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한다는 것은 인간의 조건’

 

○ 우리는 혹시 사회문제나 우리가 맞닥뜨린 삶의 문제들을 ‘다 그렇고 그런 거지’ ‘당연하지’하며 수긍하는 태도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근본적 물음이란 사유의 출발이고, 사유란 ‘삶에서 생각하기’. 자신의 삶의 현실에서 제기되는 문제적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돌아보며 스스로 생각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답변을 구하는 과정이 사유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사유할 줄 알 때 우리에겐 ‘분별력’이라는 힘이 생긴다.


○ ‘사유한다는 것은 인간의 조건’이라고 할 만큼 ‘사유’는 우리에게 중요하다. 이러한 ‘사유’의 중요성을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알아보자.

   ‘악의 평범성’/‘생각 없이 행동하는’ 무사유/‘말하기, 생각하기,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세 가지의 무능성이 ‘악’, 즉 비인간적 행위를 만들어내는 것/‘우리 모두의 안에 아이히만’


 

○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억울한 생각이 치밀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서 체념하고 견디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태도는 과연 그 자신이 나약하기 때문일까? 삶의 의지가 끓어 넘치는 젊디젊은 시기에 조차 자신의 삶을 체념하도록, 나의 삶을 찍어 누르는 대상에 대해 굴종하도록 한 것은 무엇일까?


○ 노동자에게서 철학을 빼앗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

   - 생각할 여유도 없이 살아가게 하는 것,

   - 지금 일어나는 일이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기도록 하는 것,

   - 자신이 당한 부당한 일들도 그저 제 탓으로 여기게 하는 것, 인간적 모멸감에 분노의 주먹을 그러쥐어질 때조차 무력감에 고개를 떨구게 하는 것, 무엇보다도 스스로 자신이 인간임을 부정하게 하는 것!


 

“불만이 인간의 시작이며 사유 없는 삶은 인간의 부정이다.”


 

‘왜’라는 비판적 질문이 사라지고 ‘예’라는 무조건적 긍정만이 남을 때 현재의 문제적 상황들을 해결할 수 있는 인식과 실천은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사물 또는 현상을 이해하고자 할 때 반드시 그것을 다른 사물 또는 현상과의 연관 속에서 고찰하여야 하며 구체적인 시간, 공간과 조건 속에서 고찰하여야 한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봅시다”- 멕시코 치아파스타 원주민


 

새로운 질적 변화(발전)를 원한다면 꾸준히 사물내부에서 양적인 축적과정을 거쳐야만 새로운 질적 단계로 도약이 가능한 것이다.

 

부정은 새로운 질의 발생과 함께 오래된 사물의 질을 함께 보존하는 측면도 가지고 있다. 이때 부정에 의하여 새롭게 만들어지는 새로운 사물에 보존되는 것은 낡아 사라지는 사물의 적극적이고 진보적인 요소이다.

 

저마다 개인적으로 인식하지만, 그것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인식들을 바탕으로 해서만 생겨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형성된 인식이란, 앞선 세대 누군가가 직접적인 실천을 통해 터득한 인식들의 총합이다.

 

철학이 우리 삶의 나침반의 역할을 한다면 나침반의 효력은 새로운 것을 찾아 길을 떠난 사람에게만 나타날 수 있다. 나침반은 그것을 이용하여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그 실효성이 검증되고 문제점이 발견됨으로써 보다 완전한 것으로 발전할 수 있다. 결국 실천을 통해 철학도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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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2 16:33 2009/05/1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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