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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자본주의 이대로 가면 망할 수도 새로운 시장경제 모델 필요한 때"

  • 분류
    정치
  • 등록일
    2011/08/17 12:26
  • 수정일
    2011/08/17 15:57
  • 글쓴이
    코나투스
  • 응답 RSS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요동치고 있는 지금, 8.15 이명박 대통령의 경축사를 주요하게 작성한 박형준 대통령 특보 인터뷰 내용이다.

박형준은 이명박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 핵심 라인이다. 그는 한때 90년 초반 자본주의 노동과정론을 쓰기도 했다. 그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자본주의 이대로 가면 망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가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언급하고 있다.

현 정세를 바라보는, 이명박, 지배계급의 정치 철학을 보연주는 정세 인식이다.

 

[조선일보. 2011.8월16일자}

"자본주의 이대로 가면 망할 수도 새로운 시장경제 모델 필요한 때"

'共生 발전' 새 국정방향 체계화한 박형준 사회특보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도, 재정에 의존한 복지국가도 양극화 문제 해결할 수 없어
내년 총선과 대선 앞두고 정확한 진단과 대안 제시 필요

김두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15일 브리핑에서 "이번 8·15 경축사는 박형준 대통령 사회특보가 주로 작성했다"고 밝혔다. 박 특보는 정권 초기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성장' '친서민' '중도 실용' 등 국정 철학을 이론화하고 연설문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이번 경축사의 핵심 주제인 '공생 발전(Ecosystemic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특보는 이날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승자 독식·무한 경쟁의 신(新)자유주의도, 재정을 계속 투입해 빈곤문제를 해소하려는 복지국가 시스템도 현재 양극화 문제의 적절한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고 봤다"며 "과거에는 선진국의 어느 나라 시스템을 따라가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나라도 가지 않았던 길을 우리 스스로 찾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그런 문제 의식에서 새롭게 찾아낸 것이 '공생 발전'의 길"이라고 했다.

―'공생 발전'이 무슨 의미인가. 어디서 따온 말인가

"우리(청와대)가 만들어낸 말이다. 서로가 조화를 유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생태계(ecosystem) 개념은 최근 여러 분야에서 이론화되고 있는데, 이를 발전(development) 개념에 접목시킨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안다. 경축사 내부 토론 과정에서 '생태계'라는 말을 어떻게 우리 말로 바꾸느냐를 놓고 토론이 진행됐는데 이 대통령이 '공생으로 하자'고 해서 나온 것이다."

―지금, 왜, '공생 발전'이 필요하다고 보나.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복지문제가 핫이슈가 돼 있는데 이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 의식을 이 대통령은 애초부터 갖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현재 세계사적으로 볼 때 두 가지 큰 이슈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하나는 기후 변화, 다른 하나가 바로 '공생 발전' 문제다. "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8·15 경축사에서 ‘공생 발전’을 국정지표로 제시한 데는 박형준 대통령 사회특보가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은 박 특보가 작년 10월 본지와 인터뷰할 때의 모습.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쉽게 설명하자면 어떤 내용인가.

"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탐욕 경영에서 윤리 경영으로, 자본의 자유에서 자본의 책임으로, 부익부 빈익빈에서 상생 번영으로 진화된 새로운 시장경제' '격차를 확대하는 발전이 아니라 격차를 줄이는 발전, 고용 없는 성장이 아니라 일자리가 늘어나는 성장,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따뜻한 사회'를 강조하며 '길어진 생애 주기에 걸쳐 자신의 행복을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사회'를 말했다. 이런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공생 발전'이다. 조선일보가 최근에 소개한 '자본주의 4.0'과 다르지 않다."

―'공생 발전'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대통령 입장에서 매년 광복절에 통치 철학에 관한 담론을 제시했는데 이번이 집권 4년차 광복절로 거의 마지막이라고 본 거다. 3년간의 일관된 흐름을 총정리하고 진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있었던 차에 복지 포퓰리즘 논쟁과 글로벌 재정위기로 인해서 이런 방식으로 정리가 된 것이다."

―이 대통령이 공생 발전에 원래 관심이 있었나.

"공생 발전이라는 말 자체를 대통령이 만들어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금융위기 때부터 '이제 세상이 탐욕의 시대에서 절제·윤리의 시대로 넘어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해 왔다. G20 정상회의 때 윤리 경영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자본주의나 시장경제 메커니즘을 보면서 이대로 가면 소수의 금융공학자나 투기자본 손에 놀아나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생각이 중도 실용, 공정사회, 공생 발전으로 흘러온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명박 정권을 '친서민' '공정'으로 봐주지 않는 것 같은데.

"그게 문제는 문제다. 정권 초기에 '기업 프렌들리'를 말하고, 인사(人事)에서 약간의 문제 등이 있었던 것 때문으로 본다. 실제 본질보다는 이미지가 그렇게 규정돼 버린 것이다."

―정권 초기 '재벌 등 가진 자를 위한 정책'이란 비판이 일각에서 있었는데, 공생 발전이란 게 그에 대한 반성은 아닌가.

"정권 초기 정책으로 실제 양극화가 심화된 것은 없다. 이미지가 그렇게 느껴진 것일 뿐이다. 양극화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본질적인 문제다. 올해만해도 비정규직은 줄고 정규직은 늘고 있다. 그건 이 정부 들어 산업경쟁력이 좋아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박 특보는 이 정권 내내 '이명박 정부의 이데올로그'로 불렸다. 그는 "8·15 경축사 작업만 마치면 지역구(부산 수영구)로 내려가 총선 준비나 하겠다"고 말해 왔다. 그는 "국회로 복귀할 수 있게 된다면 이명박 정부의 철학과 정책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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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와 마르크스주의자 비판에 관한 더 나은 독서가이드 (리브컴)

libcom's guide to further reading on Marxism and Marxist critique.

 

*Karl Marx:
 

Wage-Labor and Capital
Value, Price, and Profit
Capital, Vol. 1-3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The Poverty of Philosophy
Grundrisse
Capital, Vol. 4 (Theories of Surplus Value)
1844 Manuscripts

 

http://www.greenwich.ac.uk/~fa03/ (Alan Freeman's web site, lots of TSS conference materials)
*Beyond Capital: Marx’s Political Economy of the Working Class – Lebowitz
*Open Marxism, 3 Vols. – Bonefeld, et al.
*Marx and Non-Equilibrium Economics – Freeman/Carchedi
*The Limits to Capital – Harvey
*Global Capital, National State and the Politics of Money – Bonefeld/Holloway, Eds.
*Reading Capital Politically - Cleaver
*'Decadence': The Theory of Decline or The Decline of Theory?, 3 parts - Aufheben Web Site
The Invention of Capitalism – M. Perelman
Marx's method in 'Capital': A Reexamination - Moseley, Ed.
New Investigations of Marx's Method - Moseley, et al, Eds.
Marx and Keynes: The Limits of The Mixed Economy – Mattick
Economic Crisis and Crisis Theory – Mattick
Essays on Marx's Theory of Value - Rubin
Marx’s Theory of Crisis – Clarke
Marx, Marginalism and Modern Sociology - Clarke
Capital and Exploitation - John Weeks
Women, Men and the International Division of Labor – Nash/Fernandez-Kelly, Eds.
Outlines of a Critique of Technology - P. Slater

 

*Marx: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
Critique of Hegel’s Philosophy of Right
Introduction to Critique of Hegel’s Philosophy of Right
The Class Struggle in France
The 18th Brumaire of Louis Napolean Bonaparte
The Civil War in France
Conspectus of Bakunin’s Statism and Anarchy
*Open Marxism:
Post-Fordism and Social Form: A Marxist Debate on the Post-Fordist State - Bonefeld/Holloway, Eds.
State and Capital: A Debate – Holloway/Picciotto, Eds.
The State Debate - Clarke, Ed.
Open Marxism, 3 Vols.


Bakunin:
 

God and State
Statism and Anarchy
Marxism, Freedom and the State
The Paris Commune and the Idea of the State
Stateless Socialism: Anarchism

Reform or Revolution - R. Luxemburg
*The Mass Strike, The Party and The Trade Unions - R. Luxemburg
* Law and Marxism – Pashukanis
The Idea of Good Government – Malatesta
The Struggle Against the State – Makhno
The State: It’s Historic Role - Kropotkin

See the journal Common Sense
Discipline and Punish - Foucault
Also see section VI

 

Marx and Engels:
 

The Communist Manifesto
The Cologne Communist Trial
History of the Communist League - Engels
Critique of the Erfurt Program - Engels
Critique of the Gotha Program
Marx on the First International - Padover, Ed.
Marx/Engels Collected Works

Social Democracy:
The Road to Power – Kautsky
The Class Struggle – Kautsky
The Mass Strike, The Political Party and The Trade Unions - Luxemburg
Rosa Luxemburg Speaks
Selected Writings - R. Luxemburg

 

Lenin:
 

What Is To Be Done?
One Step Forward, Two Steps Back
Two Tactics of Russian Social Democracy
Lenin's Collected Works, esp. 1905-09 and 1917-23
On The Trade Unions - Lenin
Left-wing Communism: An Infantile Disorder
Better Fewer, but Better
Lenin’s Political Thought, 2 Vols. – Neil Harding
Lenin, 4 Vols. - Tony Cliff
Leninism Under Lenin - Lieberman

Post-Lenin Leninism:
Lenin: A Study in the Unity of His Thought - Lukacs
The Modern Prince - Antonio Gramsci
Prison Notebooks - Antonio Gramsci
Selected Writings Political Writings - Antonio Gramsci
The Antonio Gramsci Reader

 

Trotsky, Leninism and Trotskyism:
 

Our Political Tasks - Trotsky
The Challenge of the Left Opposition, 3 Vols.
Writings of Leon Trotsky, 1929-1940
On The Trade Unions - Trotsky
On The Labor Party - Trotsky
The Spanish Revolution, 1936-39
The Crisis of the French Section, 1935-36
Transitional Program of the Fourth International
Lenin and The Revolutionary Party – P. LeBlanc
The Struggle For A Proletarian Party, 1938-40 - J. Cannon
Documents of the Founding of the Fourth International
Toward a New Beginning – On Another Road – H. Draper
The Myth of “Lenin’s Concept of the Party” – H. Draper
Marxism and the Party - Molyneaux

 

Council Communism:
 

Open Letter to Comrade Lenin - Gorter
Pannekoek and Gorter's Marxism
Trade Unions - Pannekoek
Party and Working Class - Pannekoek
General Remarks on the Question of Organization - Pannekoek
Marxism: Last Refuge of the Bourgeoisie - Mattick
Anti-Bolshevik Communism - Mattick

 

Open Marxism:
 

Marxism for Our Times: CLR James on Revolutionary Organization – Glaberman, ed.
Facing Reality - James/Lee
Rosa Luxemburg, Women's Liberation and Marx's Philosophy of Revolution - Dunayevskaya
Marxism and Freedom - Dunayevskaya
The Philosophic Moment of Marxist-Humanism - Dunayevskaya
Social and Political Writings, 3 Vols. - Castoriadas
Situationist International Anthology
The Veritable Split in the International - The Situationist International
The Society of the Spectacle - Debord

 

Historical Documents and Documentation:
 

History of Socialist Thought, Vols. 1-4 - Cole
Theses, Resolutions and Manifestos pf the First Four Congresses of the Third International
Workers of the World and Oppressed Peoples, Unite!, 2nd Congress of the 3rd International
Lenin's Struggle for a Revolutionary International, 1907-1916
The German Revolution and the Debate on Soviet Power
To See The Dawn
A Documentary History of Communism - Daniels
Pannekoek and the Workers' Councils

 

Early Working Class History, through 1864
 

*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 - Thompson
*The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 - Engels
History of The Labor Movement in the U.S., Vol.1 - Foner
Marx and Engels on Chartism
The Chartists - G.D.H. Cole
Labouring Men - E.J. Hobsbawm

 

The Communist League and The Revolutions of 1848-49
 

*The 18th Brumaire of Louis Bonaparte - Marx
*Class Struggles in France - Marx
*Revolution and Counter-revolution in Germany - Engels
The Cologne Communist Trial - Marx
*The History of the Communist League (Intro to Cologne Communist Trial) - Engels
Marx: The Revolutions of 1848 (Penguin Publishers)
The Red 48ers - Hammen
History of Socialist Thought, Vol. 1 - G.D.H. C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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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중국 노동자 : '독립' 노조주의를 위한 새로운 사냥감


 

 

중국 노동자: ‘독립’노조주의를 위한 새로운 사냥감

 

 

중국 프롤레타리아트는 중국 공산당과 국가 노조에 맞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지형 속에서 호전성과 전투적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

1980-1981년 폴란드 노동자 투쟁과 비슷하게, 중국 노동자들은 공식적인 중화전국공청회(ACFTU) 밖에서 대항하면서, 회사에 맞서 투쟁하면서, 스스로 조직화된 파업을 분출시켰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서구 노조주의자들과 좌파 활동가들이 주목하고 있다.

