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갑자기 베토벤에 관한 책을 읽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도서관에서 찾아 보니 박홍규의 <베토벤 평전>과 아도르노의 <베토벤, 음악의 철학>이 있어 두 권을 빌렸다. 아도르노의 경우는 이전에도 말러에 관한 책을 빌렸으나 얼마 읽지 못하고 반납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얼마나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박홍규 선생의 베토벤 평전을 읽기 전에 이런 저런 글에서 베토벤을 접하기도 했는데, 대부분 인터넷에 떠도는 그저 그런 글들이었다.(물론 인터넷에도 제법 괜찮은 글들이 있다) 박홍규의 베토벤 평전은 사실 재미있거나 눈을 확 끄는 그런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분의 직업은 영남대 교수인데 법학자로 알고 있다. 니체에 대한 책도 있는데 나는 읽어 보지 못했다. 니체를 싸잡아 비판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고 이 분은 원체 체질이 '비판적'인지라 그 비판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도 않다.
여튼 이 책에서 박홍규 선생은 베토벤이 태어나 살던 시대의 역사적 측면을 길고 지루하게 다루고 있다. 물론 한 사람의 인간이 어떤 인간인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정치,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 베토벤은 1770년 12월 16일 본에서 태어나 1827년 3월 26일 빈에서 죽었다고 하니 당시 그의 시대가 어떠 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 시대는 바로 근대를 열어 젖히기 위해 분투하던 역사의 격동기가 아니었던가!
나는 사실 베토벤의 음악이 그렇게 좋지 않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교향곡은 3번만 좋아하는데, 피아노 소나타나도 좋아하는 게 별로 없고, 피아노 협주곡은 2번과 4번을 좋아하지만 자주 듣는 편이 아니다. 베토벤의 음악은 무겁고 무거운 만큼 깊다. 음악을 들으면서 '깊다'는 표현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깊이가 있다'라고 한다면 다르겠지만 말이다. 단지 내가 베토벤의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그 무거운 정서를 강조하는 말일 뿐이다. 베토벤 음악은 내가 듣기에 무겁고 무겁고 무겁게 느껴진다. 음악이 나에게 흡수되지 않고 내 몸을 밀치고 지나간다. 나는 마치 아주 세게 불어오는 바람을 마주하고 온 몸을 움추려 걸어가는 사람처럼 베토벤 음악을 듣는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그런데 누가 그렇게 음악을 듣고 싶어한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베토벤을 잘 듣지 않는다. 아마 손홍규 선생이 쓰고 있는 것처럼 베토벤의 유년이 불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베토벤은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학대와 무심한 어머니 아래서 자랐다. 얼마나 삶이 괴로웠을까? 아버지는 베토벤을 이용해 돈이라도 좀 벌려고 베토벤을 가혹하게 학대하면서 피아노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후 베토벤의 음악 선생도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체벌이 교육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정신나간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베토벤은 자신이 천재가 아님에도 천재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으로 음악에 몰두 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80년대 중반 읽었던 책 중에 <비밀일기>라는 책이 있었다. 지금 알라딘에서 팔고 있는 <에이드리언 몰의 비밀일기>와 같은 책이지는 모르겠다. 내가 읽었던 <비밀일기>의 역자 후기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은 자라면서 누구나 한 번쯤 '이것'을 거치는데 이를 그 나이에 제대로 거치지 않은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한 번 꼭 거치게 된다. 그게 그 사람에게는 비극이지만 남이 볼 때는 희극이다. 뭐 이런 말이었다. '이것'은 사랑받는 것을 말한다. 아이일 때 사랑을 받고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 이외수가 <들개>인가 <꿈꾸는 식물>에서 유행시킨 말이 있는데, 그게 "후천적 애정결핍"이다.
베토벤은 후천적 애정결핍이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 부모의 학대와 무관심 속에서 자라면 공격적이고 냉소적인 사람으로 자라게 된다. 만일 다른 어떤 보충물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 보충물은 다양하다. 누나의 사랑이건, 이모의 사랑이건 다른 누군가의 사랑이건, 사람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이라도 말이다. 베토벤의 소년 시절이 불행했던 것은 베토벤에게 피아노 이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피아노가 베토벤을 불행으로 이끌었는데 위대한 음악가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 역설이다.
"이런 분위기에서(아버지의 학대와 어머니의 무관심) 어린 베토벤이 혼자 있기를 즐겼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부모나 형제만이 아니라 마을이나 학교의 같은 또래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했다. 그것은 그의 평생에 걸친 인간 혐오와 반사회성으로 이어졌다."(박홍규의 <뻬토벤 평전>, 95쪽)
베토벤의 음악이 무겁고 무겁고 무거운 이유는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박홍규 선생은 베토벤이 최초의 노동자 음악가이고 노동자 대중을 위해 음악을 작곡했다고 하지만 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큰 구멍 속으로 베토벤이 느꼈을 깊은 고독과 외로움, 인간에 대한 냉소와 동시에 인간에 대한 갈망이 격렬하게 휘몰아쳤을 것이다. 이 거대한 동공. 이 크고 심연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구멍. 한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이 거대한 블랙홀을 어떻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