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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1
    변증법적 유물론의 혁명적 함의
    음유시인

변증법적 유물론의 혁명적 함의

 

 변증법(dialectic)이란 본래 고대 그리스에서 쓰이던 철학 용어였는데, 이것 자체가 중요한 철학적 개념 내지 주제로 부상한 때는 18세기 독일 철학자 헤겔 이후부터였다. 따라서 변증법의 의미는 헤겔을 전후하여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일반적으로 변증법이라 하면 헤겔이 정식화한 철학을 가리키며 이 글에서 논의할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것도 헤겔의 변증법을 유물론적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계승한 마르크스의 사상이다.

 

 유물론 자체도 철학적으로 심오하게 논의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이 글의 주요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핵심만 요약하고 넘어가자면, 관념론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물질세계가 관념을 형성한다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를테면 '여자는 육아와 가사노동에 전념하고 남자는 사회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관념이 성별 분업이라는 현실을 낳는 게 아니라, 성별 분업을 전형적인 것으로 만드는 물질세계의 동역학이 앞서 말한 관념을 형성한다.

 

 돌아가서, 헤겔의 변증법을 말하자면 크게 세 가지의 근본 명제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변화와 운동'이다. 세상 모든 것은 생성되어 변화하고 소멸하는 '과정' 속에 있다. 이것이 출발점이다. 이게 왜 중요한지 알려면, 형식논리학과 비교해보는 게 좋다. 형식논리학에서는 A는 A일 뿐, A인 동시에 B일 수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변증법은 A가 A일 수도 B일 수도 있다고 본다. 무슨 말인고 하니, 개가 의자에 올라가기 위해 앞발을 걸친 채 서 있을 때, 형식논리학은 '개가 의자위에 올라가 있다'거나 '개가 바닥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개는 두 가지 어떤 상태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증법은 '개가 의자에 올라가는 과정에 있다', 즉 '개는 의자위에 있기도 하고 바닥에 있기도 하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재는 '모순을 통한 변화'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는데, 그렇다면 변화를 일으키는 '동력'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헤겔은 '모순된 힘, 대립되는 힘, 갈등하는 힘'을 답으로 제시한다. 이는 헤겔이 변증법을 발전시키던 시점이 프랑스 혁명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는 사실과 무관치 않다. 헤겔은 힘과 힘이 격돌하는 사회현상을 보며 모종의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다만 서로 대립되는 관념들-군주제 이념과 공화제 이념, 신분 사상과 평등 사상 등의-이 부딪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와중에서, 관념론자 헤겔은 그 관념들이 뿌리박고 있는 물질적 이해관계를 포착하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마르크스는 그 한계를 비판하며, 변화를 추동하는 동력은 대립되는 물질적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들의 투쟁이라는 점을 명확히 밝힘으로써 헤겔을 비판적으로 계승한다.

 

 세 번째는 '양질 전환'이다. 양의 변화는 질을 변화를 촉발한다. 물은 온도가 100도씨에 이르렀을 때 수증기로 질적인 변화를 한다. 이처럼 시장이 커지고 도시가 발달하고 상업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사회계급으로 떠올랐던 부르주아지는 일정 수준에 이르렀을 때 자신들의 발전에 명백한 제약으로 작용한 봉건제를 쓸어버렸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라는 완전히 새로운 사회 편제 방식이 확립되었다. 이런 일은 자본주의에서도 계속된다. 자본주의의 발달은 노동계급의 규모와 힘을 키웠고 거대한 생산력 발전을 이룩했다. 하지만 지구상 모든 인간을 비만으로 만들 수 있을만큼 엄청난 생산력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여전히 극한 빈곤에 시달리는 숱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끔찍한 경제위기와 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모두 함께 잘살아보자는 인류의 이상을 가로막는 장애물임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제는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무덤을 파는 세력'이라고 불렀던 노동계급의 정치적 지도를 통해 질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할 때이다.

 

 이와 같이 헤겔과 마르크스에 의해 변화의 논리, 계급투쟁의 논리, 혁명의 논리로 자리잡은 '변증법적 유물론'은 인간해방을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사상적 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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