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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현목사님_

오늘은 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외적인 쇄신만이 아니라, 내적인 쇄신을 요구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 능력, 돈, 명예 등으로 무장한 것에서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으로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이 모여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는 눈에 보이는 건물도 교회이지만

더욱 중요한 교회는

하느님이 살아 계신 곳, 예수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우리 자신', '우리 가정', '우리 공동체' 입니다. 

 

 

"사랑하는 동포 여러분, 여러분 각자가 바로 교회입니다.

여러분 각자가 또 다른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1980년에 군사 독재에 항거하는 가난한 이들의 편에 서서

정의를 외치다 암살당한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님의 순교 실화를 그린

영화 '로메로' 에서 주인공 로메로 대주교님은

점점 암울해져만 가는 정치 상황 속에서

모든 희망을 상실한 동포들을 향해

끊임없이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했습니다.

 

 

 

매일의 삶에 충실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를 때

우리는 그 어떤 화려한 성전보다도

가치있는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루카가전하는거룩한복음입니다_ 07.02.13 21:07
 
요한 (ray9999)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루카 11,37-41)

 

37  그 때에 예수님께서 다 말씀하시자,어떤 바리사이가 자기 집에서 식사하자고 그분을 초대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집에 들어가시어 자리에 앉으셨다.

38  그런데 그 바리사이는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먼저 손을 씻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놀랐다.

39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너희

      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40  어리석은 자들아,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41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 질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 찬미 예수!^^

바리사이들은 늘 율법과 규정을 준수하는 걸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도 중요하나, 실상,더 필요한 것은  사랑이 담긴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을 사랑하고 예를 다 하는 맘으로,식사전에 손과 그릇을 깨끗이 닦는 것보다 우리들의 마음을 정결히 하고 돌아 봄이 하느님이 더 기뻐하시리라 믿습니다.

저두 살아가면서 신앙인으로서 보이는 겉모습에만 많은 신경을 쓰고,지킬 의무를 빠뜨리지 않으려만 애썼습니다.미사를 거르지 않고,시간을 내어 봉사를 하고,고해성사를 하고 등등.

이런 여러가지 것들이 진정 그분을 위한 일인지 아님,나의 마음이 편해지려 하는 것인지 간혹 내게 의문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받은 많은 것들을 이웃에게 사랑으로 나눌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의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에 저의 맘을 억누르는 것이 '용서'란 단어 입니다. 이 용서 또한, 그 분을 사랑하는 맘이라면,안 될 것이 없으나,제겐 넘 어렵네여~~!^^당신께서 주신 많은 사랑을 나눌 수 있고, 그 사랑으로 서로서로 용서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제 맘이 편하기 위해서가 아닌,진정으로 그 분을 사랑하는 맘으로~~!^^ 

(루카 10,25-37)

    그때에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
의 하느님을 사랑하고’‘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찬미예수님,

 '누군가에게 이웃이 되어주는 것'을 생각하기 앞서 내 가까이의 사람들에게 진정한 이웃이, 진정한 친구가, 진정한 동료가, 진정한 형제가 되어주었는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진정 그들에게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처럼 그들을 사랑해주고, 아껴주고, 걱정해주고, 돌봐주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랑을 바라기만 하고,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투덜거린 것을 반성해봅니다.

"사랑", "사랑" 쉽게 말하면서 진심으로 내가 누군가를, 나 자신을, 그리고 주님을 사랑했는지 돌아보았습니다.

내가 하는 사랑은 쉽고도 내멋대로 이면서, 나는 그 사람에게 희생을 바탕으로 한 사랑을 요구하기만 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다하고, 내 목숨을 다하고, 내 힘을 다하고, 내 정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을 새삼 마음에 새깁니다.

 그렇게 다시 사랑을 시작해보렵니다.

주님을, 나 자신을, 그 사람을, 당신들을, 그리고 이웃들을...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4-15


그때에 4 많은 군중이 모이고 또 각 고을에서 온 사람들이 다가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5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들이 먹어 버리기도 하였다.
6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 싹이 자라기는 하였지만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한가운데로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함께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자라나서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외치셨다.
9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 비유의 뜻을 묻자, 10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11 그 비유의 뜻은 이러하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12 길에 떨어진 것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악마가 와서 그 말씀을 마음에서 앗아 가 버리기 때문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3 바위에 떨어진 것들은, 들을 때에는 그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한때는 믿다가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이다. 14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15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듣는 사람들이야말로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는 사람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밭에 떨어진 옥수수 씨앗 한 알이 불과 몇 달 만에 무럭무럭 자라 몇 십 배, 몇 백 배의 결실을 맺는 옥수수로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 하느님의 신비로운 창조 활동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만큼 우리에게 풍성한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분의 은총은 자연과 농사일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일상사에서도 일어납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시작한 작은 일이 커다란 사업으로 번창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하느님 말씀의 놀라운 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자주 잊고 살아갑니다. 자연과 인간사 안에서 일어나는 하느님의 기적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기적을 볼 수 있는 믿음을 겸손하게 청해 봅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9-13


