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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은 내 책임이다

<나는 꼽사리다> 9회에서 김미화는 월가 시위에 나온 24살 스페인 청년의 사연을 소개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공부를 못하거나 말썽을 부려서 이런 결과가 생긴 거라면 이 현실을 받아들이겠다. 그러나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취업을 하고 돈을 벌어서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을까. 나는 이제 갈 데까지 갔고 잃을 것도 없다. 이게 시위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리고 이 말을 덧붙였다.

 

"곧 봄이 온다. 기성세대와 정부가 벼랑 끝에 몰린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청년들이 들고 일어서면 어쩔 것이냐. 봄이 두렵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별 일 없을 거니까.

 

우석훈은 2011년 4월 한 강연회에서 2011년 하반기에 68혁명 같은 게 일어날 지 모른다고 말했다. 별 일 없었다. <나는 꼼수다>가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평생 시민운동을 하던 박원순이 서울시장이 되었고 안철수가 갑자기 대선후보로 떠올랐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68혁명보다는 2002년 노풍의 재현에 가깝지 않을까?(마침 우석훈도 <나는 꼽사리다>에 출연한다.)

 

작년처럼 올해 새 학기에 반값 등록금 시위 비슷한 게 있을 것이다. 4월에 총선이 있으니 각 당마다 등록금을 낮추느니 청년실업을 해결하겠다느니 뻥을 칠 것이다. 12월에 대선이 있고, 또 각 정당들은 뻥을 칠 것이다. 항상 그렇듯이, 학생회 하는 학생들이나 시위에 나올 것이고 대다수는 중간고사 준비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모든 정치적 쟁점은 선거로 수렴된다. 그러니 별 일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거리에 나갈 거냐고? 안 나간다. 못 나간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 모른다. 24살 먹은 스페인 청년의 말을 바꾸면 딱 내 처지가 된다.

 

"내가 어릴 때부터 공부를 못하거나 말썽을 부려서 이런 결과가 생긴 거라면 이 현실을 받아들이겠다."
-> 내가 공부를 못하고 말썽을 부려서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이니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
-> 다 내 잘못이다.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취업을 하고 돈을 벌어서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을까."
-> 나는 제대로 한 게 없다.

 

"나는 이제 갈 데까지 갔고 잃을 것도 없다. 이게 시위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그래서 나는 시위에 동참할 수 없다.

 

내 일은 내 책임이다. 다른 사람들의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인데, 내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다. 그래서 나 자신이 부끄럽다.

 


(201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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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 심정을 털어놓다

고려대 경영학과 나온 내 고등학교 동창은 회계법인에서 회계한다. 나는 독서실에서 매일 회개한다.

 

그동안 매일 반성했다. 내가 잘못 살았다고 생각을 했다. 혼자서만 그렇게 생각하다가 얼마 전에 동생한테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내가 잘못 살았다, 그렇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동생이 당황했다.

 

"형, 형이 그러면 안 되지. 형이 나한테 영향을 알게 모르게 많이 줬는데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내 인생 내가 반성한다는데 동생이 당황한다.

 

예전에 동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조언이라는 건 보다 나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한테 하는 건데, 안 그런 사람들이 요구하지도 않은 조언을 하니 짜증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내가 조언을 안 하잖아."

 

 

(201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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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cupy Wall Street>와 <나는 꼼수다>의 차이

진중권이 2박 3일간 트위터로 싸웠다고 한다.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나는 꼼수다>의 열혈팬들이 진중권에서 시비를 걸자 진중권은 “제대로 상대해드리겠다”며 논쟁을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꼼수다>는 분명히 비판받을 만한 부분이 있고 진중권은 그 부분을 타당하게 지적했다. 그런데 개떼들 눈에는 진중권이 ‘가카 지킴이’로 보인다. 개떼들은 “입진보가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진중권의 트위터를 보라”며 공격했다. 그들은 진중권이 이명박 정권 초기에 한 일을 잊어버린 걸까, <나는 꼼수다>가 하는 일이 진중권과 크게 다르다고 보는 걸까. 진중권이 입진보면 <나는 꼼수다>도 입진보다. 진중권이 화염병이라도 던지기를 걸 바라는 건가, 아니면 정봉주처럼 진중권도 감옥에 들어가라는 건가.

