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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7/06/29
    여기가 니네 집 (걍 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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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7/06/15
    파꾸스, 팔레스타인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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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7/06/11
    서안지구 통과해서 티베리아스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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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7/03/13
    팔레스타인 어린이 수감자
    뎡야핑

안녕, 제닌

친구 파디와는 2012년에 처음 만났다. 요르단 계곡에서 2시간 기다린 끝에 잘못 탄 버스에서 대책 없이 어딘지도 모르는 동네에서 내려버렸을 때, 나를 먼저 발견하고는 차에 태워줬다. 파디는 회사 차를 끌고 여러 외진 지역까지 다니며 핸드폰 및 관련 물품을 영업하는 회사원이었다. 그날 알칼릴(헤브론)에 데려다 준 뒤에도 파디는 자주 전화를 걸어오고 만나자고 했다. 그땐 나 혼자였어서, 그리고 워낙 찝적거리는 남자들이 많아서, 파디도 그 중 하나일까 경계하면서 만났다. 만날 때마다 밥 사주고 커피 사주고 돈 1원도 못 쓰게 해서 더 미심쩍었다-_-. 매일 같이 전화를 걸어와 짧게 안부를 묻고, 뭐 필요한 건 없냐고 묻던(필요한 건 항상 없었다;;) 어느날이었다. 이스라엘 심카드를 사용하느라 이틀간 팔레스타인 심카드를 사용하지 않다가 바꿔 끼웠는데, 그날 전화를 받자 파디는 엄청 성을 내며 왜 연락이 안 됐느냐고, 연락이 되었으니 이제 됐다며 전화를 끊었다. 경계심이 계속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일행이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뒤에야 같이 제닌에 있는 파디네 집을 방문했는데, 파디의 부인과 아이들, 엄마, 동생들, 동생 가족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비로소 안심하고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파디와 연락이 끊겼다. 전화번호가 있어서 안심했고, 페이스북에서 당연히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번호는 바뀌었고 페북에선 못 찾았다(동명이인 진짜 많은 데다 페밀리 네임을 몰랐다...). 2년 뒤 다시 방문했을 때, 그때 기억을 더듬어 파디가 일하던 회사로 찾아갔다. 다른 일행들을 햄버거집에 데려다 놓고, 밥시키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아무래도 여기 어디 쯤이었는데, 싶어서 나가서 찾아봤다. 한 번 가봤을 뿐이고 따라다니기만 해서 기억 못 할 줄 알았는데 용케도 찾아냈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을 천재라고 추켜세우지 않을 길이 없었따< 사무실에 가서 파디를 찾아왔다고 하니 아무도 이해하지 못 했다. 당시에는 파디 패밀리 네임도 몰랐으니 -_- 그래서 아이들 이름을 대며 탈라랑 아흐메드 아빠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아! 하고 연락해 줬다. 근처 시장에서 휴대폰 액세서리 노점을 하고 있던 파디는 한 걸음에 달려왔다. 같이 식당으로 돌아가서 밥을 먹고, 나의 천재적 기억력을 내가 제일 열심히 찬양하고, 그리고 파디네 집에 두 번 갔다. 하지만 처음도 두번째도, 파디가 원하는 건 좀더 많은 시간을 자기 가족들과 같이 하는 거였다. 초대 전화가 올 때마다 나는 여기 일하러 온 거라고, 미안하다고 거절했다. 그게 너무 미안했다. 세상 나만 바쁜 것처럼 매일 일정이 있다고.. 그래서 다음에 오면 무조건 놀러오겠다고, 그때 많은 시간을 보내자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페친도 맺었따 ㅎ

 

파디하고는 팔레스타인에 있을 때 전화통화를 하곤 했지만, 가족들과 만난 건 몇 회 되지 않아서, 가족들을 전부 기억하지 못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구성원이라고 생각했지만 다 이전에 만났다고 모두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만이 아니고 지난 번에 왔던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안부를 물었다. 돌아와서 옛날 사진을 찾아보니 막내 동생 남편도 왔었네 처음 본 줄 알았는데 ㅎ 지난 번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여동생 남편이 셰프라고 여동생네 집으로 초대해, 그 남편과 남편의 동생;이 차려주는 엄청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 여동생이 6개월 전에 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너무 젊은데, 어린 자식들 남겨두고... 이번에 가니 자식 중 둘째 아들 와라드는 외할머니, 그니까 파디네 엄마 댁에 살고 있었다. 와라드는 수많은 어린이들 중 하나로 기억도 못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내가 자길 기억 못 하는 걸 알았는지, 머리끈 같은 팔찌를 4개 주며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했다. ㅎㅎㅎㅎ 귀여워 ㅠㅠㅠㅠ 이번에도 많이 만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와라드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네 ㅎㅎ

