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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그 자체로서 독립적인 것으로 대우받아야한다.

 우선 여러 얘기를 한꺼번에 하다보니 잘 전달이 안되는 거 같습니다.

 첫째 가족제도를 없애자는 주장을 한 것이냐인대 이건 없애자고 주장을 한다해서 없어지지 않을 것이란 건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허니 주장을 한다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없앨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이 나와야할 것입니다. 따라서 그에 대해 앞으로 얘기할 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그에 대한 청사진을 얘기한 거 같지는 않으니 첫번째 것으로 주장한 것은 아니라는 걸 눈치챌 수 있습니다.

 둘째 성적으로 소외된 사람을 돕자는 것이냐에 대한 것도 마찬가집니다..

 "우리가 이러이러한 활동을 펼침으로써 소외된 이웃을 도울 수 있다."
 "그러하니 그렇게 하는데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앞글에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게 그런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타자의 문제로 사고하는 것의 문제점은 일전 댓글에서 ㅎ**님이 얘기하신 "공창이라도 하자는 것인가"와 같이 허무맹랑한 곳으로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도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에는 필히 당사자들이 당사자들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경로임을 기본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누군가 대신해 줄 것이다라는 발상은 이제 폐기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이러한 논리에 빠져있는지는 불우이웃돕기행사같은 것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우이웃돕기는 하나의 이벤트로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급하게 몇푼 던져주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잊고 싶은거죠..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 자신의 삶을 돌봐야하니까요! (안그래도 바쁜데 말이죠..) 헌대 중요한 건 일회성 또는 이벤트성의 적선따위로는 결코 사회구조적인 문제로서의 불우이웃의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는 겁니다.

 아까 당사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게 가장 바람직한 의식인 것이자 또한 접근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자신이 해결하는 것이라는 건 그게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비혼자인 당사자들이 직접 자신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세째 어려서부터 올바른 성교육을 하자는 주장인가를 보았을 때 그도 아닌 거 같습니다. 왜냐면 흘러간 시냇물로 수력발전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어린애가 아닌 사람이 어린애가 되기에는 너무 커버려서.. 풀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지금의 자신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가지고 풀려고 해야하며 그것이 지금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한번 나이를 먹으면 어려질 수 없습니다.

 또 난점은 이러한 것, 유아때의 성교육을 실천에 옮기려면 어린애가 반드시 있어야만 합니다. 애가 없는 사람들은 실천할 방법이 없다라는 겁니다. 그럼 애를 가진 사람은 할 수 있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는대 애를 가진 사람은 애에게 할 수 있습니다. 헌대 애의 문제는 풀어간다 할지라도 그는 지금 당장 닥치고 있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찌해야하는가하는 의문이 남기 때문에 이 또한 다른 해결책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헌대 그런 주장이었는가 볼때 이 또한 주장의 핵심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그러한 주장도 아닙니다.

 주장의 요지는 이것입니다.
 비혼자인 남성, 여성 모두 연애를 과도적 단계로 인식하는 것은 당사자들의 행복을 증진할 수 없다. 따라서 남녀가 사귀는 것, 연애를 가족형성을 준비하기 위한 것, 가족제도에 종속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독립적 행위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제도적 틀에 얽매이지 않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자세와 행동이 비혼자가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이다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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