 

나도 <나는 꼼수다>를 매회 다 듣는다. 정말 재미있다. 김어준이 <닥치고 정치>에서 밝혔듯, <나는 꼼수다>를 만든 이유는 진보진영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다. 진보진영에 있다는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지적 수준을 요구한다. 그러면 재미가 없고 가까이하기 싫다. 심할 경우는 재수 없을 수도 있다. 나는 김어준의 분석이 어느 정도 맞다고 보고, 그가 그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나는 꼼수다>의 싸움은 인물과의 싸움이다. 구조와 인물 둘 다 중요하다고 하지만, <나는 꼼수다>도 그렇고 <닥치고 정치>도 그렇고 구조보다는 인물에 방점이 찍혀있다. 이명박이 어떤 인물인지, 어떤 성품을 지녔고 어떤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행동을 하며 그 주위 사람들은 어떤지가 궁금하면 <나는 꼼수다>를 들어라. 그런데 그것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이명박은 다음 대선 때 나오지 않는다.

 

<Occupy Wall Street>는 구조와의 싸움이다. 그들은 1%와 99%를 말하지 특정 인물의 인품이나 사고구조나 행동을 까지 않는다. <Occupy Wall Street>와 <나는 꼼수다>는 왜 다른가. 여기에는 여러 가지 특수성이 반영되어 있다. 그중 하나는 지금 벌어진 문제가 집권당이 직접 저지른 일인가 아니면 전 정권에서 떠앉은 일인가다.

 

미국에서 벌어진 금융위기는 오바마 정권 혼자서 저지른 게 아니다. 오바마는 똥을 치우는 입장이다. 반면 이명박은 똥을 싸고 있다. 노무현도 한국사회에 안 좋은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이명박처럼 거대한 짓을 저지르지는 못했다.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는 일 중 상당 부분은 노무현 정권이 시작했지만 이명박의 아우라를 넘어설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가정을 해보자. 만일 지금 미국 대통령이 부시 같은 인물이라고 하자. 그러면 미국에서도 <나는 꼼수다> 같은 게 등장했을 수 있다. 굳이 따지자면, 마이클 무어 감독이 찍은 영화가 그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그래도 <나는 꼼수다>보다 구조적인 측면을 훨씬 크게 부각한다.). 미국에는 <Occupy Wall Street>가 등장할 가능성과 <나는 꼼수다>가 등장할 가능성이 공존한다.

 

그런데 반대로 지금 한국의 대통령이 정동영이라고 하자. 2007년 대선 때 기적이 일어나서 정동영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하자. 정동영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도 지금보다 상황이 크게 낫지는 않을 것이다. 이명박만큼 땅은 파지는 않겠지만 토건 위주의 경제구조는 노무현 때와 다르지 않을 것이고,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추진하던 신자유주의 정책을 계속 추진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한국에도 <Occupy Wall Street> 같은 게 생길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한국사회에서 대중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지적 수준의 상한성은 진중권이 등장하는 토론쇼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까지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사건을 넘어선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아무도 안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운동은 아무리 노력해봐야 <노사모>의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사람들은 악당들을 휩쓸어버릴 영웅을 원하지 악당들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사회 구조를 원하지 않는다.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생각도 못한다는 게 맞을 거다. 2007년에 민주당이 다시 집권했다면 <나는 꼼수다>는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의도를 점령하라> 같은 게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등장해도 호응을 못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위대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군이 사고를 쳤다고 하자. 미군이 한반도 평화가 아니라 전쟁위기를 높이기 때문에 철수해야 한다고 하는 단체는 전체의 20%도 안 된다. 여성의 음부에 콜라병이 박힌 잔인한 사진을 전시한다든지 장갑차에 으스러진 살점을 진공포장해서 들고 행진한다든지 'F**k*** USA'처럼 직접적으로 욕하는 노래를 부르는 단체가 80% 정도다. 나름대로 학습의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모인 시위판도 이 정도다. 평생 이런 것 한 번 안 해본 사람들이 사회문제를 볼 때 구조적인 측면을 생각한다? 그것도 금융을? 2% 미만이다(이 수치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2007년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3%였다. 일심회 사건 때 당쇄신안 반대한 사람이 절반이 넘는다.).

