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악산에서

2009/08/26 22:20

산을 좋아하는 짝꿍 덕분에 산을 좋아하지만 게을러서 자주 못올라간 행인이 가끔 산을 찾는다. 저 먼 어느 산골짜기로 들어가기 전에, 경기 북부에 있는 산들을 좀 다녀보자는 거창한 꿈은 아직도 그냥 꿈으로 남아있긴 한데, 그래도 가끔 돌아다니는 산행의 맛이 에지간히 꿀맛이다.

 

감악산을 다녀왔는데,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고 온다. 근처에 있는 소요산이나 좀 떨어져 있는 도봉, 수락하고 비교해도 꽤나 맛깔나는 산임에 틀림없다. 이번 산행에서...

 

 

1. 아웃도어 룩

깊은 숲자락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산을 찾은 다른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데 행인과 짝꿍이 하고 있는 차림에 비교하면 거의 절대 다수의 등산객들의 "빠쑝"은 놀라움을 자아낸다. 지금 당장 알프스나 히말라야를 가더라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중무장 아웃도어 룩이라니... 반바지에 민소매 티를 입고 가벼운 륙색하나 짊어지고 게다가 샌들 신고 올라가고 있는 짝꿍과 행인의 차림은 굉장히 이질적이다. 이거 원 잘 차려입지 않으면 산행하기도 민망한 처지...

 

 

2. 스틱

등산로에는 마치 송곳으로 찔러놓은 듯한 구멍이 촘촘하게 뚫려 있다. 다름 아니라 등산객들이 짚고 다니는 스틱 때문이다. 그렇잖아도 얕은 표토층은 스틱 끄트머리의 뾰족한 쇠붙이로 인해 죄다 파헤쳐진다. 푸석해진 흙들은 비라도 한 번 오면 쉽게 쓸려가고, 그 덕분에 나무뿌리들이 더 쉽게 제 알몸을 드러내게 된다. 원치 않게 살갗을 드러낸 그 나무뿌리 위로 또 다른 스틱들이 구멍을 내고 가고... 돌이나 바위도 예외가 아니다. 쇠붙이에 찍힌 돌과 바위는 마치 각질이 벗겨지듯 제 살갗들을 벗겨내고 있다. 길이 험하지도 않은 산에, 정작 지팡이를 짚을 필요가 전혀 없을 것같이 보이는 건장한 사람들이 왜 굳이 스틱으로 쿡쿡 찍으면서 산행을 하는 걸까?

 

 

3. 유리조각

행인은 맨발로 산행하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 집 근처 동산에 산책을 할 때는 항상 맨발이다. 한 겨울만 빼곤 봄, 여름, 가을 내내 그렇다. 그런데 왠만큼 알려진 산의 등산로에서는 맨발로 다니기가 겁이 난다. 도처에 유리조각이 너무 많다. 소요산에서 놀란 것이 이건 뭐 유리조각으로 길을 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는데, 감악산 일부 등산로 역시 마찬가지다. 들고 내려가기 귀찮아서 죄다 산산조각을 내 뿌려버리고 하산하는 건가?

 

맨발로 산행을 하면 왠지 겸손해지는 느낌이 든다. 함부로 아무 곳이나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 촉감이라니... 맨 흙을 밟으면 때론 촉촉하고 때론 보송한 느낌이 들어 좋다. 돌이나 바위를 밟을 때는 때론 따뜻하고 때론 시원한 그 느낌이 좋다. 그러나 유리조각이 곳곳에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길에선 두려움이 솟구친다. 신발을 벗을 수가 없다. 유리조각만 없었다면 더 기분 좋은 산행이 될 수 있을 텐데...

 

 

4. 감악산 전투

이번 산행의 하일라이트.

 

하산길에 들르게된 작은 마을. 산 속 깊은 곳에 일고여덟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앉은 그 마을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길 옆에 주인을 잃은 점방 하나가 있길래 그 앞에 앉아 행인과 짝꿍이 주먹밥과 떡을 까먹고 있었다. 그 때까지는 기분이 무척 좋았더랬다. 조용하고 편안하고...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손가락만한 말벌 한 마리가 날아왔다. 고향에서 보통 "왕탱이"라고 불리는 벌인데, 그 왕탱이하고는 약간 달랐지만 어쨌든 이게 크기가 장난이 아닌데다 생긴 것도 겁나게 생겼다. 그런 말벌이 행인의 등짝에 내려 앉더니 왱왱거리면서 목덜미를 타고 돌다가 어깨를 거쳐 겨드랑이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우... 그 간질거리면서 소름돋치는 느낌이란...

