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락된 이야기를 첨언합니다. ‚슈트트가르트 21’이라는 독일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 슈트트가르트시 중앙역 개조사업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이 있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히 분석하지는 못했지만 이 시민운동을 계기로 하여 녹색당이 처음으로 주차원에서 정권을 창출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이 시민운동은 주거권문제보다는 도시공간이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시민의 예민한 감각이 폭발한 운동이 아닌가 합니다.
재밌는 것은 ‚슈트트가르트 21’ 이 2011.11.27 국민투표에서58.8% (반대 41.2%)의 지지를 받았지만 행정법원의 판결로 사업 일부를 진행할 수 없게 된 상황입니다. 지하수방출과 종보호법(Artenschutzgesetz)에 걸려서 그리 되었습니다. 중앙역 앞 공원의 나무에서 사는 딱정벌레류인 Juchtenkäfer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야기죠. 공사를 진행하려면 나무를 다 베어야 하는데 벌목이 금지된 상황입니다.
도시공간이 공과 사가 어우러져서 예측 불가능한 그 어디론가 향하는, 예컨대 혁명으로 향하는 궤도에 오를 수 있는 공간이라면 도시재개발이,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한 공과 사의 엄격하고 적대적인 구분으로, 도시공간을 자본의 논리에 종속시키는 면에 주목하고 싶네요. 이런 맥락에서 주거권의 사회주의적 [재]해석이 필요하지 않나 하구요.
최근 용산, 두리반, 마리로 이어졌던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서, 대만의 사례도 흥미로운 점이 있네요. 한국의 경우는,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 받는 사례들은 (도시 하층의) '주거권'이 논의의 중심에 서기 보다는 도심재개발로 인한 '재산권'을 중심으로 전선이 형성되는 것 같은데요...그러니깐 정당한 보상 말이지요. (또 이런말하면 돌 맞을지 모르지만) 한국도 마찬가지로, 다분히 중간계층의 위기를 반영한 성격이 보이기도 하고요. 믈론, 도심재개발과 관련된 국가와 자본의 '탈취'와 각종 유무형의 폭력도 중요하지만요. 문제는 무슨 재산권이나 주거권이나 이러한 논의를 재기하거나 보다 충분히 논의를 진전시키지도 못하고, 일부에 미디어와 지식인, 학생, 활동가 등에 의해 투쟁 '쇼핑'으로 전유되는 것 같은데, 본격적으로 이를 다루는 단위도 거의 없고요. 사실, 뉴타운 열풍이 불었을 때도 이를 제대로 다루지도 못했던 것 같고요.
[페이스북에 올린 중국어의 한국어 원문]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도시 철거민 투쟁은 기본적으로 '생존권' 투쟁이다. 즉 재개발로 인해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세입자 또는 거주민(대체로 도시 빈민)이 그 투쟁의 주체들이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저소득으로 인해 빈곤한 지역에 저렴한 주거 비용으로 거주하는 자들로서 재개발로 인한 보상금으로는 자신의 직장 및 생활권에서 안정적인 거처을 구할 수 없어 더욱 먼 곳 내지 더욱 열악한 곳으로 이주해야 하기 때문에 종종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의 조건이 심각하게 열악해지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내가 흥미롭게 느껴지는 지점은 '왕가'가 그러한 의미의 철거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거권' 등의 권리 담론 하에 상당수의 학생 및 지식인 등이 결집해서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아마도 '주거권'을 폭넓게 해석해서 '현대화' 자체에 대한 비판과 결부 지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내가 보기엔 대중과 유리된 ‘지식인 중심적’ 담론이기 쉽다. 왜냐하면 ‘현대화’는 성찰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추구의 대상이기도 하며, 거기에서 물질문명 자체에 대한 거부의 논리를 직접 끌어낼 수는 없고, 이는 일반적 상황에서 대중의 요구도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시의 발전 과정에서 일부 낙후된 지역은 재개발을 통한 주민들의 삶의 조건 향상이 매우 절실하다. 이는 ‘반현대화’가 아니고, 도시 발전에서 재분배를 실현하는 ‘현대적’ 방식이다. 만약 지식인들이 문화적 유적이기 때문에 보존해야 한다고 해도, 개발을 통한 낙후된 주거 환경 개선의 실익이 더 크다는 공동체의 대중적 합의가 있다면 개발 자체를 반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도시 재개발에서 주거권 보장은 철거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의 명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수준의 주거 환경이 보상 등의 방식으로 보장되는지의 문제이다. 왕가의 경우는 그래서 주거권의 차원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물론 이에 앞서 도시 재개발이 올바른 방향으로 계획되었는지에 대한 내용 및 절차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왕가 사건을 통해서 이 문제가 이슈화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일반적 상황에서 도시 재개발은 낙후 지역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주민들을 몰아내 다시 게토 및 슬럼 등의 거주환경이 열악한 도시 빈민지역을 형성한다. 그래서 ‘주거권’의 문제가 중요한 것이다. 만약 대만의 상황도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그러한 약소자의 피해를 해결하는 집단적 참여의 과정 속에서 그들이 운동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왕가 사건의 경우 사건 자체가 그런 방식으로 이슈화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나는 도시 빈민의 주거권 문제라는 대중적인 의제가 지식인 중심적이고 탈계급적인 ‘반현대성’의 의제로 치환된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운동의 주체가 모호해지는 것은 아닌지 질문하게 된다. 사회의 진보와 변화는 지식인을 매개로 한 대중들의 각성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지식인과 활동가의 실천은 철저하게 대중들의 인식수준에 제약 받을 수 밖에 없다.
