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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그린 <이수동화백>+ 유영석 <눈물나는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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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식 연인들의 은밀한 사랑 -프라고나르<그네>+델리스파이스<고백>

공식적인 연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사랑을 속삭일 수 있지만 비공식적으로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연인들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달려가는 사랑을 잡을 수 없는 비공식적인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기 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남의 눈을 피하는 것이다. 그들은 남에게 자신들의 사랑을 숨기기 위해 지략을 짜낼 수밖에 없다.

 

쾌락을 향해 질주하는 비공식 연인들의 은밀한 사랑 행위를 표현한 작품이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1806)의 ‘그네’다. 그네는 전통적으로 불륜을 상징한다.

‘그네’는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과 그네를 밀고 있는 늙은 남자 그리고 그네 앞에 있는 젊은 남자의 삼각관계에서 속임수를 써야 하는 젊은 연인들의 심리를 행동을 통해 세밀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처음 구상한 사람은 줄리앙 남작이다. 남작은 가톨릭 주교가 남작의 애첩이 타고 있는 그네를 밀고 자신은 그네 밑에서 애첩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의뢰했다. 하지만 처음 줄리앙 남작에게 의뢰받았던 화가 가브리엘 프랑수아 도엥은 가톨릭의 반발을 우려해 작품을 거절하고 그 당시 왕립 아카데미에 막 회원이 된 젊은 화가 프라고나르를 추천한다.
프라고나르는 작품을 제작하면서 남작이 놀림감으로 묘사하기를 원했던 주교의 역할을 배제한다. 그는 그네를 밀고 있는 늙은 남자나 정원에서 여인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사회적 신분을 불분명하게 표현하면서 내용도 젊은 연인들이 나이든 남편을 속이는 것으로 바꾸었다.

늙은 남자가 밀고 있는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은 정원 숲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와 은밀한 시선을 나눈다. 젊은 남자의 시선을 의식해 두 다리가 훤히 보일 정도로 그네를 타고 있는 여인은 슬리퍼 한 짝을 벗어 남자에게 던진다.
이 작품에서 신발은 여인의 잃어버린 순결을 의미하며 젊은 남자의 왼쪽 팔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 또한 여인이 입고 있는 장밋빛 드레스와 젊은 남자가 꽂고 있는 장미는 그들이 불륜에 빠진 연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화면 왼쪽에 있는 큐피드 조각상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있다. 큐피드의 몸짓은 불륜에 빠진 젊은 연인들의 비밀을 지켜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화면 오른쪽 그네를 밀고 있는 늙은 남자 옆에 있는 푸티 조각상 중 하나는 젊은 연인들을 바라보고 다른 푸티는 늙은 남자 앞에 있는 개를 바라보고 있다. 전통적으로 푸티는 사랑의 중계자로 표현되며 개는 정절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이 작품에서 개는 두 사람의 불륜을 알리려고 짖고 있지만 늙은 남자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프라고나르는 이 작품에서 연인들의 달아오른 감정을 울창한 정원으로 표현했다. 사물의 의미를 강조한 그는 귀족들의 정숙함과 품위, 인격을 상징하는 신발을 벗김으로써 귀족들의 품위를 풍자했다. 이 작품으로 프라고나르는 궁정화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15646
박희수〈작가·아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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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윤도현<후회없어>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남부 준데르트에서 태어났다. 화가가 되기 전 상업화랑의 직원, 교회의 보조교사, 책방 점원, 전도사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다. 1880년 스물일곱의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브뤼셀, 헤이그, 에텐, 드레덴 등지를 전전하며 화가 수련을 쌓아나갔다.

 

반 고흐가 가장 흠모한 화가는 밀레였다. 1883년 12월 경제적 어려움으로 목사인 아버지의 새 부임지 누에넨으로 돌아온 그는 밀레를 본받아 농민화가가 될 것을 결심했다. 땅에서 땀 흘리며 노동하는 농민과 노동자들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꼈던 그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정직한 삶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내려 노력했고, 1885년 <감자 먹는 사람들>로 그것을 증명했다.

 

1886년 2월, 반 고흐는 새로운 자극을 위해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 오기 전, 네덜란드 그림과 프랑스 사실주의 회화 정도만을 알았던 그는 파리에서 인상파의 밝은 그림들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파리에 도착한 즉시 자신의 갈색조 팔레트가 얼마나 구식인가를 깨달은 것이다. 인상파 미술을 접하면서 그의 팔레트는 점점 밝아졌으며, 붓터치는 강렬한 색채로 진동했다.

 

파리에서 반 고흐는 인상파의 빛과 색을 다루는 방법과 신인상파의 점묘기법을 이용해 도시의 카페, 거리, 센강 주변 풍경 등을 자유롭게 그려나갔다. 파리 시대는 그만의 독자적인 미술을 만들기 위한 예술적 실험기였다.

 

반 고흐에게 파리는 인상파라는 새로운 미술의 세계에 눈뜨게 해주었지만 추운 겨울과 과로, 퇴폐적인 생활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인 피로는 그로 하여금 다시 파리를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 인상파 미술의 극복과 자기만의 새로운 미술의 완성, 평생의 목표였던 농민미술의 추구, 자연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그는 1882년 2월 파리를 떠나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향했다.

 

아를에 도착한 그는 하루종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림의 주제를 찾았고 아무데서나 그림을 그렸다. 심지어 밤에도 거리에 나가 그림을 그렸다. 식사를 주문하는 일 외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동생 테오와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는 일로 모든 시간을 보냈다. 아를에서 반 고흐는 밝고 강렬한 색채, 명료하고 간결한 구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자신만의 회화세계를 구축해나갔다.

 

아를은 반 고흐가 가난으로 고통받는 동료작가들과 함께 작업하며 예술적 영감을 나누는 화가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려던 장소다.

 

이 꿈을 위해 그는 고갱, 베르나르 등에게 편지를 보냈다. 1888년 10월 어렵게 반 고흐의 요청을 수락한 고갱(1848~1903)이 아를에 도착했다. 세계미술사에서 가장 극적인 만남의 순간이었다.

 

이 빛나는 두 거장은 아를의 <노란 집(The yellow house)>에서 두 달 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함께 그림을 그렸고 예술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강렬한 개성을 지닌 두 대가는 서로 다른 예술관과 생활태도의 차이로 갈등을 겪다가 급기야 1888년 12월 23일 고흐가 면도날로 고갱을 위협하고, 자신의 왼쪽 귀를 자르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귀를 자른 사건은 단순히 그를 육체적으로 괴롭히는 것에서 끝난 일이 아니었다. 이 사건은 향후 그의 일생을 결정하는 사건이 되었다. 이후 고흐는 아를 시민에게서 미치광이로 낙인찍혀 독방에 갇히고, 1889년 5월 생레미의 생폴 드 무솔 요양소에 입원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열정적으로 자연을 화폭에 담아냈다.

 

생의 말기, 심각한 정신병 증세를 겪던 고흐는 치료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1890년 5월 가셰 박사가 있는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향한다.

 

오베르의 자연에 만족한 고흐는 정신적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강렬한 집중력을 지니고 작업하면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감동적인 그림들을 제작했다. 1890년 고흐가 파리의 앙데팡당 전에 <아이리스>와 <별이 빛나는 밤에>를 전시했을 때, 인상파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고흐의 성공을 확신했다.

 

그러나 고흐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자신의 성공을 보지 못한 채 1890년 7월 29일 오베르 쉬르 우와즈의 밀밭에서 자신을 향해 권총을 쏘았다. 세상이 그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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