 

2010년 5월을 기점으로, 혼다 공장 부품 노동자들은 광동 지역에서 2주간 파업을 전개했다.

노동자들은 총회에서 자신들의 대표자를 선출했다. (노동자들의 요구 중에 하나는 모든 노동자들이 교대 근무 시간에 총회에 참석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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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혼다 노동자들의  공장점거

 

비즈니스 노조* (business union) 개혁가들, 평조합원 노조주의자들과 그들의 좌파활동가 동맹을 위한 중심 잡지인 레이버 노트 (Labor Notes)는, 혼다 노동자에 관해서 표지 앞면으로 다루었다. “자동차 파업은 중국 노동자 운동을 위한 평범한 희망을 확산시키는가?” 기사 제목은 확산되는 ‘독립’노조주의 전망에 관한 흥분을 보여주고 있다.

 

그 기사는 놀랄만한 고백을 일찌감치 하고 있다 : “... 실천 속에서 중화전국공청회 (ACFTU)는 정부, 고용주와 일치해서 실제로는 노동 규율을 강요하고 생산을 원만하게 유지하도록 노사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작동했다.”

 

우리가 레이버 노트(Labor Notes)의 지지자들을 믿는다면, 그러나 이 기사의 특성은 서구의 비즈니스 노조와 소위 말하는 ‘사회주의’ 나라의 국가 노조 그리고 전체주의 정권의 - 평조합원이 아닌, ‘독립’노조에 단지 적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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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경찰이 혼다 공장을 삼엄하게 경계를 하고 있다

 

레이버 노트 (Labor Notes)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혼다 파업의 평화적 해결은 중국에서 진짜 단체 교섭 체계를 세우는 기회로 받아들여진다.” 노조개혁주의자들과 ‘독립’노조주의자들에게, 노동계급의 호전성과 자기-조직화된 기관 (총회, 노동자 대표위원들, 파업위원회)는 ‘독립’노조의 확립을 그들에게 재연하는 것이며, 계급투쟁의 목적은 ‘독립’노조 체계 안에서 더 나은 경제 상태를 얻기 위한 것이다.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평조합원들의 미래 희망을 말한다 : “ 국제적 노동 동맹들은 갈채를 보내야 한다.” 폴란드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는 노조 좌파들, 아나코-생디칼리스트들과 혁명적 생디칼리스트들의 모든 방법을 위한 향수 중 하나다.

 

노동계급에게 교훈은 충분하다. 솔리다르노시치 (폴란드자유노조운동을 말함, Solidarnosc)는 노동자들이 계급기관 (파업위원회, 총회, 노동자 대표들)을 설립한 후에 세워졌다.

 

국가화한 노조 (statified unions)들의 환경은 노동자들이 공식 노조들을 거부하도록 이끌지만, ‘독립’노조와 ‘자유’노조의 신비화는 솔리다르노시치 (Solidarnosc) 설립을 이끌면서, 매우 강력하다.

‘독립’노조와 ‘자유’노조, 솔리다르노시치 (Solidarnosc) 부흥과 함께, 노동자들의 호전성은 노조투쟁 중심으로 모아진다. 계급기관들의 영향은 쇠락한다.

 

폴란드처럼 중국에서 유사한 국가화한 노조들의 존재가 주어진 곳에서, 서구 노조주의자들, 좌파 활동가들의 압력과 중국 민주화 지지자들이 중국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 ‘독립’노조와 ‘자유’노조 신비화의 힘이 자라는 곳에서는 상상력 이상을 넘어설 수 없다.

 

이러한 것들에도 불구하고, 중국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계급지형 속에서 자기-조직화와 투쟁은 매우 긍정적인 발전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 비즈니스 노조: 자본주의의 틀 안에서 노동조건의 개선과 교섭에만 그 임무를 한정하는 노동조합을 말한다.(옮긴이)

 

출처: 국제공산주의흐름

http://en.internationalism.org/icconline/2010/07/struggles-in-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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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대통합, 처음엔 비극 이젠 소극!

  • 분류
    정치
  • 등록일
    2011/08/07 21:33
  • 수정일
    2011/08/07 21:33
  • 글쓴이
    코나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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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대통합,

 

처음엔 비극(悲劇) 이젠 소극(笑劇)!

 

                                    - 남궁원

 

 

  한 가지는 분명하다. 최근 몇 년 동안에 일어난 급속하고 거대한 유럽 · 중동의 계급투쟁 흐름과 자본주의 경제위기는, 부르주아 계급이 이 위기 극복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통합되었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다. 미국과 유럽 경제위기는 실시간으로 한국 자본주의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부르주아 언론에서도 양극화 (즉 노동자 궁핍화) 현상을 심각하게 언급하고 있듯이, 전 세계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서 한국 노동자라고 예외는 아니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도 계급투쟁이 부활하고 있는 모습이다. 올해 초에 미국 노동자와 학생, 시민들은 공공부문 정리해고, 임금삭감, 노동조합 단체협상권 박탈에 맞서, 1970년 베트남 전쟁 반대 이후 대규모 시위를 벌여 위스콘신 주 의사당을 16일 동안 점거 농성했다.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지역에서는 연일 시위와 광장 점거, 파업 상황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한국은 조용하다.
  유성 기업 투쟁과 한진 중공업 정리해고 반대 크레인 농성투쟁 (희망 버스 투쟁), 반값 등록금 투쟁이 전개되고 있지만, 대대적인 파업과 가두 투쟁은 최근 몇 년 동안 시도조차 되고 있지 않다.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립된 공장점거 파업투쟁이 전개되었지만 연대 총파업으로 투쟁이 확대되지 못했다. 민주노총 차원에서의 총파업도 그 동안 실행되지 못하고 매번 ‘뻥파업’이라고 비난 받는 가운데 이젠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민주노총은 현장 투쟁을 확대 발전시키는 것은 이제 아예 포기하고 오직 진보대통합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듯이 보인다. 물론 민주노총만이 문제가 아니다. 진보대통합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는 세력들을 보면 계급투쟁을 확대시켜야 할 임무를 모두가 한결같이 포기한 모습이다. 투쟁 확대의 포기와 진보대통합 ‘올인’은 상호 연동되어 있는 것인가? 

 

지배계급의 위기관리 본능

  최근 우리는 지배계급이 내놓는 몇 가지 담론을 듣는데, “공정사회” “초과이익공유제” “반값 등록금” 등이 그 예다. 공정사회란, 말 그대로 MB정부가 정권 말기에 공직사회 ‘군기 잡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법과 질서를 엄격히 적용해서 노동자 파업이나 시위대를 겨냥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집회 참가자에게 날라드는 수많은 출두요구서와 최근 잇달아 터지는 강릉 청년단체협의회 , 인천지역 노동자, 민주노동자전국회의 국가보안법 사건들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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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초과이익 공유제”와 “대학생 반값 등록금”이다. 시민사회단체에서나 낼 법한 초과이익 공유제라는 재벌개혁 정책을 정부 ⁃ 여당에서 내놓고 논쟁을 하고 있다. 초과이익 공유제는, 말 그대로 “대기업이 초과이윤을 냈을 경우 그 이익을 중소기업과 나누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삼성 자본가 이건희는 “초과이익 공유제가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 본적이 없다”고 반발했다. 더 나아가 보자. 최근 한나라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정통 보수 박근혜 측근은 “대학생 등록금 45% 지원을 약속하고, 보수보다는 진보에 강조”를 내걸고서 당 지도부에 선출됐다. 그 이면에는 지금과 같이 한나라당 운영을 보수적으로 했다가는 망한다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물론 립서비스 차원이겠지만, ‘노동자투쟁의 잠재적 폭발 가능성을 사전에 막기 위한’ 지배계급의 자본주의 위기관리 본능이 발동되는 것 같다. 보수적 진보(?)’를 말하며 이제 자본주의 경제위기에 대응해서 고도의 전략적 개입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보정당 대통합 논의

  지배계급의 정치세력 및 블록들 간의 이해나 갈등을 자본주의 경제위기, 계급투쟁과 연관시켜 총체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부르주아 정치평론가들이 즐겨 표현하는 인물주의나 지역 · 계파 중심으로 정치행위를 분석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 현재 자본주의 경제위기를 둘러싸고 지배계급은 대(對) 프롤레타리아 투쟁을 염두에 두며 ‘자본(주의) 재구성’을 위한 치열한 논쟁을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진보, 좌파,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최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지난 5월31일에 진보대통합에 합의했다. 사회당은 진보대통합 합의문 서명에 불참하고 새로운 진보정당 구상에 나서고 있으며, 국민참여당은 진보대통합 참여의사를 밝히고 있다. 여기에 진보정당 통합 논의에 민주노총이 적극 참여하고, 진보정치세력의 연대를 위한 교수연구자모임(진보교연)이나 진보통합-복지국가를 위한 시민회의(시민회의)가 진보대통합 참여 논의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개혁 진보 좌파 정치세력들의 정치행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 진보 좌파 정당 운동의 통합 역사와 행태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역사를 회고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되는 진보(정당)대통합 정치의 주체들의 역사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것이다. 
  

  선거를 겨냥한 과거 진보 · 좌파 통합의 실패

  91년 7월 인민노련, 노동계급, 삼민동맹 3파 연합은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진보정당 결성을 추진하게 된다. 당시 <한사노당>은 “광범위한 좌파연합을 통한 대중정당 건설과 이 속에서 사회주의 세력의 독자적인 분립”이라는 기본테제를 확정한다. 이른바 3파 연합인 <한사노당>은 사상 노선에 대한 토론과 확립 없이 (이른바 좌파 연합을 통한 대중정당 건설을) 연방주의적으로 구성하는데, 92년에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로 이름을 바꾼 뒤 민중당과 통합하게 된다. 그리고 통합민중당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참패하고 해산 당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95년 인민노련 중심의 진보정당추진위(대표 노회찬) 와 민중정치연합 (대표 김철수)내 우파인 (사노맹이 외화된) 사회당 추진위 세력은 진보정치연합을 건설하고 곧 바로 96년 15대 총선에 나섰다. 당시 진보정치연합은 15대 총선방침을 논의하는 대의원대회를 열고 ‘진보정치연합은 개혁신당의 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중심으로 15대 총선에 참여한다.’는 방안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진정추 세력을 대표하는 노회찬은 개혁신당을 거쳐 ‘꼬마 민주당’ 당무위원으로 선출되고. 강서 을에서 조직책으로 선임된다. 그러나 노회찬은 96년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최종적으로 사면복권이 되지 않아 출마자격을 얻지 못했다. 15대 총선 실패 이후 진보정치연합은 사실상 내부 갈등 관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식물’ 정치조직으로 존재한다. 이후 97년 전국연합과 국민승리21를 구성, 민주노동당에 참가한다.
  한편, 93년 민중회의에서 분화 발전한 우리청년회는 97년 대선 독자 후보 논쟁을 둘러싸고 정치연대를 탈퇴한 뒤, 98년 독자적인 <청년진보당>을 결성한다. 이들은 2000년 16대 서울 전 지역 총선후보를 낸 뒤, 이후 반(反)조선노동당 정체성을 기초로 한 사회당으로 개명한다. 사회당은 2002년 대선 독자 후보 활동을 한 이후 내부 사상투쟁에 휩쓸리고, 사회당 내 자율주의 세력이 이탈한다. 사회당은 특히 2007년 대선에서 ‘사회적 공화주의’를 핵심으로 내세우는데 , 사회적 공화주의 요체는 “국민 모두가 진짜 주권자” “민주주의” “평화주의” “신자유주의 반대” 등이다. 사회당은 몇 번의 선거에 독자 후보를 내지만, 의회 진입의 높은 벽을 매번 실감하고 실패한다.

