묻히는 걸까요?
—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 BDS Korea 🇵🇸 (@pps_kr) December 12, 2023
하마스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점령군 간의 아군 사격으로 사상자가 발생한 건 맞지만, 이에 대해 "조사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며 점령군은 진상을 조사하지 않겠다 선언했습니다. "그때 군인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과(1/2) https://t.co/tmBZeKrgo1 https://t.co/eiAHMk8sHI pic.twitter.com/3CX3qcKbka
예상대로 이스라엘은 모든 걸 덮는다. 이미 매장된 시신도 많다. 증거가 될 불태운 자동차들도 다 폐차시켜 없애 버렸다.
최근 내가 주의 깊게 보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측 사상자 숫자다.
이스라엘 언론에 따르면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 점령군과 경찰의 누적 부상자 수는 5천 명으로, 이 중 58%가 팔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일부는 절단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 🍉 팔레스타인평화연대 - BDS Korea 🇵🇸 (@pps_kr) December 9, 2023
부상 후 장애인으로 등록된 부상자는 이미 2천 명으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며, 매일 60명씩 부상자가 실려오는 중 https://t.co/wyfdkus2Ql
이스라엘은 사망자를 10월 7일 제외하고 105명이라고 말하는데, 부상자가 5천이 넘고, 그 중 장애 등록된 병사가 이미 2천이고, 1천이 등록 대기 중이라고 한다. 사망자에 비해 부상자 규모가 너무 크다.
사실 이 뉴스를 보고도 너무 화가 나서 한밤중에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는데... 이미 자국민 인질 살해하는 데서 다 보여주긴 했지만 어떻게 이렇게 자국민의 신변 보호는 안중에도 없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치는 게 이스라엘로서도 전례 없는 일이라고, 벌써부터 전쟁 후 군인들의 포스트 트라우마 걱정하던데, 애초에 그러면... 트라우마 생길 일을 안 만들어야 할 거 아닌가. 사회를 완전히 훼손하면서도 위정자들은 단기적 이해관계밖에 못 본다. 정말 답답하다. 이스라엘 사회가 망가진 대가는 유대인들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훨씬 더 치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더 절망스럽다.
팔레스타인 사회를 망가뜨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재능있는 사람들이 아니 그냥 모든 사람들이 살해되고 있다. 건물 잔해에 묻혀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을 합하면 살해된 사람이 2만 5천을 훌쩍 넘었다. 너무 너무 무섭다. 더는 안된다고 맨날 말하는데 매일 매일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서 너무 무기력하다. 그래도 정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관심 갖고 자기 이슈로 삼고 있어서 정말 유일하게 기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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