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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의 만남을 절제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차단하고 있는 중이다.
걸려오는 전화도, 문자도
모두 다 씹고 있다..
싸가지 없이...
--
누군가는 애써 수십번도 넘게 전화를 걸어주고..
누군가는 애써 모른척 해준다.
종일 십 수 통의 전화가 걸려올 땐
어쩔 줄 몰라 전화기를 꺼놓기도 한다.
--
그리고
보고싶었던
옛 인연들을 찾아다니고 있다.
언제 한 번
살갑게 안부 전화 한 번 없던
싸가지 없는 나를
참 반갑게 반겨준다.
--
앓고 있다.
나아지면,
나아지면,
누군가의 손전화를
스스럼 없이 울릴 날이 오겠지..
좀 봐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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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체성이 자본을 부정한다.
운동에 있어서의 기본적 명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자본주의에 대한 불복종, 반차별, 보편적 삶, 자발적 가난, 직접행동...".
운동 하나로서는 애매하고, 모호하고, 구체적이지 않은 이 명제들을,
장애인운동은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장애인의 삶 자체로 어느정도의 구체적 방향성을 제시받고 있다고 생각된다.
1960~70년대, 푸른잔디회의 “우리의 신체성(身體性) 자체가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있다.” 처럼..
--
2. 아는 사람은 다 인용해 먹는 "내부적 연대자"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비장애인 활동가들은, 자신의 운동을 설명하기 보다는 그의 말을 빌어 "내부적 연대자"라 정의하는 것을 보다 편해하고, 명쾌해한다.
어쩌면, 내부적 연대자라는 말은 관계나 입장, 처지의 동일성 등은 포함하지 못한채, 일정한 간극, 관계에 대한 규정 일지도 모르는데..
부정하고 싶지만, 처지의 다름에서 오는 차이는 좁힐 수 없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끝끝내, 누군가들의 타인으로 머물수 밖에 없는.. 장애인운동의 비장애인의 입장은 그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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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타인의 삶
지향해야 할 가치, 실천해야 할 운동으로서 장애인운동은 갈등도, 의심도, 의문도 필요 없었다. 적어도 장애인의 삶이 타인의 삶이었을 땐 그랬다.
장애인의 삶을 "타인의 삶"이라고 전제했을 때, 장애인운동은 비장애인 나에게 있어 아주 쉽고, 명쾌하다..
그러나 타인의 삶이 나의 삶에 포개어지는 순간, 간극은 사실로 다가오고, 명쾌함 없는 고민을 던져준다..
--
4. 위선
장애인운동의 비장애인인 자신을 그는 내부적 연대자라, 그녀는 먹물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연대는 깨질 수 있고, 먹물은 고체와 액체를 떼어내면 그만이다.
장애인운동, 장애인집단의 엇나간 당사자주의, 집단적 이기주의, 역차별.. 비난했던 그 앞에서 더이상 다가설 수 없는 한계에 대한 무기력감을 느끼며..
온갖 꽃으로 장식된 나의 위선을 본다.. |
요즘은
수유리, 괄괄한 그녀의 집에서 머물고 있다.
그녀, 열쇠를 준 다음 날,
목디스크로 병원에 입원해버렸다..
"잘 먹고 잘 살고 있어라.."고 말하고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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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자던 그 날,
떨어지는 어둠과, 빗방울소리에
몇번을 깨어났더랬지..
어둠에 거둬내지 못해,
소리를 닫아내지 못해,
가위에 눌린듯
힘겹게 누워있는데
네모난 그것이 손에 잡히고, 쿡 누르니
네모난 빛이 쏟아진다..
괴롭히던
어둠이 열리고,
소리는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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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 한영애
알고있지 꽃들은 따뜻한 오월이면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있지 철새들은 가을하늘 때가 되면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가는 곳 모르면서 그저 달리고만 있었던 거야
지고지순했던 우리네 마음이 언제부터 진실을 외면해 왔었는지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 처럼 조율 한 번 해주세요..
정다웠던 시냇물이 검게 검게 바다로 가고 드높았던 파란하늘
뿌옇게 보이질 않으니 마지막 가구었던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끝이 나는건 아닌지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 처럼 조율 한 번 해주세요..
