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문제제기
― 올 상반기 ‘반값 등록금’ 이슈는 기존 등록금 투쟁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을 지님. 등록금 문제가 대학의 담장을 넘어 여의도와 청와대에까지 공명을 불러일으킨 점, 내년과 후년 선거일정을 앞두고 보편적 복지담론의 일환으로 반값 등록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 구체적인 대안까지 제시함으로써 실현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 등에서 이전의 ‘등투’와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음.
― 과거와 다르게 등록금 문제가 대중들의 공분을 사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절대 금액 자체도 높아졌지만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 회수가 불가능해졌기 때문. 과거엔 등록금 인하를 외쳐도 ‘나중에 졸업해서 좋은 직장가면 돈 많이 벌텐데’하는 대중적 감정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게 불가능해짐에 따라 불만이 확산됨.
― 하지만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려 등록금을 반으로 낮춘 후, 그 다음에 대한 시나리오가 없다는 점은 치명적 한계임. 현재 대학이 해결해야 할 근본적 문제는 등록금 인하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떤 대학을 필요로 하는지, 우리는 대학을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에 대한 질문임. 대략 10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 등록금이 반으로 내려가고 취직도 쉬워지면 조용히 촛불을 끄고 다시 학교로 돌아갈 셈인가. 등록금 인하는 문제의 해법이 아닌 지연일 뿐임.
― 등록금 문제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이 필요함. 등록금 문제는 대학이 안고 있는 태생적 한계와 모순이 하나의 양상으로 드러난 것임. 대학을 둘러싼 대내외적 환경 변화에 직면하여 적극적으로 수익을 추구하고 비용절감을 위해 노력하는 행위를 ‘기업화’라 거칠게 정의한다면 최근 전반적인 대학의 행위는 대부분 기업화로 설명이 가능함. 학생(학부모)을 소비자로 규정하고 비용을 부담지우는 것(등록금 인상), 비정규 교직원이 대학의 행정과 교육을 책임지는 것, 직접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 연구성과를 특허로 출원하여 대학이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것, 커리큘럼이나 학문단위를 기업의 수요에 따라 바꾸는 것 등.
― 교육과 연구를 통해 지식을 전수하고 생산하는 대학이 기업화된다는 의미는 우리 사회에서 지식생산 체제의 변화를 의미함. 이는 대학의 사명과 역할이 새롭게 규정되고 있다는 의미이며 그에 따라 교육에 대한 권리와 지식에 대한 권리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임. 따라서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고 대응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짐.
― 이제까지 등투를 돌이켜보면 우리가 낸 돈이 얼마인지, 어떻게 쓰이는지, 합리적인 가격은 얼마인지는 계산을 해냈지만 정작 대학엔 왜 왔고, 뭘 배우는지 하는 물음을 던질 기회를 갖지 못함. 대학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고등교육의 편익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빠져있기 때문에 현재 반값 등록금 논란은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를 넘어 대학의 정원은 얼마가 적정한지, 대학의 목표는 어디에 둬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여러 논의가 난무함. 거꾸로 고등교육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은 무엇이고 고등교육에 대한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대한 성찰이 있은 후에야 그 비용은 얼마나 들고, 어떻게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가능함.
― 대학의 위상 찾기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대학이 초중등교육에 대해 갖는 규정력 때문임. 초중등교육이 고유의 목표를 잃어버린 채 오직 고등교육 진학을 위한 준비 단계로 종속되어 자율성과 생명력을 잃어버림. 따라서 대학의 위상 찾기는 초중등교육의 제 역할 찾아주기 이기도 함.
Ⅱ. 분석의 틀
― 하버드 대학 총장을 역임한 데렉 복은 대학의 상업화를 “경제적 이익을 위해 대학에서 이뤄낸 산물(교육, 연구, 스포츠)을 판매하려는 노력”이라 정의함. 하지만 이 정의는 엄밀하지 못하여 누가, 어떤 동기에 의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음.
