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직

2009/01/22 12:16

이제 서른 둘이었단다. 남겨놓고 출근하기가 망설여질만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도 있었단다. 이렇게 단란한 한 가족의 일원이었던 동시에 그는 직분에 충실하고 명령에 충성하면서 살던 직장인이었다. 그러던 그가 하루 아침에 불에 타 숨졌다.

 

경찰과 언론은 이 죽음에 대해 "순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안타까운 젊은이의 "순직" 앞에 그를 순직케한 명령을 내렸던 어떤 이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친다. 순직한 부하의 영정을 목전에 두고 흘리는 안타까운 눈물?

 

"순직"이라는 것은 소정의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사망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언뜻 봤을 때, 이번에 사망한 경찰은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망했다. 그래서 순직이라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순직일까?

 

아수라장의 현장, 과잉진압. 죽음은 예정되어 있었다. 다만 누가 죽느냐, 얼마나 죽느냐의 문제였을 뿐. 제정신이 박힌 지휘자라면 현장의 상황을 숙지하고 그곳에 병력을 투입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 여부를 먼저 확인했어야 한다. 적어도 이 사건에 있어서 경찰은 사건의 현장에 경찰력을 동원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부터 판단했어야 한다. 어차피 보상과 관련해 벌어진 문제. 일차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할 당사자들은 재개발 조합이었고, 개발이익을 노려 뛰어든 건설사였고, 이들의 이해를 적절히 조절해야할 서울시와 용산구였다. 경찰은 원천적으로 개입할 이유가 없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한국 경찰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오로지 불법과 위법을 분쇄해야한다는 독수리 오형제식 지구방위의 사명만이 있을 뿐이다. 아, 정확히 말하면 경찰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경찰의 수뇌부가 그렇다는 것이다. 정권의 입맛에 맞는 경찰, 아니 정권의 입맛에 맞춰줌으로써 한 자리 하고 싶은 경찰 수뇌부들의 머리속에는 상황에 대한 판단, 개입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이성이 자리할 공간이 없다.

 

그리하여 떨어진 명령. 대 테러진압을 담당해야 할 테러진압부대를 철거용역깡패들이 하는 짓에 투입했다. 한국 경찰이,  그 경찰 중에서도 정예 대 테러진압부대의 위상이 철거용역깡패들의 수준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상추락을 아무 의심도 없이 경찰의 수뇌부가 결정한다. 권력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

 

물론 명령을 내린 당사자는 전혀 물리적으로 피해를 입을 이유가 없다. 더불어 정신적으로도 위축을 받을 이유가 없다. 현장의 몸빵은 저 밑에 보이지도 않는 끝자락에 있는 어느 쫄따구가 때울 것이고, 지구방위의 사명을 완수하는 일에 미천한 철거민들 몇 명의 몸에 피멍이 든들 어떠하랴? 지휘권을 가진 그는 명령만을 내리면 그뿐이다. 그 이후에 사태가 어떻게 되든 그건 알 바가 아니다.

 

부하가 죽으면? 눈물 한 방울 흘려주는 센스만 발휘하면 된다. 폭도에 의해 "순직"한 그에게는 일계급 특진과 국립묘지 안장으로 모든 보상이 끝난다. 철거민이 죽으면? 법집행 과정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태라고 한 말씀 해주시면 끝난다. 죽은 사람에게 살짝 애도의 한 마디 던져주고 앞으로도 엄정한 법집행을 하겠노라고 안면 근육 굳혀가며 단호한 목소리로 기자회견을 마치면 그뿐이다.

 

손해볼 거 없는 장사 아닌가? 그래서 명령했다. 진압하라! 그 명령에 따라 애꿎은 부하경찰들은 자신들의 임무가 철거용역깡패들에게나 적절한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조차할 여유도 없이 컨테이너 박스를 타고 고공침투를 감행한다. 그리고 옥상에는 불이 붙었다. 옥상바닥을 따라 흘러가는 불붙은 시너 위로 물대포를 쏜다. 시너는 더 빨리 더 넓게 퍼지면서 좁다란 건물 옥상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철거민 5명이 죽고 경찰 1명이 죽었다.

 

이거 순직인가? 지휘관의 잘못된 상황판단과 무리한 작전명령으로 죽어간 그 경찰은 과연 "순직"한 것인가? 명예로운 경찰의 임무를 수행하던 것이 아니라 기껏 철거용역깡패의 대리인 노릇을 하다가 죽은 것이 "순직"인가? 적절한 보상을 통한 합리적 해결의 방법을 팽개치고 경찰을 동원한 공권력으로 철거민들을 쫓아내기에 혈안이 되었던 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이 "순직"인가?

 

일반적으로 이런 죽음을 두고 "순직"이라는 표현을 하기 보다는 "개죽음"이라는 표현을 한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이 개죽음을 당한 그이에게 영예로운 "순직"의 화관을 둘러줌으로써, 그리고 그 앞에서 살짝 눈물을 찍어내 줌으로써 지휘관은 책임에서 자유롭고자 한다. 물론 현장에서 "순직"만 있었더라면 아마도 살아남은 자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던 그는 책임에서 자유롭고자 했던 소기의 목적을 우아하게 달성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과잉진압명령으로 인해 5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죄과를 물어야 하는 동시에, 그는 부하경찰을 개죽음으로 몰아간 데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 이런 지휘관이 있는 한, 그 밑에 부하들은 언제든 개죽음을 당할 수 있다. 명예라는 것 하나를 긍지로 삼고 사는 그들의 목숨값을 단지 개값에 불과하도록 만드는 자는 지휘관의 자격이 없다.

 

이런 자를 경찰수뇌로 임명한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이명박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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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값을 치루리라, 경찰특공대, 김남훈님 영면하시길, 김석기, 부하를 개죽음으로 몰아넣은, 순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