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藝術人生 (2014/02/19 22:49)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형편이 좋아졌다니 다행이네요. 논문과 연구에서도 좋은 성과 있기를 바래요.
  • zzacnoon (2014/02/18 22:26)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아직 5개월 정도 남았지만, 잘 마무리 하고 들어오기를 바라...... 페북 계정을 비활성화하니까 이리로 들어오게 되네. 나는 근래 좀 더 형편이 돼어 4년 반이나 5년 정도 채웠으면 좋았겠다는 바람이 있네. 다 지나간 얘기지만;; ㅎㅎ 건강하게 지내고!
  • 藝術人生 (2013/08/30 00:13)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반복되는 역사가 아닌 새로움을 더 하는 역사에 기반한 사회 속의 '개체'와 세계 속의 '민족'의 변증법이 인식론/존재론적으로 주는 풍부함이 있다.
  • ou_topia (2013/08/29 16:35)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진보’는 어쩜 ‘오염’될 수밖에 없는지 모른다. ‘진보의 오염’을 운운하면서 역사의 현실에서 사라지는 국면에 서 있는 한국의 일부 자칭 ‘진보’.

    ‘진보의 오염’이란 표현에서 러시아, 중국, 남미, 아프리카, 아랍, 그리고 이북에서의 사회주의의 현실적, 실질적 경험에서 후퇴하고,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를 현실에서 발전시킨, 최소한 발전시키려고 노력한 사상들을 멀리하고 칸트로 떨어져 ‘순수’를 운운하는 ‘진보’. 처녀성은 지키면서 아이는 갖고 싶다? ‘진보’란 이름은 떼고 차라리 ‘신천지’와 같은 교단을 세우지. 그럼 밥벌이문제는 해결될 텐데.
  •  Re : ou_topia (2013/08/29 17:26) DEL
  • 떨어짐 혹은 후퇴 자체를 문제 삼는 게 아니다. 현실사회주의 붕괴에 동작정지 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중력에 의해서 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연의 법칙에 의한 매우 자연적인 일이다. 근데,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의식적으로 확실히 더 떨어져야 한다. 헤겔 밑으로, 칸트 밑으로, 스피노자 밑으로... 그리고 기층[민중] 밑으로 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 떨어짐은 다시 올라오기 위한 떨어짐이다. 나는 이 떨어짐의 바탕에 유적이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올라오면서 이 유적이성은 더욱 풍부하게 규정되어 유적존재가 되어야 한다. 현재 추상적으로나마 형성된 ‘인류’를 풍부하게 규정하는 상승이어야 한다.
  • ou_topia (2013/08/14 22:40)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퍼갑니다
  • 藝術人生 (2013/07/26 18:01)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정치'의 경험은 쉽게 빨리 망각되는 것 같습니다. '이론'이 '운동'과 분리된 역사를 다시 역사화할 필요가 있어 보이구요.

    저 동네의 이야기는 매우 익숙한데, 제가 비교적 어렸을 때 저 동네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여기가 나름 하나의 동네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어찌보면 아직도 저 동네에 적을 두고 거기 살지는 않는 '이단'적인 존재일 수도 있구요.

    여담입니다만, '동네형'은 부르기 참 좋은데, 존칭으로 '동네형님' 하면 약간 다른 느낌이네요. 약간 뒷골목의 느낌이랄까... ^^
  • ou_topia (2013/07/26 14:53)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마키아벨리와 관련해서 첨언하자면 줏대를 세울 수 없으면 누가 강세인지 눈치보다가 어딘가에 붙어서 빌어먹든지 (님이 지적했다시피 이른바 정치화된 노동세력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강자의 눈에서 벗어나 먼 곳으로 가서 세로 땅을 가꾸고 세력을 키웠던 도꾸가와 이에야스처럼 하든지...
  • ou_topia (2013/07/26 14:40)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님의 당론이 다른 동네에서 이야기되는 (여기도 하나의 동네? 동네형이 잘 알 거 같은데..) '노동자는 과연 하나인가' 또는 '사회연대' 등을 말하는 '담론'과 대비 되네요.

    노동자 [모두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동당의 존재여부와 그 당을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겠다'는 [혁명적인] 대중의 존재여부가 '노동자는 하나다'란 말의 참뜻이 아닐까 하는데... 다른 동네에서는 현상을 찍어 올리는 담론으로 흘러가는 거 같네요. 자유민주주의 대 프로레타리아 독재/민주집중제/수령관 등 이른바 '비민주주의적인 재현/대표' 제도 간의 문제도 또한 여기에 속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노동자는 하나다'란 앞에서 이야기 된 의미로서의 노동당이 없는데, [좌파적인] 사회연대를 운운하는 건 관념적인 차원에서 저런 '노동당'을 만들고 마치 그 당이 사회연대를 주도해 나간다는 환상/착각/자기만족에 빠져 딸딸이하는 게 아닌가 하고요. 이런 담론들은 결국 정치가 목숨을 걸고 하는 생존투쟁이란 걸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같은데, 마키아벨리를 참조하는게 차라리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동네형 (2013/07/25 21:12)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서민당이 나아 보이는데요...
  • 藝術人生 (2013/07/24 19:42) 댓글에 댓글 달기 : 지우기
  • 저는 우선 한자는 '외래어'라 할 수 없는 내재화된 언어자원이라고 보구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말의 개념어가 한자의 사용 없이는 조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문제상황은 '한글'이 갖는 근원적인 한계를 반영한다고 봅니다. 한글은 그 태생부터 보조적인 수단이었다는 게 제 생각인데요. 그래서 백기완 선생 등이 하는 작업이 참 부질없는 그런 상황으로 가는 것이구요.

    한자가 그렇고, 그 측면은 중국어에서 여전히 남아 있는데, '명사'와 '동사'의 구별 자체가 본래 우리의 언어 안에서는 맥락적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구별 자체가 일정하게 '영어 중심적 사고'의 영향인 것 같기도 하구요.

    제가 궁금한 것은, 현재로서는 매우 미미하게 남아 있지만, 역사적으로 한자와 한글의 결합이 사실은 이중적 차원에서 일상적 번역실천이 아니었나 하는 점인데요. 그것은 민족간의 번역 실천의 측면(주로 '중국'과 '조선' 사이)이 있고, 민족 내부(조선 지식인과 민중 사이)에서 민중적 번역 실천의 측면이 결합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점입니다.

    이것이 어쩌면 번역, 지식, 윤리와 관련한 우리 나름의 역사적 개별성의 한 측면을 구성하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런 측면에서 '현대성'과 '현대화'의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적 언어/지식/문화의 모델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나 하는 가설적 문제제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게 궁극적으로 변혁적 운동과 주체의 문제와 밀접하다고 보고 있구요...

    많이 무지하고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긴 한데, 의문점을 던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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