― 슬로터와 로즈는 대학이 대내외적 환경 변화에 직면하여 자신이 보유한 지적재산을 적극적으로 상업화하려는 노력을 ‘학문 자본주의(academic capitalism)’라 칭함. 좀 더 구체적으로는 “외부로부터 자금(보조금, 연구 계약금, 기부금, 기업과 파트너십, 수업료 등)을 확보하기 위한 대학과 교수의 시장 행위”를 의미함. 이러한 시장 행위에는 특허뿐만 아니라 저작권, 상표권도 포함되며, 학부와 대학원을 통틀어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행위를 모두 가리킴.
― 지식이 원료이자 그 자체로 상품이 되는 이 시대(지식경제, 정보화시대)에 지식을 생산하는 대학은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됨. 대학은 점차 새로운 경제에 통합됨. 학문 자본주의 논의는 대학, 교수, 직원, 학생을 지식경제와 연계시키는 연결망에 초점을 두고 분석함. 이 연결망에는 새로운 지식생산․유통 회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매개하는 조직 등장, 대학과 기업, 국가를 매개하는 조직 출현, 대학의 경영능력 확대, 새로운 마케팅 행위가 포함됨. 이러한 메커니즘과 행위들이 학문 자본주의적 지식/교육 체제를 구성하며, 이전의 공공재적 지식/교육 체제를 대체하는 중.
― 학문 자본주의적 지식/교육 체제는 지식은 곧 사유재이며 시장에서 얼마나 이윤을 생산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매겨짐. 지식을 누구나 접근가능한 공공 영역에 두어 모두가 골고루 이익을 누리게끔 하지 않고, 대신 지재권을 통해 배타적으로 소유하여 그로부터 이윤을 추구함. 이제 과학활동과 상업적 활동을 구분하기가 어려움. 과학연구 그 자체에 상업적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음. 기업이 대학에 기대하는 것은 응용․개발 연구가 아니라 상업적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는 기초과학 연구에 접근하기 위해서 산학협력계약을 맺는 것임.
― 흔히 대학 기업화를 비판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은 마치 예전에는 대학이 기업의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고고한 상아탑이었다고 암묵적으로 가정함. 하지만 대학은 그 기원부터 교회, 국가, 기업과 관계를 맺어오면서 형성, 발전해온 역사적 산물임. 고고한 상아탑은 하나의 이상(理想)이었을 뿐. 그렇다면 최근의 변화(기업화)는 대학과 기업(그리고 국가)의 관계가 이전과 다르게 변화한 것으로 봐야함. 대학과 기업 간의 전통적인 경계가 무너지고 새롭게 다시 그려지고 있는 중임. 그 경계짓기를 포착해야 함.
Ⅲ. 변화의 동인
1. 신자유주의 세계화
― 197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지배적 담론으로 자리잡은 신자유주의는 전후(戰後) 성립된 노동-자본 간의 타협을 깨뜨리고 부와 권력을 다시 탈환하려하는 자본의 반격. 신자유주의의 본질은 부와 소득의 창출이 아니라 재분배, 즉 탈취에 의한 축적. 이는 자본주의가 등장하던 시기 ‘시초 축적’ 관행의 재등장을 의미함. 토지의 상품화와 사유화, 공적 자산의 배타적 사유재산권으로 전환, 자산(자연 자원)의 전유를 위한 신식민지화, (섹스 산업을 위한)인신매매 등이 포함됨.
― 신자유주의가 대학(연구)에 미친 영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음. 탈산업화와 신경제(지식경제) 등장, 정보기술의 발달과 인터넷을 통한 탈중심적인 통제, 원료로서 지식의 중요성 부상, 기업 구조조정과 R&D 외주화, 국가의 과학 지원․관리기능 철회, 국가의 고등교육 지원 철회.
―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일관성은 없음. 내적 모순 존재. 실제 적용은 국가별, 지역별로 상이하게 드러남.
2. 한국의 조건과 대응
― 한국 자본주의는 1970년대 후반 들어 중화학공업의 과잉투자로 국내 수요가 급격히 위축되었고 여기에 석유위기로 수출이 둔화되어 경기침체를 겪음.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80년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 축적 전환은 1990년대에 본격화. 김영삼 정부는 공공부문 민영화, 민간 부문 탈규제화, 고용․해고의 자유화, 유연노동시장․임금 도입 등의 신자유주의 개혁을 단행. 87년 이후 지속된 자본의 이윤율 저하는 97년 경제위기로 귀결됨.