 

<나는 꼼수다>의 귀결은 2002년 대선의 재현이다. 착한 인물과 이상한 사회 정치 구조의 결합이다. 아기장수 설화 수준의 인물론이 다시 한 번 선거판을 뒤덮을 것이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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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드라마

<이웃집 남자>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마치 그 영화는 내 내면의 욕망을 구현한 것 같았다. 나는 <이웃집 남자>의 주인공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지만, 그의 욕망과 나의 욕망이 다른가 하는 물음에 나는 그렇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충분히 욕 먹을 만한 인물이지만 쉽게 욕할 수 없는 인물,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일 것이라 보이는 인물이지만 감정이입을 할 수밖에 없는 인물, 그것이 감독의 의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웃집 남자>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을 이명박을 볼 때도 느낀다. 그런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건 <나는 꼼수다>를 듣기 시작한 이후다. 이명박의 사생활, 개인적인 면모를 폭로하면서 내가 느낀 건 내 안에 있는 이명박이었다. 내 안에도 이명박이 있다. 2007년 대선 때 권영길을 찍었고 이명박과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 왔지만 내 내면에는 이명박처럼 살고자 하는 욕망이 숨어있다.

 

나는 아직 정신과 치료를 받은 일이 없는데, 정신과 치료 중에는 사이코드라마라는 게 있다고 들었다. 연극 같은 건데, 평소에 하는 행동을 서로 바꿔서 하는 경우도 있고 극에 등장하는 모두가 내가 하는 행동을 따라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볼 때, 대한민국은 4년 간 거대한 사이코드라마가 진행되고 있다. 이명박이 4년 동안 사람들의 내면에 있는 모습을 현실태로 구현하고 있다. 그야말로 인구 5000만 국가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사이코드라마다.

 

이명박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이명박을 마치 괴물처럼 묘사하지만, 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세습군주도 아니고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나도 이명박처럼 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에 따라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뿐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베를루스코니처럼 살고 싶다는 욕망에 따라 그를 총리로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그야말로 시대정신의 구현이다.

 

2008년 총선 때 한나라당을 찍는 사람들은 이명박을 욕할 자격이 없다. 뉴타운으로 부동산으로 시세차익 얻겠다는 거나 도곡동 사저로 시세차익을 얻겠다는 거나 무엇이 다른가. 2007년 대선 때 이명박을 찍은 사람들은 이명박을 욕할 자격이 없다. 전과가 14범이든 말든 내 배만 부르면 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명박의 도덕성을 문제 삼는가.

 

어머니 말씀을 들으니 기아자동차 아산공장에서 이명박 욕 안 하는 놈이 없단다. 이명박 찍었다는 놈은 하나도 없고 다 본인은 이명박 안 찍었단다. 분명히 1천만명 이상이 이명박을 찍었는데 아무도 이명박을 찍었다는 놈은 없다. 이명박 찍은 걸 후회한다는 놈도 있을 법한테 그런 놈도 없다. 아직까지 한 놈도 못 봤다.

