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못 쓴 글

늦잠을 잤다. 어딘가에 도착할 시각에서 15분 늦게 눈을 떴다. 비가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젯밤 불편한 마음으로 잠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껏 여러가지 내용과 형식의 사업을 해왔지만 사람이 적게 와서 끝내 마음이 불편했던 적은 없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지,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는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적어서 아쉽기야 하겠지만 지나고 나면 중요한 건 언제나 그 자리의 밀도다.

어제도 시작할 때는 그랬다. 아쉬움이야 남겠지만 소중한 자리가 될 것이라고.

 

살람이 말을 시작했다. 눈물을 훔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라크에서는 알람이 아니라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깨어납니다. 폭발음이 조금 크게 들리는 날은 무너진 집 근처로 사람들이 모입니다. 아이들은 이것이 일상과는 다른, 어떤 특정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 아이들에게 '전쟁'을 설명하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솔직히, 이런 이야기들을 들을 때까지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살람이 이렇게 말했다. "고통을 주는 사람들은 고통을 알 수 없지요. 고통은, 받는 사람만이 알 수 있어요." 뜨개질하던 손이 흠칫 놀라 멈춘다. 끄덕거리던 고개는 떨구지도 못하고 치켜들지도 못하고 ...

 

글을 못 쓰겠다.

사람들이 너무 적게 와서 끝내 불편한 자리.

닉 버그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왜 살람과 하이셈을 만나러 오지 않았던 걸까, 하는 생각 하다가 다함께의 조직력이나 정치력, 근사한 후원, 무엇보다도 오랜 시간 준비하고 선전하고 조직했던 그 사업을 도저히 쫓아갈 수 없었다는 생각에 이름.

입국이 불가능할 수도 있어서 일찍부터 선전을 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준비가 충분하지 못했음. 분명히, 늦었고 민첩하지 못했고 기획력이 부족했음.

어렵게 한국을 방문한 살람과 하이셈에게 미안함. 반전평화를 외치는 더욱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하지 못해서 미안하고 이제서야 미안한 생각 들어 미안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고통을 주는 사람이었음을 몰라서 미안하고 다음주면 파병연장동의안이 통과될 지도 모른다는데 어떻게 싸워야 할지 몰라서 미안하고

미안하다는 말밖에 하지 못하는 내가 미워서, 그래도 미안해요.

어떻게 전범민중재판운동이 전범민중재판에서 끝나지 않는 '운동'이 될 수 있을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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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04 19:08 2004/12/04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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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깨꿈 2004/12/05 11:1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고 .. 담에는 꼬옥 더많이 조직해보려고 하지만 .. 갇혀진 울타리를 넘지 못해 미안하고 그래도 .. 끝낼 수 없는 운동이기에 함께 계속해야지요 .. 안된다 하지말고, 아니다 하지말고, 어떻게! .. 긍정적으로^^

  2. 미류 2004/12/05 12:06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앗, 새~ㅁ, 오셨군요. 그냥 이런저런 생각하다가 싸이 가서 보고싶다고 쓴 건데 이렇게 오시니 쑥스럽구먼요 ^^;; 그래요, 긍정적으로! '어떻게'를 고민해요. 끝낼 수 없는 운동이기에... 결의대회 못 가서 미안해요. 준비하다 가느라 행진할 때야 도착했거든요. 민망해서 아예 안 갔답니다. ㅡ.ㅡ 우리, 이걸 마지막으로 '미안하다'는 얘기는 하지 말기로 해요! ^^

  3. 어깨꿈 2004/12/06 23:08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행사준비는 잘되어가는감요? 한번 날잡아서 .. 떼거지로 갈려고 하는데 .. 얼마나 조직될지는 모르지만 어느날이 좋은지 ... 집중해야하는지를 좀 갈쳐주시오 .. 최대한 조직해서 ...ㅎㅎㅎ 만명은 안되지만 .. 그래도 마니마니 가야지^^ 어떻게 .. 긍정적으로

  4. 미류 2004/12/07 02:49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ㅎㅎㅎ 만명이 올 것 같은 예감이~ 하지만 정말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 ㅡ.ㅡ 11일 선고재판과 문화제에 오시면 참 좋겠는데 재정문제로 인해 저희가 섭외한 공간이 경희대 크라운관, 계단밖에 없는 곳이랍니다. 휠체어 이동이 가능한 방법을 알아보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정말 죄송합니다. 오신다면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이동을 보조하겠습니다. 불편하시겠죠? 흑흑... 9일 박영희 대표님이 증인으로 나오시는 날 연세대 백양관으로 오시면 조금 편하게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