  90년대 공개적으로 등장한 진보 좌파 주류 세력은, 군부파시즘 타도라는 역사적 시기를 걸쳐,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형성된 노동자정치세력화 열망의 일부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민족해방파의 부르주아 (김대중 )비판적 지지에 맞서 투쟁한 점 또한 성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위에서 봤듯이 진보 좌파 ‘주류’ 세력은 전략적 과제로서 ‘선거 정치에 집착’하면서, 체제 내적 운동으로 전화된다.
  사실 진보, 진보정당, 좌파라는 단어는, 사회주의 정치 운동세력이 85년부터 89년 비합법 정치운동 시기에서 벗어나, 90년 공개 정치운동을 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면서 썼던 용어다. 한편에서는 90년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사회주의를 방어하면서 ‘진보 좌파 정당’ 용어를, 다른 한편에서는 NL(민족해방운동) ‘반정립을 위해 좌파’라는 말로 자기 정체성을 드러냈다. 진보/ 좌파라는 단어는 NL 운동에 대한 상대적 개념이며, 사상 이론 혼란에 따른 90년대 방어적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관통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다시 말해 진보/좌파는 사상 이념적으로 다양하게 해석되는 불명확한 개념이며, 이러한 인식에 기반을 둔 진보 좌파 정당 주류 세력은 역사적으로 사민주의 선거용 정당으로 나갔다.

 

  2008년 민주노동당과 분당한 진보신당은 개혁주의적 (노사모 수준) 성향의 촛불당원이 대거 들어와 그 옛날의 좌파 진보 정체성조차 불투명한 상태다. 특히 진보신당 안에는 이번 진보대통합과 관련해서, 아예 복지국가를 중심으로 민주당, 국민참여당까지도 함께 하자는 세력, 민주노동당과 통합하자는 세력, 사회당과 통합을 우선시하는 세력 등 다양한 세력이 존재한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진보 좌파로 표상되는 진보정당은 명확히 실패로 귀결되었다.
사회당은 진보 좌파의 전형을 보여주는 데, 그 정점이 바로 ‘반조선노동당’ 핵심 슬로건이다. 이는 당의 성격을 반국(半國) 관점에 근거한 것으로, 국제주의 관점과 세계혁명 전략을 스스로 제거해버린다. 또한 사회적 공화주의는, 자본주의 발전 역사에서 부르주아 국가와 민족주의 형성은 영토를 중심으로 한 (국민/민족) 주권, 민족자결권을 핵심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국민 모두가 진짜 주권자”를 모토로 한 ‘사회적 공화주의’는, 사회당이 과연 사회주의자 정당인지조차 의심스럽다. 이른바 이들이 최근에 주장하는 ‘기본소득론’은 자본주의 ‘생산’ 문제는 외면한 채, ‘분배’ 문제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체제 내적인 전략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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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 대선 판짜기: 진보대통합 논쟁의 의미

  민주진보대통합은 2012년 4월 총선과 대선 선거 정국 판짜기용이다. 그 정치적 귀결은 반MB 정권교체이며 2013년 연합정부다. 따라서 이를 위한 부르주아 정치가와 진보정당들 상층부 인사들의 ‘그림 그리기’와 이합집산이 상층부 차원에서 추구된다. 부르주아 계급정당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야4당 통합을 주장한다. 진보정당 상층부 일각에서는 연합정부 하에 장관자리까지 언급하고 있다. 시민단체 또한 진보대통합을 주장하고, 민주노총 현 집행부는 1만 추진위원을 제안하면서, “노동자 집권”, “노동자는 하나”, 그래서(?) “당도 하나”라는 1국 1정당론에 기초한 진보정당 대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이른바 ‘민주진보 대 반민주’ 구도다. 여기서 더 나아가 민주진보세력의 총 단결인 ‘정당연합’을 추구한다. 이는 결국 대선시기 민주당 비판적 지지로 귀결되며, 이들은 다시 노무현식 대선 바람을 꿈꾼다. 한 정치연예인은 “국민의 명령”을 얘기하면서 백만 민란과 야권 통합을 위해 행동에 나서고, 발 빠른 부르주아 정치인은 자신의 지역구를 민주노동당 대표 이정희에게 물려줬다.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중앙위원회를 개최해서 만장일치에 가까운 진보대통합 추진을 이끌어 냈다. 여기에 민주진보대통합에 진보신당 스타급 연예인 심상정과 노회찬 참여. 이 ‘그림 그리기’는 과히 공상적이지도 않고 진보대통합을 둘러싼 정치 지형을 볼 때 현실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진보신당 당원중 상당수가 자유 개혁주의적 성향임을 볼 때 더욱 그렇다.
  여기에 민주노동당 NL파의 친 국민참여당 행보는 사실 80년대부터 노선적으로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민주노동당 NL파의 “우리민족끼리’로 표현되는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정치노선은 이론적으로 ‘민족적’ 내용 확보가 핵심이며, 이는 언제나 국민경제를 둘러싸고 논의하게 된다. 그런데 ‘국민경제의 지배/종속’이라는 관점은 정확하게 말하면 부르주아 경제학의 관념이다. 우리는 현 자본주의 위기 속에서 수많은 부르주아 연구 · 정책 보고서가 어떻게 하면 국민경제를 대외 의존에서 벗어나 자립적인 경제구축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연구보고서를 숱하게 본다. 왜냐하면 국내 부르주아에게 국외 부르주아와의 경쟁과 상호 모순적인 협력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르주아 세력과 연합하기 위한, 민주노동당의 ‘사회주의 문구’ 강령 삭제는, 민주노동당의 ‘친 부르주아적 성격’을 더욱 강화한다. 

 

  새로운 진보정당, 아직도 신자유주의 반대?

  다른 한편, 보수- 개혁- 진보(좌파) 구도가 존재한다. 이들은 진보신당 (새로운 진보정당)독자파, 사회당, 새로운노동자정당추진위원회(새노추)로 표현되는 세력이며, 진보대통합에 반대하는 ‘새로운 진보정당 추진’ 세력이다. 이들은 대체로 반신자유주의 진보정당에 동의하며, 정치적 목표로 여전히(!) “신자유주의 극복의 대안과 전략”을 모색하면서 “진보정치 혁신세력과 연대하여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추구한다.
일부 좌파 사회운동 단체는 사회운동 관점에서 “통합진보정당 내부에서 좌파적 블록을 강화하고 노동운동의 중앙파 등과 협력하여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중심의 방침을 최대한 제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함께와 진보교연은 “진보대통합에 찬성하면서, 국민참여당 저지”로 요약된다.
  이들 세력들은 여전히 90년대 중반 이후 형성된 애매모호한 진보/좌파 정치 연장선상에 있으며, 앞서 역사적 과정에서 봤듯이, ‘자본주의의 나쁜 측면들’에만 반대하는 ‘윤리적 반자본주의(규제)’ 운동에 머무른다. 사회주의 / 공산주의 전망을 뒤로 미룬 채, 기껏해야 자본주의 국가기구 ‘좌파’의 역할에 머무른다.
  이들은 여전히 ‘신자유주의 반대’ 슬로건에서 멈춰서 있다. (2008년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글로벌 자본가 빌 게이츠조차 신자유주의 폐해/반대를 주장하면서 ‘창조적 자본주의’를 촉구하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반대는 재벌의 특정한 정책을 반대하고 민주적인 경제정책을 제시한다는 일반론적 의미 수준에서 머무른다. 반이명박 정부에 머무르면서, 결코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도전과 침해를 감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리를 둔다. 신자유주의 반대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다양할 수 있지만, 그 귀착은 서구의 계급타협인 사회민주주의 정책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주의 / 공산주의 지향을 분명히 하는 당 운동에 나서야

  현재는 과거의 축적이며, 동시에 미래를 향한다. 역사적으로 선거를 앞두고 진보 좌파의 이합집산 세력은 실패로 끝났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진보대통합은 총선/ 대선 선거대응을 위한 개편이며, 기껏해야 서구에서 실패한, 노동자 투쟁을 배신한 인민전선 재판이다. 특히 통합진보정당론자들은 소부르주아 민족주의(NL)와의 동거를 통해 끊임없이 인민주의와 사실상 반혁명적 시각을 확산시킨다.
자본주의의 장밋빛 환상에서 벗어나는 것, 노동의 미래를 제시하는 것은 오직 노동자의 계급투쟁 능력과 권력의지에 달려있다. 이른바 ‘부르주아 개혁 정치(제도권 민주주의)’, ‘윤리적 반자본주의(규제)’ 운동을 뛰어넘는 혁명적 시각과 실천이 절실하다. 자본주의 위기가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 좌파, 진보라는 애매한 규정에서 벗어나, 이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전망에 기초한 당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는 실천적으로 가장 단호하고 언제나 계급투쟁을 추동하고, 이론적으로 노동자 투쟁의 조건과 경과, 결과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
여기서 일체의 머뭇거림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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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련 국가보안법 1심 법정 최후 진술문 (2010.12.3)

사회주의노동자연합 국가보안법

1심 법정 최후 진술문

 

자본주의는 쇠퇴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단지 좋은 이상이 아니라, 인류의 행복한 삶을 위한

프롤레타리아의 현실적 필요성입니다.

 

 

2010.12.3

남궁 원

 

 

1. 저는 얼마 전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 앞에서“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외치며”, 찬이슬을 맞으면서 200여명이 거리 노숙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 울산에 다녀 온 적이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20대~30대 초반이며, 40대 초반~50대 후반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40대~50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과 대화를 하고 서울에 올라왔습니다.
40대~50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정규직 노동자들과 똑같은 라인에서 차를 만드는 일을 10년 넘게 해온 분들이었습니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정규직과 임금차별(50%)을 받는 것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10년이 넘게 차별을 받아왔습니다. 보통 14시간 일하며, 2시간 마다 교체를 하는데, 교체해줄 사람이 없으면, 화장실도 못 간다고 합니다.
그 여성 노동자들이 한 말을 옮겨보겠습니다.
“거리에서 장사하는 상인들도 우리 싸움에 힘내라고 한다”
“집에서도 우리 싸움을 지지하고 있다”
“우리 애들 비정규직 만들 수 없다.”
“오늘 연대 세력이 많이 오니까, 힘이 난다. 연대 세력이 많이 와주면 좋겠다.”라고
저의 두 손을 꼭 잡으면서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대책위 피켓 문구를 봤습니다.
“우리 아빠 때리지 마세요!”
“비정규직 노동자는 당신의 아들, 딸, 동생입니다!”
 
오늘 이 땅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염원은 “비정규직 철폐”입니다. 그러나 비정규직 철폐는 현 자본주의 체제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구호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본능적으로 자본과 적대적으로 투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 글로벌 기업인 현대자본에 맞서, 며칠째 공장점거 투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싸움이 확산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이는 바로 연대 파업의 확산입니다. 그리고 전국적인 파업입니다.
공장점거 파업에서 지역연대파업의 확산, 이어지는 전국적인 파업. 저는 바로 이것이 노 ‘노동자평의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자신이 염원하는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은 스스로 계급의식을 체득하고 있으며, 스스로 자본과 적대적으로 투쟁하면서 노동자의 권력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 얼마 전 개최된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심 곳곳 대형빌딩에는 "위기를 넘어, 다 함께 성장"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 그런데 자본가 전문 홍보가 조차도 ‘위기’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위기. 대체 이 위기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1970년대 이후 세계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2007-2008년 세계자본주의 심장인 미국을 강타한 금융위기는 아이슬란드 국가부도를 거쳐, 러시아, 남부 유럽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 헝가리 등에서 국가 재정위기로 나타난 바 있습니다. 오늘날 지구적 규모에서 벌어지는 자본주의 금융위기, 국가 재정 위기는 바로 신자유주의 산물입니다.
이런 점에서 자유방임형 경쟁자본주의에서, 국가 주도적 케인즈주의로, 다시 시장 만능을 추구했던 신자유주의 파산은, 자본주의가 역사적 쇠퇴 경향에 서 있음을 보여줍니다.
 
3. 신자유주의 종주국인 미국을 보겠습니다.
 