그때에 9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0 예수님께서 집에서 식탁에 앉게 되셨는데, 마침 많은 세리와 죄인도 와서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11 그것을 본 바리사이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2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13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스스로 하느님을 찾았다고 생각하는데,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를 찾았다고 하십니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임금의 부당한 행위를 고발하는 예언자가 되라고. 당신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가 되라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는 봉사자가 되라고. 하느님의 부르심에는 높고 낮음도, 잘나고 못남도 없습니다. 우리의 재능과 잘남을 보고 선택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께서 선택한 사람에게 권능과 힘을 주십니다. 사도들이 그랬고, 예언자들이 그랬습니다. 오늘날 사제로 불린 사람, 수도자로 불린 사람, 그리스도인으로 불린 사람 모두 예외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말씀을 따라 살라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제 우리의 응답만이 남아 있습니다. 세관의 마태오처럼 우리의 결단만 남아 있습니다.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3-26


 

그때에 23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24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25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의 세대를, 서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놀이를 할 수 없는 어린이들과 같다고 한탄하십니다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려고 힘쓰면 오히려 죽게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하는 말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주님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면 주님께서 그 사람의 목숨을 구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해당되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사랑 때문에 기꺼이 목숨을 다한 사람은 사랑 안에 언제나 살아남는 법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사랑합시다,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계명입니다.

 

사랑에 관한 수많은 정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의 정의만큼 명확한 것이 없습니다. 사랑이란 참아 주는 것, 기다리는 것, 성내지 않는 것, 모든 것을 믿고, 바라고, 견디어 내는 것……. 내가 과연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알려고 하면 바오로 사도가 내린 이 정의에 자신을 대입하면 쉽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참아 주었고, 기다렸고, 친절하였고, 모든 것을 믿고, 바라고, 견디어 내었습니다. 그 정도에 따라 우리의 사랑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송두리째 당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내놓으신 주님의 사랑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지 않을까요? 사랑만이 사랑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정도만큼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6-31>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

 

    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 선택이라는 단어에서 신앙인이라는 것을 떠올려봅니다.

    하루에 몇 번이나 내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혹시 기도하거나 미사에 참례할 때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신앙인은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는 사람이다. 설사 그 약속이 인간적인 눈으로는 불가능해 보이

   더라도 말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약속을 꼭 이루시는 분이다. 그렇지만 패스트푸드처럼 그렇게

   즉석으로 이루시는 분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은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되, 당신이 보시기에 합당한 때에, 우리에게 보탬이 되는 방식으로 이루어

   주신다. (신앙인 중에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41-51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유다인들이 그분을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하였다.

 

42 그들이 말하였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우리가 알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할 수 있는가?”

 

4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끼리 수군거리지 마라.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릴 것이다.


45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이 말고 누가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

     하느님에게서 온 이만 아버지를 보았다.

 

4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48 나는 생명의 빵이다.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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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모임을 첨 신청했을 때.. 신청서 맨 윗쪽에 써 있던 글귀...

<성서를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 성 예로니모 - >

그 말을 읽으면서, 성서를 알면 그리스도를 알게 되나? 이랬습니다.^^

 

정말 성서는 그리스도에 대한 책으로서,

읽다 보면 신구약 모두 그리스도를 향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또 성서를 읽으면서 예수님의 뒤를 따르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그래서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온다> 고

오늘의 복음에서도 말씀하고 계시나 봅니다.

실제로 성서모임을 하면서 신앙이 깊어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되뇌어 보게 되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께 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늘 걸어가시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의 인생이 하느님께서 보내 주신 소명을 다하는 삶이고, 

그 삶은 혼자 갈 수 없고, 오로지 예수님과 함께 갈 때만이

넘어지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면서요... 

 

마태오 6.1-6.16-18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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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달에 성서가족 일일피정 참 소중한 나를 찾아서 를 통해서 나는 참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과 더불어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도 참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는 피정이었습니다.

 

피정 중에 너는 특별하단다 라는 만화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나무사람 마을에서 특별한 사람이 되기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상점 받기를 좋아합니다.

 

상점이 많이 붙어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벌점이 많이 붙어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조롱을 받습니다.