[추기]
그제는 수업 겸 학교에 갔다가 진광흥 교수에게 <我的精神自傳>의 영문제목에 관해서 물어보았다. 진 교수는 질문을 듣자마자 바로 당시 상황을 떠올렸는데, 전리군(錢理群, 첸리췬) 선생의 '정신' 개념이 정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편집진과 장시간의 토론 끝에 그렇게 결정하게 되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책 전체를 읽고나서 되돌아와 이해될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내 정신의 자서전'은 역시 월권 또는 오역의 산물이다. 사실 이 월권은 단순히 저자에 대한 것 뿐 아니라 독자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항간에 주체로서의 '정신'의 자서전으로 이해되는 것은 예견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축자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제목'만 보고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올바른 번역이다. 본래 책의 제목을 보고 이해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인데, <내 정신의 자서전>은 역자가 과도하게 개입한 사례이다.
내용적 측면에서 보면 사실 '정신현상학'과 가까운 느낌이 없지 않다. "학문 또는 지의 생성과정을 서술하는 것"이라는 헤겔의 정의에 비추어 보면, 사실상 전리군 선생의 '정신'도 '사상'과 '이데올로기'적 자원 및 그것이 결합되는 과정을 '나'의 역사적 인식 공간을 통해서 '현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문학적 실천'의 측면이 강한데, '나'라는 개별자를 통해서 인식 과정의 현상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나'를 소유 주체로 표현한 것은 번역에서 쉽게 바꾸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제가 보기에 '민족'을 다른 심급과 비교해서 그 모순의 운동이 주체를 갖지 않는 역사적/관계적/매개적 포괄 심급으로 보고, '민족 운동'을 다른 심급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관계적이고 관통적인 역사적 '민족주체성'에 대한 인식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민족'은 이른바 '전체 운동' 또는 '전선체 운동'을 전제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며, 궁극적으로 사회 변혁의 기초이자 방향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거듭 강조되어야 할 것은 '민족' 자체는 현실 정치 속에서 주체를 가지지 않는데, 주체를 갖는 실체화된 ‘민족 운동’은 아주 쉽게 국가주의화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와 별도로 ‘민족’이라는 관계적 심급을 제외하고, 나머지 심급들 내부에 과잉결정을 도입할 수 있을지, 또는 ‘민족’과 기타 모든 심급들 사이에 과잉결정을 도입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과잉결정과 관련해서 구조와 주체(화)의 관계의 문제도 논의될 필요가 있는데, 논의가 많이 복잡해져서 지금은 논의를 보류해야겠습니다.
암튼 그런 맥락에서 남한에서 80년대 말의 '이론주의'의 문제는 사실상 정세적으로 ‘계급’적 심급의 부상에 따르면서 일정하게 '정치중심주의'를 보여줬지만, 역사적 '민족주체성'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지식생산이 정치를 위한 각성으로서의 비판적 인식의 역할을 더이상 맡지 못하면서 오히려 정치로부터도 멀어지게 되는 역설적 현상인 듯 합니다. 그 이후에는 ‘정치’ 자체를 사고하기 위한 포스트 주의와 정치철학 담론들이 확대재생산되었던 것 같구요. 마르크스주의에서 '국가'의 문제는 궁극적 아포리아였고, 탈식민/탈제국의 문제설정 없이 이 문제를 지역/세계적 차원으로 확장하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지적 현실인 것 같습니다. 제3세계에서 이 문제는 식민과의 연속성 속에서 이해될 수 밖에 없었는데 남한에서는 계급과 민족을 하나의 ‘국가’ 내부의 구조인과적 심급으로 이해했던 것 같고 궁극적으로 한반도적 특수상황에서 둘을 결합하는 모델을 찾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사실상 ‘이론’만 남고, ‘사상’은 사라졌으며, ‘정치’의 역사적 기초는 이론적으로는 사라지게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학문이나 지식생산의 측면에서 보면, 포괄적 관계/매개의 주체성으로서의 ‘민족 주체성’을 여러 다른 심급을 통해서 표현해내는 것이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보입니다.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은 사실상 그러한 전형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비판적 혼합’은 과잉결정의 문제가 아직 남아 있어서, 규범적 수준에서만 긍정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론주의“의 문제와 관련해서 한국에서의 학문하기가 궁금하네요. 학교, 학과, 연구소, archives, 인력배치, 지원프로그램 등등. 이와 관련 structure in dominance/지배심급에 푸고의 dispositif가 겹치네요. 지배심급이 인식의 문제라면 푸고의 dispositif는 [권력이 현실적으로 관철되는] 서사의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식민/분단/냉전이란 지배심급하에서의 학문하기에도 „대안적 주체성“ 문제를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하구요. 관련 „타자되기“가 뭘까, 나아가 학문의 „타자되기“란 뭘까 궁금하네요. 플라톤이 „국가“에서 쫓아낸 „글쟁이“들이 떠오릅니다. 경계인으로서의 문학하기, 파울 첼란이 „Huhediblu“란 시에서 보여준 mimesis와 folie를 넘다드는 문학하기와 학문하기가 어떻게 „비판적 혼합“이 될 수 있을까 궁금하네요.
그리고 이건 결국 대안을 넘어서서 (독)Gegenmacht (counterpower)가, 그런 „장치“들이 어떻게 만들어져 가고 있는 가의 문제가 아닌가 하구요. 그리고 이건 „장치“와 함께 정치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 당의 문제가 아닌가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