2007년 서브프라임 경제위기 이후, 미국 저소득자에게 떠오른 새로운 부채수단이 신용카드, 자동차 할부금융, 학자금 융자입니다. 새로운 부채수단들은 지방은행과 직결돼있습니다. 이것이 부실화되면서 급증하는 것이 바로 지방은행 파산입니다. 2009년 한 해 동안 미국 지방은행 파산은 총 120개입니다. 181개 금융사가 파산한 지난 1992년 이후 최악의 수치입니다. 더구나 오바마 정부가 구제 금융에 쏟아 부은 재정적자가 1.4조 달러입니다. 1945년 이후 미국 역사상 최고 재정적자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오바마 등장 이후 34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졌다는 점입니다. 미국경제는 70%가 소비구조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노동계급의 궁핍화와 고용위기(대량실업)는 소비 위축과 장기 경제침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해마다 1조 달러 이상씩 엄청난 재정적자가 불어나고 있고, 무역적자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파산한 금융기관 구제금융을 위해, 수 조원의 돈을 풀었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세계 기축 통화인 달러를 윤전기로 마구 찍어냈습니다. 달러는 전 세계를 휘저으면서, 신흥공업국 등을 중심으로 흘러들어 투기자본으로 전환했습니다.
미국 오바마는 200만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무역수지개선을 위해, 중국에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저임금 노동자의 착취를 통해 저가의 상품을 전 세계에 공급하는 세계 공장입니다. 중국이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인 20~40%를 받아들인다면, 중국 제조업은 수출에 타격을 받고 기업이 도산하게 됩니다. 최근 중국 제조업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공장점거 투쟁을 겪은 중국 입장에서는 위안화 절상 요구를 쉽게 받을 수 없습니다.
이렇듯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은 세계시장 쟁탈을 위한 수출 경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지속적 확장을 통한 이윤확보에 혈안이 돼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전 지구화된 상태에서, 새로운 식민지(?) 시장을 개척하지 못하다면, 자본주의 자체는 과잉생산의 영원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은, 자본주의가 자신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4. 한편, 우리는 자본주의가 위기에 직면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취한 긴축재정과 노동법 개악, 정리해고, 임금삭감, 복지축소, 물가폭등에 맞선 전 세계 노동계급 투쟁을 볼 수 있습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아프리카 대륙에서 물가폭등에 항의하는 카메룬 폭동 소요, 볼리비아 대중 투쟁, 이집트 총파업, 유럽에서는 그리스 공공부문 노동자 파업투쟁, 루마니아 공무원 총파업, 스페인 공공부문 총파업이 벌어졌습니다. 덴마크, 독일,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고, 프랑스 노동자들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총파업 투쟁, 노동자 감축에 항의하는 영국 지하철 노조의 24시간 총파업이 있었습니다. 아시아권은 한국 쌍용 자동차 77일간 공장점거 파업, 방글라데시 섬유산업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비공인 파업 투쟁 3,000건이 발생했으며, 중국 공산당과 국가화된 노조에 맞선 중국 노동계급의 삵쾡이 파업 투쟁이 전개된 바 있습니다.
 
5. 그러나 여기서 상투적인 문구는 피하겠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더 이상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비참한 조건 아래서 살 수 없기 때문에 혁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착취와 소외는 노예제, 봉건제, 19세기 자본주의에서도 이미 존재했습니다. 봉건제 사회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시점에, 우리는 혁명계급-부르주아지의 출현을 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충돌 속에서, 혁명이 중요한 이유는 혁명계급-프롤레타리아트가 그 계급적 의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계급의 공멸이라는 위협을 받기 때문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 파시즘의 대두,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 근본적 회의를 던진 세계경제대공황, 5천만 명의 인명이 학살된 제2차 세계대전은 분명 파국의 시대였습니다. 세계대공황은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제적 군사적 투쟁인 2차 세계대전을 낳았고, 그 결과로 대공황은 해소되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최대 희생자는 노동자였습니다!
자본주의 경제 붕괴는 대중이 ‘지적으로’ 공산주의(communism)를 알기 전에 객관적으로 혁명의 ‘필요성’을 낳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자본주의 경제 붕괴는 혁명을 향한 가장 큰 동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눈앞에 벌어지는 현상은, 20세기 전반부 세계대공황 (1929~1933) 같은 대재앙이 재현될 가능성을 그 어느 때보다 높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과거 20세기 초반 혁명가들이 그래했듯이, 지금 사회주의, 공산주의자에게는“하늘 아래 엄청난 무질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황은 훌륭합니다.”
 
6. 따라서 저는 2008년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후,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 위기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 시대야말로, 이른바‘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낡은 고집으로 여기던 혁명의 문제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혁명의 문제설정은, 자본주의 위기를 단순히 경기순환상의 문제로 보지 않고, 자본주의 체계 자체의 역사적 쇠퇴 경향과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투쟁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노동계급이 역사적 관점을 상실하고 하나의 공장, 하나의 지역에 갇혀 있으면 패배한다는 역사를 공산주의자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류가 겪고 있는 전쟁, 빈곤, 생태계 파괴 극복을 위해서는 공산주의 사회가 절대적인 필요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90여 년 전 로자 룩셈부르크가 갈파했던 것처럼, “사회주의는 지구전체 차원에서 생산력의 발전을 통한 노동하는 인류 자신의 삶의 욕구의 충족을 지향한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본질적으로 보편적이고 조화로운 세계차원의 경제 형태이다.”
 
인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입니다. 저는 노동자 혁명 운동이 다시금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혁명을 꿈꾸고 시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건강한 자본주의를 위한 투쟁이 아닌, 이제 공산주의를 위한 투쟁에 이제 나서야 합니다.
 
자본주의 쇠퇴가 본격화되고 있는 지금 시점에, 한국에서 다시 국가보안법이 날뛰고 있습니다.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를 탄압하는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이만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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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미리 가본 내년 총선과 대선 風景

  • 분류
    정치
  • 등록일
    2011/08/07 18:14
  • 수정일
    2011/08/07 18:14
  • 글쓴이
    코나투스
  • 응답 RSS

한나라당 박근혜와 야권연대를 대비하고, 총선에 눈 길 한 번 주지않는 박근햬 태도,  민주당 속내를 분석한 한 부르주아지의 시선.   

조선일보 2011.08.05

강천석 칼럼

수도권 40대 화이트칼라가 선거 승부 가른다
박 前대표는 얼마나 부드럽게 다가서고
야권 어떻게 本選에 강한 후보 골라낼까

대한민국 인구는 5000만명이다. 그 가운데 꼭 절반이 서울(1026만) 경기(1153만) 인천(272만) 등 수도권에 몰려 산다. 총 유권자 3884만명(2010년 6·2 지방선거 기준)의 49%인 1902만명도 수도권에 집결해 있다. 선거는 머리 숫자가 결정한다. 내년 4월 11일의 국회의원선거, 내년 12월 19일의 대통령선거 모두 수도권 판세에 따라 결판이 난다. 한국 정치의 지리적 양축(兩軸)으로 불리던 영·호남 시대가 저문 것이다. 영남(유권자 941만·24%) 호남(401만·10%)의 선거 결정력은 수도권과 비할 바가 못 된다. 영·호남에 충청(388만·10%)을 더해도 마찬가지다.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48.7%, 정동영 후보가 26.1%, 이회창 후보가 15.1%를 득표했다. 세 후보의 최종 득표율과 가장 비슷한 표의 분포를 보인 직업 집단은 화이트칼라 집단이었다. 이들은 이명박 후보에게 46%, 정동영 후보에게 27.8%, 이회창 후보에게 10.8%의 표를 주었다. 각 후보의 최종 득표 분포와 1~2% 차이밖에 없는 사실상의 '유권자 대표'였던 셈이다. 연령으로 보면 40대가 세 후보에게 표를 각각 51.9%·29.2%·12.2%로 나눴다. 40대는 위·아래 세대인 30대나 50대보다 최종 득표율과 훨씬 근접한 투표 분포를 보였다. 이명박 후보를 사상 최대 표차로 당선시킨 힘은 총 유권자의 과반수가 몰려있는 수도권 지역에서 나왔다. 서울은 세 후보에게 각각 57%·23%·6.4%의 표를 주었고 인천·경기 지역은 57.1%·19.4%·13.5%로 표가 갈렸다. 내년 총선과 다음 대통령 선거 결과도 수도권 40대 화이트칼라 손바닥에 담겨 있다.

한나라당은 총선을 8개월이나 앞두고 벌써 죽어가는 소리를 내고 있다. 수도권 의원들의 비명은 더 절박하다. 여론조사로 보면 엄살만은 아니다. 7월 조사에서 다음 총선 때 한나라당을 찍겠다는 사람이 36.1%, 야권 후보를 찍겠다는 사람이 29.3%, 무응답이 34.5%였다. 정당 지지도는 한나라당 35%·민주당 21.9%·무응답 35.2%였다. 이대로 가면 한나라당은 지역구 전체 의석 245곳 중 111곳을 차지하는 수도권에서 크게 무너질지 모른다. 부산(18석)·경남(17석)이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대구(12석) 경북(15석)을 석권하고 충청(24석)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다 해도 한나라당의 원내 과반수는 벅찬 목표다. 심상치 않은 소식은 이걸로 그치지 않는다. 내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와 야권 단일후보 가운데 누구를 찍겠냐고 묻자 야권 단일후보 42.2%·한나라당 후보 40.8%·무응답 17%로 나왔다. 한나라당이 지난 몇 달 사이 건진 소득은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와 야권 단일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겠느냐'는 설문에 대한 대답 하나뿐이다. 응답자들은 박근혜 후보 지지 54.5%·야권 단일후보 지지 37.1%로 갈렸고 무응답이 8.4%였다. 그러나 '선거의 여왕'은 아직 총선 쪽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수도권 40대 화이트칼라 유권자의 상당수는 요즘도 10~30%대를 오르내리는 무응답층(層)의 그늘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그들은 1990년대 후반 직장 초년병 무렵 외환위기를 겪으며 기(氣) 한 번 펴보지 못하고 줄곧 힘든 세월을 건너왔다. 쉰이 저만치 바라다보이는 한창 나이에 올라오는 후배에게 치이며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긴 장수(長壽)시대로 무(無)대책으로 떠밀려가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 박복(薄福)한 세대의 불안을 껴안고 어떤 처방전으로 다독여 줄 수 있을까. '박근혜표(標) 이미지'의 응집력과 강점이 혹시 이들에게 다가서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되는 일은 없을까.

야권의 속사정 역시 간단치 않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은 누구의 성향을 닮은 인물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응답이 '이명박 성향 22.6%·노무현 성향 22.9%·박근혜 성향 19.1%·김대중 성향 11.8%'로 나왔다. 야권 통합이나 후보 단일화 논의에서 두 전(前) 대통령이란 부재주주(不在株主)의 지분(持分)이 최대 30%대에 이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 상황에서 단일화 논의가 대선 승부를 가를 수도권 40대 화이트칼라 쪽으로 깊이 파고들 표의 확장력(擴張力)이 큰 후보를 골라낼 수 있을까. 당내 예선에선 쇠뿔도 뽑으면서 본선에선 맥없이 무너지는 후보를 낙점(落點)하는 순간 대선은 그걸로 끝이다. 우리 국민은 어느 선거에서도 낙관파에게 반드시 근심 한 가지는 안기고 비관파에게도 꼭 기댈 언덕 하나만은 남겨주는 심술과 배려를 빼놓는 법이 없다. 참으로 정치적인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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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좌파의 역사 - 로렌 골드너

[좌익공산주의와계급투쟁자료집.hwp (426.50 KB) 다운받기]*

 

이 글은 과거 <노동자평의회를 향한 서울회의> 시절에  '자본주의, 좌익공산주와 계급투쟁' 공개 강연 기획을 하면서,자료집에 실은 글이다. 여기서 울트라 좌파의 역사는 좌익공산주의 역사로 읽어도 된다.

 

 

이 글을 쓴 로렌 골드너는  미국 학생운동의 중심지 중 하나인 버클리에서 1960년대 후반 급진 좌파정치에 관여하게 되었다. 혁명적 관점에서는 반-스탈린주의적이자 반-사회민주주의적인 마이너집단에서 시작했다. 로자룩셈부르크를 통해 이 집단의 레닌주의에서 멀어졌고 이후 상황주의자들, 보르디가, 독일과 네덜란드의 평의회 공산주의, 그리고 보르디가와 평의회 공산주의를 통합을 시도하는 프랑스의 신-보르디가주의적 좌파 공산주의자들 (도브 Dauve, 까마트 Camatte)의 영향을 받았다.

 

 

울트라 좌파의 역사

Christophe Bourseiller (Paris : Denoël, 2003)

 

 

Reviewed by Loren Goldner

 

 

15년 동안 500페이지가 넘는 25권의 책을 출판한다면, 크리스토프 부르셀러 같은 작가를 의심스러워 할지 모른다. 그러나 병적 다변증 그 자체가 필연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부르셀러의 1999년 Guy Debord의 전기는 역사적 정밀성이 작가의 강력한 방패막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손안에 있는 책처럼 그곳에 인용된 사람들은 부르셀러가 특별히 그들에 대해 썼던 모든 것들이 그중에 심각한 의심을 가지는 결점이 있다고 충분히 말해왔다. 집필하고 있는 책으로 되돌아오기 전, 부르셀러는 대중 주간지 파리-마치(Paris-Mach)에 한 꼭지를 포함하여, 미디어에 일련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극좌파도 울트라 좌파도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해, 이들이 자동적으로 자격 박탈되는 것은 아니며, 혁명적 좌파에 관한 신중하고 의미 있는 책들은 오직 관찰자인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다. 즉 사람들은 Burnett Bolleton의 ‘스페인 혁명’을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에서 부르셀러의 책의 발간은 격렬한 반응을 가져왔고, 다양한 흐름에 대한 그의 표현을 혹평하는 일련의 리뷰들이 발간되었다. 그의 책은 그의 실수와 잘못 모두를 수정하기 위해 요구될 ‘카운터 북’을 모아 정리한 것이었다. 다른 이들은 최근에 고인이 되었거나 실재하는 안 알려진 조직에 연계된 많은 사람들 이름을 출판하는 것은 경찰에게 일거리를 준 것이라고 그를 비난했다.

