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원굿

2009/05/30 14:29

망자를 가슴에 묻는 사람들이 애도하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해줄 수 있다. 그들을 비난하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다. 반면에 내가 어떤 이를 추모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들에게 이유가 있는 것만큼 나에게도 이유라는 것이 있으니까.

여러 가지 이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일종의 충격은 있었을지언정 그를 추모할 수는 없다. 혹자는 "인간 노무현"과 "정치인 노무현"을 구분해서 보자고 하지만, 도량이 좁아서인지 그렇게 구분하는 의미도 모르겠고 굳이 그렇게 구분해보고자 노력할 의향도 없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과 그의 분향소를 찾은 이들을 숫자로 계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많이들 왔다는 것만으로 족하다. 그들은 영정 앞에 담배 한 개피씩을 놓았고, 눈물을 흘렸고, 살아 생전 고인에게 못다한 절절한 사모곡을 목놓아 부르짖었다.

그렇게 해서 해원은 이루어졌는가?  "우리 모두"를 외치는 그들은 "못다한 그의 꿈"을 이어 받아  "바보"가 되고자 작정했는가? 혹은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우리" 역시 새로운 "바보"가 되고자 결의를 다졌는가?

넘쳐나는 뉴스 속보 속에서 감정은 격랑처럼 몰아쳤지만 이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진보블로거를 비롯한 몇 몇 집단과 사람 사이에서 보여진 그에 대한 공과의 판단은 가슴을 부여쥐며 절규했던 사람들이 볼 때는 아마도 냉철함을 넘어 비정함마저 느끼게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의 집권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2007년 연말까지, "노무현 씹기"라는 대중적 유희에 휩쓸리지 않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되었길래, 오늘 이 순간까지 그에 대한 연모와 회한이 거리에서, 온라인에서 넘쳐나는 걸까?

비통의 마음이야 그렇다고 쳐도, 죽은이를 애도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자기 감정에 북받친 행태는 다분히 이중적이다. 그동안 그를 궁지로 몰아놓았던 분위기 속에서 함께 한 마디씩을 보탰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그를 애도하기 위해선 적어도 두 가지 방식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야 한다.

첫째는 오로지 감수성에 의존하는 것. 이 단계에서, 이라크 파병을 단행하고, 군비확장에 열을 올리고, 한미 FTA를 추진하고,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광장을 폐쇄하고, 온라인을 봉쇄하고, 대추리를 전쟁터로 만들고, 교육환경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과오에 대해선 절대 언급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정치적 과오들을 언급하는 순간, 추모의 정은 계속 이어질 수 없으며, 죽음이라는 사건을 통한 회개는 더 이상의 신성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통탄과 비련의 감정을 한껏 드러낸 얼굴로 사람들은 "노짱"과 "노간지"를 이야기할 뿐이다. "진정성은 이해할 수 있었다"는 둥, "역할분담"을 했었던 것이라든 둥, 더 나가서 그를 "민중의 대통령"으로 추앙하는 데까지 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두 번째 방식이 동원된다. 바로 공적을 만들어 내는 것. 대중의 감수성을 일정한 편향으로 조직하기 위한 가장 훌륭한 방식이다. 더구나 지금은 그 공적이 너무나 선연하게 눈에 띈다. 다름 아니라 이명박이다.

여기에서 "정치적 살인"이라는 매우 적절한 표현이 구술된다. 노무현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타살'되었다. 누구에 의해서? 바로 이명박에 의해서. 무엇때문에? 정치보복때문에. 이 선명한 도식. 추모의 감정은 분노로 바뀌고, 이 감정의 전환 아래서 한 때 그를 씹었던 자신의 행위는 감추어진다.

이중잣대라는 것은 여지없이 매 순간 손에 들려진다. 영결식장에서 표정관리조차 못하는 현직 대통령과 시시때때로 말 관리를 못하던 전직 대통령에 대한 판단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이 잣대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다시 질문. 그리하여 해원은 이루어졌는가? 이 넘쳐나는 군중들의 파도가 한판 걸진 해원굿으로 끝나는 정도라면, 글쎄, 더 이상의 기대는 가지기 어려울 것이다. 이 비관적 의구심은 그러나 점점 현실이 되어갈 듯 하다. "노짱"이 가는 길에 모였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영결시 당일 새벽에 벌어진 용산침탈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불법증여를 통해 이루어진 삼성의 대물림에 대해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하던 삼성 애니콜은 여전히 잘 팔릴 것이다. 신영철은 건재하고, 그가 법복을 벗더라도 변호사로서 잘 먹고 잘 살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결식장에서 이명박에게 등을 돌렸던 사람들이 얼마나 되던 간에, 아파트의 프리미엄을 높이려는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 돈 30원때문에 사람 목숨이 사라진다고 한들, 광장에 몇 십만명이 국화를 들고 나오겠는가?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쫓아낸다고 할지라도, 이 땅은 여전히 숱한 원혼들의 비통함으로 젖어 있다. 노무현의 사망 소식에 일단의 충격을 받았고, 그가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그의 심정을 생각하며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안타까움 이전에, 적어도 누릴만큼 누리고 간 사람보다는, 최소한 살아갈 수 있기를 염원하다 간 사람들에게 더 큰 연민과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다이나믹 코리아에서 살아가기에는 내 마음이 너무 여린 건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하는 입장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은 내가 가진 상식이 이 사회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강하게 불러 일으킨다. 진짜 해원을 이루는 걸진 굿판은 언제쯤이나 가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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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영결식, 이명박, 해원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