― 김대중 정부는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본시장을 대폭 개방하고 4대 부문 구조조정을 감행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 금융과 기업을 구조조정하여 해외로 도피한 자본을 다시 유인하려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개혁. 자본시장을 대폭 개방하자 투기성 외국인투자가 급증. 이들이 국내 자산을 헐값에 인수한 뒤 막대한 이윤을 남기고 떠나자 국내 외국인투자가 급격히 하락. 이에 정부는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외국 기업에 매력적인 투자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경주. 2003년에 ‘경제자유구역’을 지정하고 외국인 기업에 세금 감면, 환경․노동 규제 면제, 보조금 지원 등의 혜택을 줌. 또한 노무현 정부는 출범 이후 ‘개방형 통상국가’, ‘동북아 경제중심 건설’을 국정 목표로 설정하고 ‘포괄적’이고 ‘동시다발적’인 투자협정(FTA)를 추진.
― 하지만 경제위기 이후에도 내수부진은 지속되고 이것이 기업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쳐 경기침체가 다시 나타나는 악순환이 지속되었고, 성장을 위해서는 더욱 더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 한국은 97년 경제위기 이후에도 지난 10년 간의 구조적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음.
― 삼성경제연구소, 전경련 등 자본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신기술 분야에 대한 투자를 강조함. 정부도 새로운 발전모델을 모색할 필요성을 절감. 과학기술이 곧 경제성장을 이끈다는 신화에 바탕. 90년대 미국에서 일었던 반짝 IT호황에 기대어 이를 모방하려 함. 기존에 자본과 노동을 투자하는 모델에서 기술혁신에 기반한 발전모델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함.
― 김대중 정부는 취임 직후 “정보화를 국가경쟁력 강화의 기반으로”, “과학기술강국 건설”, “21세기 신산업의 메카로” 등의 비전을 제시. 노무현 정부는 과학기술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과학기술중심사회 구현을 목표로 하는 국가 과학기술계획 수립.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과거 정부에서도 계속 강조되어왔으나 과학기술의 육성 자체가 국정 지표로 선정된 것은 정부 수립 이후 처음.
― 이에 따라 연구개발 인력의 상당수가 몰려있는 대학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함. 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란 아예 없다시피 할 정도로 대학교육의 비용은 그로부터 수익을 얻는 개인이 부담하거나 설립자가 부담한다는 원칙 하에 대학의 팽창을 방조하고 정원을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
― 대학에 대한 일반지원금은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연구개발 투자는 2000년 들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함. 이는 2004년에 설립된 산학협력단의 회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음. 국가의 연구개발비가 산학협력단 회계로 계상되면서 산학협력단 회계의 국고보조금 항목이 대폭 증가함.
― 이처럼 국가가 적극적으로 대학(연구개발)에 지원하는 현상은 미국을 비롯한 중심부 국가와 현격히 다른 양상을 보임. 특히 미국에서는 신자유주의의 영향 아래 연방정부가 대학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자 대학이 새로운 자금원을 모색하기 위해 대학이 적극적으로 상업화 노력을 기울였음. 또한 전통적으로 고등교육이 무상이던 유럽에서도 수업료를 물리는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이에 따른 반발과 저항도 거세지고 있음.
― 이는 동아시아 발전국가로서 한국이 갖는 특징임.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조정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끌어왔던 한국은 대학을 학문연구기관이라기보다는 산업발전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는 양성소로 인식해왔고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하는 목적도 경제발전이 주 목적임. 국가의 연구개발투자를 경제사회목적별로 세분해보면, 한국은 2008년 현재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한 투자 비중이 49.9%로 미국(11.0%), 일본(30.5%), 독일(21.7%) 등 외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남.
― 이처럼 국가가 대학의 연구개발 기능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고 이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한 반면 고등교육 일반에 대한 지원은 늘리지 않았고, 자율과 경쟁을 내세워 각 대학으로 하여금 ‘알아서 돈을 벌라’는 이데올로기를 강요함.
― 지난 1995년 “5․31교육개혁안”은 다양화, 자율, 소비자주권 등의 슬로건을 내세워 기존의 권위주의적 대학체제의 개혁의 필요성을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정당화함. 이후 대학설립준칙주의, 대학정원 자율화, 국립대학 민영화, 총장 직선제 폐지, 교수 계약제, 등록금 자율화, 교육시장 개방, 대학평가 등이 도입됨. 고등교육을 자본주의적 경쟁체제로 전환하려는 시도.