미움이 사랑으로 분노는 용서로 고립은 위로로
충동이 인내로 모두 함께 손 잡는다면
서성대는 외로운 그림자들 편안한 마음으로 서로 나눌 수 있을텐데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 처럼 조율 한 번 해주세요..
우..... 내가 믿고 있는 건 이 땅과 하늘과 어린 아이들
내일 그들이 열린 가슴으로 사랑의 의미를 실천할 수 있도록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 처럼 조율 한 번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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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절한 목소리가
가슴을 토닥여 주어..
한 곡을 모두 듣고서
다시 어둠과 소리를 불러내어..
꽤 오랜 시간, 잠이 들었더랬다.
그리고 며칠동안 귓가에 울려 찾아듣는다.
좋은 노래다..
운동은 정의에 대한 신념.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행동.
운동의 힘은 죽음도 불사 않는다는 동지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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짖밟히고 뭉개지는 것이
처음엔 피눈물 섞인 분노를 일으켜도,
이것들이 반복되면
분노의 새파란 칼날은 어느새 몽둥이처럼 무뎌진다.
--
얼마전 맨바닥에서 잠들 동료들을 버려두고
자리를 떠나는 동료들을 봤다.
나는 그들에게 피치못할 사정이 있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운동이 직업, 직업이 운동..
퇴근할 시간이 되어 자리를 떠난다는 그의 말이..
가슴을 내리 꽂는다.
--
생활과 일의 분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때론 커다란 고립감을 준다..
나같은 새내기가 무얼 알겠냐마는..
혹 내가 오랜시간 이 일상의 반복들이
수년간 지속되면
지겨워지고, 단조롭다 느껴질 때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운동은 그런게 아니다.
아무곳에나 동료들을 버리고,
내동댕이 치고 떠나는 게 아니다.
시간이 흘러도, 몽둥이처럼 분노가 무뎌져도..
그래서는 안된다..
--
그들이 버리고 떠난 자리에 사람들은 남아서
맨 바닥 몸을 부비고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 시간 그네들은 알콜에 취해
미안함 섞인 맥주 한 잔 들이키고 있었을테지..
--
당신이 맨바닦에서 잠들때,,
다른 동료들은 어찌할까??
--
운동의 감수성..
그 저리고 저린 그 아픔을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의 운동은 더이상 운동이 아니다.
그건 운동으로 포장한 사회에 대한 폭력이자
함께하는 동료, 서로의 믿음을 겨냥한 살인이다.
--
나는 두렵다.
훗날 내가
찬바닥에서 잠들 동료들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나무 막대기 같은 심지를 갖게될까하여..
내가 행하는 정당한 행위가
기만적인 폭력으로 변질될까하여..
운동, 그 만성화에로의 무뎌짐에 대한 거부와. 두려움..
종로구청 앞 노숙농성.. 91일째..
주변에 워낙 써글 건물들이 많아서인지
큰 집회때마다 종로구청 주변으로 몰려드는
시꺼먼 전경들의 포위망이 익숙하다.
--
10/22 민중 총궐기대회가 있었다.
전경들은 그노무 대사관 주변 통제하느라 종로구청 앞은 또
그녀석들로 아수라장이다.
차들도 통제되고..
우리는 농성장을 뜨지 못하고
우리 그네들의 커다란 목소리에 마음만 실어 보내고 있었는데..
--
아니.. 그때 종로구청에서 아이들이 쏟아진다.
선생(정말 "님"자 붙이고 싶지 않다..)의 통솔하에
아이들은 줄을 맞춰 재잘거리며 길거리에 섰다.
순간 시꺼먼 그녀석들을 보고 당황한 아이들.
"선생님 경찰들이 왜 이렇게 많아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선생 왈
"나쁜 사람들 잡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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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얼굴로 눈길을 돌리니..
30대 초반의 남성의 얼굴이 보인다.
순간 그 놈시키의 뒷통수를 확 갈겨주고 싶은 걸 꾹 참았다.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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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생이 조금만 생각하고 말을 뱉었다면,
아니 그 상황에 대해 아이들에게 조금만 객관적 설명을 덧붙였더라면..
아이들은 생각할 것이다.
"아.. 경찰이 나쁜놈들 잡으러 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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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시간.
그 나이 때의 나의 모습, 청소년 때의 나의 모습, 대학 시절의 나의 모습이 흘러간다.
