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커스 4월호에 기고한 글
“텔아비브! 봉쇄 이후, 그리고 백신 이후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한 트위터 유저가 텔아비브 노천 레스토랑 영상을 올리며 이스라엘의 현재를 이렇게 묘사했다. 영상 속 사람들은 마스크 없이 웃고 노래하며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는 이 나라의 일원인 게 기쁘다는 포스트가 줄을 잇는다. 서구 언론도 발맞춰 찬양가를 불렀다. “이스라엘은 코로나19에 맞선 백신 접종에서 어떻게 세계 리더가 되었는가”(뉴욕타임즈), “백신 접종의 기적이 이스라엘을 그 뿌리로 데려가다”(블룸버그). 봉쇄 이후의 삶에 대한 “기적”의 찬가가 울려퍼지는 동안 텔아비브에서 불과 70킬로미터 떨어진 가자지구는 15년간 이스라엘에 육해공을 봉쇄당한 채 백신 접근권도 부정당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성공적인” 백신 접종
2020년 12월 19일, 이스라엘이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래 전 세계가 이스라엘을 주목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3월 현재 인구의 절반이 2차 접종을 마쳤다. 2차 접종을 마치면 ‘백신 증명서(그린 패스)’가 발급돼 체육시설과 문화 시설 등에 입장할 수 있다. 대규모 스포츠 및 문화 행사의 집합 인원도 실내 3천, 실외 5천까지 늘어나는 등 봉쇄 조치는 거의 완화됐고 , 여객기 운항 제한도 모두 풀렸다. 신규 확진환자 수의 하락세도 뚜렷하다. 과연 네타냐후 총리의 말처럼 그들은 “일상을 되찾”은 것 같다.
이스라엘 정부는 빠른 백신 수급을 위해 다국적 제약회사 ‘화이자’에 다른 국가보다 최소 50% 더 비싼 가격을 지불했고, 특히 민감 정보를 포함한 백신 접종과 관련된 방대한 양의 개인정보를 넘기는 계약을 맺었다. 이스라엘 정부가 무리하게 백신 접종을 추진한 배경엔 3월 총선이 있다. 2년 새 무려 네 번째 치르는 총선에서 다수표를 획득하기 위한 승부수로 백신 접종을 이용한 것이다. 지난 세 차례 총선에서 점령지인 시리아 골란고원과 팔레스타인의 영토병합을 주요 승부수로 사용했던 네타냐후 총리와 집권여당은 이번에도 연립정부를 구성할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전과 같이 극우 정당들을 연정 구상에 포함시켰다.(워커스 53호 “이스라엘 총선, 강화되는 인종주의와 헤브론” 참고)
어찌됐건 이스라엘인이 일상을 회복하는 같은 기간 동안 서안지구/가자지구 주민은 점령당국 이스라엘에 백신 접근권을 철저히 차단당했다. 이들의 숫자는 우연히도 2차 접종을 완료한 이스라엘 인구 500만과 일치한다.
코로나 아파르트헤이트
이스라엘의 모든 정책이 그렇듯 “성공적인” 백신 정책의 혜택도 집단 별로 차등적으로 주어졌다. 애초 1948년 팔레스타인 원주민을 인종청소하며 팔레스타인 땅 위에 건국된 이스라엘은 유럽 등지에서 이주한 유대인을 1등 시민으로, 미처 다 내쫓지 못한 원주민을 2등 시민으로 처우하는 차별적 법제를 수립한 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1967년 이스라엘은 남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군사점령했고, 그 중 동예루살렘은 1980년 자국 영토로 불법적으로 병합했다.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주민 대다수는 이스라엘의 시민권 없이 영주권만 가지고 살고 있다. 1등 시민들에 더해 팔레스타인인 두 집단, 즉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이스라엘 인구로 간주된 팔레스타인인 시민권자들과 동예루살렘의 영주권자들까지가 백신 접종의 대상자였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백신을 제공하지 않는 한편, 심지어 해외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반입되는 백신의 반입을 지연시켰다. 또 2월 중 이스라엘 보건부 장관은 이스라엘 의사들에게 미등록 체류자들에게 백신을 접종하되 팔레스타인인에게는 접종하지 말라는 내용의 공지를 내려보냈다.
UN 등 국제사회의 요구에 이스라엘은 1월 말,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5천 회분의 의료인 용 ‘모더나’ 백신을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월 중 2천 회분을 전달한 뒤 후속 공급은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3월 초부터는 이스라엘과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에 출입하는 팔레스타인 노동자에게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이를 자국에 의무 없는 인도주의적 정책이라며 뽐내고 있지만 뒤에서 살펴볼 바 피점령지 주민의 건강권을 보장하는 것은 국제법상 점령국의 의무에 해당한다. 또한 팔레스타인 노동자 중 자국민과 생활 반경이 겹치는 제한된 인원에만 백신을 허락하겠다는 것은 기실 자국민만을 보호하려는 정책에 불과하다.
절망의 최저선을 갱신하는 가자지구
이스라엘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이유로 2020년 3월 초부터 가자지구 국경 봉쇄 조치를 강화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전 세계 정부들이 주기적으로 봉쇄 조치를 단행하고 있지만 가자지구 봉쇄는 그와 전혀 다르다. 해제가 없기 때문이다. 2007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육해공을 완전히 봉쇄했다. 이스라엘이 ‘테러 단체’로 지정한 팔레스타인 정당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했다는 이유였다. 이 ‘테러 단체’를 지지한 가자 주민에 대한 집단 처벌의 일환으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봉쇄했다. 봉쇄 후엔 대규모 학살을 수차례 자행하며 병원과 UN 학교, 발전소 등을 폭격했다.