 

동생의 죽음 외에도 파디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이스라엘 고용 허가증을 사려다 사기를 당하고, 허가증 없이 일하다 밤에 숙소에 기습한 경찰에 붙들려 한 달간 실형을 살았다. 한국일보 기사에 썼던 것처럼 한동안 택배 기사였는데, 임금 체불, 장시간 노동 등의 문제로 내가 있는 동안 관뒀다. 그리곤 중고샵을 시작했는데, 장사가 잘 안 된다고 야채 가게로 바꿀 거라더니 페이스북 보니까 가게 홍보하고 있다. 그리고 집주인이 갑작스레 1달 안으로 집을 비우라고 해서 이사까지 했다. 그래서 전처럼 전화가 자주 오지 않았고, 여유가 그렇게 없다는 게 정말 마음 아팠다. 항상 내가 바빴는데 이번엔 너가 바쁘네, 그랬더니 그러게, 하고 한숨을 쉬었다. 서안지구 들어가기 전에 페이스북 메세지로 연락하고 있었는데, 메세지 확인을 잘 안 하고, 내가 제닌에 간다는 것도 확인을 안 하고 있었다. 제닌에 들어가서 전화했을 때, "야핑!!!!!!!" 하고 엄청 반가워하며 기다려달라고 했다. 택배 차량을 타고 숙소 앞에 와서는, 시간이 없으니까 같이 다니면서 얘기하자고 했고 자세한 건 기사에 썼다.

 

파디가 바빠서 엄마나 아이들하고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는데, 사실 나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같이 놀 수 있는지 지금도 잘 모른다; 파디 가족들이랑만 있으면 불편했다. 그래서 여럿이 방문하는 게 좋은데 이번엔 몇 번 봐서 그런가 애기들이랑 친해졌다. 특히 엄청 너 따위엔 노관심이다 ㅎㅎ 라고 보이는 오마르... 파디 동생 히바네 둘째 아들램.. 역시 기억 못 하고 있었는데; 돌아와서 옛날 사진 보니까 생각났다 ㅎ 사진 찍을 때 엄청 움직이던 애기. 암튼 오마르네 집에서 하룻밤 자면서 오마르하고도 친해졌다! 얼마나 친해졌냐면, 밤에 다 같이 모여자는 방에 자기 옆자리를 톡 톡 치며 옆에서 자라고 할 정도였다!! 완전 넘나 기뻤지만 잠은 손님에게 마련해 주신 에어컨 나오는 방에 가서 자버림...< 전날 더워서 거의 한숨도 못 잔 상태라서 =ㅅ= 다음날 "보고싶을 거야"하고 인사하는데, 내 아랍어 발음이 구려서 못 알아듣고는 자기 엄마를 데려왔다. 뭐라는 거야? 다시 말해 봐;;; 해서 엄마가 니가 보고싶을 거래, 지금 갈 거야, 라고 말해주니 갑자기 완전 시무룩해졌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 갈게 보고 싶을 거야, 그러면서 인사 뽀뽀를 하려는데 땅만 쳐다보면서 가만히 앉아서 양볼에 뽀뽀를 받고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으윽 찌통 ㅠㅠㅠㅠ 뽀뽀하는데 눈물 날 것 같았다. 그리고는 동생 함무디한테 뽀뽀하려는뎈ㅋㅋㅋㅋㅋ 애기가 끝까지 뽀뽀 못 하게 으으으 하면서 뒤로 피하는 거 보고 웃겨서 눈물 쏙 들어감ㅋㅋㅋㅋ 함무디하고는 못 친해짐 옛날에 같이 사진도 찍은 사이라서 함무디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ㅅ-

 

돌아오기 전 라말라에 지내면서, 파디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다. 파디가 "뭐 필요한 거 있어? 뭐 해줄까?" 하고 묻는데 내가 또 깔깔 웃어버렸다. 파디는, 근데 왜 내가 뭐 필요한 거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웃는 거야? 하고 물어왔다. 그냥 맨날 물어보는 게 너무 웃겨서, 하고 대답했던가. 모르겠다, 항상 정말로 뭐라도 내가 말하면 그게 뭐든 해 줄 것 같아서 웃긴 건데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파디는 진지한 남자라서 -ㅅ-;