그리고 흠칫...
비슷한 교육을 받은 나.
바른생활, 도덕, 윤리 시간..
난 늘 국가주의와 애국을 세뇌당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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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경찰들의 얼굴과 함께..
'가장 아름다운 질서 "폴리스 라인"'
이라는 닭장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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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참 서글퍼졌다.
오늘 제주에서 다쳐 피흘리는 그네들의 모습을 보니 서글퍼졌다.
"김대중 가만히 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라는 제목의 반햇볕정책론,
무심코 나에게 던져진 조선일보 사설을 보니 더 서글퍼졌다.
나라 말아먹으려 작정했다며
외국기업 몰아내려 한다 혀 차는
기차 옆자리의 아저씨의 화풀이 이야기에 또 서글퍼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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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 름달이는 눈 앞이 깜깜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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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을 하는 이들과의 만남에서
나 스스로의 낮은 "인권감수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느낀다.
나의 세뇌당한 뇌의 한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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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진보적 성향을 갖기는 어렵다.
그냥 성향이고 이념인 것이다.
문제는 그 고유의 영역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권력이라는 힘 아래에 두려하고
이에 국가의 공권력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를 교육시키고,
몇사람의 이익을 위해
자본까지 뒷받쳐줘가며 활용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 교육의 희생양인 나를
그 아이들을 빌어 똑똑히 확인한데서 오는 분노.
그리고 굴욕감..



이웃집 토토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듬직하고 편안한..
조금은 신비롭고 신기한..
다 알지 못해도 미더운..
이웃집 토토로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바보같은 웃음 지어줄 수 있는..
갑자기 퍽하고 나타나
뽕하고 사라지는
이런 가슴 휑한날 퍽, 뽕 왔다 사라지는..
푹신하고 따스한..
조금은 신비롭고 신기한..
우산든 중간형 고양이 고슴도치..
그 외계적 생물이..
차가운 빗방울 스치는 이런 새벽
문득 만나고 싶어졌다..
슝~~~~~~~~쿵~~~~~~~~


"밑바닥에서" 뮤지컬 한 편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긴" 영화 한 편
한 일 년치 문화생활을 추석맞이로 모다 한 것 같다.
결론을 말하자면
영화와 연극,,
모두 별 내용은 없었다.
지극히 감성을 자극하는 그들의 눈물 한 방울에
각각 뺨 한 번 적셔주고 나의 감상을 끝낸다.
남은건 그 내용보다는
그들이 미친듯 몰입하는 듯 보여지기를 바라는
거시기다(아마도 주제가 되겠지..).
사랑에 미쳐버리고..
증오에 미쳐버리고..
질투에 미쳐버리는..
그 강렬한 감정들이 왜 지금 나에게는 부재한 것인가?
그들이 밑바닥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분명 어딘가 닮긴했는데..
약간의 염도를 가지고 있는 나의 눈물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생각하며 자리를 털어냈다.
(물론 그것들이 재미없었다?! 는 결코 아니다.
여전히 삶의 활력소, 작은 일탈들..)
그냥 가련하다고 생각해봤다.
왜 난 그 어떠한 감정에도 솔직하지도
따라서 복종하지 못하여
때때로 노출되는 순수한 감정에, 상황에 미쳐보지 못하는가...에...
그들이 밑바닥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나에게는 없어서?
미친듯 증오에 젖어 소리치는 주인공의 아픔이 나에게는 없어서?
일말 사랑이라고 불리우는 따뜻한 감정이 나에게 없어서?
아픔. 절망.증오.사랑.미움...
언젠가부터 그러한 감정들(지극히 개인적이고 인간적인)이
마치 나에게는 없는 것인양...
기계적으로 알지 못하는 시간, 장소에 내쳐버린것 같다는..
너무나 지쳤노라, 그래서 허덕이고 있는나..
그러나 거기에 도달하기까지의 나의 감정들을..
구체적이고 가시적으로 아우성치지 못하게 하고 있는건 아닌지..
개인의 감정들을 스스로 짖밟고 있는건 아닌가에 대한
인간적 동정심을 스스로에게 가져보며.
약간의 염도섞인 물방울, 름달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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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에서,, 음악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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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 돌아와..^^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