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채 전집》이 일부 도서관에는 보급된 것 같은데, 상당수 도서관에서는 찾기 어려운 것 같더군요. 저는 개인적인 루트로 직접 구매를 했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전집에 구매처 표기가 되어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메일을 알려주시면 제가 구입했던 루트의 연락처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설프게 경제론을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민족경제라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박현채 선생님의 행적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립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라도 박현채선생님의 저작물을 구해볼려고 했지만 찾아보기 힘들어서 낙심하는 와중에 2006년에 [박현채 전집]이 발간되었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박현채 전집]을 구해보고 싶은데 판매처가 나오지 않아서 부득히 하게 여기에 문의 하게 되었습니다.
남한에는 물론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아 있는 부분이 있다. 물론 이는 나의 무지탓이지만, 대략 박현채가 적절하게 제기했던 '사상'이 있었다면 그 '사상'을 둘러싸고 진행되었으나 묻혀버린 발굴 대상으로서의 '무엇'이 있지 않은가 하는 부분이다. 거기에 '문학'이나 '문화'의 측면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하다. 단절된 역사와 사상을 현실의 언어로 전환하기 위한 노력이 단순히 박현채의 사상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선 박현채의 복권이 큰 의미를 가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박현채 뿐만은 아니며, 박현채를 둘러싼 그 묻혀진 것들을 포함할 것이고, 거슬러 올라가 그것들이 표현하는 역사들이 연결될 것이며, 동시에 그 '사상' 없이도 '사상'을 추구했던 8-90년대 이후의 노력들(예를 들어 최원식 등)도 다시 정합적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진영진의 과대평가는 다소간 그의 방문 시점과 관련되는 듯 싶다. 그가 남한에 방문한 날짜가 1987년 6월 11일이었다. 당시 외대로부터 '중국의 항일문학'에 대해 강연을 요청받아 오게 되었다고 한다.(故허세욱 교수와 함께 찍은 사진이 진영진 저작집에서 발견되는데, 허세욱 교수가 1986년까지 외대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어쩌면 관련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허세욱 교수는 그후 고려대로 옮기지만...) 진영진이 만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그의 인터뷰로 볼 수도 있고, 다른 전언으로도 확인이 되는데, 아무래도 박현채 선생과 만난 것 같지는 않다. 이후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을 일역판으로 읽고 원용하게 되는데, 아마도 한국방문 이후일 것으로 보인다. 일역판은 1985년에 나왔다. [朴玄埰,『韓國資本主義與民族運動』, 滝沢秀樹譯, (東京:御茶の水書房, 1985)].
馬克思所說的「批判的武器不能替代武器的批判」也是強調知識分子的批判無法取代群眾的主體實踐。知識分子的批判只能透過群眾的實踐能夠得到物質性力量。這次王家事件上的反「暴力」或維護「人權」論述還偏向於「批判的武器」,雖然它模糊地包含著對「親資本」的國家之批判。這可能有理由。因為知識分子的脫離階級政治的現代性批判很容易以自由主義的方式規定「暴力」的性質。但,問題不只是知識分子內部的問題,因為這種置換可能產生扭曲群眾運動的條件之效果。2012년 4월 16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