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단비가 내리는 황새울에서_2006

   
 
"내일이면 다시 군용 헬리콥터가 떠오르겠지요"
[황새울 편지31] 단비가 내리는 황새울에서 
 
 
마리아 , 2006-05-23 오후 2:51:17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오랫동안 가물었는데, 어젯밤부터 단비가 내립니다.
매일같이 들려오던 굴착기 소리가 멎었습니다. 논 위를 달리면서 외치던 군인들의 구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검은 흙덩이를 비집고 바늘처럼 가는 벼이삭이 돋아 자라는 황새울 들판이 오늘은 잠잠합니다. 비는 종일 조금씩 내리며 고요함을 선물로 주었지만, 그 고요함은 가슴속에서 들려오는 불안과 고통의 숨소리를 더욱 부풀립니다.
 
우산을 펼쳐들고 집을 나서서 할머니들이 계시는 노인 회관으로 갔습니다.
할머니들은 둥글게 모여 앉아서 화투를 치고, 몇 분은 스티로폼 조각을 베고 누우셨습니다. 십 원짜리 동전들이 짤랑거리더니, 곧 화투장이 담요 위에 깔렸습니다. 화투에 열중한 할머니들의 손놀림이 잽쌉니다. 손에 들어온 패가 불만스러운 한 분이 뭐라 군소리를 하십니다. 눈을 감고 누웠던 할머니는 뜬금없이 ‘아이구…. 나가라고 하는데 워디로 나가여’하고 혼잣말을 하고는 입을 닫으셨습니다. 행정대집행을 겪은 후 모든 것들이 바뀐 줄만 알았는데, 지난 가을에 처음 노인 회관에 들렀을 때와 같은 광경을 마주하니 기분이 묘합니다. 가방을 들고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부엌에서는 촛불 행사 때 나눠줄 달걀을 삶는 솥이 가스 불 위에서 하얀 김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비가 내려 마을길은 한산합니다. 솔부엉이가 사는 숲 앞에 멈춰 서서 혹시나 하고 솔부엉이가 있나 두리번거렸지만 오늘도 보이지 않습니다. 숲 맞은 편 점방 안에 낯익은 얼굴들이 보입니다. 가게 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아, 그전에 잠시 우리 텃밭이야기를 할까요.
 
이른 봄 까지 만해도 이곳은 마른 고춧대와 쓰레기뿐인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지킴이들이 고춧대를 뽑아서 태우고, 두둑을 다시 쌓고, 거름더미를 만들었습니다. 저녁에 직파작업을 하고 돌아와 텃밭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노인 회관에서 ‘퇴근’하시던 할머니들이 우리 밭 앞을 지나다 멈춰 섭니다. 너 댓 분이 처마 아래에 앉아서 우리가 일하는 쪽을 바라보면서 영농지침을 한마디씩 일러주십니다. 상추씨 뿌린 자리에는 짚을 덮는 게 아니라는 둥, 들깨를 심으려면 아직 멀었다는 둥, 마른 콩대 같은 건 둬 봤자 썩지도 않으니 불태우라는 둥…. 난 아직 시집을 안 갔는데도, 그럴 땐 정말 할머니들이 전부 시어머니처럼 느껴집니다. 한번은 목화를 재배하려고 씨를 뿌렸더니, 아까운 땅에 먹지도 못하는 걸 심는다고 다들 한 말씀씩 하셨습니다. 뭐라고 둘러댈 거리를 찾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구원 투수’가 되어 주셨습니다.
 
“내비 둬, 심심해서 저러는 겨. 지들 맘대루 하게 놔둬….”
 
어쨌거나 심심풀이로 텃밭농사를 지으면서 채소 모종도 구해서 심고, 이런저런 씨앗들도 많이 뿌려 두었습니다. 지킴이들이 여름에 농활을 오면 쪄먹으려고 옥수수도 많이 심었습니다. 좀 전에 밭엘 나가보니, 비를 맞고 떨어진 아카시아 꽃들이 땅위에 눈처럼 덮여 있었습니다. 마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오는 팝콘을 연상시키더군요. 얼마나 예쁘던지.
점방에는 작은 방 하나가 딸려 있습니다. 그 비좁은 방에서도 화투판을 벌여 자주 노시는데, 오늘은 화투보다 재밌는 장난감이 좌중들을 사로잡고 있었습니다. 바로 3반 반장님네 아기 ‘나연이’입니다. 나연이는 방안으로 들어서는 저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방긋 웃었습니다. 아기가 한참 저를 쳐다보니까 아주머니들이 신기해합니다.
 
