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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의 병폐

공부를 하러 도서관에 매일같이 간다.

 

그런데 이 도서관이란 곳이 심각한 병폐를 가진 곳이다.

 

정말 대단한 작가들과 그 작가들이 쓴 대단히 좋은 소설들이 그것이다. 그것들은 뿌리칠 수 없이 달콤한 유혹을 한다.

 

날 읽어라고 막 소리친다.

 

딘 R 쿤츠, 히가시노 게이고, 하워드 패스트, 존 스칼지, 빌 S 밸린저, 크리스 보잘리언, 짐 크레이스, 앨런 폴섬 등등... 이들의 목소리이다. 더 문제는 이들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3월 달에 헤아려 보니-전공책 빼고- 12권의 책을 읽었는데, 우리나라의 책은 김연수의 「꾿빠이, 이상」과 권성현 등이 엮은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이 두 권밖에 없다. 왜 그럴까?

 

나에게 정말 좋아하는 작가와 소설을 꼽아보라면 모두 외국작가와 외국소설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좋아하는 작품은 여럿 되긴 하지만, 작가는 김유정, 성석제 정도 밖에 없다. 왜 그럴까?

 

원작의 아우라에는 못 미칠 수 밖에 없는 번역이라는 약점을 지니면서도 왜 그런 것일까?



내 생각에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우리나라 문학은-물론 예외는 있다- 스토리텔링이 부족하다. 나는 소위 장르문학이라고 하는 스릴러 소설-영화도-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스토리에 있다.  우리나라 소설에서 스릴러 장르가 이제 막 피어나려는 상황이고 또한 그러한 장르 소설이 아닌 소설이더라도 스토리가 빈약하며-내용이 빈약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 빈약한 부분을 서술자의 의식이 많은 부분 메꾸고 있다. 그래서 극적-드라마-이지 못하다. 스토리 진행은 느려지고 감정이입을 지독하게 요구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도 싫어한다. 한마디로 재미가 없다.

 

둘째는 우리나라 문학을 처음 접하는 곳은 중고등학교의 국어시간이다. 그런데 이 국어수업이란 것이 문학을 정말 재미없게 만든다. 주제는 무엇이고 소재는 무엇이다, 기법은 이러한 것이 쓰였다. 문단을 나누고 여기 밑줄을 죽- 그어라. 이런 수업 방식 뿐 아니라 교과서 속 문학작품은 지독하게 재미가 없는 작품들만 모아 놓았다. 그것도 수십년전의. 이런 것들로 문학적 문화의 고양하려고 한단다. 이러한 수업 방식과 교과서 속 문학작품은 분명 우리나라 문학에 대한 일종의 선입관을 갖게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선입관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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