부르셀러의 책 이래, 프랑스 중산층의 온건 좌파들 중에는 그것을 분명히 차테이블에서의 대화꺼리로 여길 것이며, 전체적으로 볼 때 울트라 좌파의 역사를 다루는 것을 시도한 어떤 언어로 쓰인 책 가운데서도 실존하는 유일한 것이다. 이 모두는 불운한 것이다.

그 책이 분명하고 광범위하게 평판을 나쁘게 하지 않은 것이라면, 이는 젊은 투사들을 위한 참고서가 될 만한 책이다. 젊은 투사들은 여태까지 Anton Pannekoek, Karl Korsch, Herman Gorter, Amadeo Bordiga, Otto Rühle, Paul Mattick, Maximilien Rubel, Daniel Guérin, Grandizo Munis, Guy Debord, Cornelius Castoriadis, Claude Lefort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했을 것이며, 그들은 옛 소비에트나 현존하는 노동자국가인(트로츠키주의자들이 부르는) 중국, 북한, 베트남, 쿠바를 ‘맑시즘’과 연관시키고 있다.

주의 깊게 읽기에 앞서, 전체적으로 조망해 보면, 이 책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울트라 좌파의 역사) 전통에 대한 외견상 전화번호부처럼 보일지 모르나, 전화번호부 일지라도 아마도 이 책의 목록과 색인은 유용하다. (불행하게도 거의 프랑스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프랑스어가 부족한 독자에게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이런 저술 행위는 무해한 관음자가 아닌 어떤 부르셀러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첫 번째 왜곡은 레닌의 1921년 팸플릿 ‘좌익공산주의와 유아적 무질서(Left-wing Communism: an Infantile Disorder)’로 되돌아가 조롱의 호칭으로써 비롯된 ‘울트라 좌파’를 자유롭게 사용한 것이다. 여러 패퇴된 흐름의 역사적 복권과 그들의 (1920년대부터 대부분 유래하고 1968년에 시작하여 무엇보다 1989-1997년 이래의 조류) 이론가들로 소생된 더 적절하고, 덜 선동적인 말은 ‘좌익공산주의자’이다 (다시 말해 그 말이 부르셀러의 책에 언급된 ‘Socialisme ou Barbarie(사회주의냐 야만인가)’옛 성원, 상황주의자, 무정부주의자, 평의회주의자,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의 전 구성원에 의해 기각됐지만). 최종적 말이 무엇이든지간에 가장 정밀하고 간단한 정의는 상당히 단순하다. 즉 트로츠키주의 좌파로 스스로의 위치한 자기 선언한 혁명적 흐름이다.(짧은 기간이지만) 이는 그들이 레닌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좌익공산주의자로써, ‘반(反)레닌주의자’ 보다 더 좋은 정의이다.

 

그러나 부르셀러의 비평에 앞서, 그가 논의하고, 왜곡하고 있는 역사적 흐름의 윤곽을 그리는 것이 필요하다.

명확하게 ‘좌익공산주의자’라 일컫는, 실제 수만 명 노동계급 구성원을 가진 대중적이고, 여러 자유주의적 계승자 모두에 대비되는, 두개의 역사적 그룹들은 독일-네덜란드(German-Dutch)평의회공산주의 좌파와 1910년대와 1920년대 이태리 공산주의 좌파였다. (혁명적 익명성의 퇴행으로, 개인숭배를 반영하는 것으로써 딱지를 거부하기 위한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후자는 보르디가주의자(Bordigist)로 잘 알려져 있다) 물론, 이들 흐름 둘 다는 다른 흐름에 융합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복잡성이 즉각 시작된다. 즉, 독일-네덜란드 좌파와 그 계승자 평의회공산주의자는 보르디가주의자를 권위주의적 레닌주의자로 여긴다. 그리고 보르디가주의자는 프르동주의자에서 생디칼리스트로, 무정부주의자로, 반맑스주의자로 조롱하는 독일-네덜란드 좌파를 레닌의 「좌익공산주의(Left-Wing Communism)」에서 표현되는 모멸적인 언사를 퍼붓는다.

 

어쨌든 간에, 독일-네덜란드와 이태리 좌파 둘 다 공통적인 것은 세계1차대전 후 즉각적으로 서유럽에 러시아 혁명 모형의 일반화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즉 레닌의 1921년 팸플릿과 초기 코민테른 정책의 근본적인 가정의 일반화이다. 1930년 이후 그들이 알려진 반정당 평의회주의에 기반한 그들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초기 20년대 독일-네덜란드 좌파의 대부분은 그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분명히 말하고 코민테른의 밀사에 의해 전달된 레닌주의 당을 거부했을지라도 공산주의당에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특별히 (영-러시아 무역협정, 크론슈타트의 궤멸, 독일 3월 행동(German March Action)의 실패, NEP의 도입에 따른) 1921년 코민테른 우경화 이후에 독일-네덜란드와 이탈리아 당 둘 다는 비혁명적 세력과의 전략적 연대를 위한 레닌의 논점을 기각했다. 1921년 Herman Gorter의 1921년 ‘레닌 동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Open Letter to Comrade Lenin)’에서 그는 ‘이중혁명’에서 노동계급이 농민과 동맹할 수 있는 러시아와 대조적인 관점에서 서유럽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립했다는 단순하고 (올바른) 관점을 보였다.

 

항상 정통 레닌주의자로써 스스로를 표방했던 이탈리아 좌파는 다른 방침을 가진다. 그들은 코민테른 1921년 제3차 대회에 의해 수용된 통일전선전략을 기각했다. 그들은 새롭게 설립된 PCd'I에서 ‘이탈리아사회주의자당’의 ‘Serratian 좌파’(각 공산당으로 수용됐던 여러 국가들의 좌파 사회주의자 같이 세계1차대전에서 전쟁찬성 입장이었고 1924년 이후 스탈린적 광신자 가된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는)를 상대로 논쟁을 벌였고, 독일 Thuringia주의 공산주의자-사회민주주의 통치연합 창설에서의 통일전선의 적용을 1921년 비판했다. 보르디가주의자는 레닌에 대해 이들 의견 불일치가 단순히 전술적이었으며, 20년대 초기 PCd'I는 당연히 서유럽 공산주의자 정당의 가장 엄격한 레닌주의자로 구성되어졌다고 주장해왔다.

 

독일-네덜란드, 이탈리아 좌파는 제1차 대전에 따른 전 세계적인 혁명적 봉기의 이전에 결코 목격하지 못했던 정도와 깊이를 가진 산물이었다. 러시아 혁명의 위업이 그들을 내몰고 침묵하게 만들기 전, 외국 공산주의자들이 코민테른 내부에서 동등하게 볼셰비키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었던 (1921년 까지) 짤막한 시기에, 그들은 (그들의 결점이 무엇이든 간에) 노동자-농민 연대에 기반한 러시아의 ‘이중혁명’과 다르게 독자적인 노동계급이 있던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혁명의 문제에 직면하는 순수한 노동계급을 대표했다. 좌익공산주의자들은 러시아에서 소규모 민주 집중주의 그룹(Democratic-Centralist)이나 Miasnikov의 「노동자 그룹」과 같은 상대자를 가졌다. 그러나 이들 후자는 세계혁명의 쇠퇴기에 대항하여 패배하는 전투를 위해 투쟁하는 고립된 분파 이외 아무 것도 아니었다. 독일-네덜란드, 이탈리아 ‘울트라 좌파’를 만든 역사적 경험은, 그 후에 잠재적 혁명적 상황은 말할 필요 없이, 풍부한 대중파업의 전통으로부터 길러진 중요한 노동자계급과 세계전쟁 이전과 와중의 반전운동을 포함한다. 분파 역사에 집중한 부르셀러는 전체적으로 (이들 흐름의 진화와 그들의 나중 분파의 흐름에 대한 이해 없이 이해할 수 없는) 이 더 큰 사회적 역사를 생략하고 있다. 상당히 최근까지 ‘핵심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스탈린주의에 반대하는 잘 알려진 국제적 좌파 조직으로써 트로츠키주의의 우세는 이 경험의 기억을 잊어버리게 했고, 대부분 열렬 투쟁주의자들은 레닌의 1921년 팸플릿을 넘어서서 보지 않았다.

 

부르셀러는 ‘미시 역사에 경도된’ 관찰자로써 자신을 드러냈다. 그는 Gulag(러시아어 'Glavnoye Upravleniye Ispravitelno - Trudovykh Lagerey'(교화노동수용소관리국)의 약어 - 역자)나 베를린 장벽을 세우지 않았던 공산주의, 즉 ‘다른 공산주의’로써 울트라 좌파를 묘사하는 것으로 그의 책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주제에 대한 그의 열정은 그 책의 대부분을 통해 leitmotiv로써 다루는 덜 교훈적인 아젠다와 혼재되어 있고, 종말에 대한 실제 ‘교훈’으로써 나타난다. 그 아젠다는 단순하고 직설적이다. 즉, 부르셀러는 (세계1차대전의 찜머발트 좌파의 모형에서 ‘제국주의 상호 간 전쟁을 내전으로’ 돌린)세계2차대전에 대해서 국제주의자 또는 ‘제3캠프’ 전망을 가지는 누군가가 1980년, 1990년대 쇠퇴기에 프랑스 울트라 좌파 주변에 분출했던 기괴한 ‘nagationist’의 전위나 열렬주의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원한다. (이로 인한 결론으로써 ‘반파시즘’에 대한 좌파 비판을 가진 이들은 같은 하늘 아래 있는 자신들을 발견한다) 1920년대 좌익공산주의자에 대한 부르셀러의 역사적 대우에서, 함부르크 노동자평의회에서 출현한 ‘민족적 볼셰비키’(우파의 좌익)는 그때나 지금이나 독일-네덜란드 울트라 좌파 그들의 중요성과는 전혀 균형 안 잡힌 대우를 받는다. 그는 또한 자본주의 통치의 또 다른 얼굴인, 또는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최고점인 파시즘을 목격했던 1920년대 초기 이탈리아 좌파의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던) 정식화(formulations)의 일부를 강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나중에 몇 백 페이지를 그의 요약된 결론을 위한 무대로 설정하고 있다.

 

마음속에 이 아젠다를 가지고 부르셀러의 주제로 되돌아 가보자.

1920년대 후반, 독일과 네덜란드 양국에서 독일-네덜란드 좌파는 작은 분파로 쇠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의 다음 역사는 (흥미롭게도) 그런 분파의 역사였다 (보르디가주의자들은 세계2차대전 직후 소규모 대중정당을 구성했었다). 이탈리아의 경우에서, 안토니오 그람시가 1924-5년 PCd'I의 기구(apparat)로부터 보르디가주의자를 제거하는 스탈린의 정책을 이식하는 핵심 인사였다는 것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부르셀러는 결코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그람시는 망명 중 그 당의 1926년 Lyons 대회에 그 주류에 반대한 투표를 집중시키는 것을 도왔다. 1970년대에 비로소 (민족주의자 편의를 위해 살짝 재명명 된) 전후 PCI(이탈리아공산당)가 당 초기에 보르디가의 선도적 역할을 인정할 수 있었고 PCI는 학문적 ‘서구 맑스주의’의 세련된 경지에 있는 많은 순수한 사람들에게 깜짝 놀람을 가져올, 그람시의 친 스탈린적 음모를 용인하는 단계로 갈 수는 없었다. 보르디가는 1970년까지 살았고, 맑스의 1844년 수고에 대한, 러시아 자본주의 본질에 대한 훌륭한 이론적 작업뿐만 아니라 오늘날 재발견되어지는 자본주의의 환경파괴에 관한 텍스트를 1960년대에 집필했다.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1920년대 울트라 좌파를 계승하는 유산은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에서 보다는 프랑스에서 더 많은 반향이 있었다. 전체주의 (파시스트 또는 스탈린주의자) 또는 1940년 나치 점령 이후, 프랑스에서 은신처를 발견한 양 세계전쟁 시기의 반동적인 정권을 벗어나려는 많은 전투주의자들은 점유되지 않은 지역(무엇보다 Marseilles)으로 재배치 할 수 있었으며, 1945년까지 재 결집 하거나 나중에 미국과 멕시코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트로츠키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보르디가주의자, 평의회공산주의자들, 특히 「프랑스 좌익공산주의」와 RKD(프랑스에 망명한 그룹)는 가장 혹독한 필요성에 의해 부여된 불안한 단체로 전쟁기간 동안 게슈타포와 스탈린 억압에서 살아남았다.