“헤어스타일이 비슷해서 자꾸 보는가 봐요.”
 
나연이랑 아주머니들 모두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립니다. 나연이는 아기라서 머리카락이 조금밖에 안 났고, 저는 행정대집행 이후에 삭발을 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동네 분들은 저의 짧은 머리를 보고 처음에는 많이 놀랐지만, 요즘은 손바닥으로 제 머리통을 박박 쓰다듬으면서 ‘짧은 머리가 더 잘 어울린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주머니들은 마을길에서 검문하는 경찰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전에는 아무렇잖게 드나들던 길목에 전경들이 배치되어 주민들도 평택에서 대추리로 차를 타고 들어오는 동안 세 차례나 검문을 받습니다. 무인 감시 카메라까지 작동되고 있습니다. 병원이나 교회에 다녀오면서 검문을 하는 경찰과 실랑이를 벌인 일을 전하며 이제는 집에 가는 길까지 경찰들이 막는다며 한탄하십니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도, 경찰이 차를 세워서 신분 확인을 한다며 이것저것 캐 묻길래 창문을 내리고 욕을 했더니 그제야 보내주더란 말씀도 하십니다. 주민들이 고통에 겨워 제 발로 떠나도록 내몰 작정을 한 게 아닌가 싶을 만큼 가혹한 행위들을 정부가 하고 있습니다. 농사짓는 것밖에 모르고 살아온 분들께 말입니다.
 
글을 쓰다가 촛불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비가 내려 오늘은 천주교 공소에서 촛불 행사가 열렸습니다. 관절이 불거지고 거친 손들이 촛불을 밝히고 앉았습니다. 미군기지 확장 반대를 위해 함께 싸우고 있는 최종수 신부님은 ‘우리의 아이들이 미국이 일으키는 전쟁의 총알받이가 되지 않도록 이 땅을 지키면서 끝까지 싸우자’고 말했습니다. 뒷자리에 앉았던 저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을 봤어요. 신부님은 “제가 마음을 담아서, 사랑한다고 인사드리겠습니다.”하면서 두 팔을 벌려 머리위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보이고 나서 자리로 돌아가 앉으셨습니다. 이어서 나오신 송재국 할아버지.
 
“우리 주민은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첫 말씀을 이렇게 열었습니다. 그리고 긴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이 싸움은 우리가 분명히 이겼습니다. 국방부는 이 싸움에서 반드시 지고, 져야 이기는 겁니다. 죄 없는 서민들을 죽이는 것을 국민들이 훗날 반드시 심판할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방부는 진 것입니다. 우린 만신창이가 되고 병들어 쫓겨난다고 하더라도 후손들은 우리가 끝까지 싸운 것을 인정해 줄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이겼습니다.… 국방부에서 나온 사람이 ‘우리는 결국 법대로 합니다’ 그러더군요. 우리 애절한 얘기 들으면은 뭐가 좀 바뀌지 않을까 했는데, 끝에 가서 하는 이야기가 그랬습니다. 법이 아닌 법으로 법대로 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법은 2월에 농사 준비를 마치고 나서 모판에 흙 담고, 논 갈고, 못자리 준비하는 것입니다. 못자리한 게 잘못되면 또다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돌 위에 둔다고 불 위에 둔다고 볍씨에 싹 나는 게 아니에요. 미군기지 확장하는 걸 염두에 뒀다면 여러분 땅이 이만저만해서 필요하니 내 줄 수 없겠냐고 주민들 의사를 타진하고 순서에 맞게 했어야지요…….”
 
촛불이 꺼지고, 할머니들이 가져오신 따뜻한 달걀을 저마다 손에 쥐고 사람들은 공소 문을 나섰습니다. 지킴이들은 남아서 공소 바닥을 쓸고, 방석을 정리한 후 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비가 그쳤더군요. 숲으로 날아든 솔부엉이가 작은 소리로 울었습니다. 내일이면 다시 황새울 들판에서 굴착기가 땅을 파헤치고, 하늘에 군용 헬리콥터가 떠오르겠지요. 그리고 철조망 너머의 논에서는 벼들이 비를 먹고 더 푸르게 자랄 것입니다. 가을에는 철조망을 걷어 낸 들판으로 가서 저 어린 벼들이 키워낸 낟알들을 수확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저의 글은 여기서 줄입니다.
 
 
  
2006-05-23 오후 2:51:17   © CoreaFocus.com
가져온 곳 :  블로그 >코리아포커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