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에 까막눈인 사람이, 전리군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끼어 들어 뭐라고 하면 우습겠지만 그래도 토론이 흥미로워서 한마디 할까 합니다. 우선 헤겔의 "Phänomenologie des Geistes"를 <정신 현상학>으로 번역한 것이 떠 오릅니다. 그리고 <정신현상학> 서설(Vorrede) 뒤에 약간 다른 제목을 단 것 또한 떠 오릅니다. <정신 현상학>이 등장하는 배우, 합창단, 감독, 청중 등 극장의 요소들을 뭉퉁거려 서술하기 때문에 <정신/Geist>이주체인지 객체인지 뭐가 뭔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지 않나 합니다.
그리고 <정신 현상학>을 루카치에 이어 의식의,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같은 한 개인의 <교육소설>로 보는 것은 <정신 현상학>의 협소한 독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전리군의 <아적>과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전리군의 <아적정신자전>이 헤겔의 <정신 현상학>에 더 가까운지 아니면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더 가까운지에 따라서 <아적>을 어떻게 이해하고 번역해야 할 것인지가 분명해 질 것 같습니다. 그 다음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지 않을까 하구요.
저의 문제제기와 관련해서는, 생각이 서로 다른데 토론으로 좁혀지지 않으니 굳이 더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내용은 이미 충분히 논의된 것 같습니다.
'서사'와 관련한 부분은 편집부 쪽과 더 검토를 해서 판단해야겠습니다. 좋은 의견 고맙습니다. 우리말 '서사'의 뜻을 조금 더 세심하게 고려해야할 것 같은데, 우리말에서 '書寫'가 '베껴 쓰기'라는 뜻을 가지지만, 그것이 '쓰기'와 의미와 완전히 다르지는 않으면서도 또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쓰기는 기본적으로 '무엇'을 옮겨 적는 것입니다. 제 생각엔 '베껴 쓰기'가 선생님의 용법에서처럼 부정적 어감을 주기 때문에 우선 여기에서는 '옮겨 적기'로 바꿔 부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요. 제가 보기엔 역사를 쓴다는 것도 사실상 역사를 옮겨 적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상 '베껴 쓰기'와 다르지는 않습니다. 전리군 선생님이 이 표현을 쓴 것은 나름대로 역사적 진실에 가까운 서술을 하고자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첫 번째 두 번째를 따지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도 그런 맥락에서 그저 인터넷 소개글에서 첫 번째를 강조하는 문구를 발견했기 때문에 제 나름대로 확인을 해 본 것일 뿐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내용을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네요. 좀 더 분명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我的精神自傳>을 번역하였지, <我精神的自傳>을 번역한 것이 아닙니다. 우선 “我的精神”을 “나의 정신”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리고 “自傳”을 연결하여 “나의 정신의 자서전”이 된 것이지요. “나의 정신” 다음에 “의”를 넣은 이유는 첫째, 그냥 “나의 정신 자서전”이라고 할 경우 한국어로서 좀 어색한 표현이고, 앞에서 말씀드린 한국어로서 몇 가지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첸리췬 선생님이 후기에서 이 책의 성격과 관련해서 설명한 부분을 참조해볼 때, “나의 정신”을 강조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정신의 자서전”이 된 것이고 “나의”를 줄여서 “내”로 표기하여 “내 정신”이 된 것입니다. “내 정신”에서 “내”는 당연히 “나의”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므로 문법적으로나 표현상으로나 “我的精神”이 정확하게 반영된 번역인 것이지요. 그리고 해석학적 입장에서 첸리췬 선생님의 의도를 강조하여 “내 정신의”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정신의 자서전”은 중국어 문법과 한국어 문법, 그리고 첸리췬 선생님의 의도까지 반영된 매우 정확하고 적절한 한국어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사”가 왜 “서사(敍事)”로만 인식되느냐고 말씀하셨는데, 이건 지금 이곳 한국어 환경에서 “서사(敍事)” 이외의 동음이의어 다른 한자표기는 거의 쓰이지 않거나 특별한 맥락에서만 쓰이기 때문입니다. 주위에 자문을 구해보시면 금방 아실 것이지만, “역사 서사”를 그냥 한글로만 표기하면 거의 대부분 “서사(敍事)”로 생각할 것입니다. 그럼 편집 과정에서 “서사” 뒤에 “서사(書寫)”를 넣어서 쓸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매우 중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 환경에서는 “서사(書寫)”가 글씨 베끼기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첸리췬 선생님의 저서가 글씨 베끼기가 아닌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요.
