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의 서문이 인상깊긴 하더군요. 폭력에 대한 개념정의를 시도하면서 벤야민을 인용한 것은 데리다의 그것과는 또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출판사가 "문제적 인가"이라는 기획으로 다룬 것에 충분히 수긍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로베스피에르는 관심이 폭증하는 인물입니다.
살짝 말씀드리는 건데, 제가 지금 파고 있는 것이 바로 폭력과 법입니다. 더 정확히는 위기, 공포, 그리고 법치에 대한 것이죠. 로베스피에르에 대해 책을 읽은 이유도 그것 때문인데요, 속을 들켜버린 것 같아 화들짝 했답니다. ㅡ.ㅡ+
로베스피에르의 연설문(덕치와 공포정치)을 읽다보면 혁명기 위기상황의 돌파를 모색하는 가운데 여전히 법은 중요한 수단으로 작용하더군요. 재밌는 것은 이런 현상이 프랑스혁명은 물론이려니와 소비에트혁명기와 중국공산당 집권과정(문혁때도 마찬가지로)에서도 동일하게 보인다는 거죠. 즉 폭력의 대체물, 혹은 폭력 그 자체로 법이 동원됩니다. 여기서 제 관심은 주체의 문제로 비화하죠. 절차적 또는 형식적 법치에 대한 틀은 좌우가 거의 동일합니다. 묘한 합의형태를 갖추죠. 그렇다면 결국 현존하는 법질서를 전제하고 논의되는 법치는 실제성을 담보하지 못하게 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문제는 거듭 주체로 전환되고 결론은 그 법이 누구의 법이냐로 귀착된다는 거죠. 당연히 권력의 주체, 사회구조, 생산양식 등 이 모든 것이 발현된 형태의 새로운 법질서를 새롭게 전제하지 않는 한, 기존 법체계를 전제하고 이루어지는 법치논란은 상호간의 경계를 흐려놓고 서로 상대방의 알리바이만 완성시켜준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좌우 공히 마찬가지죠. 따라서 법치의 문제는 정치의 문제로 돌아갑니다.
지금까지 정리되지 않은 선에서 제 화두의 귀결은 이러한 방향으로 일단 선을 잡았지만, 아직 확연하게 뭔가가 뒤통수를 빵 때리고 지나가는 것이 없네요. 그러다보니 본 글을 쓰면서도 그 부분에 대해선 적절히 언급하기가 어려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