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인의 정체성] (중)안에서 본 대구·경북, 밖에서 본 대구·경북인이용제한  개쌍도 사람 연구 

2007/07/10 14:24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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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인의 정체성] (중)안에서 본 대구·경북, 밖에서 본 대구·경북인 
"나와 우리반 보지 말고 '낯선 사람'도 인정하자"
 
대구·경북인 하면 보수성과 배타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의리와 명분을 중요시한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대구·경북인의 이 같은 기질 형성에는 영남사람의 양반문화와 국가발전을 주도했던 현대사의 경험 등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문제는 오늘날 대구·경북인이 지닌 특유의 집단주의와 연고주의, 권위주의 의식이 개방과 혁신으로 세계화를 추구해야 할 21세기 지역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대구·경북인을 바라보는 안팎의 시선을 통해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성찰하고 보다 나은 미래의 모습을 그려본다.

◇이진우 계명대 총장

"우리가 남이가!"

이 말처럼 대구 사람의 기질을 잘 말해주는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말은 회식이나 만찬과 같은 모임에서 종종 건배의 구호로 쓰이기도 하는데, "우리가"라는 선창에 따라 "남이가"라고 큰 소리로 화답할 때면 모든 사람이 어떤 차이와 이질감도 없이 화합하는 화끈한 느낌을 갖는다.

그렇지만 한 지역의 기질을 규정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을 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하다. 대구사람들은 스스로를 '과묵하고' '의리 있고' '화끈하다'고 생각한다. 안에서 본 대구사람의 문화적 정체성이 그렇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적 특성 때문에 비교적 폐쇄적인 경향을 보이는 대구사람들은 전통적 가치를 지키고, 연대감이 강하고,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

바깥에서 본 대구 사람의 모습도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단지 사회적·문화적 유동성이 큰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조금 심각해진다. 과묵함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음흉함으로, 의리는 지연과 학연에 기초한 폐쇄적 연고주의로, 화끈함은 정서적 비합리성으로 인식된다.

현대의 특성이 '다원성'이라면, 대구의 기질도 생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과묵함보다는 능동적 자기표현, 학연의 의리보다는 공동가치에 대한 충성, 화끈함보다는 합리적인 대화의 능력이 조금 더 성숙해야 하지 않을까? 대구가 산에 둘러싸여 있을 뿐만 아니라 본래 '큰 언덕'이라면, 대구사람의 화끈함은 모든 사람이 기댈 수 있는 포용의 열린 마음이어야 한다. 열린 대구의 구호가 이렇게 변하길 기대해본다. "남이라도 우리다!"

◇이상점 전 광주YMCA 사무총장

대구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냈다. 37년간 대구에서 살았고, 지금도 노모와 형제 그리고 일가친척과 친구들이 대구에 살고 있다. 나는 지금 광주에서 4년째 살고 있다. 그렇게 대구를 떠나 살면서 대구와 대구사람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고 할까.

시민단체 실무책임자를 공채한 광주YMCA가 여러 후보 중 대구사람인 나를 적임자로 선택했고, 그후로도 경상도 사람이라고 하여 차별을 받아 본적이 없다. 오히려 더 따뜻이 대해 주었다. 남도의 먹을거리와 문화를 향유하면서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대구와 광주는 닮은 점이 많다. 학연·혈연·지연 등 크고 작은 연고주의 전통이 강하며, 수도권이나 공업도시에 비해 인구이동이 매우 적은 내륙 도시·소비유통도시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또한 교육도시로서 선비정신이 배어 있는 것도 그렇다.

4년간 살아오면서 본 광주는 타지역은 물론 북한과 아시아를 포함한 제3세계의 고난과 아픔에도 응답하고 고통을 나누는 도시였다. 지구촌의 아픔과 기쁨을 나의 것으로 체화시킬 줄 아는 원로들이 많았다.

이제 대구와 대구사람들도 다시 태어나야 한다. 깨어나서 이웃과 역사의 지평을 보아야 한다. 막연히 부화뇌동하여 타지역을 음해하거나 특정집단을 무조건 추종하는 무비판과 무소신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기득권의 불씨를 되살려 자신과 자기 집단의 이익과 안일부터 지키려는 연고주의의 마술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어 세상의 흐름을 외면하고 몽니를 부리며 살아가려는 수구보수의 오명을 걷어내야 한다. ‘잃어버린 지난 10년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식의 패권의식에 사로잡히면 다른 지역으로부터 소외되어 섬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대구사람, 대구출신이라는게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스스로를 열자. 남을 인정하고 자신을 되돌아 볼 줄 아는 너그러움을 가져야 한다.

◇길홍근 국무조정실 심의관

너무나 두꺼운 자기 껍질 안에서만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습니다.”

길홍근(46·사진) 국무조정실 규제개혁 2심의관은 대구·경북인(人)의 문화에 대해 이와 같이 단호한 견해를 밝혔다.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성격이 너무 강하다.”는, 늘 들어오던 얘기가 그의 입에서 다시 나왔다.