 

노무현 그립다고 하는 놈들을 볼 때처럼 누구나 이명박 욕 하는 걸 보면 역겹다. 뉴스에 나오는 이명박을 보면 괜히 나 자신이 부끄럽다.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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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이빨은 몇 개일까

중세 때는 말의 이빨 개수가 궁금하면 마구간에 말이 있어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뒤져봤다고 한다. 중세 스콜라 철학을 풍자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다. 철학과 사람들은 세미나 할 때 이 이야기를 꺼내며 권위를 의심해야 한다고 우긴다. 웃기고 있다.

 

집에 고양이를 키운다고 하자. 나는 지금 고양이 이빨 개수가 궁금하다. 고양이의 입을 벌려 이빨 개수를 세면 될까? 우선 고양이가 순순히 이를 안 벌린다. 기분이 안 좋으면 물거나 할퀼 수 있다. 옆집 고양이와 싸우거나 단단한 걸 먹다가 이빨 몇 개가 나갔을 수도 있다. 고양이 이빨은 작고 촘촘하기 때문에 세다가 내가 실수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네이버에서 검색한다.

 

말도 똑같다. 고양이가 물거나 할퀴면 빨간약을 바르거나 파상풍 주사를 맞으면 되는데 말한테 한 대 맞으면 갈비뼈가 나가거나 죽을 수 있다. 그 당시는 네이버 대신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보았을 뿐이다.

 

학부에서 하는 세미나가 영양가가 없는 건 허튼 짓을 하기 때문이다. 학부 세미나의 미덕은 빨리 빨리 진도 나가는 데에 있다. 사색을 하려면 집에서 혼자 하든지 대학원에서 해라. 당장 교재 내용도 모르는 것들이 모여서 허튼 생각하고 허튼 소리 하다 술 먹으러 가서 또 개소리 한다. 시간 낭비다.

 

수백년 동안 전문적인 학자들이 검증한 문제를 학부생이 무슨 수로 뒤집는다는 건가. 철학과 학생 중에는 근성이 썩은 놈들이 너무 많다. 나보다 잘나고 똑똑하면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무조건 까고 내가 대마왕 먹으려고 한다. 이해도 못하는 것들이 창의성은 개뿔.

 

그래서 그들은 말 이빨을 세는 동안 나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을 펴기로 했다. 문제는 <자연학>이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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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종편 채널을 봤는데

나는 종편 편성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폭스채널 같은 게 한국에 생기면 여론을 왜곡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생길지 모른다는 기대도 했었다. 케이블의 상업성을 뛰어넘는 자극의 극한을 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예상이 다 깨졌다. 신문 기사는 자극적으로 쓰는 것들이 방송은 정말 재미없게 만든다. 교육방송보다 재미없다. 도올 김용옥이 하는 중용 강의가 종편 방송보다 훨씬 재미있다.

 

특히 종편 채널의 코미디는 최악이다.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SBS <이주일쇼>에 나왔던 코너를 거의 똑같게 따라한 코너도 있었고, 2007년 KBS2 <폭소클럽2>에서 노정렬이 했던 성대모사 개그를 거의 그대로 따라한 코너도 있었다.

 

종편이 성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최대한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방송을 하면 된다. tvN 초기보다 약간 더 자극적이기만 하면 된다(개그맨 김인석이 진행했던 프로그램을 생각해보라. “아~~, 쓰리 벌떡이에요!!!”). 그런데 종편 채널은 공중파보다 격조 높은 방송을 하겠다고 우긴다. 형광등 100개 켜는 소리하고 있다.

 

폭스채널은 <심슨가족>을 만들었다. 종편 채널이 <심슨 가족> 같은 걸 만들 수 있을까? 종편 채널은 망할 것이다. 정치적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재미가 없어서 자멸할 것이다.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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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에 나타난 기술관

<뿌리 깊은 나무>라는 드라마가 인기라고 들었다. 원작 소설도 안 읽었고 드라마도 안 봤다. 다른 사람한테 들으니 그 드라마의 줄거리를 한 줄로 줄이면 “밀본이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를 막다가 결국 세종 빼고 다 죽는다”고 한다.

