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그런 맥락에서도 유사한 함의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소 맥락은 다르지만, 중국혁명 이후의 건설 과정에서 제기된 '대과도기'론도 일정하게 '과도' 자체의 의미에 '횡적운동'을 포괄하기 위한 것이었던 것 같구요. 그래서 '과도' 대신 '이행'이라는 다른 번역 표현으로 장기적 과정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횡단", "종단", "종적", "횡적" 등에서 "통과"란 의미의 독어 전치사 durch의 번역에 힌트를 얻고 있습니다. 식민에서 탈식민으로의 길이 과도(Übergang)가 아니라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헤겔이 피히테가 사용한 의미로서의) "duch"가 아닌가 합니다.
우선 세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1) 문학은 여유의 산물.
2) 입을 열지 않는 평민.
3) 민족문화의 표현으로서의 문학.
문학은 여유의 산물이므로, 혁명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혁명 이후에는 일상으로 돌아와 여유를 되찾은 평민에게 되돌려져야 하는 어떤 것이다.
평민의 목소리는 대리되지 않는다. 독서인의 사상=노동자 농민의 사상. 노동자 농민의 해방이라는 모순의 해결을 통해 평민 문학이 형성될 수 있다. 이것이 단순한 포퓰리즘이 아니라면, 지식(계급)과 대중의 관계의 질적 전환을 의미한다. 어쩌면 이는 리얼리즘 문학 내지 현대 문학에 대한 본질적인 비판일 수도 있다.
평민문학은 아니지만 민족문화의 표현으로서 문학은 일정한 역사적 가치를 갖는다. 따라서 문학이 나름의 독자성과 고유성의 논리에 충실할 경우 사상으로 값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나름으로 민족문화의 표현의 의미를 갖게 된다. 그런 차원에서 문학은 '독서인'의 이데올로기 보다 값진 것일수 있다.
'민족'과 '민중'이 '번역'을 거친 것인지, 아니면 일정하게 '대응'된 것인지 조사가 필요할 것 같네요. 만약 단순히 엘리트주의적 '번역'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우리의 역사적 사상 내부에서 일차적인 연원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구요. 물론 그 사상의 지평은 조선 뿐만 아니라 중국과 동아시아라는 그물망에 얽혀 있겠지요. 암튼 그 의미는 식민-냉전이라는 현대화의 역사를 거치며 일정하게 궤적을 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제가 아직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는 못하구요.
제가 주로 문제삼는 것은 80년대의 상황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사실상 냉전 하의 이데올로기적 억압 상황으로 인해 '언어' 자체가 굴절될 수 밖에 없었던 측면이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80년대의 경우 적어도 좌익 내부에서는 기본적으로 그런 억압이 해소되는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장기간의 억압으로 인한 사상적 단절로 인해서 '민족'이라는 종축과 '민중'이라는 횡축의 변증법적 결합이라는 인식 및 실천 모델이 점차 소멸하고, 양자가 분화되어 각축을 벌이는 상황으로 접어들었고, 그 이후의 상황의 전개는 우리가 보아 온 그대로입니다.
사실은 그 양자의 결합의 조건이 무엇이었는지를 우리의 역사적 맥락 내부에서 밝혀보고자 하는 게 제 개인적인 연구의 방향이기도 하고, 그것의 역사적 계보를 복원함을 통해서 역사의 단절 지점을 다시 잇고 나아가 주체적으로 미래의 역사를 열어갈 출발점이자 자양분을 새롭게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합니다. 박현채에 대한 관심도 그런 고민의 일환이라 할 수 있겠구요.
“부족”이란 [지식인이 사용하는 표준어로서의] 한 언어(langue)([예컨대] 프랑스어)를 모르는 무지(méconnaissance)에 있지 않고 어디까지나 내재화된(approprié/[수많은 반복을 통해서 애써] 자기 것으로 만든) [엄마와 아빠의 말인] 언어(langage)를 (크레올어권에서 혹은 프랑스어권에서/en créole ou en français) 구사하지 못하는 비숙련(non-maîtrise)에 있다. [표준어로서의] 프랑스어(la langue française)의 권위주의적이고 위세적인 개입은 이런 부족의 발전을 더욱 강화할 뿐이다.
그래서 이런 내재화된 언어(ce langage approprié)를 [다시 돌려달라는 정당한] 반환청구(revendication)는 프랑스어(la langue française)에 대한 비판적인 재심(révision)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 재심은 아마 [일종의] 반(反)인도주의/인문주의(un anti-humanisme)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에 기댈( participer) 것이다. 프랑스어에 의한 길들이기가 [보편주의적인] “인도주의/인문주의”(l'« humanisme »)라는 기관(機關)을 수단으로 하여 수행되는 만큼 그렇다는 것이다.
(데리다의 “ Le monolinguisme de l'autre ou la prothèse d'origine”에서 인용된 Edouard Glissant, Le discours antillais, Seul (Paris) 1981, 334 쪽 )
먼저 민족과 민중의 번역을 생각해 봤습니다. 주지하다시피 동독 시민은 독일통일 과정에서 처음엔 "Wir sind das Volk!"라고 하다가 나중엔 "Wir sind ein Volk!"라고 외쳤습니다. "Wir sind das Volk!"("우리가 주권을 행사하는 인민이다!")에서의 'Volk'는 민중에 가까운 것 같고, "Wir sind ein Volk!"(우리는 한 민족이다.)의 ‘Volk'는 민족으로 쉽게 번역되는 것 같습니다. 요지는 민족과 민중이 중첩되어 있다는 점인데 왜 한국의 좌파에게는 그게 적대적 관계로까지 - 이게 사실이라면 - 발전했는지 궁금하고요.
만약 한국의 ‘민중’개념이 남미의 해방신학이 이야기하는 ‘민중’에 기대고 있다면 잘못 참조한 게 아닌지 하고요. 해방신학의 ‘민중’은 ‘라틴아메리카’라는 [언어적으로 역사적으로 공유하는 구체적인] 틀이 있는데 한국의 ‘민중’은 그런 틀이 없는 게 아닌지. 만약 그런 참조의 틀이 있다면 그게 뭔지 궁금하고요. 혹시 ‘민중’이 참조하는 틀이 “전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를 막연하게 읽은 결과로서의 틀이 아닌지.
한국 좌파 내에서의 ‘민족과 민중’의 [대립]구도가 ‘읽기의 게으름’에 있지 않나 합니다. “공산주의 선언”의 ‘노동자는 조국이 없다.’에 이어서 ‘전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만을 읽고서 ‘민족’을 버리는데, 이는 실천적인 투쟁과정에서 'Nation/민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실천적인 투쟁에서의 ‘Nation’의 중요성은 마르크스에 이어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민주의의 위기”에서도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민족/Nation'을 껍데기로 버리는 세력은 세계화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라는 건 마르크스가 파리꼬뮌을 때려잡기 위해서 치열한 전쟁을 치렀던 프로이센과 프랑스가 쉽게 손잡았다는 분석에서 이미 말했습니다.
좌파의 민족경멸이 자본주의 세력의 민족경멸과 묘하게 겹쳐있는 것 같습니다. 전 이걸 게으름이라고 할 수밖에 없고요. 밀폐된 공부방에서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면 마르크주의자가 될 수 있겠지만, 여기엔 ‘밀폐의 게으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방은 열려있어야 합니다. 이 열림은 원천적으로 ‘민족’을 향해 있지 않나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