 

가만히 앉아 날아가기만을 기다렸는데 마침 벌이 날아 올랐다. 막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데 이 벌이 뭐가 아쉬웠는지 다시 날아와 머리에 걸터 앉았다. 머리카락들을 헤치면서 왱왱거리는 거대말벌, 이거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슬며시 가방 안에 있던 수건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냉큼 휘둘러서 쫓아냈는데...

 

말벌도 존심이 있지, 그냥 갈 수 없다고 시위를 하는 건지 쏜살같이 다시 달려든다. 행인은 수건을 휘두르고, 사정거리를 잠시 벗어났던 말벌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달려들고... 당황한 짝꿍은 옆에서 어쩔줄 몰라하며 에구에구 그러고만 있었더랬다. 그런데 이놈의 벌이 무전이라도 날렸는지, 갑자기 대여섯마리의 동료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곤 편대비행...

 

잠깐 사이에 말벌들과 거리가 좀 벌어진 듯 한 순간, 짝꿍이 "도망가자~!" 그러면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먹으려고 꺼내놨던 떡이며 손에 들고 있던 주먹밥이며 물통이며 이걸 가방에 넣지도 못한 채 되는 대로 손에 들고 뛰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말벌 한 마리가 짝꿍에게 달려들었다.

 

"에쿠..."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짝꿍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짝꿍의 얼굴로 날아들었던 말벌 한 마리가 쌩하니 날아가고, 짝꿍과 행인은 일단 좀 더 움직여서 적들의 사정권 내에서 벗어났다. 미처 다 먹지 못한 주먹밥은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아깝도다...

 

벌들이 더 이상 달려들지 않게 되자 한 숨을 돌리고 보니 이넘의 벌이 짝꿍의 눈꺼풀을 건드리고 간 모양이다. 곰탱이같은 왕탱이가 달려들어 짝꿍의 눈탱이를 밤탱이로 만들어 놓은 거다... 이런 썩을 넘의 벌들이... 분기탱천 행인, 그 길로 쫓아가 근동의 말벌들을 일망 타진하고 싶은 마음은 꿀떡같았으나 세(勢) 불리함을 한하며 쪼르르 하산하고 말았다.

 

며칠 한쪽 얼굴이 퉁퉁 부풀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애처로움과 연민, 그리고 슬며시 웃음을 자아내게 했던 짝꿍의 상태는 이제 많이 좋아졌다. 그러게 진작 병원에 가자니까... 암튼 이 사태와 관련하여 짝꿍은 그 참혹한 참사가 본인이 행인을 지키려다 당한 봉변이라고 강조하고 있으나, 짝꿍이 행인을 버리고 먼저 도주하다가 발생한 사건임이 분명한 터. 진실은 두 사람과 가해당사자인 벌만이 알고 있는 것...

 

 

5. 장수말벌

집에 와서 검색을 해보니 그 말벌은 장수말벌이란다. 장수말벌... Soldier도 아니고 General Horse Bee냐... 생긴 것도 무시무시하게 생겼다... 된장을 바를까 했는데 걍 약만 바르고 말았다. 지인들에겐 눈 다래끼가 났다고 뻥을 쳤나보다... ㅋㅋ

 

 

6. 멧돼지와 흑염소와 삵

지지난번에 감악산에 왔을 때는 멧돼지 가족을 보았더랬다. 또 지난번에 왔을 때는 흑염소떼를 보았다. 그런데 이 흑염소떼가 주인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다. 방목을 하더라도 누군가 손을 대는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이넘들은 지들 멋대로 돌아다니는 넘들인 듯 하다.

 

이번 산행에서는 삵을 봤다. 생긴 건 고양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크다. 겁이 없는 건지 사람이 다가가는데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어슬렁 어슬렁 수풀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다음 번에 감악산에 가면 혹시 호랑이나 용을 보는 게 아닐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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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악산, 눈탱이, 멧돼지, 밤탱이, , 왕탱이, 장수말벌, 흑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