대구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1980년 서울대 입학과 함께 줄곧 서울에서 생활해 온 길 심의관은 자신도 처음엔 이와 다르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다른 시각이 존재하는 곳에서의 30년 가까운 생활 끝에 ‘항상 내가 옳다’는, 자기 고집을 넘어 아집을 부리는 대구·경북인의 문화가 보이더라는 얘기다.

“시대상황과 가치관이 변했습니다. 시장민주주의가 들어선 지금 우리의 생존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유연한 사고’입니다.” 그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생각하는지를 보고 자기의 가치관과 중화시켜야 하는데 이를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길 심의관은 “대구의 공직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LG필립스 공장을 유치한 파주시나 송도국제자유도시를 유치한 인천시는 그만큼 적극적으로 노력했기 때문에 빛나는 결과를 따냈다는 것이 길 심의관의 분석인 것이다.

“새 시장 취임 이후 조금 나아지는 듯하지만 한두 사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전체를 바꾸지 않는 한 진정한 발전이 없음을 깨닫고 진취적인 사고와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그는 “먼저 세상이 변한 상황을 인지하고 생각(Mind)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정인 뮤지컬 음악감독

"타지역에 비해 학연·지연에 대한 애착이 강해 외지인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기 식구(그룹)만 열심히 챙기지 타인에 대한 배려는 부족합니다." 창작 뮤지컬 '만화방 미숙이'와 '마술사 죠니'의 음악 감독 윤정인(32) 씨.

파란눈을 가진 사람도 아닌데 그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대구예술계의 이방인이었다. 대구예술대와 영남대 대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한 그에게 대구는 예술적 터전이었지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은 공간으로 계속 남아 있었다.

제주도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그는 1994년 대학 진학을 위해 대구에 온 뒤 지금까지 대구 예술인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남은 세월 동안 심한 마음 고생을 하며 지내온 것이다. 2003년 창작뮤지컬 극단 '예울'을 만드는 등 뮤지컬 제작에 잇따라 나섰지만 주위의 시선은 싸늘했다.

"제가 대본 쓰고 연출까지 맡아 뮤지컬을 만든다고 하니,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대구시에 지원금도 신청했지만 번번히 미끌어졌습니다." 그는 대구 출신이었다면 한 번쯤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윤 씨를 보는 지역 예술계의 시선이 달라진 시기는 지난해 대구시립극단 창작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음악을 맡으면서부터. 당시 이상원 대구시립극단 감독과 맺은 인연으로 그는 '만화방 미숙이' 등의 음악 감독을 맡으며 지역 예술계 한 멤버로 자리잡았다.

"색깔이 뚜렷하고 추진력이 있으며 한강 이남 최고의 문화도시라는 자긍심이 대구 예술계의 장점입니다. 하지만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대구의 자긍심이 자만심으로 변할 경우, 우물안 개구리가 될 것입니다." 그가 던지는 뼈있는 말이다.

◇정수희 가정주부

“지금이야 대구사람 다됐죠. 하지만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어요.”

주부 정수희(53·대구 수성구 만촌동) 씨는 서울 토박이에다 6년간 미국에서 생활했다. 1990년, 남편 직장 때문에 연고가 전혀 없는 대구로 이사온 후 줄곧 ‘대구 토박이’로 살아가고 있다.

“처음엔 적응하느라 고생 많이 했어요. 당시만 해도 주부들이 화투를 많이 치더라고요. 사람 사귀려고 못 치는 화투도 배워야 했죠.” 사람들은 ‘서울 깎쟁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봤다. 하지만 일단 마음의 문을 열면 누구보다 끈끈해지는 것이 대구사람.

“여기는 세 사람만 모여도 계를 만들자고 하대요? 인연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강한 것 같아요.” 하지만 대구 여성들이 미국은 물론 서울 여성들에 비해서 겉치레가 심하다고 꼬집었다. “강남 엄마들도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만 입고다니는 게 자연스러운데, 유독 대구는 옷에 신경을 많이 써요. 특히 학부모 모임에 나가보면 고급 브랜드 옷 일색이어서, 청바지 차림은 꿈도 못꿔요.”

또 시장이든 백화점이든 상인들이 물건을 팔면서도 소비자에게 큰소리 치는게 이상했다고 한다. 즉 서비스 정신이 부족하다는 것. 이제 정 씨는 서울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경상도 며느리를 볼 것”이라고 공언한다. 이유는 확대된 가족 개념이 좋아서이다.

“서울에서 가족의 울타리는 핵가족에 그치지만 대구는 조부모는 물론 사촌들까지 가족이라 생각해요. 나이 들수록 그 끈끈함이 너무 좋아요.” 정 씨 가족은 앞으로도 대구를 고향으로 삼을 계획이다. “우리는 대구가 좋아요. 서울 사람들은 너무 바빠요. 대구는 서울보다 누릴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은 것 같아 은퇴 후에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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