Ⅳ. 학문 자본주의 지식체제 등장
1. 교육과 연구의 상품화
― 대학에서 생산된 연구성과를 특허로 출원함. 특허에 대한 소유권은 대학(산학협력단)이 보유하고 그로부터 생기는 이득은 발명자(교수)와 학교가 나눔. <표 3>에서 보듯 2000년 이후 대학이 출원한 특허 건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함. 기술분야별로 보면 특히 IT, BT 분야에서 특허가 증가했으며, 점유율을 보면 특허 출원 상위 10개 대학이 전체 대학특허 출원의 50%를 차지함. 즉 소수 대학이 특정 분야에 주력하여 특허를 출원하고 있음.
―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앞서 살펴봤듯이 정부의 적극적인 연구개발비 지원 덕분이었으며, 대학이 지적재산을 관리하도록 하는 법적․행정적 제도가 마련되었기 때문. 2003년에 개정된 산업교육진흥법에 따라 대학의 산학협력 업무를 관장하는 조직으로 법인 형태의 ‘산학협력단’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고 산학협력단은 산학협력계약의 체결․이행, 산학협력사업과 관련한 회계의 관리, 지적재산권의 취득․관리에 관한 업무, 기술 이전․사업화 촉진 등의 업무를 담당함.
― 2008년 현재 이공계 학과가 설치된 144개 대학 가운데 지재권 관리 규정을 보유한 대학은 112개(78%)이며, 직무발명 보상규정을 보유한 대학은 104개(72%), ‘국내특허출원’을 업적평가에 반영하는 대학은 50개(35%), ‘국내특허등록’을 반영하는 대학은 127개(88%)로 나타남.
― 대학이 기술을 소유하면 이를 가지고 주식회사를 차려 기술을 직접 판매함. ‘기술지주회사’는 산학협력단이 자본금의 50% 이상을 기술로만 출자해 설립할 수 있으며 나머지는 외부 투자자를 끌어들임. 지주회사는 산하에 자회사를 두고 기술만으로 지분 확보. 2010년 현재 13개 대학이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했고 이 지주회사가 설립한 자회사는 33개. 교수는 자신이 발명한 기술을 가지고 직접 창업주가 되거나 회사의 지분을 보유함. 기술지주회사는 여기에 투자한 지분만큼 배당금을 얻음. 이 기업이 증시에 상장되거나 다른 기업에 인수되면 그만큼 자본수익이 발생.
― 온라인 교육을 통한 졸업장 장사. 2001년 9개의 사이버대학이 출범한 이후 2011년 현재 18개 대학에 입학정원이 3만명. 사이버대학은 최소한의 기준으로 대학을 설립․운영할 수 있어 쉽게 학생들을 모집하여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학사관리가 엉망이거나 기설기준이 미흡한 학교도 더러 있으며, 전문 브로커를 통해 학생을 모집하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음.
― 학교기업을 통한 상품 판매. 90여개 대학에서 100여개 학교기업 설치․운영. 교비회계에서 학교기업의 수입을 충당하는 학교기업은 대부분 적자를 면치 못함. 그러자 정부는 소재지 제한을 완화하고 사업종목도 확대.
― 학교 로고나 마스코트 등을 상표등록하고, 이것이 새겨진 상품을 판매. 정작 그 소비자는 학생.
― 학생들을 한 명이라도 더 모집하기 위해 상당한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고 대학의 외양을 꾸미는데 노력을 기울임. 대학의 광고만 보면 전국에 취업률 1위가 아닌 대학 없고, 모든 수업은 호수를 옆에 낀 잔디밭에서 교수와 둥그렇게 둘러앉아 진행됨. 등록금은 대학을 선전하는데 활용되는 번드르르한 건물을 올리는데 사용되고 교육을 위한 지원에는 쓰이지 않음. 또한 이른바 상위권 대학은 복잡한 입시제도를 통해 지불능력이 높은 학생들을 독점함. 이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밀리지 않고 비싼 등록금을 지불하며 졸업 후에도 기부금을 낼 확률이 높음.