 

<뿌리 깊은 나무>의 근저에는, 기술의 발달은 인위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며 사회변화를 동반한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랬기 때문에 훈민정음 반포를 막으려는 사람들은 집현전 학자들을 아예 죽여 버린 것이다. 훈민정음이 반포된다면 그 파급력을 감당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반포를 막기 위해 훈민정음 자체를 만들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기술 발달과 사회 변화와 관련된 실제 사례와 배치된다.

 

1990년대 중반, 이미 GM은 전기자동차를 실용화한 적이 있었다. 엑슨모빌 같은 석유기업에는 위협이 되는 상황이었다. 이때 엑슨모빌이 GM에 자객을 보내서 연구원을 암살했을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냥 정부에 로비했고, GM은 출시한 제품을 전량 회수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포드가 자동차를 개발될 때부터 전기자동차에 대한 논의가 나온다. 그때 포드는 생산비와 상용화를 이유로 전기자동차 개발을 반대하고 가솔린자동차를 개발하기로 한다. 그때도 기술적으로는 전기자동차가 가능했다.

 

밀본이 훈민정음 상용화에 반대한다면 굳이 집현전 학자들을 죽일 필요 없이 그냥 훈민정음을 사장시키면 된다. 그러면 자신들도 죽을 필요가 없고 원래의 목표를 이뤘을 것이다. 실제 역사도 이와 비슷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한글이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가지는 데 5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20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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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 가방끈 운동

청소년 때부터 운동(movement)을 한 사람들은 극단적인 성향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2006년 평택에서 시위하던 사람들이 연행될 때, 어떤 사람들은 지문날인을 거부하다가 지문을 찍지 못하도록 손을 자해했다고 들었는데, 그러한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출신이 청소년 활동가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실제로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없지만, 연역적(?)으로 따져보면 타당성 있다고 본다.

 

내가 학생회 하면서 본 사람들은 대부분 20대로 올라오면서 10대 시절의 의식과 큰 단절을 겪은 사람들이다. 그것이 자신의 삶의 변화에서 기인했든 학습에서 기인했든 둘 다이든 그러한 단절을 겪으면서 자신이 가진 생각을 성찰한다. 그런데 10대부터 그런 활동을 한 사람들에게 그런 단절의 과정이 있을까? 단절을 거치고 성숙한다면 다행인데 만약 그런 과정 없이 10대 때 한 생각과 감수성을 20대까지 가지고 간다면 정말 위험하다.

 

한겨레나 경향 같은 진보적 매체에 보도되는 10대 활동가들의 모습은 그냥 철없는 10대로밖에 안 보인다. 분명히 그 매체에서는 암묵적으로 긍정적인 의도를 가지고 보도하는 것일 텐데 그래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이런 말 하면 기분 나쁘게 들리겠지만, 내 눈에는 탈레반 같은 원리주의자들과 비슷해 보인다. 사소한 게 거대담론과 이어진다면서 머리털 같은 것과 인권을 연결시키며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추상적 개념과 삶의 문제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고 그 사이를 청소년 감수성이 메운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러한 나의 선입견이 한 번 더 강화된 것은 얼마 전에 했던 ‘투명 가방끈 운동’이다. 몇몇 10대들이 학벌사회에 저항하는 의미로 대학을 안 가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그걸 보고 코웃음을 지었다. 저들이 뭘 안다고 저러는 걸까, 도대체 어떤 놈들이 저 어린 애들한테 이상한 관념을 심어 넣었나 싶었다.

 

세상이 움직이는 건 관념이 아니다.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건 물질적이고 물리적인 원리다. 한국사회에서 학벌체계가 유지되는 건 사람들이 학벌이 좋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학벌이 없으면 살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스스로 대학을 안 간다면 그 자리를 다른 애들이 채울 것이다. 바뀌는 건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망칠 뿐이다.

