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진광흥 선생 수업에서 나름대로 충분히 이야기를 전했고, 진 선생도 진지하게 경청하는 듯 했습니다. 다른 학생들도 매우 흥미로와 하는 것 같았구요.
사회구성체논쟁에 대한 재평가는 거듭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저 나름대로는 탈식민주의가 새로운 재평가의 지점을 확보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전히 매우 가설적이기 때문이 뭔가 단정하기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유학파"가 진정한 문제였는지는 아직 판단하지 못하겠고, 적어도 저는 박현채 선생이 "이론주의"에 대한 경계를 분명하게 밝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연구를 좀 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토론이 자꾸 반복되는 것 같아서, 다시 글을 쓸 마음은 없지만 제가 없는 틈에 논의를 한곳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서 제 입장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我的精神自傳"을 번역한 것이지 "我精神的自傳"을 번역한 것이 아닙니다. "我精神的自傳"이라고 썼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말 그대로 가정에 불과합니다. 기실 현대 중국어에서는 "我精神的", "我頭腦的" 등 이런 식으로 다른 말을 수식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중국어 포털 사이트 Baidu 등에서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我的精神自傳"이 훨씬 자연스러운 중국어 표현이고, 그것을 저는 원문의 문법과 의미 및 저자의 의도를 살려서 정확하게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번역하고자 고심한 것이지요. 그리고 원문의 의미를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독자에게 쉽고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은 번역자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월권하고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번역관의 차이이기 때문에 토론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요. 따라서 이런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차이를 무시하는 듯한 명백한 오역이니 월권이니 하는 과격한 용어는 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중국어를 모르면서, 그리고 <我的精神自傳> 읽어 보지도 않고 말을 많이 했네요. 책을 접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내용이 매우 궁금한 저에겐 부질없는 논쟁이 아니라 책의 윤곽을, 그것이 비록 빙산의 꼭지에 지나지 않는 것일지라도, 좀 볼 수 있는 유용한 논쟁이었습니다.
님이 인용문 "그러나 내가 쓴 것은 나 자신의 인생 경력이나 일상생활이 아니라 정신 역정과 학술 생애에 편향된 것이며, 실록체 방법을 쓴 것이 아니라 자아 해부와 자아 분석에 편향된 저술 방법을 사용하였다."에서 전리군의 <我的精神自傳>이 헤겔의 <정신 현상학>의 (독)Programmatik과 유사한 점을 발견해서 몇 마디 한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번역의 문제를 넘어서 책 내용을 좀 더 파악하고 싶었습니다.
제 생각을 정리하면 이렀습니다.
1. 님의 앞 인용문에서 <정신 현상학>에서 철학(헤겔)이 발로 걸었다 머리로 땅을 딛고 걸었다 하는 등 쌩쇼를 하는 의식을 보고 콤멘트하는 것과 유사한 (독) Programmatik을 전리군이 사용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만약 그렇다면 정신이 Agens임과 동시에 Produkt란 것이 전리군의 <我的精神自傳>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입니다.
3. 헤겔적 의미로서의 정신의 이런 관계를 <의>란 한국어의 소유격이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 저의 논지입니다.
4. 이와 관련 „Phänomenologie des Geistes“를, 분명 소유격이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의 현상학>으로 번역하지 않고 <정신 현상학>으로 번역한 것에 주목했습니다.
영문 번역 „mental-spiritual“과 관련한 예술인생님과의 논쟁은 저에겐 번역보다는 „critical reading“의 문제였습니다. 큰 맥락은 유물론과 관념론의 문제입니다.
중국어 "我的精神自傳"을 영어로 옮기는 것도 쉽지 않은데, 중국어가 같은 표현으로 동사, 형용사, 명사 등을 담당하는 특성 때문입니다. 게다가 보면 알겠지만, 단순히 spiritual로 부족해서 mental을 병기했지요. 이 번역어가 대충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없는 대목입니다. 영문 표기는 저자와 편집자가 스스로의 중국어 표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드러내 줍니다. 이러한 번역이 '나, 정신, 자서전'의 긴장관계를 묽게 하는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나름대로 표현할 수 있는 최선의 영어 번역어를 찾은 것이지요. 여기에는 '정신'을 "내 정신의 자서전"과 같이 소유적 명사인 주체로 한정짓는 것 보다는 형용사적으로 쓰는 것이 더 원의에 근접하다는 이해가 깔려 있다고 보입니다.