 

벤구리온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파디와 메세지를 주고 받았다. 공항이라니깐 한국이냐고, 해서 아니 벤구리온 공항이라고, 했더니 네가 팔레스타인에 있지 않으니 이젠 내가 뭐 필요한 거 있냐고 물어볼 수가 없구나, 하고 답장이 왔다. 이젠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그 메세지를 보고서 공항부터 뱅기 타서도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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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니네 집 (걍 일기;;

팔레스타인에서 만난 친구들은 자기 집이 내 집이라고 얘기한다. 디스 이즈 유어 홈ㅋㅋㄲㅋ 왜죠ㅋㅋㅋㅋ 근데 아무리 편하게 생각하래도 어떻게 편하게 생각해... 더군다나 친구 혼자 사는 집도 아니얔ㅋㅋㅋ< 아무튼 내 집처럼 편안한 곳은 당연 없지만

 

우리 친구 다르위시네 집도 내 집처럼 느껴지는 건 물론 아닌데, 다만 맨첨에 팔레스타인 와서 아무 것도 모르고 엄청 헤맬 때 도움을 많이 받아서, 그리고 원래 혼자 살아서 ㅎㅎ 올 때마다 항상 신세졌고. 약간 내가 팔레스타인에 집 같이 여기는 곳이 바로 다르위시네구나 하고 아까 통화하면서 느꼈다.

 

온지 한 달 다 됐는데 여태 연락 안 하다가, 오늘 전화비 충전한 김에 연락했는데, 이미 11시 다 된 넘 늦은 시간이라 문자만 보냈는데.. 원래 엄청 올빼미지만 결혼했다니깐 밤에 실례쟈나. 근데 전화 와서 통화하는데 왤케 미친듯이 그립고 눙물이 퐁퐁 나대는지 ㅡㅡ;;;; 나 왜 이럼??? 이러다가 아 내가 팔레스타인에서 가장 편하게, 집처럼 느끼는 데가 다르위시네구나..하고..ㅜㅜ 옛날에 진짜 연락도 안 하다가 갑자기 전화해서 오늘 거기서 자도 돼? 물어보고 걍 진짜 막... ㅡㅡ;;;; 막막해질 때마다 다짜고짜 전화함ㅋㅋㅋㅋ 밥해달라 그러고 ㅡㅡ;;;

 

애초 징그럽게 찝쩍거리는 놈팽이 덕에 알게 됐는데 나중엔 그 놈팽이에게 진심 감사했다. 다르위시를 소개시켜줬쟈나ㅜ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활동가니까, 대부분 넘치는 환대를 받지만 진짜ㅜㅜㅜㅜㅜㅜㅜㅜ 아 이미 팔에 있는데도 넘나 그립고 미안해 죽겠네 이제야 연락해서.. 다르위시네 동네 지나갈 때마다 집 찾을 수 있나 보곤 했는데.. 찾을 수 있다! 근처에 가면 알겠더라고

 

오늘 낮엔 칼릴(헤브론) 갔다가 대박 사건ㅋㅋㄱㄱㅋ A 만남 아놔 진촤 ㅋㅋㅋㅋ 언제 온 거여 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에 있는 줄 알았는데...-ㅁ- 페북에다 헤브론 언제 왔냐구 또 오면 연락하라구 댓글 남겼길래 예전처럼 자기 가족 방문하라는 건 줄 알고 ㅋㅋㅋㅋ 알았다고 하고 오늘 잠깐 간 거라서 당연 연락 안 했는데 ㅋㅋ 지난번엔 형 가게 있는 쪽으로 안 지나가서 일부러 들르진 않았고 오늘은 지나가면서 생각나서 인사해야지 하고 가게 쳐다보는데 왠 A 같이 생긴 사람이 앉아 있엌ㅋㅋ 보고도 걍 내가 못 만난 형젠가보다 겁나 닮았네, 하구 안면 있는 형한테 다가가서 인사하려는데 A 닮은 남자가 벌떡 일어남 봤더니 본인이얔ㅋㅋㅋㄱ  진짜 넘 황당하고 깜놀해서 팔 계속 때림;;;;  ㅏ 넘 좋다ㅜㅜ 팔레스타인 넘 좋아< 이스라엘 쪽에 오래 있다 와서 더 그런가... 넘나 좋은 것

 

암튼 존나 햄볶네연

 

아 글구ㅋㅋㅋㅋ 오늘 새라랑 떨어져서 자는 첫날인데 낮에 내내 같이 있다 저녁에 헤어졌는데 48분 동안 통화함 ㅡㅡ;;;; 뭐 뭐지ㅋㅋㅋㅋㅋㅋㄲㄱ

 

냐옹이한테 메세지 보내다 알게 됨 꼭 아빠같은 건 아닌데 아빠한테 느끼는 걸 느낌< 가족같은.. ㅋㅋ 평상시 1도 생각 안 나다가 막상 떠올리면 눈물 나고 고맙고 따뜻하고 ㅋㅋㅋㅋ 와우내 빼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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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꾸스, 팔레스타인 소년

나는 아직도 아랍어를 못 한다.

