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여행

그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평소 다른 사람에게 무뚝뚝한 내가 나를 향한 타인의 작은 친절 혹은 무관심에 모든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다. 나에 관한,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크게만 느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인 것이다.

 

 

고백할게. 나는 겁이 나. 베를린이라는 이 낯선 도시가 무섭게만 보여.

솔직히 말할게. 나는 나 자신에게 겁이 난 것 같아.

달라져야 한다는 것, 변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여행을 의미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에 겁이 나는 것 같아.

 

누구나 여행을 떠나면 지구 위에 홀로 떨어진 외계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집과 일, 가족, 그리고 나를 지탱해주는 견고한 안정감이 사라진듯한 기분.

그런데 나는 이 기분이 너무 좋다. 여행이 안겨주는 외로움을 끔찍이 사랑한다.

여행이란 이런 것이다.

여행은 자신을 둘러싼 인간관계의 망 속에서 내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게 해준다.

나조차 몰랐던 내 안의 모습을 똑바로 직시하게 해준다.

언제 어디서든, 나 홀로 강하게 서 있도록 독려한다.

내 존재를 증명해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나게 해준다.

그래서 여행의 또다른 이름은 자유다.

내 존재라는 이름의 생명의 나무가 시들지 않도록 자유라는 이름의 비를 내리고,

바람을 불어넣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이다.

 

"실수를 두려워마라. 그런 것은 없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말이다.

실수를 할 때마다 실수의 결과 앞에서 두려워질 때마다 나는 그의 말을 되새기곤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가 미워졌다.

실수 앞에서 나는 단 한번도 담대한 적이 없었으니까.

실수로 인해 내 앞에 놓인 잿빛 일상을 바라보며 초조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으니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실수를 미리 짐작하며 불안해했으니까.

그런데 베를린 한복판을 걷는 내안의 또다른 나는 이렇게 말한다.

"실수를 하면 좀 어때?"

실수를 통해 우리는 삶을 사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실수를 할 때마다, 실수를 하는 만큼, 우리는 삶을 사랑하게 된다.

 

오늘은 낮잠을 자는 호사를 누려야겠다. 뼛속 깊이 잠이라는 이름의 평화를 주입시켜야겠다.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너무도 부지런하게 살아간다.

여행지에서의 일상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감정을 조목조목 설명하기 위해 안달한다.

자신만의 은밀한 이야기를 만들기보다 남과 같은 기억을 소유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싶을 때에는 잠시 쉬었다 가는게 필요하다.

여행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여행자란 원래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고향에 두고 온 순례자가 아니던가.

 

여행은 시간마저도 바꾸어 놓는다.

여행자의 시계는 마치 다른 세상을 살아가듯 좀더 천천히, 좀더 느리게 움직인다.

이유는 하나, 여행자가 되면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깊고 그윽한 눈으로 세상을 어루만지기 때문이다.

세상을 향한 진한 사랑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귀에 들리는 모든 것에,

가슴으로 느끼는 모든 것에,

손으로 만져지는 모든 것에,

발길이 닿는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진다.

 

돌이켜보면 사랑은 결국 '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사랑에는 가르치는 힘이 있다.

 

위태로운 시간, 무기력한 일상.

삶속에 내재된 달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일상이라는 이름의 무서운 녀석과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그것으로부터 잠시 벗어나야 한다.

잠시 벗어나는 것,

여행이란 그래서 행복하고 소중한 것이다.

 

희극과 비극은 언제나 서로 맞물려 있다.

사랑과 이별은 언제나 서로 공존하고 있다.

떠남과 머묾도 언제나 함께 하고 있다.

 

 

 

삶은 여행... 이상은 in 베를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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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9 12:49 2009/09/29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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