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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08
    천막(1)
    하루

천막

 

 

좀 미안하다.

좀더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썼어야 했는데.

미안, 재영. 요즘엔 시간이 안나는구나~~

 


 

 

엔딩 타이틀에 흐르던 곡

 

길 그 끝에 서서

 

글  박현욱

곡  지민주

편곡  마구리밴드


우리 앞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건 제대로 걸어온거야
언제나 길의 끝에 섰던 사람들이
우리가 온 길을 만들어 온것처럼
눈 앞에 빛이 보이지 않는다면 이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먼저 간 사람들의 빛을 따라 온 것처럼
이제 우리가 스스로 빛이 될 차례야
이제 끝이라고 희망은 없다고
길을 찾을 수 없어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 쉬고 절망 하지마
그건 우리가 옳은 길을 걸어온 걸 확인하는거야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들 차례야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야
그렇게 왔잖아 우리 당당하게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이제 끝이라고 희망은 없다고
길을 찾을 수 없어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숨 쉬고 절망 하지마
그건 우리가 옳은 길을 걸어온 걸 확인하는거야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들 차례야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야
그렇게 왔잖아 우리 당당하게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이제는 우리가 길을 만들 차례야 이제는 우리가 빛이 될 차례야
그렇게 왔잖아 우리 당당하게 이제 진짜 우리의 시간이 온거야

  

#1 싸움의 기술
그 날 나는 사무실 동료 세 사람과 함께 FTA반대집회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다. 광화문 전철역에서 내려 나가려는데 5번 출구 앞을 경찰이 막고 있었다. 그 때 지하도에는 우리가 오기 전부터 전경들과 싸우던 한 사람이 있었다. 원래 혼자던 그 사람은 우리들의 등장에 힘을 받은 듯 더 힘있는 항의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처음엔 우리처럼 허름한 옷차림에 가방을 든, FTA반대집회에 참석하려는 사람들뿐이었는데 다른 용무가 있는 아주머니, 할아버지, 그렇게 사람들이 많아졌다. 경찰은 계속 길을 막은 채 4번 출구로 돌아서 가라고 했다. 나는 “그런데 4번 출구로 돌아가면 또 막고 있는 건 아닌가요?” 라고 물었고(나는 4번 출구로 돌아갈 용의가 있었기 때문에) 한 아주머니는 돌아가려는 사람들에게 “가지 마세요. 같이 있어요.”라며 외쳤다.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고 급기야 4번 출구로 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까지 합세했다.
“아저씨, 4번 출구로 가니까 또 막고 있던데 우리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그렇게 긴 시간 끝에 그들은 길을 터주었다. 우리가 오기 전에도 두세 사람씩 경찰에게 작은 항의를 해보곤 했겠지만 소수의 짧은 항의는 곧 스러지고 사람들은 곧 흩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무리가 형성되자 사람들은 서로를 믿으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은 점점 힘을 얻어갔다. 단지 다섯 명 뿐일 때, 경찰대장은 즉각즉각 반박을 하며 우리들을 위협했으나 점점 사람이 많아져 큰 무리가 형성되자 경찰대장은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그렇게 밖으로 나왔다.

 
#2 기억의 단면
오래 전, 나는 학원강사였다. 그 때 원장은 내게 “다른 선생들은 다 전공자인데 선생님은 비전공자이니까” 하며 65만원을 주겠다고 했고, 나는 그게 당연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강사들만의 회식 자리에서 나는 우리들 월급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되었다. 한 선생님만 전공자였는데 그 사람에게는 “선생님은 지방대를 나오셨으니까”라는 토를 달며 봉급을 책정했다고 한다. 아마 지금도 학원강사들은 빗방울처럼 외롭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광화문 지하도에서 내가 4번 출구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처럼 그 길이 딱히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원장이 부당하게 착취하면 그만두면 그뿐이었다. 나한테 학원강사 자리는 유일한 길도 아니었고 내 길도 아니었다. 그렇게 4번 출구를 찾아 떠나왔다. 그런데 다른 출구를 찾아 떠났던 내 앞에서는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3 천막의 그들
<천막>은 부당해고에 맞선 ‘학습지교사 노동자’들의 천막농성 이야기다. 학습지 교사들에 대해 각별한 정을 느끼는 것은 내가 학원강사를 선택했던 그 시기에 그들 또한 잠시 머물 자리로 그 자리를 선택했을 것같다는 추측 때문이다. 짐작처럼 <천막>의 그들이 술자리에서 회상하는 추억은 나의 것과 겹치고 철야농성 때문에 철지난 옷을 입고 있는 아이 또한 내 아이와 비슷한 나이로 보인다. 차이라면 나는 4번 출구를 찾아 돌아섰고 그들은 길을 만들기 위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현재의 자리 이전에 몇 개의 직업을 거쳤지만 나는 늘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길을 만들기 위해 싸우지 않았다. 이 길이 아닌가 봐. 그럼 다른 길로 가면 되지. 그렇게 나는 돌아다녔다. 그렇게 먼 길을. 떠도는 자들은 길을 만들지도, 어느 한 곳에 머물지도 못한다.
“신문을 끊고, 우유를 끊고, 학습지를 끊고… 그러다 목숨 끊는 거지.”
남아서 길을 만드는 이들의 삶은 고단하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쓴 웃음을 짓기도 하고, 아내가 떠난 자리, 그 곳 천막에서 아이의 생일축하 파티를 하기도 한다. 그들은 그렇게 길을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다. 그리고 어느 밤, 감독은 조합원들을 대신해 천막을 지킨다. 작은 난로만이 냉기와 싸우는 스산한 천막. 휑한 찬바람이 비닐막을 흔드는 그 외로운 천막 안에서 감독은 몇백 일 동안 그들이 견뎌왔을 그 밤을 느끼며 먹먹함에 할 말을 잃는다.

#4 다시, 거리에서
지금 이 도시에는 그런 천막들이 수없이 많이 놓여 있다. 여의도에서는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시청 앞에서는 장애인들이, 그리고 대학로에서는 학습지 노동자들이 노동해방, 장애해방, 인간해방을 위해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지금 가는 길이 옳다고 말하는 민중가요 가사처럼, 그들은 지금 길을 만들고 있다. 그 길은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일 것이다. 지난 여름, 우리를 지상으로 안내했던 광화문 전철역의 5번 출구처럼.
2008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되었던 이 영화는 한국독립영화협회(02-334-3166)로 문의하면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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