원어가 형용사의 탈을 쓴 명사인지는 해석의 문제이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저자가 명확히 소유 주체인 명사로 쓰지 않았는데 그것을 소유 주체인 명사로 번역할 이유는 없지 않나요? "내 정신의 자서전"과 "나의 정신 자서전"은 각각 "我精神的自傳" "我的精神自傳"에 거의 일대일 대응이 됩니다. 이 부분은 중국어 어법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부분입니다. 여기에서 的는 소유격 '의' 의미하고, 이 전후로 소유 관계가 분명한 반면 精神과 自傳 사이의 소유 관계는 불분명합니다. 저는 불분명한 것을 분명한 것과 바꾸어서 번역할 자유가 역자에게 허용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에 대한 해석은 열려 있고, 역자도 해제 등을 통해서 나름의 해석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사실 문제의 핵심은 '번역 윤리'에 관계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저자가 남긴 모호함을 과도하게 명확하게 하는 것은 역자의 월권이라고 보는 것이지요. 그것은 저자의 일정한 전략적 배치를 역자가 월권하여 단순화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My mental-spritual autobiography는 대만의 편집자가 붙인 영문 제목인데, 저는 그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번역에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그것이 번역이 갖는 근사치가 남기는 공백의 차원이라고 봅니다.
저도 <정신의>로 번역해서 소유관계를 확정짖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유관계를 넘는 관계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말의 한계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고요. 그리고 그 한계를 넘지 못하면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오히려 더 충실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암튼 책의 내용이 궁금하네요.
덧붙이자면 이런 말과 소유관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an und für sich“,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an und für sich“라는 Resultat가 다시 an sich가 되어서 변증법적 운동을 재개하는 복잡한 말을 한 것이 <정신 현상학>이 아닌가 하구요. 암튼 <전개된 서술>의 씨는 소유관계 혹은 소유를 목적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네요.
앞에서 „die europäische Idee“를 운운한 논지는 님이 지적하셨듯이 „경제라는 물질적 조건과 이데올로기/사상이라는 정신적 조건 가운데 후자에 방점을 찍는“ 나, 정신, 자전 간의 긴장관계를 „mental-spiritual“이란 형용사가 좀 묽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mental-spiritual“은 „Phänomenologie des Geistes“를 „geistige Phänomenologie“로 만드는 것과 비슷한 형용사 사용이 아닌가 해서 그렇습니다.
„My mental-spiritual autobiography“ 번역 관련 다음과 같은 내용을 지적하고 싶네요.
„the european idea“란 표현에서 „european“은 형용사 형태지만 명사에 가깝지 않나 합니다. 이런 명사적인 의미가 우리말로 번역할 때 다시 나타나지 않나 합니다. 보통 „유럽 이념“으로 번역하지 „유럽적인 이념“이라고 번역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 „유럽이 낳은 이념“ „유럽에 뿌리한 이념“을 선호합니다만.
이런 맥락에서 제기하고 싶은 질문은<我的精神自傳>에서 <精神>이 형용사인가 명사인가, 형용사라면 앞 „european“과 같이 형용사의 탈을 쓴 명사인가란 질문입니다.
만약, 여기서 <정신>이 형용사의 탈은 쓴 명사라면 „ mental-spiritual“은 잘못된 번역이 아닌가 합니다. 왜냐하면, „the european idea“에서의 „european“과 달리 „mental-spiritual“은 형용사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 하자면 "european"에서와 같이 소유관계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는 번역의 문제를 떠나서 <정신>이 실체이며 주체이기 때문에 빗어지는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我的精神自傳>에서 <아>와 <정신>이 묘하게 부동하는 것 같습니다.
네. 여기에서도 주체인지 객체인지 모호한 느낌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我的精神自傳>이라는 제목을 갖는 이 책은 '나'의 자서전이고, '나'에 대한 자서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의 자서전'의 개별적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정신'이라는 수식어입니다. 일반적 자서전과 달리 '정신'적 측면을 중심으로 서술된 자서전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경제라는 물질적 조건과 이데올로기/사상이라는 정신적 조건 가운데 후자에 방점을 찍는 것이고, 양자 가운데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지만, 궁극적으로 개체 정신의 자유와 해방을 구조의 변혁의 전제로 제기하는 전리군 선생의 독특한 '정신사 연구'의 관점과 관련됩니다. 그래서 대만판에서 영문제목을 My mental-spiritual autobiography라고 붙인 것이구요. 만약 <내 정신의 자서전>, 즉 <我精神的自傳>이었다면, An autobiography of my mentality/spirit과 같이 번역되었겠지요.
중국어에서 他/她/它는 각기 3인칭의 그/그녀/그것을 가리킵니다. 她의 창조는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면서 여성의 주체성을 확인했음을 의미하고, 它의 창조 인간과 사물을 구분하면서 인간의 주체성을 확인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신은 이를 당시의 전현대적 봉건성에서 탈피하지 못한 중국의 사회현실 속에서 현대성의 이념을 반영하는 획기적인 창조로 판단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