어찌된 일인지 한참 열심히 하다가, 오기 전엔 완전 손놓고 있었다. 매일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X일이면 배운 거 다 복습하고 갈 수 있어' 하고 매일 하루씩 줄어드는 디데이를 세며-_- 그 안에 이케이케 하면 다 할 수 있다고 계산하다 영원히 안 했다. 그래서 다시 아랍어 더듬더듬 몇 마디 건네고, 상대가 너 아랍어 할 수 있어? 하고 물으면 아니...; 라고 대답하는 발전 1도 없는 상태로 팔레스타인에 다시 온 것이다. 넘 아쉬웡...

 

팔레스타인에 몇 번 왔지만 이스라엘 쪽에는 이동을 위해서, 혹은 특정한 약속이 있어서가 아니면 거의 가본 적이 없었다. 이스라엘, 즉 48년 팔레스타인(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전후한 중동 전쟁으로 이스라엘이란 국가가 들어선 땅) 쪽 얘기는 다음에 자세히 적겠지만, 거기 있다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들어오니 역시 공기부터 다르다 ㅎ 국경을 넘는 순간 가슴이 따뜻해졌다.

 

오랫동안 그리던 친구를 만나 친구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시골길에 친구가 차를 세우고 '파꾸스'를 사주겠댄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듯이 도로변에 점점이 과일 행상들이 많았는데, 그 중 소년 몇 명의 행상 앞에 섰다. 아랍어로 친구가 뭐라고 얘기하는데 '남한에서 왔다'고 나에 대해 얘기하는 것만 들렸다 -ㅅ- 아마 남한에서 온 내 친구한테 파꾸스 맛을 보여주고 싶다는 내용이었을 거다. '남한'이라는 단어가 들린 순간 소년이 "아흘란 와 싸흘란(반갑다, 환영한다)" 해줬다. 후다닥 행상으로 돌아간  소년이 파꾸스란 걸 잔뜩 가져왔다. 가지고 있던 생수로 친구가 파꾸스를 씻더니 바로 먹어보란다. 딱 봐도 오인데 씹어보니 오이였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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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먹나 눈을 반짝거리며+_+ 쳐다보던 소년한테 아~ 이거 한국에도 있다니까 약간 실망한 표정이었다. 황급하게 한국 오이보다 맛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살짝 단 맛이 나고 연해서 오이보단 맛있는데 여튼 오이였다; 그리고 둘이 뭔 대화를 짧게 나누더니 인사하고 소년이 사라지고 차가 출발했다. 읭? 너 돈 안 냈는데? 하니까 한국에서 왔으니까 선물로 준 거라고 한다. 아놔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 갑자기 주책맞게 눈물이 막 났다. 타고 이동하는 내내 주책맞게 눈물이 나서 몰래 우느라 혼났네 아니 나는 고맙다는 말도 못 했는데 어버버 거리는데 차는 이미 저만치 가버렸고.. 아아...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야핑????!!!!!!!!" 존나 반겨주고 ㅋㅋ 넘 좋다 이스라엘에 있으면서 밥먹고 똥싸고 돈 쓰는 것도 죄책감 느끼고 불편했는데 완전 팔레스타인 너무 좋쟈나.. 물론 길거리 성추행 좀 당하다 보면 아오 썅!!! 지랄 발광을 떨겠지(나)만 아직 나중 일이길 (기원합니다) 어디 짱박혀서 아랍어 수업 받고 싶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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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지구 통과해서 티베리아스 가는 길

