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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팽성읍 도두리에서, 2006년 가을
작성자: 마리아
*2006. 8. 21.
H 아저씨가 온양에서 병아리 스물한 마리를 대추리에 데려오셨다. 양계장을 하는 친구 분이 거저 주셨다고 한다.
*2006. 8. 22.
마당에 닭장을 짓는 날이다.
박언년 할머니는 땡볕에 닭장을 만드는 고생을 하지 말라고, 언젠가 빈집에서 주워둔 분홍색 새장 두 개를 친히 갖다 주셨지만, 닭들의 체형과 체면을 고려해 닭장을 신축하기로. 집근처에 널린 나무 팔레트와 철망, 나무판자, 함석판 등을 지킴이네 마당으로 주워 날랐다. 대추리, 도두리의 닭장들을 둘러보고, 주워 나른 재료들의 특징들을 감안하여 아담하고 튼튼한 닭장을 미리 구상해 두었다. 신흥 이장님 댁에서 망치와 톱을, 만진 아저씨 네 집에서 못을 조달했다.
철망의 양쪽 가장자리에 나무 깔판을 직각으로 대어 고정을 한다. 바닥에 나무 깔판 한 개를 놓고, 그 위에 디귿자 모양 구조물의 트인 면이 벽으로 가도록 배치한다. 비료포대를 잘라 넓게 펼쳐서 바닥에 깔아주고, 그 위에는 등겨를 뿌리고 볏짚을 넣어준다. 이렇게 하면 보온 효과도 있을뿐더러 바닥에 쌓이는 닭똥을 간편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철망에는 주먹 하나가 드나들 정도의 정사각형 구멍이 나 있어 펜치로 잘라낸 네모난 철망을 철사로 고정을 하여 들창을 달았다. 빈집에서 가져온 슬레이트를 지붕으로 얹었더니 여닫기에는 너무 무거워서 치워버리고 대신에 함석판을 덮었다. 여름 땡볕아래 땀을 뻘뻘 흘린 끝에, 가로 1미터에 세로 0.7미터, 높이 0.8 미터 크기의 닭장이 완성되었다. 물그릇과 모이통을 넣어 주고, 갇혀 사는 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자 닭장 철망에 분홍 장미 한 송이도 꽂아 주고, 닭장 관람용 의자를 닭장이 마주보이는 자리에 놓아두었다.
721일 째 촛불 행사가 평화공원에서 열렸다. 닭장 신축 소식이 대추리에까지 알려져 사회자의 부름을 받아 마이크를 잡게 되었다. 닭장 만든 이야기며 닭을 키워서 잡아먹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어느 할머니께서 “닭 듣는데서 잡아먹는단 말 하면 닭이 안 커” 하신다. “미군기지 안에도 건축 붐, 대추리와 도두리에서도 건축 붐이다”고 김택균 아저씨가 말했다. 대추리에서는 원두막과 식당, 박물관이 만들어지고 있다.
촛불 행사 다녀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서 미리 준비해 둔 종이 박스에 공기구멍을 뚫은 후, 닭 네 마리를 담았다. 닭과 함께 도두리로 가는 미니버스를 타고 집으로 와서 닭장에 한 마리씩 입주시켰다.
*2006. 8. 23.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닭장으로 달려가 우리 닭들과 눈을 맞춘다. 어둑한 무렵에 데려와서 입주를 시킨 탓에 닭들의 면면을 자세히 못 본 데다, 혹여 고양이나 족제비의 해를 입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다행히 닭들은 모두 무사했다. 한 마리는 깃이 누른빛이고 나머지는 모두 희다. 유독 한 녀석은 포악스럽게 다른 닭들의 꽁무니를 노린다. 병아리라 부르기에는 귀염성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닭이라 부르기에는 암수의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미성숙한 생김들이다.
오늘 J는 미카엘과 K의 머리를 깎아 주었다. J는 미용 기술을 익혀 도두리에 미장원을 열고 싶다던데, 어찌 되었건 나는 J의 손길이 완성한 두 남자의 머리 모양을 보고 컷트를 단념했다. 지난 오월에 삭발을 한 후로 제법 많이 길었지만 내려둬도 아직은 괜찮으니까.