또 하나 지금 타이완에 계시기 때문에 첸리췬 선생님의 저서를 출판한 두 출판사의 사정을 모르시는 듯하여 이에 대해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래 <내 정신의 자서전>이나 <망각을 거부하라>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판 기획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다만 출판 막바지에 출판 시기를 놓고 조금 경쟁이 벌어졌고 이에 3월 26일에 동시 출판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루어진 듯 합니다. 그러다가 그린비의 출판을 담당하는 인쇄소에 좀 다른 일이 생겨서, 그린비에서는 출판날짜 표기는 3월 25일로 하고 실제 출판은 3월 28일에 했고, 글항아리에서는 출판날짜 표기는 4월 2일로 하고 실제 출판은 3월 26일에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책이 앞이고 어느 책이 뒤라는 사실은 거의 무의미한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올해 첸리췬 선생님의 책이 대거 출판된다는 사실에 매우 고무되어 있습니다. 아마 10월에 첸리췬 선생님 초청 학회를 기획한다고 하는데, 벌써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첸 선생님의 좋은 책들이 많이 소개되어 한국과 중국의 비판적 지성들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는 과정은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아마 이 블로그 주인께서도 절실하게 느끼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많은 고통 속에서 작업을 겨우 끝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간에 “루쉰전집번역위원회”에서 함께 일하시는 유 교수님(한신대)을 통해 다소간의 얘기를 전해듣기도 하였습니다. 동지적 입장에서 성공적으로 번역을 완성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아 그리고 이해 못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었는데. 님이 링크한 임춘성 교수의 번역문에서 "류반눙(劉半農)의 “‘她’자와 ‘它’자의 창조”가 5․4시기에 거둔 커다란 전과에 대해 루쉰이 왜 그토록 칭찬했는지를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란 문장이 있는데 한자를 몰라서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네요. 설명 좀 부탁합니다.
제 문제제기의 요지는 왜 "我的精神自傳"을 "我精神的自傳"으로 잘못 읽고 번역했느냐는 아주 간단한 문제입니다. 저자의 후기를 말씀하시지만, 필연적 연관이 없다고 저는 봅니다. '나의 정신의 자서전'이라고 이해를 하더라도, '내 정신의 자서전'인지 '나의 정신 자서전'인지는 的의 위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내 정신의 자서전'을 의미하고자 했다면, 저자 역시 我精神的自傳이라고 제목을 붙였겠지요.
<또 하나의 역사서사>와 관련한 문제제기는 편집 과정 중에 검토해보겠습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이와 관련해서 저는 책의 부제를 이야기한 것이고, 그것을 저자가 다르게 표현하는 것은 저자의 자유라고 봅니다. 역자는 그것이 다르게 표현될 때 다르게 번역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서사'가 敘事로만 읽힌다는 것의 근거는 여전히 제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 그것이 중대한 오해를 낳는다면 한자를 병기하면 그만입니다.
제가 지금 대만에 있어서 번역하신 책을 바로 볼 수 없는 상황인데요. 지인을 통해 받아 보기로 했으니, 받게 되면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다시 관련한 글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해석의 문제를 자신의 경우에만 적용하는 건 좀 편의적인 입장 같습니다. <我的精神自傳>을 <내 정신의 자서전>으로 번역한 건 첸리췬 선생님이 후기에서 말씀하신 의미를 존중한 해석입니다. 한국어로 "서사"라고 쓰면 당연히 '敘事'를 연상하지 않을까요? 그걸 해석의 입장이라고 하면서 <내 정신의 자서전>은 왜 해석의 입장이 아닌지 궁금한데요? <歷史的另一種書寫>는 며칠 전 첸리췬 선생님이 제게 보내주신 편지에서 쓰신 제목입니다. <另一種歷史書寫>를 <歷史的另一種書寫>로 표현하시는 것처럼 <我的精神自傳>도 <我的精神的自傳>으로 읽을 수도 있으며, 그건 전적으로 저자의 의도를 감안한 해석의 입장이 개입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독자에게 오해를 줄 수 있는 건 書寫를 그냥 서사로 써서 敍事로 읽히게 하는 것이 더 심한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歷史的另一種書寫>를 <또 하나의 역사 서사>라고 번역하는 것이 오역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서사(書寫)는 "글쓰기"이지 한국에서 쓰이는 서사(敍事)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서사(書寫)는 "글씨 베끼기"입니다. 서사(書寫)가 서사(敍事)로 오해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므로 <歷史的另一種書寫>는 <역사에 관한 또 다른 글쓰기>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또 하나의 역사 서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 공부하는 입장에서 작은 문제를 말씀드렸습니다. 늘 건승하시고 좋은 성과 많이 내시기길 기원합니다.
