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소비'에 반대한다

사포님의 [] 에 관련된 글.

'착한소비'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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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겨레 신문 경제면에 '세계 공정무역의 날'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착한 커피, 착한 옷 그리고 착한 소비 - 최근 공정거래 무역제품이 등장하면서 함께 사용되는 용어들이다. 제품 생산과정의 투명함과 공정성을 감안한다 해도 엄연히 자본주의 시장속 상품에 '착한'이라는 선악이 대조되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적절한 것일까. 더군다니 '착한 소비'라니, 솔직히 기가 막히다. 그러면 그 외의  소비는 '나쁜 소비'이고 '나쁜 소비자'인가?

 

자칭 '착한 소비'는 그러나 경제적 빈곤층에겐 턱없는 일이다.  친환경이니 유기농이니 하는 것들은 값싼 원료를 사용한 저가 상품보다 한참 비싸다. 다른 것을 덜 소비하면 된다고? 결코 의지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 상품을 지불할 돈을 갖고 있는 자, 그가 결국 '착한 상품'의 주인공 즉 착한 소비자가 된다. 좋은 제품을 갖고 착하기까지 하다니,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거꾸로 말하면 불량한 제품을 구매하고 나쁜 소비자까지 되는 셈이다. 

 

나도 좋은 제품을 사고 싶다. 소위 친환경 제품들, 인간과 지구의 공존을 고려한 제품들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내 소비의 기준은 거의 '가장 값싼'  것들이다. 왜냐고? 저임금 노동자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경일도 쉬지 못하고 하루에 10시간 반을 일하지만 월급은 100만원에 불과하다. 그 돈으로 기본생계를 유지하고 대출금도 조금씩 갚아야 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태권도 학원도 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아껴쓰고 대부분은 가장 저가의 상품들만 선택하게 된다. 몰라서가 아니다. 알고도 어쩔 수 없이 감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되먹지않은(!) 윤리적 잣대에 화가 난다. 왜냐면 나보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이들 역시 많을 테니까. 단지 그런 상품을 구매할 수 없다고 해서 '나쁜  소비자'로 몰리고 싶지는 않다. 자본주의 경제구조속에서 빈번하게 자행되는 아동, 여성등에 대한 노동착취 문제의 대안으로 제시된 세계 공정무역 또한 돈으로 도덕성까지 점수매기는 자본주의 방식까지 포기하지는 못한 걸까?     

 

'착한'이라는 표현에 반대한다. 모든 사람이 '돈'의 있음과 없음을 떠나 자유의지로 그런 상품을 선택할 수 있다면 그 때 '착한'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 것이다. 그 전엔 현재의 공정거래무역제품 정도면 무난하겠다. 물론 생산부터 유통과정까지 얼마나 공정한지 자세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이름에 걸맞는 공정한 상품이길 기대하며 혹시나 조금이라도 피흘리는 노동이 있지 않기를 바란다. 더불어 경제적 부담없이 자유롭게 나와 내 아이가 노동착취 없는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이렇게 억울하게 욕먹기전에 빨리 오기를, 간절하게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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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3 07:52 2009/05/13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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