 

어떤 애는 자기가 인문학자가 될 것인데 왜 대학에 가야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인문학의 위기이며 대학이 자본의 논리로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말 딱한 노릇이다. 내가 아는 한에서, 독학으로 성공한 철학자는 없다. 위대한 철학자들에게는 위대한 스승이 있다. 골방에서 혼자 책 파먹고 이론을 완성했다는 철학자를 본 적이 없다. 고대철학자들도 다 나름대로 스승이 있었고, 중세철학자들도 수도원에서 배웠고, 근대 이후에는 다 대학 다녔다. 데카르트도 스콜라 철학을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다. 그놈이 인문학자가 된다면서 대학을 왜 가야하는지 모르는 건, 아직 어리고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인문학 같은 기초학문의 경우,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과 안 좋은 대학의 차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이름이나 평판이 문제가 아니라, 수준 자체가 다르다. 몇 년 지나고 나서, 고등학교 때 자기보다 아는 게 없었던 애가 좋은 학교 가서 우수한 동료들과 함께 훌륭한 교수 밑에서 배워서 자신을 한참 앞서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면,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내 입장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애들이 알기는 뭘 아냐. 공부나 열심히 해서 대학이나 잘 가든지 직업교육 잘 받아라.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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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은의 ‘15대 일류대’론

인터넷에서 손주은의 연애담을 검색하다가 ‘손주은 15개 일류대’라는 연관검색어를 보았다. 궁금해서 클릭해보니 손주은이 입학설명회하는 동영상이 나왔다. 그 동영상에서 손주은은 “지금은 옛날과 달리 입시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예전에 이대간 어머님이라면 자기 딸이 서울 시내에 있는 대학만 가도 자기만큼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일류대가 15개나 된다고 했다. 상위 15개 대학의 입학정원은 6만명이고 수능응시인원이 70만명 정도이기 때문에 이 15개 대학에 입학한다는 건 상위 6~7% 안에 든다는 것이다.

 

나는 그 동영상을 보면서 손주은이 정말 장사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손주은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 메가스터디의 시장점유율이 높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이 메가스터디의 인터넷 강의를 듣는 상황에서, 일류대가 3개 또는 5개(카이스트, 포항공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라고 하면, 메가스터디에 돈을 내는 사람들은 자신이 구입한 제품이 별 효과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기도 개나 소나 가는 그저 그런 대학 들어가고 같이 메가스터디 강의 듣던 친구들도 죄다 별 볼일 없는 대학을 가면 메가스터디에 대한 신뢰도나 만족도는 떨어진다. 메가스터디 강의를 듣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을 죄다 좋은 대학에 보낼 수도 없다. 그러니 손주은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들의 눈을 낮춰놓는 것이다. 부모들의 눈이 낮아지면 쥐뿔도 모르는 10대들은 덩달아 눈이 낮아지고 메가스터디에 대한 만족도도 올라가게 된다.

 

얼마 전에 손주은이 공부가 다가 아니라고 한 적이 있었다. 10년 전에 손주은은 학생들보고 “너희를 구원할 수 있는 건 공부뿐”이라고 했었다. 그랬던 그가 말을 바꿨다. 기자가 왜 바꿨냐고 하니까 시대가 바뀌어서 자기도 생각을 바꿨단다. 내가 볼 때 바뀐 건 메가스터디의 시장점유율뿐이다. 이 또한 개수작의 일환일 뿐이다.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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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광폭>, 미친 황제와 미친 청소년들

얼마 전 <색광폭>이라는 책을 읽었다. 중국 황제 중 미친 놈 20명을 골라서 다룬 책이다. 색은 변태적인 행위, 광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 폭은 폭력적인 짓을 의미한다. 폭군의 행동유형은 보통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오타쿠형, 다른 하나는 망나니형이다. 오타쿠형은 국정은 돌보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하는 사람들이다.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다면 당대 최고의 기술자나 장인이 되었을 사람인데 불행하게도 황실에 태어났다. 망나니형의 특징은 폭력적이면서 변태적이라는 점이다. 막 살다가 발기부전 같은 게 오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은 색과 폭은 같이 논다.

