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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14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5)
    시봉

김광석, 그가 그리운 오후에

김광석을 처음 들었던 게 언제더라.. 데뷔한 연도나  행적과 관계없이 음악을 접할 경우엔 유난히 기억이 잘 안 난다.. 마치 바람이 처음 불었을 때는 흠칫하지만, 금세 편안해지듯.. 김광석은 내게 그렇게 온 것 같다.

 

그럼에도 그와 관련된 추억들을 짚어보면 몇가지가 생각나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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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 젊은 발라드 가수 한명과 눈가의 주름이 서글서글한 노래꾼 한명이 불과 며칠 간격으로 목숨을 끊었다.  불과 한달 새 유명인이 두명이나 죽었다고 난리가 났고 연예뉴스는 이를 대서특필했다. 그 두사람은 바로 서지원과 김광석. 솔직히 또래 친구들과 나에게 김광석은 그다지 익숙한 존재는 아니었다. 오히려 서지원의 죽음에는 지대한 관심을 가졌었다. 언론의 힘인지, 아니면 실제로 사람들이 슬퍼했던건지 당시 가요top10은 서지원씨의 곡이 몇주동안이나 1위를 지키기도 했었다. 그렇게 나와 친구들이 서지원의 영결식 화면을 보며 싸한 가슴으로 아파할 무렵, 엄마는 종종 집에서 김광석을 틀어놓곤 했다.

어느날 집에 돌아와 그 흐느끼는듯한 목소리를 들으며, 무심결에 그랬다고 한다.

 "엄마, 이 아저씨는 왜 이렇게 애써서 노랠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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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김광석을  들었던 건 중학교 2학년 무렵. 전학을 간지 얼마 안된 봄날, 옆반 국어 선생님이 어느날 수업에서 김광석 3주기 영결식에 다녀왔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김광석의 오랜 팬이라는 선생님은 그가 세상을 떠나던 날, 그의 빈소에 가서 아주 많이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도 충혈되서 빨개진 눈으로 수업을 마치셨다.  펑퍼짐하고 말간 선생님의 얼굴에서 눈물이 똑똑 떨어지던 그날, 기분이 유난히 이상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는 길 나는 김광석을 찾아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책장 안에서 애써 발견한 앨범이 바로 <나무>라는 앨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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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에 수록된 '나무'는 김광석이 한번도 공연을 해본적이 없는 노래다. 100회가 넘는 소극장 공연을 진행하면서 한번도 해보지 않다니.  하지만 누구든 처음 접하는 곡이 애착이 가는건지, 나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앨범을 가장 오랫동안 워크맨에 넣고 다녔다. 학교 옥상에 올라가서, 집앞 산에 올라가서, 밤에 길을 걸으면서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 본 날들. 엄마 아빠가 심하게 다투신 날이나 동생을 돌보기 싫었던 날엔 이어폰을 꽂고 도망을 나왔다. 델리 스파이스 노래 중 <이어폰 세상>이라는 곡이 있는데, 이어폰을 끼고 무언가를 듣고 있으면 어떤 공간에 있든 탈출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엄지손톱 크기 만한 이어폰 두 개만 있으면, 속박하는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데, 우습게도  그를 들으면 어느새 다시 돌아가고 싶어졌던 것 같다. 집으로, 누군가의 품으로..그때서야  타이르기 보단, 가만히 꼭 안아주는 듯한 김광석의 맛을  알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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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 전 이음 아트에서 하는 임종진의 전시회를 다녀온 후, 같이 갔던 이와 이런 얘기를 했었다.

"김광석과 같이 호흡했던 이들-주로 3,40대겠지-과, 죽은 뒤에 한참이 지나서야 듣는 우리의 정서는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소극장 공연을 따라다니면서, 노래부르는 이가 너무 좋아 수줍게 카메라를 들었다던 사진작가 임종진, 그는 김광석이 떠난 뒤, 떠올리는 것조차 너무나 가슴이 아파 한참동안이나 그의 사진들을 옷장속에 처박아 뒀다고 한다. 그 혹은 그 시대를 같이 살았던 이들과 비교했을 때, 나는 김광석의 떠남이 어쩐지 막연하기만 하다. 그의 기념비 앞에 와서 조금은 아련한 마음으로 왔다가는 이들을 보면 내가 인식하는 그의 실체는 좀 뿌옇달까..

 

그럼에도   가끔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거나, 노랫말을 듣고 있으면 그의 자글자글한 웃음 뒤에 있었을 법한 슬픔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어쩌면 김광석의 노래에는 어느 인생의 어느 특정 시점, 세상의 시름을 아주 조금이나마 인식하게 되는.. 이별과 아픔, 그리고 희망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열망하게 되는 때에야 이해하게 되는 어떤 힘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린시절 그의 노랫말이 막연하게만 다가왔다면, 시간이 가면서 조금씩 무언가 걷히듯 심부로 파고드는 힘이 있다. 이는 아마도 누구나 경험할 법한, 그리고 누구나 원하는 희망의 단서들이 노래에 녹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면에서, 그는 떠났지만 참 많은 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해주고 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희망'이라는 선물 말이다.

 

 

 

 

김광석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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