2. 구조조정과 탈규제화
― 양적 축소와 학문단위 재편. 노무현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대학구조개혁사업은 과잉 팽창된 사립대는 놔두고 국립대만 정원을 축소(통폐합)하는 결과를 낳음. 법, 경영, 치의약학 전문대학원 설립인가를 앞두고 다른 분야 정원을 빼돌려 채우는 일이 공공연히 벌어짐. 반면 철학과, 유럽어문학과가 주로 폐지되고 있는 추세.
― 국공립대 법인화. 국립대(서울대) 법인화는 서울대의 특권적 지위를 해체하려는 개혁안(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대한 기득권층의 반격. 국가 혹은 이사회가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 외국의 경험과 달리 국립대 법인화는 ‘지원은 않되 간섭은 하는’ 구조. 법인화는 학문 자본주의의 최첨단 실험장이 될 것임.
― 사학 청산. 정부가 반값 등록금을 빌미로 부실사학 퇴출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설립자에게 출연재산을 돌려주기 위한 명분 쌓기.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하고 개인 재산을 출연하는 순간부터 더 이상 설립자 개인의 재산이 아님. 학교재산을 마치 개인의 것인 양 마음대로 주물러 쓰다가 학교문을 닫는 설립자한테 재산을 돌려주기는커녕 처벌을 해야 함. 마찬가지로 재정구조도 건전하지 못한 대학에 설립인가를 내준 정부한테도 책임을 물어야 함.
― 이참에 영리법인도 사학을 운영하게끔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제기됨.
3. 비용절감
― 외부로부터 수입구조가 불확실할 때 가장 확실하고 손쉬운 방법이 바로 등록금 인상.
― 대학 내 비정규 노동력 대폭 증가. 학부 강의는 사실상 시간강사들이 전담하고 있으며, 학교 행정, 시설관리 등의 업무는 용역업체를 통해 고용된 비정규 노동력이 담당함.
― 학내 주요 시설(매점, 식당, 서점, 편의점 등)을 외부에 임대하여 관리비용을 줄이고 대신 학생들의 이용부담이 늘어남. 또한 외부 자본을 유치하여 기숙사를 설립․운영함. 기업은 건물을 지어주는 대신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이용료를 높게 책정함.
Ⅴ. 결론
― 대학이 경제에 통합되는 새로운 지식회로가 만들어짐. 시장에서 상품성이 대학의 연구의 방향을 결정하며 이는 곧 기업의 영향력이 커졌음을 의미. 또한 교수는 강의나 논문발표뿐만 아니라 특허출원에 활발하게 참여함. 이는 점차 공적 재원이 사적 영역으로 흘러들어감을 의미함. 대학의 연구개발비가 전적으로 정부의 지원, 즉 국민의 세금에 의해서 지원되는데 이처럼 공적 성격이 강한 연구개발의 성과를 대학과 연구자가 독점적 성격의 지적재산권을 보유하고 그로부터 경제적 수익도 가져감.
― 대학은 시장이 열어놓은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산학협력단이라는 매개 조직을 설립하여 기업과 밀접한 협력관계를 맺음. 만일 영리형 사립대학이 허용된다면 이야말로 대학과 기업을 연결하는 매개 조직의 역할을 수행함. 이러한 매개 조직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를 활발히 침투하며 그 경계를 재설정함. 과거엔 기업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곳에 대학이 침투하여 자신의 영역으로 포섭하고 있음.
― 새로운 지식회로, 매개 조직의 등장 덕분에 외부 자원을 관리하고, 첨단 분야 연구에 투자하고, 학생들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대학의 경영 능력이 확대됨. 대학 행정가들은 마치 시장성 있는 기술을 뽑아내는 벤처자본가 같은 역할을 수행함. 이들은 연구성과의 상업성을 평가하고, 지재권을 관리하고, 법적 분쟁을 마다하지 않음. 또한 CEO형 총장의 기금모금 능력이 중요하게 부각됨.
― 이렇게 볼 때 한국에서도 학문 자본주의적 지식/교육 체제가 등장하였음. 그러나 이것이 곧 대학의 사영화(privatization)를 의미하는 것은 아님. 대학은 여전히 비영리 조직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고 그 혜택을 누리면서 시장에 활발히 참여함. 공적 영역을 재정의함.