 

폭군 20명 중 망나니형의 공통점을 뽑아보면, 대부분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거나 훈련을 받을 기회가 없었고, 부모의 사랑 또한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 권세를 노린 환관 등이 그 절대권력자의 말초적인 쾌감을 자극한다는 선택사항이 있다. 춘추오패 중 한 명인 진 목공처럼 온갖 고난과 시련 끝에 권좌에 오른 사람이 폭군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나는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청소년 범죄를 저지르는 애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청소년 범죄를 유발하는 요소와 폭군을 만드는 요소가 일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어린 애를 양육하는 과정을 보면, 그중 대부분은 잘못된 행동과 그에 대한 응분의 처벌로 이루어진다. 어렸을 때 엄마들의 가르침은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라는 게 아니라 이러저러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웬만큼 큰 다음에 하는 것이다. 일단은 하지 말라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엄마한테 직접적으로 혼나거나 자신이 한 행동에서 직접적으로 응분의 대가를 얻고 나서(가령 칼을 가지고 놀다가 손을 베이는 일 등)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지켜야 하는 규범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다.

 

망나니형 폭군들은 성장과정에서 이러한 것이 생략되어 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할 수 있고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 '쾌락 -> 권태 -> 더 큰 쾌락'이 반복된다. 자극만 있고 반성과 성찰은 없다. 극도의 폭력성과 엽기성이 배가된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청소년들도 폭군들의 성장과정과 유사점이 있지 않을까. 언론보도에 따르면 자기가 괴롭히는 애가 죽었는데도 자신들은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고 한다. 그들의 성장과정을 알 방법이 없지만, 확실한 것은 적어도 학교에서는 그들이 자기가 한 잘못된 행동 때문에 처벌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점이다. 망나니형 황제가 되는 구조와 비슷하다. 교실에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아무도 제지할 수 없고, 교실 밖에서도 자극만 주어지고 반성이나 성찰을 유도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야말로 망나니형 폭군이 등장하기 좋은 상황이다.

 

언론에서는 청소년들이 미친 짓을 하는 원인이 게임이나 맞벌이하는 부모 등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건 피상적인 접근에 불과하다. 가해자들은 현대문명이나 한국사회의 구조적 결함 때문에 생긴 희생자가 아니라, 그냥 인간이 미친 짓을 할 조건에 들어맞아 타고난 폭력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뿐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책은 즉각적인 처벌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잘못했다 싶으면 바로바로 처벌해야 한다. 애들이 자신이 한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아는 것은 그 결과가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알아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돌아옴을 알기 때문이다. 자기가 피를 본 후에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반성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즉각적인 처벌이다.

 

학교에 문제 생기면 은폐하는 게 보통이니 학교들이 자체적으로 정화하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내부적으로 해결이 안 되면 외부의 힘이 강제되어야 한다. 가령, 수업시간에 경찰이 교실에 들어와 일 저지른 학생을 수갑채워 잡아가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그걸 보는 애들은 경각심이 생길 것이고 일진은 해체된다. 머리는 머리대로, 몸통은 몸통대로, 꼬리는 꼬리대로, 끄나풀은 끄나풀대로 잡아서 조지면 버틸 수 없을 것이다.

 

 

* 뱀발: 한 교실에 30명이 수업을 받고 이 중 1~2명이 일진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아무리 많이 잡아봐야 일진은 전체 학생의 3~6% 밖에 안 된다. 이 중 심각한 애들만 추리면 1%쯤 될 거다. 매년 수능 보는 애들이 70만명이니까 중고등학생 숫자는 약 420만명, 그중 1%면 4만 2천명이다. 그냥 한 방에 죽이면 상관 없겠지만 교정교육 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겠다. 420명쯤 뽑아서 '국립 대안학교(라고 쓰고 배틀로얄이라 읽는다)' 만들면 본보기가 될 것 같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0.01%다.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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