서사의 한자어를 병기 하지 않은 것이 문제일까요? '서사'가 '敘事'로 독점적으로 오해되어 해석된다는 논리는 어디에 근거하는 것인가요? 한국어의 한자어는 그 한자를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의미가 불분명해질 수 있는 소지가 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맥락을 통해서 이해해 왔고, 모호할 경우 한자를 병기해왔습니다. 그리고 <歷史的另一種書寫>라는 표현은 어디서 가져오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전리군 선생의 중문판 신간의 부제로 쓰인 표현은 그것이 아니라 <另一種歷史書寫>입니다. 영문 제목은 An alternative writing of history입니다. 여기에서 alternative의 경우 한국에서 '또 하나의'라고 번역하는 용례가 이미 많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정착된 번역어라고 보이구요. '서사書寫'의 경우 '글쓰기'로 풀어 쓸 수도 있지만, '서사書寫' 역시 하나의 선택가능한 번역어 가운데 하나입니다. 중국어의 우리말 번역어는 순한글이 될 수도 있지만, 한자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 정신의 자서전(我的精神自傳)>을 번역한 역자입니다. 좋은 지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我的精神自傳>을 번역할 때 매우 고심하였습니다. 우선 사람들의 입에 익은 것처럼 <나의 정신 자전>이라고 번역하는 경우, 이는 중국어의 용법에는 충실한 번역이지만, 한국어 용법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의 정신 자서전>이라고 번역하는 경우, 이는 "자전"을 "자서전"으로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역시 한국어 표현으로는 어색합니다. 그리고 이는 몇 가지 애매모호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첫째, 나에 관한 정신 자서전인지? 둘째, 나의 정신에 관한 자서전인지? 셋째, 내가 소유하고 있는 정신 자서전인지? 넷째, 나의 정신과 자서전에 관한 것인지? <我的精神自傳>은 나의 자서전도 아니요, 정신의 자서전도 아니요, "나의 정신의 자서전"입니다. 첸리췬 선생님도 <후기>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쓴 것은 나 자신의 인생 경력이나 일상생활이 아니라 정신 역정과 학술 생애에 편향된 것이며, 실록체 방법을 쓴 것이 아니라 자아 해부와 자아 분석에 편향된 저술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我的精神自傳>은 <나의 정신 자서전>이라고 애매모호한 중국식 표현으로 번역되어서는 안되며, <나의 정신의 자서전>, 즉 <내 정신의 자서전>이라고 명확하게 의미를 한정하여 번역해야 합니다. 중국어 표현법과 한국어 표현법은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중국어의 문법과 용어를 축자역으로 번역해서는 곤란합니다. 그러므로 명백한 오역이란 말은 지나친 표현이 아닌가 합니다. 번역에 참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외국어를 우리말 답게 표현하기 위해 매우 고심해야 하겠지요.
제가 쓴 글이 역자님께까지 전달될 줄은 몰랐네요. 번역하시느라 고생하셨다는 말씀 먼저 드립니다.
말씀하신 한국어의 용법에 맞지 않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와닿지 않는데요. 저는 번역할 수 없는 고유한 '차이'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 아니라, 원의와 명백하게 다르게 번역한 것을 문제 제기했을 뿐입니다. 제기하신 '오해'는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어도 동일하게 갖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정확히 '해석'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구요. 그래서 독자의 입장에서 그 해석을 다른 어떤 것으로 하는 것은 충분히 선택가능한 것이지만, 역자는 적어도 그것 자체를 열린 채로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대만판 영문제목 My mental-spiritual autobiography는 그런 맥락을 보여준다고 보입니다. 중국어 어법과 관련해서 말씀드리면, 제가 보기에 的의 위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입니다. 번역하신 책은 <我的精神自傳>이지 <我精神的自傳>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맞아요. 정치 체제개혁이 동반되지 않는 자유주의 편향적 '민주화', 즉 사실상의 시장화의 흐름이 견고하게 지속될 것 같고, 여기에서 '개혁'을 기대하는 것 역시 서방과 한국의 자유주의적 시좌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대만의 통일 좌파 가운데에서는 중국의 '고르바초프'가 출현하는게 아닌가 하는, 중국의 체제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리는데, 이 역시 당국가체제 자체는 이번 사건의 양측 모두 견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기우일 뿐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