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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고 여행

선군정치 아래에서 지속불가능한 삶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대체로 대부분 뚱뚱한) 미국인들에게 가장 부러운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실은 원주민에게 약탈한 것이지만) 자연환경이랍니다. 남의 나라에 아낌없이 포탄을 쏟아붓는 모습과 지극히 정성스럽게 자신들의 땅을 가꾸는 모습은 참으로 이율배반적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역사가 원래 그렇게 발전되었기 때문에 이런 분열증적인 행동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살고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보면 한편으론 오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답답하기도 합니다.

   

지난 주말에 짬을 내어, 예전에 참으로 오래 가까이 지냈던 선배가 살고 있는 샌디에고에 놀러갔다 왔습니다. 이곳에서 샌디에고로 갈 수 있는 교통편으로는 사막을 관통하는 5번 고속도로를 통해 LA를 통과한 후에 샌디에고로 가는 방법 (쉬지않고 달리면 약 6-7시간 소요)이나, 비행기 (1시간 40분)를 타거나 기차 (10-15시간)를 이용하는 겁니다. 혼자서 차를 몰고 아무 것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 직선으로 나 있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건 재미도 없고 위험할 것 같아서, 비행기를 타고 가서 기차로 오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기차도 어떤 노선을 선택할 것인가에 따라 5시간 정도 차이가 나는데, 제가 선택한 방법은 캘리포니아 해안에 있는 주요 도시(샌디에고-LA-산타바바라-몬테레이-산호세-샌프란시스코-포틀랜드-시애틀)를 모두 연결하고 북쪽 워싱턴 주 시애틀까지 바로 연결되는 'coast starlight'라는 기차편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금요일은 시간대에 따라서 같은 항공사의 샌디에고 행 비행기라도 4만원 이상 차이가 나기 때문에, 새벽같이 일어나서 지하철을 타고 싼 비행기를 이용해서 샌디에고 도착했습니다. 간단하게 선배가 일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 샌디에고 캠퍼스(UCSD)를 둘러보고, y"=A*y*y 라는 비선형미분방정식의 일반해가 있는가 잠깐 앉아서 고민하다가, 샌디에고 해변가에 가서 간단하게 둘러 보았습니다. 넓은 해안의 일부분은 UCSD의 연구소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샌디에고는 굉장히 남쪽에 있지만, 막연히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강한 햇살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5월 날씨같은 상쾌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어.. 참 살기 좋은 기후구나'.. 하는 느낌. 찾아갔던 선배의 가족은 요즘의 일반상식과는 무척 동떨어지게(!?) 세자매를 낳아 키우고 있는 대가족(!)이라, 오랬만에 사람사는 듯한 북적북적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어서 무척이나 즐거웠습니다. 집근처 공원에 가서 해가 질 때까지 고기+새우+고구마등등도 구워먹고 술도 한잔 하고 오랬만에 아이들과 장난도 치고... 어째 지금 생각해보니, 이곳에서 혼자서 무척이나 이상한 삶을 살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회생활이 교회나 유학생모임을 중심으로 돌아가거나 가족중심으로 사는 곳이라서, 그 어느 곳에도 들어갈 생각이 없는 나로서는 (독일에서 살다온 한 친구는 너무 답답한 나머지 독일에서부터 절에 다니기 시작해서 이곳에서도 꾸준히 다니고 있죠) 그냥 밤중에 맥주사다 홀짝거리거나 주말 아침에 늦게 일어나 다리가 아플때까지 동네 뒤 산꼭대기를 올라가는게 거의 전부죠. 그래서 전화를 하지 않는 날이면 영어도 한국어도 한마디도 하지 않는 주말을 자주 보내곤 합니다. 

 

  보통 샌디에고로 여행을 하면 그곳에 있는 유명한 동물원이나, Sea World라는 유원지를 가보라고 추천합니다. 하지만, 그곳들은 이미 선배의 가족들은 가본 곳이고, 저 또한 이런 행락지에는 커다란 관심이 없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선배가 추천한 LA북쪽에 있는 Getty Center라는 곳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늦은 아침을 먹고, 승합차(!)에 가족과 저를 태우고, LA 북쪽으로 갔습니다. Getty Center는 J. Paul Getty 라는 석유로 떼돈을 번 갑부가 모은 미술품과 장식품을 전시한 곳이랍니다.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버리힐즈 북쪽 LA에 엄청나게 넓은 건물에 엄청나게 유명한 미술품들이 모두 Getty의 개인재산과 개인소장품이란 것이 놀랍습니다. 이곳은 LA전체를 볼 수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물론, 주차료 7$ 만 내면 나머지 전부(박물과 입장과 tram 이용등등)가 무료입니다. 아침에 선배 형수님이 고생하시며 만든 김밥을 먼저 먹고, 박물관에 들어가서 유명한 고흐, 르느와르, 크노프의 그림들도 보고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는 사진촬영은 허용되어서, 이렇게 사진도 찍어보고,

알마 타데마, 밀레, 고야, 크누프, 세잔, 등등이 그린 아줌마, 아가씨, 아이, 아저씨들의 초상화도 보고 사진도 찍고...

 

Getty Center를 찾아가게 만들었던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였던 램브란트 후기 초상화 특별전을 찾아가서 그의 최후의 초상화 연작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유명한 후기 초상화들을 한 곳에서 볼 기회를 이렇게 우연히 가지게 되다니! 물론, 아이들 세명 중 두명은 나중에 자신들이 램브란트 후기 초상화 연작들을 봤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할 나이였지만,  뭐, 그렇더라도 크게 울지도 소리도 지르지도 않는 착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이곳은 다른 곳과는 달리 사진촬영을 제지 당해서 그림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사도바울로 분한 램브란트(a self portrait as Apostle Paul)와 (성 프란시스 로 추정되는) 책을 읽는 수도승(A monk reading) 초상화는, '그래, 이제서야 실물을 보았구나'하는 생각과 그림을 보는 거리와 각도에 따라 보이는 정도가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 그림을 향해 걸어가며 보면 마치 은둔자의 외로움에 점점 다가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도데체 왜, 평생 수없이 많은 자화상을 그리던 램브란트가 말년에 이렇게 종교적 은유와 직유(당시에 거의 금기시 되던)를 자신의 자화상에 도입했는지 설왕설래가 많지만, 300여년 후에 바라본 이 두껍고 어두운 검은 유화들이 말하려고 하는 어떤 느낌이 전해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이 화창한 캘리포니아의 햇살 아래서 말입니다. 원래, 글을 시작할 때 샌디에고에서 기차를 타고 오면서 찍은 풍경 사진들을 주로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지네요. 돌아오는 여정은 다음에 써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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