― 학문 자본주의적 지식/교육 체제의 등장은 교육과 지식에 대한 권리의 축소를 의미함. 연구 의제 설정에서 사적 이익이 공적 이익을 대체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유용한 지식이 생산될 가능성은 희박해짐. 또한 지식은 배타적으로 소유됨으로써 널리 공유되지 못함. 누구나 접근가능하지 않음. 특정 학문 분야에 자원이 쏠리면서 보편적인 지식의 습득이 불가능함. 지불능력에 따라 대학교육의 기회가 주어짐으로써 최소한의 기회균등조차 보장되지 않음. 정의(justice)의 문제.
― 학생은 교육에 대한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소비자로 규정되어 대학은 자신을 매력적인 상품으로 포장하여 지불능력이 있는 학생들을 끌어들이려함. 학생이 일단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마케팅과 판매의 대상으로 전락함. 이들한테 뽑아내는 등록금 수입은 폭발적으로 증가함. 이전에는 싼값에 혹은 무상으로 제공되던 서비스(주차, 체육시설, 여가시설, 식당, 기숙사 등)에 가격을 매기거나 올림. 졸업할 즈음이면 기업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으로 포장.
― 내가 낸 등록금을 올바로 쓰라거나 인적 자본에 투자한 만큼 노동시장에서 보상해달라는 요구는 소비자로서 자기 규정을 강화하는 결과. ‘대학 나왔으니 그에 합당한 일자리를 달라’는 요구는 허구적인 노동분업을 재생산. 일자리는 대졸여부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야 함.
― 현재와 같은 대학 현실에서 정부 보조를 통해 등록금을 낮추는 것은 학생에게 비용을 전가해온 대학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며, 학문 자본주의적 지식생산 체제가 찍어낸 지식과 대학졸업장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결코 유익하지 않음. 여기에 왜 세금이 투여되어야 하는가.
―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유용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함. 대안적 에너지, 생태적 삶, 이주노동자, 빈곤층 등에 대한 연구가 대학에서 이루어져야 함. 이렇게 생산된 연구결과는 사유지에 가둬놓을 것이 아니라 널리 확산되고 이용되도록 보장해야 함.
― 고등교육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역사 속에서 비판적으로 생각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존재의 변화를 이끄는 것. ‘비판적 저항의 궁극의 장소’. 이러한 고등교육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함. 고등교육을 사적인 치부나 권력획득의 수단으로 전용하지 않도록 하여 고등교육의 편익을 사회 전체적으로 누리게 해야 함. 따라서 그 비용도 개인이 아닌 사회적으로 부담해야 함.
<참고문헌>
Philip Mirowski. 2011. Science-Mart. Harvard Univ Press.
Slaughter, S. and L. Leslie. 1997. Academic Capitalism: Politics, Policies, and the Entrepreneurial University. Baltimore: Johns Hopkins Univ. Press.
Slaughter, S. and G. Rhoades. 2004. Academic Capitalism and the New Economy: Markets, State, and Higher Education. Johns Hopkins Univ. Press.
제라르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 이강국 외 역. 2006. <자본의 반격>. 필맥.
데이비드 하비. 최병두 역. 2009. <신자유주의>. 한울.
장상환, 2006, "1990년대 자본축적과 국가의 역할", 정성진 외, <한국 자본주의의 축적체제 변화: 1987-2003>, 한울.
윤소영, 2001, <이윤율의 경제학과 신자유주의 비판>, 공감.
김창근, 2007, "한미FTA: 미국 제국주의와 한국 재벌의 연합", 정성진 외, <한국 자본주의의 재생산구조 변화: 1987-2003>, 한울.
성지은, 2006, "과학기술정책 결정구조의 변화: 참여정부 과학기술행정체제개편을 중심으로", <행정논총>, 44(1).
국가과학기술위원회, 2009, <2009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 보고서>.
배태섭. 2010. "대학 특허 출원 증가의 구조적 요인". 2010후기사회학대회 발표문.
교육과학기술부, 한국연구재단, 2009, <2008 대학산학협력백서>.
데렉 복, 김홍덕 역. 2005, <파우스트의 거래>, 성균관대 출판부.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