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다

2011/08/21 13:40

노자의 치도(治道)라는 건, 예의 '정치(政治)'라는 것과는 구분해야 하는데,

정치의 근본을 타협으로 보는 입장에서든

아니면 그 근본을 불화로 보는 입장에서든

이러한 입장에서 논의하는 '정치'와 노자의 '치도'는 다른 각도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할 때,

 

행인이 볼 때 노자의 치도의 핵심은 바로 이 구절에 있는 듯 하다.

 

是以聖人之治, 虛基心實基腹 弱基志强基骨

 

대충 뜻을 보자면,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이라는 것)은

(백성으로 하여금) 마음을 비우게 하되 배를 불려주고

뜻을 약하게 하되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것

 

어떤 해석에 따르면 다스림의 대상이 백성이 아니라 다스리는 자(즉 성인) 본인으로 나오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이라는 것)은

(스스로) 마음을 비움으로 내실이 알차고

(무리한) 뜻을 자제함으로써 근본을 강하게 하는 것

 

앞의 해석이 통치대상으로서 백성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즉 백성을 어떤 식으로 다스릴 것인가에 주목한 해석이라면,

뒤의 해석은 통치주체로서 통치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 무엇인가에 주목한 해석이리라.

 

개인적으로는 전자의 해석을 취하는데, 왜냐하면 그게 도덕경 전체의 틀과 더 잘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어쨌든 선호취향에 따라 전자의 해석을 택할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거다.

 

實腹强骨

 

즉 백성의 배가 부르고 뼈가 튼튼해야

 

虛心弱志가 가능하다는 것.

 

물론 이 두 쌍이 선후관계나 종속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동일선상에서 논의되어야 할 이야기겠지만,

어떻게 보더라도 앞의 것은 뒤의 것을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나라가 조용하려면 무엇보다도 구성원들의 배가 불러야 한다는 것.

 

갑자기 이 대목이 생각난 이유는 어떤 분의 결기가 서린 선언문을 보았기 때문이다.

(링크는 했으나 안구훼손의 우려 있으니 클릭 전에 한 번 더 생각하시길 바람)

 

관련된 부가적인 이야기는 생략하더라도, 오늘 이러한 선언이 나오게 된 것은

아무리 봐도 선언을 낭독하고 눈물을 흩뿌리며 무릎을 꿇었던 저분이

 

자신의 實心强志를 위해 백성의 虛腹弱骨을 추구한 때문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질 않는군.

 

다스림의 대상이 백성이라고 해석하든, 다스리는 자 본인이라고 해석하든 마찬가지.

하긴 저 자리가 노자 생존시의 왕좌도 아니고, 말 그대로 '시민의 종복'의 자리일 터인데

애들 밥먹이자는 시민의 아우성을 포퓰리즘이라는 아리송한 말로 덮어버리는 것은 '종복'의 자세도 아닐듯.

부잣집 애들은 지 부모들이 돈내서 밥먹게 하자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시민도 있긴 하다만...

 

암튼 간만에 보는 햇빛 아래 쌩코메디를 보는 심정이 여간 요사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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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날 좋구나, 급식, 노자, 도덕경, , 오세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