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디트로이트와 스톡튼
미국 미시간州 디트로이트에서도 물 사유화 반대 투쟁이 벌어졌다. 2002년 여름, 도시 곳곳 빈민층에 대한 단수 조치가 내려졌다. 요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였으며, 상수도 벨브를 아예 시멘트로 발라버렸다. 이유는 초국적 물기업 테임즈워터 출신인 디트로이트 시장이 시 상수도를 기업에 위탁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 요금 현실화(비용 회수)와 요금 미납에 대한 철저한 단속을 시행한 것이다. 미시간복지권기구(MWRO)는 복지에 의존해야 하는 빈민들로 구성된 단체인데, 이 단체 여성들이 디트로이트 전체를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시장실 점거 농성 등 투쟁을 전개하였다.
캘리포니아州 스톡튼에서도 여성들이 물 사유화를 저지하는 주체로 나섰다. 2003년 스톡튼 시는 테임즈워터에 상수도를 위탁하려 하자, 스톡튼시민연합, 환경단체인 시에라클럽, 여성유권자동맹이 스톡튼 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승소했다.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주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칠 위탁계약이 충분한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시는 위탁계약을 전면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주민들은 한발 더 나아가 500만 달러 이상 되는 공공시설 관련 모든 위탁 계약은 주민투표를 거쳐야 한다는 새로운 조례까지 통과시켰다.
스톡튼에서의 시위 :"공공의 물을 지키자"
우루과이 말도나도
2005년 스페인계 아구아델빌바오와 수에즈의 자회사가 각각 말도나도와 인근 해안도시의 상수도를 인수받았다. 애초에 상수도가 잘 되어 있던 것은 아니다. 주민들은 시 정부가 여러 군데 세운 급수탑을 통해 물을 공급받고 있었는데, 그래도 수도요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말도나도 시는 현대식 수도를 보급한다는 미명 하에 그나마 있던 급수탑을 없애고, 사기업에 의뢰하여 상수도를 건설하여 운영하도록 했다. 무상 공급되던 물이 유료화됐으며, 높은 요금으로 부유층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주로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던 마을위원회가 나섰다. 사기업의 상수도를 거부하면서 없어진 급수탑 대신 우물을 팠고, 자체적인 간이상수도를 세웠다. 그리고 말도나도에서 수도 몬테비데오까지 행진을 하고 거리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 투쟁은 전국으로 번져 전국적인 투쟁이 되었고, 국민투표 운동을 전개하여 물 사유화 금지하는 조항을 헌법에 삽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우익 정권을 선거에 패배시키고 (중도) 좌파 정권을 세웠다.
코차밤바 물투쟁
볼리비아 코차밤바
우리에게 “물 사유화”라는 다소 생소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사례는 아마도 볼리비아 코차밤바의 “물전쟁”이었을 것이다. 1998년 세계은행, 미주개발은행, IMF 등 국제금융기구들은 볼리비아에 대한 구제금융 제공의 조건으로 물을 사유화하라고 했고, 이에 볼리비아 정부는 코차밤바 지방상하수도사업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정부는 요금을 현실화하고 수익성을 개선한다며 수도 관련 법을 개정하였는데, 도시지역 수도요금을 달러를 기준으로 산출하는 달러 페그(peg) 정책을 도입했고, 농촌지역에서는 무상으로 사용하던 간이상수도를 모두 없애고 사기업이 새로 건설한, 요금이 매우 높은 상수도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결과적으로 도시든 농촌이든 수도요금이 3배 이상 폭등하였다. 이 속에서 가장 피해를 입은 집단은 여성이었고, 먼저 반응한 것도 여성이었다. 2000년 초, 물 사유화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자, 환경활동가, 여성, 농민․원주민 등을 포괄하는 연대체가 구성되어 물 투쟁을 주도했는데,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연대체 자체가 ‘여성’으로 불리거나 비유되곤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여성들은 기업에 의한 물의 독점을 비난하면서 여성이 물에 자유롭게 접근할 권리, 물 자원에 대한 공동체적 소유, 여성들의 참여 확대를 주장하면서 투쟁에 결합했다. 투쟁 초기 다양한 조직 간 불협화음이 생겼을 때에도 공통적 조건 속에서 공통적 요구를 하던 여성들의 조정과 연대로 이견이 해소됐다고도 한다. 물 투쟁에서 민중들이 승리했으며, 이후 이어진 가스 등 기타 천연자원에 대한 투쟁이 폭발적으로 벌어지면서 모랄레스라는 원주민이 대통령으로 선출,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경찰앞에 선 한 코차바 여성
당연히 그 어느 사례에서도 여성들만 투쟁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물 사유화가 오로지 여성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물, 의료, 교육, 에너지, 보육 등 공공서비스가 사유화되면 여성들에게 일차적 타격이 가해진다는 사실이다. 그 중 특히 물이 그렇다. 양육을 포함한 가사노동의 80%가 물 사용에 기반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으며, 질병의 약 80%가 물을 통해 감염된다고도 한다. 결국 가사를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에게 물 사유화는 안 그래도 고달픈 가사노동을 더욱 고달프게 만들고, 빈곤화를 더욱 촉진시키는 정책이다. 그렇기에 때문에 여성들이 일차적으로 반응하고 대응에 나섰던 것이다. 또한 농촌여성의 경우 자신들이 만들고 관리하고 공동으로 소유하던 상수도가 기업에게 도둑맞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 7월 16일, 한국 정부는 ‘물산업 육성 5개년 세부추진계획’을 공표하였다. 사실 지난 2001년과 2005년에 수도법을 개정하여 지자체가 운영하는 상수도를 민간이 위탁받아 운영할 수 있도록 할 때부터 우리나라에서 이미 물 사유화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번 물산업화 계획은 국가 정책이자 물 사유화를 위한 종합 패키지를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본격적인 물 사유화의 신호탄이었다. 현재 공무원노조를 비롯하여 물 사유화 저지 공동행동 등 여러 단위가 대응을 시작했는데, 여성단체들은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공공서비스를 사유화함으로써 여성의 재생산․보살핌 노동을 자본을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사실, 그리고 물 사유화가 결국은 여성의 가사노동을 가중시키고 여성의 빈곤화를 촉진시킨다는 여러 사례를 봤을 때, 물 사유화에 대해 여성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외사례 참고 자료]
Beltran, Elizabeth. Water, Privatization and Conflict: Women from the Cochabamba Valley. 2004
WEDO. Diverting the Flow - A Resource Guide to Gender, Rights and Water Privatization. 2003
Stockton Record誌, “Stockton's Water Privatization Contract Reversed” 외,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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