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8

2019/09/08 08:40 정경 econo-politix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가 열릴 때까지 듬성듬성 지켜보면서 아직 어떤 의혹이 사실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 후보자의 도덕성 검증을 위해 뛰어들었던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서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한 개인의 공적 역할 수행의 자격을 확인한다는 목적으로 사적인 영역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그것도 의혹과 가정을 사실로 오도하면서 모멸감을 주는 것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저런 생각을 돌이켜보다 문득, 고 노회찬 의원님의 굳건하지만 가녀렸던 양심과 도덕주의의 칼이 다시 생각났다. 다시 회자되기 시작한 '논두렁에 버린 고급 시계' 얘기도 같은 선상에 있다.

6000억원에 육박하는 손해를 국가에 입힌 어떤 재벌 가족과는 비교도 안 될, 작은 4000 만원을 받고, 그 의혹이 돌기 시작한 뒤 세상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노 의원님... 그가 자신의 어디에 채찍질을 했을 지, 어디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 결정을 했을지 상상하고 종종 되뇌이게 되었다.

또, 계급의 재생산과 세습, 그리고 개인의 양심과 신념과 공적 역할의 관계를 생각해보면서

그와 관련이 조금 있는 나의 양심과 도덕적 책임감의 경험들을 모아보았다.

9살.. 동급생 친구의 집에 (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친구였다) 놀러갔다 귀가 시간이 늦었다고 혼나고 그 친구와 영영 어색하게 되어버린 기억.

17살.. 난 학년 주임 선생님의 딸이었다. 고 3 첫학기를 내가 원하는 선생님들을 적어 아버지에게 그걸 전달해 그걸 바탕으로 교과 담당 선생님들이 정해졌다는 루머를 들으며 시작했다. 양심을 걸고 난 그런 적 없다고 외치고 싶었지만, 숨소리 죽이고 시간이 가기만 바랐다.

대학 선택을 할 때, 교대에 원서를 넣으면 어떻냐는 제안이 있었다. 선생님의 딸이니 어쩌면 기대도 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실제로 선생님의 자식으로서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 친구들도 여럿 봤다) 상황이었다. 계급 재생산이 아닌, 생활 조건과 직업 안정성을 앞세워 최선의 선택이라고들 얘기했다. 그 선택을 버리고, 난 내가 그 당시 원했던 선택을 했고, 이후, 가끔 (후회는 한 적이 없지만), 그 때, 난, 왜 그 길이 그렇게 가기 싫었니 질문을 해봤다.

대학교에서 몇 년 간.. 외국인에 대한 차별대우 (white supremacy 포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면서 내가 선택하지 않았어도 주어졌기에 편안히 누리고 있던 모든 것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져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나의 양심에 계급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내 양심을 다시 또 다시 되짚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가족관계를 통해 일정한 사회적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데 직접적으로, 또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음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고,

그래서, 정치와 인간의 사람 됨됨이를 구분해서 보고(진정성, 도덕성 같은 단어들도 경계 대상), 가짜 뉴스, 데마고지, 포퓰리즘을 더욱 더 경계하면서 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한 편으로 이런 구분을 하지 않는,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들어지는 배경도 이해하고 싶다.

내가 아시아인이고, 여성이고, 30대 중반이고, 고학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지닌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보편성에 대한 정의, 어떤 사안의 보편성에 대한 판단, 보편성에 입각한 원칙에 대해서, 보편성, 평등과 자유가 실질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지, 그게 제도적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내 주관적인 판단을 인지하고 또 그것을 넘어서 얘기할 노력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실천할 용기도 있고 의지도 있다. 성찰과 반성의 훈련이란 이런 원칙들을 개인적으로, 또 공적으로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사적 영역에서 벌어진 사건 중 이번과 같은 방식으로 도덕성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문제가 된다고 해보자. 그리고 이번에 조국 후보자가 겪은 방식으로 도덕성 검증이 일반화 되었다고 가정 해보자. 내가 갖고 있는 원칙과 신념에 반한 삶의 증거 일 수도 있지만,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모순과 내 인생 결정권 밖의 타인의 자율의사에 따른 일들이 나와 내 가족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이유로 내 책임이라고 평가 받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책임을 회피 혹은 책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의 공적 역할 수행에 필요한 자질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고 평가 받지 않을까? 그것도 나를 평가하는 다양한 타인이 들이대는 도덕성의 잣대에 따라서. 그리고 나도 그런 도덕성의 이유를 들어서 누군가를 평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내 개인이 거부하는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도덕성 검증이 규범이라고 여겨진다면, 누가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렇게 서로 서로를 평가하는 것만이 한 개인의 양심이 민주주의 사회의 규범과 원칙에 반하지 않게 하기 위해 적용시켜야 할 유일무이한 방식인가?

 

이 글을 쓸 마음을 불러일으킨 박노자 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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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8 08:40 2019/09/0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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