 

벌점 투성인 펀치넬로는 엘리 아저씨를 찾아갑니다.

 

엘리 아저씨는 펀치넬로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단다.

 

  난 네가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해.

 

왜냐하면, 내가 널 만들었기 때문이지. 너는 내게 무척 소중하단다.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특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아무도 것도 없습니다.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서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너희는세상의빛!!! 07.02.13 21:23
 
요한 (ray9999)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오 5,13-16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처럼 본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작지만 빛과 소금의 역할을 생각하며 충실히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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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현목사님.

 
너는 나를 잘 모를지 모르지만 나는 너를 너무도 잘 안단다(시139:1)너의 앉고 일어섬을 알고(시139:3)너의 머리털을 다 셀 정도지(마10:29-31) 이는 내 형상대로 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창1:29) 너는 항상 내 안에서 살며 기둥하며 있느니라(행17:28)너는 나의 소생이니까(행17:28)복중에 짓기 전에 내가 너를 알았고(렘1:4-5)창세전에 내가 너를 택하였도다(엡1:11-12) 너는 우연해 생긴것이 아니다. 너를 위해 정한 날이 내 책에 다 기록되어 있었고(시:139:15-16) 너의 태어날 때와 살 곳을 정하였으며(행17:26)너를 신묘 막측 하게 만들어(시139:14)어미의 모태에서 지었고(시139:13)내 너를 취하여 태어나게 하였다(시71:6) 나를 모르는 자들이 나를 잘못 알렸다만(요8:41-44)나는 너와 함께 있는 사랑이니라(요일 4:16) 이 사랑을 너에게 아낌없이 주련다(요일3:1)너는 나의 자녀이고 나는 너의 아비니라(요일3:1) 육신의 아비가 줄 수 없는 것을 주리니(마7:11)나는 온전한 아비니라(마5:48)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내게로 부터 오나니...(약1:17)네게 있어야 할 것을 내가 이니라(마6:31-33) 너를 향한 나의 생각은 평안이요 너의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것은..(렘29:11)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렘31:3)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을 헤아릴수 조차 없구나(시139:17-18)나는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 하여 노래 부르며(습3:17)너에게 복 주기를 멈추지 아니하리니(렘32:40) 너는 나의 소유니라(출19:5) 내가 기쁨으로 너에게 복을 주며 나의 마음과 정신을 다해 너를 이땅에 심으리라(렘32:41) 보아라!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네가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구하면 나를 만나리니(신4:29)나를 기뻐하라,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리라(시37:4) 네가 소원을 두고 행하기를 원하노라(빌2:13)네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 보다 넘치도록 주리니(엡 3:20) 나는 너의 위로자니라(살후(2:16-17)모든 환난 중에도 너를 위로할지니(고후1:3-4) 너의 마음이 상할 떄 내가 너를 더욱 가까이 하리라(시34:18) 양을 안은 목자같이 내가 너를 품속에 안으리라(사40:11)언젠가 너의 뒤에서 모든 눈물을 씻고(계21:3-4)이땅에서 얻은 모든 고통과 아픔을 없애리니(계21:3-4)내가 예수를 사랑한 것 같이 너를 사랑함이라(요17:23)예수는 나의 형상이라(히1:3)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을 보이고(롬8:31)너의 죄를 묻지 않으며 (고후5:18-19)너와 화목하게 하려고 그가 죽었나니(고후5:18-19)그의 죽음은 너를 향한 나의 사랑이라(요이17:26) 너의 사랑을 얻기 위해 나의 소중한 아들을 아끼지 아니했다(롬8:31-32) 아들의 사랑을 받는 자는 나를 받는 것이오(요일 2:23)나의 사랑에서 너를 끊을 것이 없느니라(롬8:38-39) 네가 돌아오는 날 하늘에서는 기쁨의 잔치를 열리라(누15:7)나는 언제나 너의 아비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나(엡3:14-15)너는 나의 자녀가 되기를 바라느냐?(요1:12-13) 너를 기다리며(누15:11-32) -너를 사랑하는 아비로 부터-


   
  보낸이 : 안재현 (2007-01-10 01:06:00)  
   
     


 
히브리어를 배워야지~ --;;
아니면 히브리어 원어 분해성경이라는게 있는데.. 말하자면 히브리어의 문학적 / 문법적 표현들을 쉽게 풀어 설명해 놓은 주석 개념이지... 좀 비싸고~
아니면 에스라서원을 비롯해서 평신도에게 헬라어 히브리어를 가르쳐주는 곳이 있으니까.. 배우는게 가장 좋겠지~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오 5,13-16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처럼 본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작지만 빛과 소금의 역할을 생각하며 충실히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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