예루살렘에서 티베리아스로 가는 버스를 알아보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통과하는 루트(961번)를 찾았다. 예루살렘에서 서안지구 최대 불법 유대인 정착촌인 '말레 아두밈'을 지나, 오슬로 협정상 C지구로 분류돼 이스라엘 군정의 통치를 받는 요르단 계곡을 지나는 루트였다. 이전에 티베리아스에 가본 적이 없기도 하지만, 그냥 이렇게 평범한 버스가 서안지구를 통과할 거란 생각은 못 해봐서 엄청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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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에 맞닿은 유대인 정착촌 '말레 아두밈'까지 아마도 불법 정착민들만 사용할 수 있는 유대인 전용 도로를 타고 가는 것 같다. 열심히 사진 찍었는데,  사실 사진 봐선 알 수 있는 게 잘 없고.. 솔직히 아직도 차 타고 다니면서 이게 유대인이 불법 정착촌 짓고 사는 건지, 팔레스타인 마을인 건지 모를 때가 많다. 이럴 때 도움되는 게 UN OCHA에서 만든 서안지구 검문소, 불법 유대인 정착촌, 유대인 정착민 전용도로 등이 표기된 지도인데, 놀랍게도; 2014년 내가 방문했을 때 이후로 업데이트는 안 됐다. 암튼 이번에도 유용하게 사용할 거라 기대하고 싶은데 파일이 15메가나 돼서 열 때마다 로딩 시간 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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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자신은 저런 산이랄지 언덕이랄지 이런 걸 다 막무가내로 절단하고 그 사이로 유대인 전용 도로를 냈길래 찍은 건데.. 이건 개인적으로 넘 싫지만, 꼭 군사점령당국 아니어도 하는 짓거리겠지.. 

 

맨위 지도 아랫부분 출발지가 예루살렘이다. 위로 급격히 꺾어지는 데부터 요르단 계곡이랄 수 있다. 요르단 계곡은 가서 활동(이랄 것도 없는 뭔가지만 여튼)을 한 적이 있어서 익숙하다. 특히 이번 이스라엘 버스가 달린 대부분의 구간은, 무작정 세르비스(팔레스타인 미니버스)에서 내려 막막할 때 만난 친구 파디랑 처음 만나서, 또 나중에 같이 제리코 가며 달려본 데라 익숙했다. 그런데 아무리 이스라엘 군사점령당하고 있다지만 휴게소도 있는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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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 안은 놓치고 표지판만 찍었다. 이스라엘 버스를 타고 서안지구를 통과하는 기분도 이상했는데 휴게소라니... 내리지도 않았지만 기분 나빴다. 글쎄.. 중간에 군사기지도 들러서 휴가 나가는 이스라엘 군인들을 태우기도 했지만. 그리고 이 군인들은 두말할 것 없이 장총 들고 버스에 올라탔고. 이스라엘 거리 아무데서나 마주치는 이 군인들 때문만이 아니라, 몇 번을 다녔어도 몰랐던 점령의 새로운 면을 또 보는 게, 항상 새롭다 정말.. 새롭게 기분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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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네들 다니는 길은 아무 문제 없이 아주 편하게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거다. 일반 외국인 여행자로서도 서안지구에서 교통 때문에 발이 묶여 동동 댄 일이 몇 번 있었는데, 서안지구 주민들은 말도 안 되게 못 다니게 통제하면서 자기네는 편하게 다니는 게, 원래 군사점령이란 게 그런 거라곤 해도, 미친 것 같다. 일반 여행자라도 예루살렘이나 제닌을 통해 서안지구 들어가고 나갈 때 귀찮게 검문하고, 짐 뒤지는데, 자기네가 통과하는 길은 아무 문제 없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서안지구 지역 어딘가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구글 지도 검색하면 안 나오는데, 서안지구 내의 유대인 불법 정착촌으로 검색하면 버스가 제대로 나오곤 한다. 쿠프리 깟둠 같은 마을은, 주요 도로로 통하는 길이 10년 가까이 폐쇄돼서, 열어달라고 매주 집회를 하는데, 그리고 2014년에 집회 참여했을 때도 무슨 이번에 평화(!) 집회 하면 열어준다고 이스라엘 측이 협상 제시해서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 집회도 했었는데 아직도 막혀 있다. 10분 거리를 40분씩 돌아가야 하는 시간과 비용을 왜 감수해야 하는 걸까? 군사점령이라고 했을 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폭력에 더해, 이렇게 별로 알려지지도 못하는 촘촘한 고통들의 총합은 얼마나 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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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지 같은 루트를 따라갔지만 도착한 갈릴리해는 정말 아름다웠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 정리되면 나중에 꼭 올려야지 구글이 모르는 길로 막 올라가서 ㅋㅋㅋ 본 갈릴리해 정말 멋있었다. 종교가 없어도 아 청년예수가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한 생각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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