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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공원에 발걸음

  • 등록일
    2007/02/25 10:19
  • 수정일
    2007/02/25 10:19

1월엔 광주의 열사묘역을 돌아봤고, 얼마전엔 경남의 열사묘역을 돌아봤다.

모란공원엘 안 가 볼 수 없지 싶었다.

 

아는 이들과 함께 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시간이 나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고 무엇보다 자전거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 새벽같이 일어나서 출발했다. 인제 자전거로 여행할 일도 당분간 없으니까.

 

전철을 타고 덕소역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팔당댐, 양수리를 지나 북한강을 따라가다가 마석으로 가는 길. 일부러 한강 따라가고 싶어서 한참을 우회한 길이다. 짧은 길로 갔으면 왕복 30km면 되었지만, 오늘 달린 총 거리는 60km.

 

덕소역에서 출발한 지 3시간 반만에 모란공원에 도착했다. 무슨 노릇인지 모르겠지만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첫 교외 데이트 장소였던 정약용 유적지에 들러 보았고, 양수리 갈대 사진도 몇 장 찍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한가롭던 물새떼들은 갑자기 난리를 피웠고 올려다 보는 산허리 부근에는 자그마한 절이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수종사에 꼭 다시 한 번 올라가서 차 한 잔 마셔보고 싶었는데. 두 물이 합쳐 만들어진 바다같은 호수를 호젓하게 내려다 보면서...

 

모란공원에 도착하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 중간에 배가 고팠지만 도착해서 먹자며 참고 참았으니까. 무덤 옆 아무데 바윗돌 깨끗해 보이는데 엉덩이를 걸터 앉고 미리 사 간 김밥 두 줄을 씹었다. 김밥은 매우 맛있었다. 마침 참배를 마치고 나오던 한 무리의 청소년들이 보기에는 참 처량하고 웃겨 보였겠지마는...

 

김밥을 잘근잘근 씹고 있으니 모란공원에 처음 왔던 때가 생각났다.

 

대학 새내기때,

과 총MT 때였다.

 

흔히 MT장소는 대성리, 강촌이 유명한데 우리과는 서울에서 대성리 가는 길에 있는 샛터란 곳으로 자주 갔다. 한강가에 있는 자그마한 MT촌인데, 난생 처음 보트 타며 물놀이도 해보고, 밤엔 모닥불 피워놓고 술도 먹었다. 그런데 이 MT의 둘째날 프로그램이 바로 아침밥 먹고 모란공원을 참배하는 것이었다. 활동가들이 주도하는 학생회 다웠다.

 

그런데 문제는 샛터에서 모란공원까지 걸어갔다는 사실! 버스로도 수 정거장인데다 지도상으로는 지금 보니 거의 6km. 이 정도면 한시간 반 가까이 족히 걸어야 하는 거리다. 그런데 그 길을 밤새 술먹고 토하느라 헤롱거리는 이들을 이끌고 가는데다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MT에서 참배를 간다니. 대부분의 신입생들에게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던 게다. 버스비가 모자라서 걸어갔는지는 모르지만, 꿋꿋이(?) 선배들은 대열을 끌고 갔다.

 

결국 도착은 했지만 몇몇은 그대로 잔디밭 위에 널부러져 있던 것이 생각난다. 지금 그 꼴을 생각해 보니 참 우습기도 하다. 이미 진지한 선배들(!)과 친밀해진 일부는 고학번 선배(참 우러러 보였다)의 설명을 들으면서 묘 하나하나를 둘러 보았고 거기에 나도 끼어 있었다. 그게 나의 모란공원에 대한 첫 기억이다. 우연히 고등학교 때 서점에서 전태일 평전을 사 보았기 때문인지 전태일의 묘를 눈앞에 두었을 때 감회는 남달랐다.

 

그리고 3년 전 쯤인가, 또 무슨 활동가들과의 엠티가 끝나는 길에 일부와 함께 들렀고, 내가 신입생 때의 그 고학번 선배처럼 간단한 설명을 곁들이고, 묵상을 이끌고.. 했다.

 

막상 도착하니 별다른 감흥도 살지 않아 간단히 전태일과 박종철의 묘 앞에서 사진을 좀 찍곤 묵상도 제대로 못한 채 허겁지겁 내려왔다. 내 자신이 운동을 하고 있다고 규정했던 시기의 열사들 - 배달호, 김주익, 이해남, 이용석, 박일수 - 보다는 아무래도 느낌이 좀 멀다. 그렇다고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2000년에 노조활동을 하고 파업집회에 가는 도중 전철역에서 깃대를 뽑다가 전선에 걸려 감전사한 한 분의 열사 이야기가 참 안쓰러웠다. 광주에서 보았던, 검문을 피해 기차에서 뛰어 내리다 목숨을 잃은 한 학생열사의 죽음처럼...

 

모란공원엔 또 언제 다시 갈 지 모르겠다.

언젠가 또다시 발걸음 할 수 있었으면,

또 나도 언젠가 혼이나마 그 옆에 있을 수 있었으면 싶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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