 

이들 그룹과 개인들은 부르셀러가 그의 책 전체를 통해서 추적하고 있는 부르주아지-민주주의적 ‘반파시즘’에 대한 거부에 기초하여 2차세계대전에 대한 부끄럽지 않은 국제주의적 경향을 지녔다. 그러나 부르셀러는 ‘주적은 자국에 있다’라는 국제주의자의 관점은 1939-40년 ‘허위(phoney) 전쟁' 동안과 스탈린-히틀러 협약 이라는 이유 때문에 울트라 좌파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스탈린주의자, 사회민주주의 좌파, 트로츠키주의자가 보유한 관점이라는 것을 결코 말하지 않는다. 1941년 6월 히틀러의 러시아 침략은 첫 번째 세 그룹을 연합국을 위한 노골적이고, 비판적 또는 호전적인 지원으로 강제했다. 그 결과로 프랑스(또는 점령된 유럽 어디에서든지)에서 그러한 국제주의적 관점으로 조직된 어떤 전투적 조직도 생존의 위협을 받았고 , RKD의 한 원로는 나중에 파리의 Renault-Billancourt 공장에 리플릿 살포되었을 때, 그 구성원들은 게슈타포보다 스탈린주의자가 지배하는 레지스탕스를 더욱 두려워했다고 말했다. 트로츠키주의자 같은 이들 그룹의 대부분은 1917-21년 보다 2차 세계대전에 뒤따르는 심화된 세계혁명 물결을 기대했지만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이유들이 있다. 그러나 그 이유 중 하나는 연합국이 역사를 학습했다는 것과 세계 1차대전 이후 봉기의 재현을 군사적으로 선점하기 위해 그들 힘의 모든 것을 쏟았다는 것이다. 1989년 이후 ‘민주주의의 승리’ 물결의 유행에 울부짖는 부르셀러는 전체적으로 2차 세계대전의 이 측면을 잊어버렸다. 독일에 대한 연합국의 폭격은 공장보다는 노동자 거주지역과 시설물을 목표로 했다. 즉 붉은 군대는 소비에트의 도시 수복에 앞서 1944년 반란을 소탕하도록 나치에게 충분히 시간을 주어 Warsaw의 동부에서 전진을 멈추었고 이는 독립적 해방주의자들을 제거하게 만들었다. 부르셀러는 무솔리니를 몰아냈던 1943년 봄 북부 이탈리아 파업 물결을 언급한다. 그러나 그는 일주일 후, 밀란과 튜린(Turin)에 대한 연합국 폭격이 시작되었던 것을 언급하지 않는다. 국제주의 그룹의 위태로운 존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생존했으며, 전후 첫 번째로 중요한 파업 (1947년 5월 정부와 결별한 프랑스 공산주의자당에 기여한 Renault-Billancourt 공장) 하나에서 Lutte Ouvriére의 창립 구성원을 포함한 몇몇 그들의 구성원, 보르디가주의자, Socialisme ou Barbarie의 미래 구성원들은 파업투쟁위원회에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전후시기로 가져가고, 생존했던 흐름들에 대한 재분류를 조사하면서 부르셀러는 Socialisme ou Barbarie의 역사로 되돌린다. 1945년에 1944-47년 그리스 내전에서 살인마 스탈린주의자와 ‘트르만 독트린’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그리스 트르츠키주의자Cornelius Castoriadis는 프랑스에 도착했다 (Castoriadis는 놀랄만한 그리스의 혁명가 Aghis Stinas에 의해 결정적으로 형성되어졌다). 1949년 경, Castoriadis와 그의 동조 그룹은 제4인터내셔널과, 소비에트 블록이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하고 레닌주의적 전위당을 기각한 트로츠키주의와 결별했다. 몇 달 후,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Castoriadis와 Claude Lefort는 Socialisme ou Barbarie 그룹을 설립했다. Socialisme ou Barbarie는 이미 미국의 Johnson-Forest(C.L.R James-Raya Dunayevskaya-GraceLee) 경향과 또한, 그것의 존재과정에서 연줄을 가졌던 영국 그룹 ‘연대(Solidarity)’, Pannekoek, Canne-Meier, Paul Mattick을 포함한 생존한 네덜란드, 독일 평의회공산주의자들과 같은 국제주의적 상대방과 연락하고 있었다.

 

1949년에서 1965년까지 (그리고 냉전에 의해 초래된 극심한 긴장과 국제적, 국내적 환경에서) Socialism ou Barbarism은 혁명 프로젝트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것의 실제 장점은 전후 1950년대 영국, 미국, 프랑스를 제외한 ‘선진 자본주의’ 전체에 걸쳐 계속 표면화된 와일드캣 투쟁(wildcat struggles)에 대한 동조였다. (미국의 존슨주의자(Johnsonistes)와 같이) 이들은 트로츠키주의자보다 더 명쾌하게, 의심스런 ‘개혁적’ 스탈린주의자, 사회민주주의와 노동자 정당, 혁명에 대한 ‘조합 포섭’의 트로츠키주의적 전망의 한계를 보고 스스로를 ‘Social Barbarians’ 로 불렀다. Castoriadis의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에 대한 분명한 기각과, 정통적인 위기의 형태에 대한 복속과 맑스의 가치법칙에 의해 형성된 시스템에 대한 반대로써, 'order givers and order takers'의 시스템으로써 전체적으로 자본주의를 보는 증대되는 경향은 통찰력이 부족한 것이었다. (이는 Castoriadis의 1959-62년 시리즈에서 가장 명백하고, 나중에 널리 확산된 팸플릿 ‘현대 자본주의에서의 혁명적 운동(The Revolutionary in Modern Capitalism)’에서 더욱 그렇다) Socialism ou Barbarism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 중심적 발전은 1953년 동독 노동자의 봉기, 1956년 ‘사건들’(제20차 CPSU 대회, 헝가리 혁명, 폴란드 노동자 불안, 수에즈 위기 등), 인도차이나와 알제리에서 프랑스의 패퇴, 4공화국의 붕괴와 5공화국 수장으로써 드골(DeGaulle)의 귀환, 일반적인 탈식민지화이다. 트로츠키주의적 ‘정통’의 확산되는 변형들에서 경직되어지는 것에 대한 거부와 워싱톤-모스크바 세계공동권력에서 ‘자신의 캠프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거부라는 개방성으로 인해, ‘Social Barbarians'은, 그들의 이론 생산과 노동계급 속에서 그들 중재의 한계가 무엇이든 간에, Guy Debord, Gilles Dauvé(별칭 Jean Barrot), Informations et Correspondances Ouvrieres(ICO)의 설립자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공간을 창출한 중요한 공헌을 했다. 이들 일부 한계는 그 해산을 발표했던 Socialism ou Barbarism 의 1967년 진술에 의해 드러나며 (그 저널은 1965년에 발간이 중단되었다), 1968년 5월에서 6월 동안 6주간의 와일드캣 총파업 1년 전에 노동계급의 혁명적 봉기가 없을 것이라 기대했다고 말한 것에 있다. 그러나 Socialism ou Barbarism의 ‘평의회 사상’은 혁명 개념의 역사적 퇴조기 동안 확산되었고, 또한 (1973년까지 미국과 영국, 1977년까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에서) 계속되는 노동계급 격동에 대한 이론화를 도왔다.

 

부르셀러(문제 많은 Guy Debord의 자서전의 작가이기도 한)는 그의 진술에서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을 거의 생략할 수 없었다. 상황주의자와 1967년 Debord와 Raoul Vaneigem의 책은 어떤 다른 흐름 보다 더 1968년 5월 혁명의 ‘정신’을 예상했다. 1968년 이전, 울트라 좌파를 포함하여, 보다 분명한 맑스주의 좌파의 엄격성에 의해 쫓겨난 많은 사람들은 Debord의 ‘스펙터클한 사회(The Society of the Spectacle)’에서 그들이 알지 못했던 맑스가 존재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이전 울트라 좌파가 접근하지 못했던 길에서 현대 자본주의 일상에서 맑스가 살고 있다는 것을 연결할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상황주의자들은 강령적 기반위에서 구성원들을 찾는 그룹이 아니며, 공식적으로는 1972년 해산했다. 그래서 그들의 텍스트는 맑스, 노동자평의회의 역사적 역할, 다른 것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위한 울트라 좌파의 다른 흐름의 탐색에 대한 출입문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Rene Lefeuvre 주변집단인 Editionas Spartacus가 출간한 책과 팸플릿과 유명한 Vieille Taupe 서점은 울트라 좌파로 가는 다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

 

마오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심지어 무정부주의 흐름으로 더욱 유명한 1968년 프랑스 5월, 6월 총파업은 실제 역사적 망각에서 울트라 좌파를 끄집어내는 중기적 효과가 있었다. James/Castoriadis/Lee의 책 ‘Facing Reality’는 1958년에 예언적으로 그것을 지적했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움직일 것이고, 그들이 행동할 때, 그들은 죽음이 임박한 프랑스공산당을 떠날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5월은 사실 독일, 이태리, 영국, 미국, 일본, 중국, 멕시코, 브라질,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다른 사회적 계층(특히 학생)과 노동자의 ‘급진화’를 보여준 1968년 전 세계적 봉기의 유일한 부분이었으며, 뒤에 가장 유명한 경우로 이름 붙여진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큰 반향을 보인 가장 심도 깊은 운동이, 정확하게 울트라 좌파 전통이 가장 복잡한, 상대적으로 온전하게 계속성을 가졌던 국가에서 발생했던 것은 우연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갑자기 ‘프랑스가 재치기할 때 유럽은 감기에 걸린다’라는 오래된 농담이 급격하게 다시 만들어 졌다.

 

프랑스 노동계급에 의한 대중행동의 관점에서, 1968년 5월은 사실 이전에는 결코 달성되지 못했던 한 정점이었다. 1969년에서 1977년 동안 이태리의 ‘오싹한 오월(The creeping May)’과 1974-5년 포르투갈의 봉기는 심화된 노동계급의 계기로써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그 프랑스 사건의 국제적 영향 같은 어떤 것도 달성하지는 못했다. 5월은, 역사적 독일-네덜란드 좌파, Socialism ou Barbarism, 상황주의자에 의해 발전됨으로써, 1970년대 초 「사회당」이 ‘자주관리(self-management)’에 관해 논의해야 했던 지점에 대해 평의회 사상을 ‘전달’했다. 그러나 대중운동이 쇠퇴 되었을 때, 무엇보다도 1973년 세계적 경제 위기가 시작된 후에, (Socialism ou Barbarism나 상황주의자 둘 다 어떤 것을 말하지 않았다. 부르셀러 역시 이것에 관해 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른 흐름들이 표면화되기 시작됐다. 초기에 일부 마오주의자와 세 개의 지배적인 트로츠키주의 그룹은 프랑스 5월의 주된 조직적 수혜자가 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레닌과 트로츠키로부터 물려받은 이론적 틀의 반복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1968년 이후 정치적 영역의 순간을 넘어서는 정치적 조류를 담는 책과 팸플릿을 거의 쓰지 않았다.

 

현재의 이론적 이해에 가장 많이 기여한 일부는 독일-네덜란드, 이탈리아 공산주의 좌파의 종합을 시도하는 흐름이다. 이 격론의 가장 중요한 인물은 Jacques Camatte와 그의 저널 ‘Invariance’이며, 그리고 ( 몇 년 동안 필명 Jean Barrot을 활동했던) Gilles Dauvé이다. (당, 평의회)같은 ‘조직 형태(에 대한)’ 끝없는 논쟁의 환경에서 이들의 기여는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범주, 특히 자본론 I권의 ‘미 출판된 6장 (Unpublished Sixth Chaper)’에 역사적 조직 형태를 구체적으로 연결하는 것이었다. 부르셀러가 이 발전에 대해 어떠한 것도 말하지 않은 것은 그의 책이 가지는 천박한 특징이다. 그는 Jacques Camatte의 저작들이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고 세 번 Jacques Camatte를 언급한다. 그리고는 그의 책 또는 ‘Invariance’의 진화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는 ‘negationist’ 사건에 도달하는 것을 몹시 서두른다. 그 사건은 Deilles Dauvé/Jean Barrot가 (자의에 의해 negationist 아니라 어떤 이유가 negationist에 대해 만족하는) 함축하고 있다. 그가 Dauvé의 초기 저작에 관한 실체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데 Dauvé의 초기 저작은, 1970년대 Camatte의 저작의 일부와 더불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을 가치를 가지는 (여전히 읽혀지고 있는) 프랑스의 1968년 후 시기 몇 가지 이론적 저술 중 몇 안 되는 것이다.