우리는 비를 기다리고 있다. 단비가 내리면 배추와 무를 심어야겠다.
*2006. 8. 27. 일요일
새벽에 단비가 좀 쏟아지다가 곧 그친다.
배추 모종 심는 간격이 얼마나 되나 살피려고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남언년 할머니가 마당 텃밭에서 망치질을 하고 계신다. 두 개의 두둑에 두꺼운 비닐이 씌워져 있는데, 할머니는 둥근 나무 작대기를 두둑에 수직으로 대고서 망치질을 해 홈을 파신다. 좁고 우묵한 홈에 물을 부어 주고 나서, 내일 아침 식전에 배추 모종을 심을 거라고 하신다. 배추 심을 때 보러 가기로 약속을 하고, 마당 울타리에 만발한 붉은 봉선화 몇 송이를 따서 손에 움켜쥐었다. 꽃송이를 움켜 쥔 채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동네 곳곳의 텃밭을 둘러보니 무가 자랄 곳에서는 어김없이 푸른 무 싹이 돋아 떡잎을 벌린다. 우리 밭으로 가서 무씨 뿌린 두둑에 덮었던 포대기를 걷으니, 실 뭉치 같은 연둣빛 무 싹이 드문드문 돋아 있었다.
‘돈 통’을 들고 노인정으로 간다. 할머니들과 민화투를 쳤다. 점심때는 노인정에서 호박볶음, 무생채, 된장찌개로 밥을 비벼서 먹고 화투를 또 쳤다. 화투를 치면 M이 할멈들 돈을 다 걷어 간다고 원성들이 자자하다. 집으로 와서 포도나무에 달린 청포도 몇 알을 따먹었다. 李가 P편으로 보내준 닭 모이- 옥수수, 가지, 복숭아, 호박을 적당히 썰어서 모이통에 넣어 주었다. 상현 아저씨가 페트병 두 개를 잘라서 모이통과 물통을 새로 만들어 주었다.
낮에 J가 통복 시장에서 늦배추 모종 한 판을 사왔다. 120포기 한 판에 6000원.
저녁에는 다 같이 배추모종을 심었다. 100포기 정도를 심고, 남은 것은 이웃에 나눠드렸다. 소주병으로 두둑에 홈을 파면 그 자리에 물을 붓고, 포트에서 뽑아 올린 배추모를 하나씩 심는다. 다른 집들과 달리, 두둑에 검정 비닐을 씌우지 않았다. 김을 어떻게 다 맬 작정이냐, 비닐을 씌워줘야 가뭄에 잘 견딘다, 이런 저런 말씀을 많이 들었지만 비닐 멀칭은 작물의 성장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철 지나면 한 무더기의 쓰레기 더미가 될 게 뻔하다. 환경에 폐를 덜 끼치면서, 보다 적은 돈을 들이고도 배추 농사 정도는 거뜬히 지을 수 있다는 베짱이 있었으니까. 그것이 농사엔 초짜라서 가능한 만용일지 모르지만.
배추를 한창 심고 있는데 H 아저씨가 차를 세우더니, 최양례 할머니 댁의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내려주고 가셨다. 李도 와서 닭장을 둘러보고 배추를 같이 심었다.
일요일이라 촛불 행사는 도두리에서 열렸다. 밤에는 내일 마을을 떠나는 윤정이를 위해 환송회를 열었다.
오늘 도두리에 온 강아지에게 이름을 “별”이라 지어주었다.
*2006. 8. 28.
아침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일어나 가장 먼저 닭들에게 가서 인사를 건네고 텃밭의 무와 배추를 살펴보았다. 두둑 위로 덮었던 포대기를 막 걷을 때는 무 싹이 노란 색이었는데, 하루 사이에 쪼글쪼글했던 떡잎은 활짝 펼쳐지고 연둣빛을 띤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알을 낳으러 오는 배추흰나비 떼는 보이지 않았다.
