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찝찝함이라니...

2010/08/16 17:44

논문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아무리 궁리를 거듭해도 뭔가 모자란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이 소심함 때문일 게다. 결국 주제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까지 한 줄도 써보지 못한 채 별 주제와는 상관도 없는 책들만 읽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게 그닥 싫은 것은 아니고, 아니 오히려 책을 많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 기분좋은 일이긴 한데, 반면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시간이 계속 연장된다는 것이 답답증을 자꾸 불러 일으키긴 한다. 암튼 건 글코...

 

최근 읽은 몇 권의 책이 공교롭게도 불황에 허덕이는 출판업계의 비명과는 무관하게 꽤나 잘 팔리고 있는 책이더라. 광고에 혹하고 주변에서 부채질을 하는 통에 얼결에 보게 된 책들인데, 대표적으로 두 권.

 

 

하나는 샌드라 프레드먼, 조효제 역, "인권의 대전환"

 

 

다른 하나는 마이클 샌델, 이창신 역, "정의란 무엇인가"

 

 

두 권의 책을 읽다보면 좀 의아한 것이, 왜 이 책들이 소위 베스트 셀러가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하긴 뭐 백수건달에 쥐뿔 먹고 죽을 돈도 업는 행인마저도 제 값 주고 사서 읽을 정도면 오죽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하다만, 그건 결과론이고,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 책들을 읽도록 만들었을까, 혹은 만들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가시질 않는 거다.

 

뭔가 뒷북스러운 리뷰가 될지 모르겠지만, 간단명료하게 소감을 이야기하자면, 이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된 거 자체가 불만족스럽다기보다는 이런 류의 책들이 전에는 없었는가 하는 의문, 더불어 이정도 수준이나 혹은 이보다 더 낳은 내용의 책들이 이정도로 호평을 받으며 잘 팔린 적이 있었나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이들 책을 읽고 난 현재의 느낌.

 

역자가 해설을 통해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샌드라 프레드먼의 "인권의 대전환"은 그동안 소위 좌파들이 한 세기가 넘게 떠들어왔던 내용들을 '법제화'하는 차원으로 변환한 것에 불과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사법부 역할론이라는 것이 한국사회에서는 조금 신선한 논리로 다가올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실제 샌드라 프레드먼이 들고 있는 남아공이나 북아메리카, 그리고 영국 등의 사례는 그들 특유의 사법체계 하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한국과 같은 사법체계에 그대로 수용하기에는 난점이 많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 역시 허접하긴 마찬가지. 여기 나오는 모든 예시가 미국과 관련된 사례라는 것을 빼면 그 내용들은 거의 대부분 학부 1학년 법학개론에서 다 배우는 내용들이다. 더욱 큰 문제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은 피레네 산맥 저쪽의 정의와 이쪽의 정의가 충돌할 때에 대해선 언급을 회피한다. 아니, 아예 그런 부분에 대해선 고민을 하지 않는다. 예컨대 샌델이 든 사례 중 이라크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던 미군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샌델은 미군들이 경험했던 선택의 순간은 진진하게 설명을 하지만 정작 이라크 염소치기들이 해야했던 행동에 대해서는 판단 자체를 배제해버린다.

 

"인권의 대전환"이 학술적 측면에서 들여다보아야 할 부분이 많다고 한다면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치철학(또는 법학)의 기초상식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할 문제들을 던져준다. 두 책이 가지고 있는 어떤 장점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정도 수준의 책들이 이토록 잘 팔린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하기 이를 데가 없다.

 

한국의 저자들이 이정도 수준이 되는 글들을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행인이 그동안 읽은 책들을 보면 훨씬 재미있고 수준높은 책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하버드대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라는 타이틀(정의란 무엇인가)이나 혹은 "옥스포드 최초 여성 정교수"가 쓴 책이라는 명목을 제외한다면, 그 책이 최고의 명강의록이거나 또는 "인권의 개념을 뿌리채 바꾸"었다는 평가를 받기엔 모자라지 않은가 싶다. 결국 행인은 허장성세에 유혹당한 것이 아니었을까...

 

각각의 책들에 대한 세세한 리뷰를 하기엔 짬도 나지 않고 사실 그럴 욕심도 별로 나질 않는다. 뭐 게으른 것도 핑계가 될 수 있겠지만, 날도 선선해지고 있으므로, 이제 본업에 보다 충실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도 하니.

 

(오호라, 게다가 여하한 사정으로 인하여 앞으로 두 달간은 거동도 못할 형편이니 이틈에 얼른 해야 할 일이나 마저 해야겠도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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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온다, 논문이나 쓰자, 마이클 샌델, 샌드라 프레드먼, 인권의 대전환, 정의란 무엇인가, 학문적 식민지, 허장성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