이 소동의 배경에 있는 한 인물은 Mark Chirik(1907-90)이었다. 부르셀러는 이 이야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삶 중 하나를 살아온 그를 말하면서 (그럼에 따라 Malaquais의 “roman a clef”의 주된 인물이 되었기 때문에), 그는 Chirik에 대해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1907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Chirik는 1919년 팔레스타인공산당 창립 멤버였고, 후에 1920년대 프랑스로 이주했다. Chirik는 울트라 좌파의 영향력이 미치기 전에 트로츠키주의를 경험하였다. 그는 프랑스에서 세계 2차대전 동안 살아남았으나, 1952년 세계 3차대전 예견하면서 베네수엘라로 떠났다. 그는 학생들의 작은 흐름이 성장하고 있던 베네수엘라에서 1968년까지 머물렀으며, 그런 다음 프랑스로 되돌아갔다. 프랑스는 그와 그의 베네수엘라 추종자들이 「혁명인터내셔날(RI)」를 발진시켰던 곳이며, RI는 커다란 좌익그룹의 그늘 아래 조직을 체계적으로 건설하고자 시도했던 1968년 이후 유일한 프랑스 울트라 좌파였다. 1980년대 퇴조기의 시작과 특히, 1990년 Chirik의 죽음 이후 RI는 분열되었다.

 

1970년 초 이후 프랑스에서 대중투쟁은 감소했고, 그리고 좌익 중에서 울트라 좌파는 희생이 있었다. 많은 소그룹과 출판물은 사라졌다. 이런 퇴조기는 1979년과 1996년 사이에 몇 번의 경우에 확 솟아올랐던 ‘negationist’ 에피소드의 무대가 됐으며, 울트라 좌파 주변을 상당한 정도를 오염시켰다. 나치 가스실 존재와 유대인을 말살하려는 협의된 계획의 존재에 대한 ‘revisionist(수정주의자)’ 의 부정에 집중된 이 에피소드의 분규는 여기서 열거될 수 없다. 그러나 ‘social-barbarian’ 주변으로부터 출현한 전투주의자 4분의 3이 1979년 몇 달 안에 ‘revisionist’ 테제에 대해 승리했다는 것은 부르셀러의 (책 전체에 걸쳐 많은 측면이 생략된) 사악한 단정을 강조하는데 필수적이다(pp. 439-40).

 

전체 사건의 중심에는 Pierre Guillaume이 있다. Pierre Guillaume는 Vieille Taupe 서점 설립자이다 (오늘날 사실상 울트라 좌파 전체와 결별되어진 이후 범극우파에 소속된다). Guillaume 와 negationist 사건에서 초기 그를 추종했던 울트라 좌파 일부는, 만약 나치 가스실의 ‘신화’를 폭로하는 것에 성공했다면, 그들은 세계2차대전에서 파시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기초위에 세워진 전체 부르주아지 이데올로기의 구성체를 파멸시켰을 것이라는 Robert Faurisson의 논문에 포획되었다. 전쟁과 그 이후 다른 국제주의적 흐름의 어느 누구도 이를 통해 생존한 울트라 좌파와 함께 시작하는 이 단계를 밟기 위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는 보르디가주의자를 포함한다. 나치의 인종말살을 부정하는 방법이 없지만, 보르디가주의자의 논문 ‘Auschwitz or Great Alibi’ 이에 대한 매우 기계주의적 분석을 내 놓았다. (1979년 La Vieille Taupe에 의한 팸플릿으로써 이 논문의 재출판은 울트라 좌파 주변에서 negationist 사건의 공적 시작으로써 비추어질 수 있다). 내 느낌은 20년 동안 대중투쟁이 침체되었던 시기에 negationism과 그것에 매혹된 진지한 미디어 관심은 몇 백 명 정도 되는 주변적 소규모 동아리에 새로운 삶과 움직임을 주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1989-91년 사건 후에 이는 또한 지배 사회의 이데올로그에게 (부르셀라 책 같이), 극좌와 극우는 만난다는 옛 속담과 함께 그리고 탈 신화로써 그들 스스로를 회복하기 위한 훌륭한 기회를 인지한 Didier Daeninckx와 같은 전 스탈린주의자의 사과처럼 반파시즘과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흐름에 대해 맹렬히 비난하는 훌륭한 구실을 제공했다.

 

500페이지에 걸쳐 부르셀러는 ‘울트라 좌파는 있는 그대로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결론적으로 서술한다. 그런 단언은 다시 한 번 이 비열한 ‘미시 역사학’ 수집가가 그의 주제를 떠올리게 했던 사회 역사에, 특히 1920년대 초반 독일-네덜란드, 이탈리아 좌파가 수만 명 노동자의 표현이었고, 또한 1968년과 그 부산물로써 부르셀러가 추적해왔던 사상이 수천 명의 전투주의자를 형성한 것에 대해 눈을 감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1989-91년 이래로 미국의 IWW로부터 C.L.R. James, 독일-네덜란드, 이탈리아 좌파에 이르기까지의 ‘다른 공산주의’가 이론적으로 무장된 전투파들의 주의를 왜 끄는지 설명하지 못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Camatte, Debord, Dauvé/Barrot, Bordiga, Munis, and Gorter의 책이 처음 출판됐을 때 보다 수많은 언어로 쓰인 이들의 책을 왜 읽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부르셀러의 책은 세계자본주의 하에서 하향하는 상황의 나선형으로 ‘대안 없음’을 쌓아 놓은 Stephane Courtois의 ‘공산주의의 암울한 책(Black Book of Communism)’의 장르에 속한다. 이것이 그들이 너무나 많이 주장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생산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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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정리해고는 철회되어야 하고 채길용 집행부는 탄핵되어야 합니다!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8/05 19:52
  • 수정일
    2011/08/05 19:53
  • 글쓴이
    코나투스
  • 응답 RSS

한진중공업 정리해고는 철회되어야 하고 채길용 집행부는 탄핵되어야 합니다!

- 동전의 양면 한진중공업과 채길용 노조집행부를 규탄하며

 

1931년 설립된 한진중공업은 70년 역사의 기업입니다. 고 조중훈 회장은 조남호 회장의 아버지로서 운송 사업에 전념하여 온 바, 영도 조선소에서 돈을 벌어 부자가 됐고 그 조중훈 일가를 부자로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쥐똥 섞인 보리밥을 먹어가며 일했던 영도 조선소의 노동자들입니다. 그럼에도 한진중공업은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준 수많은 노동자를 무더기로 해고해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또 그 가정을 파괴하는 만행을 부끄러움도 없이 저지르고 있습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1인당 평균 임금은 3,300~4,000만원으로 다른 대형 조선업체 노동자 임금의 60~70% 수준을 유지해왔습니다. 그럼에도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말 174억 원 주식 배당을 실시했고, 한진홀딩스도 52억 현금을 배당했고 이중 절반은 총수인 조남호 회장에게 돌아갔다고 합니다. 임원들은 연봉이 1억 원씩 인상됐다고 합니다.

 

그런 한진중공업은 2009년 12월 노사 교섭 자리에서 구조조정에 대한 계획을 드러냈고 급기야 희망퇴직을 일방적으로 강행했습니다. 이어서 2010년 1월에는 정리해고 명단 600명을 노동청에 신고하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정리해고 만행에 지난 시기 채길용 노조집행부의 안일한 대응을 간파한 한진중공업은 대규모 도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2010년 12월, 선각공장부터의 휴업을 선언하며 400명 조합원에게 정리해고 예고통보를 날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길용 노조집행부는 강력한 투쟁을 뒤로하고 ‘과학적 투쟁’이라며 타협적이고, 생산에 타격을 주지 않는 투쟁방식으로 일관했고 이러한 투쟁전술에 조합원들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자 2011년 1월 6일 새벽, 김진숙 동지는 혼자서 85호크레인으로 오르게 됩니다. 2월 14일 예정대로 해고는 단행되었고,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김진숙 동지의 목숨을 건 고공농성은 벌써 200일이 되어갑니다. 그런 85크레인은 채길용 노조집행부에게는 냉대의 대상이었고 외롭게 투쟁을 진행하던 85크레인에 조합원들의 접근을 막아섰던 것은 초반 한진자본이 아닌 채길용 노조집행부였습니다.

 

또한 채길용 노조집행부는 지역연대대오가 스스로 만들어 부착한 현수막을 철거해서 쓰레기통에 쳐 박아 버리는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크레인 농성을 옹호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진행했던 지역 문예패 공연을 폭력적으로 제지했습니다. 또한 대우조선 노동조합의 지지방문조차 냉대적으로 돌려보냈고, 전국에서 모인 진보신당의 집단적 지지방문도 거북한 의사를 표현하며 돌려보냈습니다. 지회 내ㆍ외부를 막론하고 정리해고 저지투쟁 전선을 강화해야 할 노조집행부는 도리어 단결과 연대의 전선을 끊임없이 교란하는 작태를 투쟁시기 내내 보여 왔습니다. 말은 민주이지만 실속은 어용임에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노사는 지난 6월 27일 노조집행부가 해고없는 원직복직을 협상조건에서 일방적으로 철회하고 조합원들의 의향을 묻는 절차를 생략한 채 밀실에서 업무복귀를 결정하였고, 노사간 형사고소·고발을 쌍방이 취소하기로 하는 등 4개항을 회사 쪽과 합의했습니다. 회사는 정리해고자 170명 가운데 희망자에 한해 희망퇴직 처우를 적용했을 뿐입니다.

 

자신의 부를 축적해 준 수천의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살인적인 정리해고로 내몬 한진중공업과 그리고 일방적인 노사합의로 조합원들의 염원을 내동댕이치고 경찰에 자진 출두한 채길용 노조집행부.

그들의 살인적 행위는 투쟁하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1,000명이 넘는 한진 해고자 그리고 그 가족들의 이름으로, 오직 정리해고는 막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85크레인에서 투쟁하는 동지들의 이름으로, 면면이 이어온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의 이름으로 민주적 시민들의 이름으로 반드시 처벌되어야 하고 탄핵되어야 합니다.

 

동지여러분! 시민여러분!

살인적인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 투쟁과 반노동자적인 채길용 노조집행부 탄핵을 위해 함께 합시다. 85크레인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동지와 조합원들을 살리고 거리로 내몰린 해고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을 다시 현장으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전국적인 힘을 모아냅시다.

 

2011년 7월 30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와 채길용 노조집행부 탄핵을 요구하는 노동자ㆍ시민 일동

 

<서명자 명단>

 