2020년 8월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유일한 발전소에 연료 공급을 끊었다. 이로 인해 가자지구에는 3주간 전기가 하루 4~6시간 가량 비연속적으로 공급됐다. 이 기간 중 가자지구에서 처음으로 감염경로를 알 수 없는 코로나 확진환자들이 생겨났다. 확진환자 4인은 모두 한 가족이었다. 발전소 가동이 멈추자 상하수도 시설 역시 제대로 동작하지 못해 위생 문제는 악화됐다. 이는 8월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이스라엘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연료 공급을 중단해 왔다.
병원 폭격과 발전소 폭격, 의료 물자 반입 제한 정책으로 가자지구의 의료 체계는 붕괴되었다. 이에 더해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의 비폭력 집회에서 구급대 조끼를 입은 의료진들을 조준 살상했다. 이 중엔 가슴에 실탄을 맞고 살해당한 이들도 있다.
봉쇄 후 가자지구의 경제는 말 그대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 업무 조정국( UNOCHA)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실업률은 47%, 특히 청년 실업률은 64%에 달하고 가자 주민의 62%인 101만 명이 식량 부족을 겪고 있다. 아직 통계로 나오지 않았지만 코로나 이후 가자 주민들이 증언하는 삶은 더욱 악화됐다. 빈곤한 이들이 자가격리로 집에 머무는 동안 경제적 혹은 건강과 관련된 지원은 거의 없었고 자선단체에 음식을 의지하거나 빚을 내 삶을 이어가야 했다. 대다수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시스템에서 가족 중 한 명만 확진환자가 발생해도 모두 일을 나갈 수 없어 생계에 치명적이었다.
집에서 체류하는 기간이 늘어나는 데 비례해 여성과 아동에 대한 가부장의 가정폭력도 증가했다. 아동인권보호단체 ‘떼르데좀’이 2020년 3월부터 10월까지 가자지구에서 실시한 인터뷰에 응한 아동의 67.7%가 가정폭력을 경험했다. 젠더폭력 상담서비스를 제공하는 팔레스타인 단체 SAWA에 따르면 2020년 가자지구의 젊은 여성들의 신고 전화만 2천 건에 달했다. 또다른 심리상담 그룹은 6명의 상담가가 각각 매일 약 20통의 상담 전화를 받고 있다고 한다. 상담 전화는 대부분 남편, 아버지, 남자 형제가 가한 신체적 혹은 언어적 폭력에 대한 것들이다. 하지만 격리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여성과 아동 보호 기관들은 필요한 보호를 충분히 제공할 수 없었다.
의료 아파르트헤이트 : 누구의 책임인가?
이스라엘의 군사점령 하에 있는 팔레스타인 전역을 드나드는 모든 물자는 이스라엘이 통제한다. 즉 이스라엘의 허가 없이는 의료 물품을 포함한 어떤 물품의 반입/반출도 불가능하다. 백신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국경 통제 강화로 작년 연초에 비해 가자-이스라엘 사이 ‘에레즈 국경검문소’의 물자 및 사람 통행량은 6%로 줄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오슬로 잠정 협정’을 근거로 자국에는 팔레스타인 주민을 보호할 의무가 없다고 부정하고 있다.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설립 근거가 된 오슬로 협정에 따라 주민의 건강권을 보호할 의무가 자치정부로 이관되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보건부 장관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내용이 “오슬로 협정에 크고 명확하게” 규정돼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오슬로 협정으로 인해 군사점령 체제가 종식된 것은 아니다. ‘잠정’이 의미하듯 이 협정은 미래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세우기 위한 이행 절차로써 과도적으로 도입된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협정에서 부과된 의무 사항을 거의 이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협정을 적극적으로 위반해 왔다. 동예루살렘, 서안지구, 가자지구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군사점령 하에 있으며, 심지어 영토병합되거나 병합의 위협을 받고 있다. 오슬로 협정에 근거하더라도 팬데믹 상황에서 자치정부를 지원할 의무가 있다.
오슬로 협정의 준수 여부를 떠나 이스라엘은 자국이 가입당사국이기도 한 제4차 제네바 협약에 따라 점령국으로서 피점령지 주민의 건강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56조에 따라 “점령국은 이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하여 국가 및 현지당국의 협력하에 있어서의 의료상 및 병원의 시설과 용역, 그리고 공중보건 및 위생을 확보하고 또 유지할 의무를 진다. 점령국은 특히 전염병 및 유행병의 만연을 방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예방적 조치를 채택하여 이를 실시하여야 한다”.
한 집단은 백신을 접종 받을 특권을 누리고, 다른 집단은 접종을 거부당하거나 후순위로 밀리며, 의료진에게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 것인지 결정하도록 강요하는 체제는 의료 아파르트헤이트다. 팔레스타인에 보낸 2천 회분의 백신이 마치 자선행위인 양 자랑하는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 기여한답시고 백신 여분을 과테말라와 온두라스에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두 나라는 2018년 미국이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라며 국제법을 어기면서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했을 때 바로 그 뒤를 좇아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긴 나라들이다.
팔레스타인은 자체적으로 백신을 수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월 스푸트니크V 백신 1만 회분을 들여온 뒤 아랍에미리트 연합국의 기증으로 2월 가자지구에는 스푸트니크V 2만 회분이, 3월에는 4만 회분이 추가 반입됐다. 3월 17일에는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화이자 백신 37,440회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24,000회분이 반입됐다. 근시일내 중국의 지원으로 ‘시노팜’ 5만 회분이 들어올 예정이다.
3월 24일 현재 동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전역의 코로나 확진환자 수는 256,265명, 사망자수는 2,72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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