이슬이 먼저 올라앉은 자전거 안장을 목장갑으로 쓱쓱 문질러 닦았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도두리 3반뜸에 못 미쳐 자전거 머리를 돌렸다. 아침 안개를 두른 대추리는 신비스럽고 어두운 꿈속의 마을처럼 논 끄트머리에서 부양한다. 논두렁을 진한 녹색으로 뒤덮은 콩 포기들, 나비의 날개보다 얇은 연노랑 꽃잎이 은은한 향을 뿌리는 달맞이꽃, 풀 속에서 튀어 오르는 풀벌레 소리, 농기계 창고의 함석판이 드러내는 시간의 흔적들…. 연보라와 연청, 자줏빛 나팔꽃 무리를 보았고 안개 속에 늘어뜨려진 능수버들의 가지를 보았다. 밝아 오는 하늘에서는 여덟 마리의 물오리가 해를 보며 날아갔다. 어린 닭들이 횃대에 앉아 깃을 다듬는 아침이다.
J가 모로 누워 책을 읽으면, 별이는 그 옆에 가만히 엎드려 눕는다. 식전에 J는 텃밭2에 가서 상추씨를 뿌렸다. 나는 J가 상추씨를 뿌린 자리 옆에 쑥갓 씨를 뿌렸다. 쑥갓의 종자는 빈집에서 채집한 것으로, 입봉일 2002년에 유효 기간이 2년인 덴마크 산 씨앗이었다. 혹시나 하면서 씨를 넉넉히 뿌리고 흙을 덮었다. 텃밭에는 오늘 씨앗을 뿌린 상추와 쑥갓 외에 당근과 열무, 알타리 무, 김장파, 시금치를 심을 계획이다.
8월 28일 오늘은 빈집 철거 예정일이었으나 마을은 그저 조용했다. 엷은 구름이 흩어지면서 파란 하늘이, 하늘이라는 거대한 물고기의 푸른 등이 솟아났다. 저녁에는 잠시 초승달이 보였다. 길도, 들도, 먼 불빛도 모두 희미할 뿐인 시야. 전경들을 위한 간이 화장실은 세워둔 푸른 관(棺) 같았다.
오른손 엄지손가락 위에, 으깬 봉숭아 꽃잎을 얹어 비닐로 동여 묶고 잠자리에 든다.
*2006. 8. 31.
낮에 텃밭2에 가서 ‘골파’를 심었다.
아주 얕은 두둑을 호미자루 하나 간격으로 쌓고, 고랑에 반 뼘 간격으로 파 종자를 꼭꼭 눌러 심은 후, 흙을 살짝 덮는다. 겸이네 할머니가 주신 것은 J가 모두 심었고, 나는 김월주 아주머니께서 주신 종자를 심었다. 저녁에는 무 싹이 자라는 밭에 왕겨를 뿌렸다. 물 조리개에 물을 떠서 왕겨 뿌린 자리에 물을 준다. 무순은 납작납작한 잎으로 햇살을 모으며 잘 자라고 있지만, 가는 줄기며 연한 잎 색깔이 어딘가 영양이 부족한 모양을 하고 있다. 비가 오지 않아서 배추도 많이 시들었다. 고등어찌개로 저녁밥을 먹고 나서 P가 텃밭1에 물을 마저 주었다.
일을 하지 않는 동안 방 안에서 뒹굴며 '솔부엉이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었다. 저녁에는 비대칭이 보내온 구호 물품-연필 깎는 칼, 귀이개, 연필, 후추, 생강차, 커피-을 전달 받았다.
촛불 문화제가 국방부 앞에서 열려 도두리 주민들은 오후 세시 50분에 마을회관 마당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출발하였다. 관광버스 아저씨는 출발 전 노인정에서 라면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마을에 단골로 들어온다고 하셨다. 매번 검문소를 통과할 때마다 칠순 회갑연, 팔순 잔치, 누구 결혼식 때문에 가는 거라 둘러댔는데, 오늘은 누구네 돌잔치가 있어서 사람들을 태우러 가는 거라고 말했다한다. 겸희 할머니, 조정숙 할머니, 재석이 네 아주머니, 선화 네 아주머니, 이장님 댁 아주머니, 만진 아저씨, J가 촛불행사에 참석했다.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나는 마을에 남았다.
오늘, 지킴이 일기장에 담희 어머니가 쓴 글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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