강광하 강금영 강두현 강미성 강봉우 강성관 강성규 강성신 강성완 강성윤 강세훈 강수종 강수진 강영구 강영준 강영태 강영태 강우현 강종숙 김자연 강진원 강태우 강필성 강현옥 고민택 고병호 고석민 고영길 고정기 고정식 곽규운 곽순기 구기회 구덕천 구성현 구재보 권기태 권두원 권병석 권병철 권순만 권승복 권오관 권오근 권용석 권인세 권정기 권정환 권태용 권혁소 금동섭 김 배 김 훈 김가운 김경목 김경생 김경옥 김경자 김경철 김경태 김광동 김국배 김규남 김금희 김기수 김기열 김기찬 김기헌 김기홍 김길수 김길수 김나영 김낙근 김남명 김대봉 김대식 김대욱 김대홍 김대환 김도윤 김도형 김동선 김동섭 김동수 김동현 김말선 김명석 김명석 김명섭 김명호 김미영 김미정 김민섭 김민섭 김민수 김민재 김민준 김민호 김범용 김병기 김병도 김병효 김복철 김봉윤 김상기 김상도 김상록 김상민 김상영 김상학 김상현 김상환 김서희 김성봉 김성섭 김성수 김성오 김성오 김성은 김성재 김성환 김성훈 김세곤 김세진 김세현 김수목 김수호 김승대 김승수 김승수 김영대 김영돈 김영숙 김영식 김영욱 김영재 김영준 김영진 김영호 김옥명 김용금 김용석 김용직 김용철 김용호 김우리 김우영 김운용 김원경 김원순 김원일 김은수 김은아 김은천 김은환 김인해 김일우 김일찬 김장순 김장현 김준호 김재석 김재철 김재필 김재현 김재홍 김재환 김정기 김정렬 김정미 김정민 김정수 김정수 김정숙 김정연 김정우 김정자 김정현 김정훈 김종길 김종남 김종득 김종선 김종섭 김종수 김종호 김종훈 김주철 김준기 김준섭 김중남 김중배 김지만 김지연 김지천 김진규 김진담 김진만 김진수 김진용 김진용 김차두 김찬수 김창석 김창연 김창영 김창환 김창훈 김채규 김채규 김철식 김충명 김치헌 김쾌한 김태근 김태덕 김태복 김태석 김태수 김태연 김태우 김태조 김태준 김태호 김태호 김태환 김태희 김학일 김한균 김한민 김한민 김헌주 김현총 김형계 김형균 김형욱 김형진 김형포 김혜진 김호경 김홍규 김홍래 김화수 김화중 김환일 김황건 김효문 김희정 나경원 나성학 나승안 남경임 남궁원 남민호 남상천 남선자 남원철 남창걸 남현근 남희정 노 진 노경본 노승복 노승복 노승복 노우성 노종윤 노치룡 노현민 도덕수 도병현 도학봉 도호곤 라미숙 류경화 류민용 류범상 류선화 류재운 마명훈 마상준 마성은 명성진 문경태 문경태 문세경 문영찬 문창용 박강호 박경선 박경한 박균식 박기호 박노현 박동섭 박문석 박병휘 박붕우 박삼종 박생필 박선미 박선봉 박성수 박성호 박세중 박소영 박수현 박순분 박순희 박승호 박승희 박영수 박양식 박양희 박영천 박오철 박옥주 박용범 박용자 박윤열 박은희 박의근 박인기 박인서 박인조 박재경 박재석 박재우 박정상 박정순 박정열 박정춘 박정흠 박종록 박종성 박주열 박준대 박진걸 박진영 박진혁 박찬교 박창죽 박천석 박철용 박철준 박치환 박태식 박해영 박해용 박현수 박현수 박형모 박호빈 박홍찬 박흥식 박희동 박희은 방형종 배 주 배기만 배봉열 배성종 배영국 배창용 배현수 백규성 백노성 백동호 백수현 백운탁 백운호 백태현 백형근 백형록 변순희 변재성 변정섭 변종학 변청숙 변판수 서 해 서기석 서민규 서석태 서성협 서수보 서영건 서영기 서완수 서원일 서은실 서인교 서인기 서장원 서주용 서창호 석용흥 선애진 성기준 성맹호 성희영 소상욱 손기훈 손덕헌 손미아 손상봉 손선호 손소희 손원혁 손재학 손준필 송광준 송권봉 송병호 송선준 송시우 송용기 송욱석 송응준 송이석호 송주헌 송진호 송호찬 송환웅 신 운 신경섭 신경애 신경현 신광식 신기식 신기철 신병희 신상기 신용덕 신용진 신재걸 신종식 신종현 신종호 신창화 신태호 신현정 신현호 심우청 심재울 안규백 안길수 안명희 안민지 안성곤 안지현 안현호 양대규 양동규 양석진 양송욱 양승은 양시철 양정훈 양주석 양춘복 양한웅 양효식 엄길용 엄원주 엄재정 엄진령 여귀환 여영성 연충흠 염정수 오덕환 오말숙 오성재 오성호 오세욱 오세철 오유리 오정권 오창환 오한정 오현근 옥인수 옥혜경 왕윤정 우경동 우동국 우만윤 우명곤 우성국 우현옥 원명수 유경혜 유동명 유동훈 유명자 유미경 유병도 유병환 유상기 유승철 유영우 유원식 유재준 유종범 유태철 유현경 유홍렬 윤갑상 윤기욱 윤문호 윤민형 윤석범 윤선문 윤수근 윤영두 윤웅태 윤이호 윤재식 윤재용 윤재우 윤종호 윤태영 윤태일 윤형수 윤호숙 은기찬 이갑성 이경남 이경수 이경숙 이경호 이경희 이관호 이광우 이근재 이기호 이김춘택이나경 이대성 이동업 이동진 이동훈 이말숙 이명위 이미경 이미숙 이민우 이민형 이보람 이봉식 이봉준 이상길 이상복 이상식 이상우 이상웅 이상조 이석영 이석태 이석호 이선인 이선정 이선희 이성복 이성용 이성우 이성재 이세주 이승렬 이승찬 이승현 이승훈 이신용 이연숙 이영덕 이영미 이영섭 이영호 이오준 이옥선 이왕근 이용건 이용렬 이우용 이원석 이원영 이윤원 이은영 이은정 이은지 이은형 이을재 이인위 이인화 이인화 이재만 이재식 이재식 이재용 이재원 이재윤 이재현 이재호 이점찬 이정민 이정행 이종규 이종덕 이종락 이종열 이종희 이지원 이지윤 이지은 이진오 이진우 이찬복 이찬희 이창근 이창용 이창희 이춘동 이춘식 이종화 이태균 이태진 이태진 이태호 이태희 이하나 이학균 이학용 이해경 이해인 이향식 이향원 이헌철 이현수 이형로 이형섭 이형원 이형일 이혜심 이호연 이홍우 이화춘 이황미 이효성 이희철 임도창 임명수 임명진 임복균 임복남 임수길 임숙희 임원경 임원기 임은옥 임익성 임임분 임정규 임천용 임천일 장 윤 장계근 장교순 장귀연 장덕진 장미화 장병진 장삼상 장수철 장안규 장연구 장용재 장제영 장찬동 장혜경 장혜연 전광해 전규석 전덕현 전상규 전상철 전성식 전성포 전성훈 전소현 전태정 전평호 전평환 전헌교 정경재 정금자 정동열 정동형 정두환 정병권 정빛아름정상빈 정성은 정성훈 정수동 정순호 정승철 정연수 정연용 정영길 정영서 정영준 정영철 정용만 정용수 정용환 정윤광 정은희 정일수 정일환 정재영 정정숙 정정철 정정호 정주회 정진수 정창화 정철운 정철효 정춘석 정태곤 정태환 정택용 정해철 정현섭 정현섭 정현정 정현철 정현철 정형호 정혜옥 정호준 정화양 제윤희 제희원 조갑현 조극래 조기현 조대환 조두현 조명제 조상기 조시형 조영정 조용규 조용래 조용수 조용현 조원기 조재영 조태래 조태현 조한경 조현균 조희주 주병현 주성호 주재철 주진완 지청일 진락희 차기권 차기찬 차기철 차기호 차민석 차성곤 차은정 채만수 채병옥 채정화 채호기 천동욱 천연옥 최 성 최 철 최경태 최고운 최광석 최규태 최기택 최낙현 최대영 최동열 최동엽 최명숙 최병도 최병수 최상일 최상철 최석주 최선영 최선희 최성남 최성환 최성황 최세진 최순영 최실근 최연일 최영재 최용원 최원식 최유일 최윤문 최윤석 최윤영 최은기 최인주 최일환 최임숙 최정효 최종수 최준석 최진호 최철부 최태진 최현식 최호진 추봉우 추현일 하강두 하동현 하상수 하영규 하종연 하태준 하회탈 한가해 한기환 한대구 한병완 한삼수 한성욱 한수양 한수정 한승수 한승철 한영숙 한영일 한준환 한창민 함소희 허계준 허명현 허성관 허영구 허영국 허진환 현상훈 현철민 홍상영 홍성호 홍용구 홍인석 홍지훈 황건환 황민식 황병선 황상길 황선용 현정석 황순천 황순호 황영철 황영환 황장하(이상 877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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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독일 혁명 주요 연표

  • 분류
    역사
  • 등록일
    2011/07/15 00:34
  • 수정일
    2011/07/21 21:42
  • 글쓴이
    코나투스
  • 응답 RSS

* 이 메모는 이후 독일 혁명사 공부를 위해 정리한 것이다.

 

독일혁명 주요 연표

 

1905년 러시아 혁명 발생 소비에트 출현. 로자 대중파업론 작성,

 

1907년 레닌 [12년] 논문집 발표 1902년에 쓴 [무엇을 할 것인가] 자기비판.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생 -> 제2인터내셔널 제국주의 전쟁 찬성

 

1915년 침머발트 좌파 결성 (레닌, 판네쿡)

 

1917년 10월 러시아 혁명 발생

 

1918년 11월 독일 혁명 발생, 대중파업과 평의회(레떼) 운동 나타남.

 

1918년 12월말 독일공산당 결성 (로자룩셈부르크 스파르타쿠스 동맹 (독일사민당 좌파) + 브레멘 좌파 (판네쿡, 호르터, 륄레)

 

1919년 1월 총선 독일 사민당 집권

 

1919년 1월 독일공산당 무장봉기 (스파르타쿠스 봉기)-> 독일사민당 진압 (룩셈부르크 암살당함)

 

1919년 10월 독일사민당 노동자평의회를 대신하는 제헌의회 제안, 노동자평의회를 합법적

공장평의회로 전화 (독일판 노사정 위원회->이것이 발전돼서서 국제연맹 산하의 국제노동기구 )-> 바이마르 헌법 .제헌의회 참여 독일공산당 내부 논쟁. 레비가 -> 브레멘 좌파 축출

 

1919년 레닌 제3인터내셔널 창립 , 2개의 독일 공산당이 코민테른 지부가 되는 격임.

 

1920년~1923년 독일 혁명 발발 (독일경제 붕괴, 독일사민당과 그 기반인 노조 대중 신뢰 상실-> 노동자평의회 재개)

 

1920년 4월 독일공산주의노동자당 KAPD 창립 (호르터 주도하에 창당) 공장조직과 Workers Union

 

1920년 2월 독일노동자총연합 AAUD 창립 (공장조직의 연대) 오토륄레 주도.

 

1920년 6월 레닌 [좌익소아병 : 공산주의에서 유아적 무질서] 팸플릿 작성 -> 이 팸플릿을 계 기로 코민테른 전 세계 지부 볼셰비키화.

 

1920년 12월 독일 공산당, 레닌과 코민테른 지원으로 독립사민당과 통합 -> 통일독일공산 당 (VKAPD)

 

* 독일사민당내 당내 분파가 독립사민당임 ; 1917년 룩셈부르크 주도 독일사민당 좌파 + 카우츠키가 주도한 독일사민당 중앙파

 

1922년 카우츠키 독일 사민당 복당 -> 제2 인터내셔널; 사회주의인터내셔널이라고 불림

 

1926년 독일노동자평의회 운동 쇠락, KAPD와 AAUD-E 유명무실화 됨

 

 

사용자 삽입 이미지

 

1927년 호르터 사망

 

호르터 링크 http://www.marxists.org/archive/gorter/index.htm

 

1929년 세계대공황

 

1933년 나찌 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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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증법적 유물론 용어에 대해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은 1938년 출간되어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의 교본이 된

「볼셰비키 당사」의 제4장이다. 이 장은 스탈린이 썼으며, 마르크스 - 레닌주의를 교리문답 형식으로 법전화했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은 소련 내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논의를 교조화하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해석에 대해 스탈린이 독점하게 되는 원형이 되었다. 스탈린 사후 탈스탈린화 과정에서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은 소련 공산당의 교본에서 삭제되었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은 한국사에서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는데, 소련의 민정장관인 로마넨코가 직접 김일성을 위한 마르크스-레닌주의 교재로 채택한 것으로 시작, 북한의 마르크스 - 레닌주의 연구의 기반이 되었다.

변증법적 유물론은 스탈린을 통해 소련의 공식 철학으로 지정되었지만, 그가 이 용어를 일방적으로 지어낸 것은 아니다.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내 이는 요제프 디츠겐이었다.

스탈린이 변증법적 유물론이라는 용어를 차용한 것으로 알려진 책이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인데, 정작 엥겔스가 사용한 용어는 “유물변증법”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몰역사성을 비판했다. 말하자면 서로 다른 정치적 맥락과 역사적 상황에서 쓰인 저술들을 그 본 뜻에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끼워 맞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철학이라기보다 오히려 종교에 가까운 이데올로기였다.

 

이런 측면에서 마르크스로 돌아가자는 서구 마르크스주의자의 요구는 이런 측면에서 타당성을 갖는다. 루카치가 일찍이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말한 역사를 탐구한 마르크스의 “방법”이었다. 루카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죄르지 루카치 [1885.4.13~1971.6.4]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의 연구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함의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이런저런 테제에 대한 “믿음”이나, 어떤 “신성한” 책에 대한 주석도 아니다. 반대로 정통이라는 말은 오로지 방법을 지칭하는 것이다.” 

 

(역사와 계급의식 중에서)

 

 

 

참고로 변증법적 유물론에 기초를 제공한 책은 엥겔스의 「반듀링론」, 「자연변증법」, 「포이에르바하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철학노트」였다.

 


 

참조: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가이드, 47쪽, 이택광 2010,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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