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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빈민여성들의 자립과 레비스와의 대화

  • 등록일
    2005/12/31 16:50
  • 수정일
    2005/12/31 16:50
도시빈민여성들의 자립과 레비스와의 대화
- 작은자리 영농사업단에서의 대안달거리대 워크샵 후기

12월 26일 대안달거리대 워크샵을 하기 위해
작은자리 영농사업단이 있는 시흥 변두리의 유기농 재배 단지를 찾았다.
작은 자리 영농사업단은 시흥시가 지역의 저소득층 여성들을 지원하기 위한
창업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레비스를 팀장으로 해서 약10명의 여성분들이 공동으로
2000평 대지위에 유기농 하우스 재배를 하는 곳이다.

레비스라는 여성의 존재는 피자매연대를 시작할 무렵부터 잘 알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달거리대만들기 공개 워크샵을 홍보하기 위해
생태와 환경 관련된 웹사이트들을 검색하며 웹자보를 뿌리고 있었다.
우연히 "죽기살기"라는 사이트를 발견했는데, 그것이 레비스의 개인 홈페이지였던 것이다.
글 하나 하나에 서려있는 자유, 여성, 제3세계, 생태를 어우르는 매력적인 글들은,
삭막하고 비인간적인 직장 생활에 시달리는 나에게 단비 같은 존재로,
늘 내게 의지만 있으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도 하고,
빨리 이런 반생태적인 생활을 때려치우라는 재촉으로도 여겨졌다.
뿐만 아니라 요즈음 네팔, 인도 여행을 계획 중인 나에게 그가 쓴 인도 여행기는,
시중에 출판되는 오리엔탈리즘으로 가득 색칠된 기행문들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 보였다.
그래서 만나면 네팔, 인도 여행에 대한 조언들을 좀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내심 있었다.

12시가 조금 넘어 컨테이너 박스 두동으로 연결된 사무실에 도착했다.
아파트와 빌딩들이 난립해있는 가운데 덩그런히 세워져있는 비닐하우스는 무척 생경하게 느껴졌다.
문득 '도시농업'이라는 화두가 떠오르기도 하고, 얼마 전에 번역했던 마리아 미즈의 말도 생각이 났다.
서브시스턴스(자급, 자립) 지향은 산골짜기 시골구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날품팔이로 전락한 여성들, 빈민들의 생존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것.
베를린 교외에 난민 여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국제공동텃밭 이야기가 머리속을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참조 : 마리아 미즈의 “서브시스턴스 관점”)

사무실 안에서는 방금 점심식사를 마친 듯 청국장의 꼬리꼬리한 냄새가 풍겨져왔다.
레비스와 점심을 먹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달거리대 만들기를 시작했다.
모두들 몇 번에 걸쳐 신문 보도 자료 등을 통해
일회용 생리대와 탐폰의 유해성에 대해 ‘학습’했다고 하니 그 부지런함이란...
지루한 ‘설명’ 따위는 생략하고 시작하자마자 달거리대 만들기에 돌입했다.
다른 워크샵과 마찬가지로 조금만 눈을 딴 데로 돌리면,
한 사람이 먼저 저 만큼 나갔다가 시접을 그리지 않고 자른다든지,
천의 안을 마주대고 꼬매고 있다든지 하는 사소한 실수들이 일어났지만
분위기는 그저 화기 애애. 홈질을 설명할 때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제일 간단한 바느질”이라고 설명하니, “그것 참 뭣 같네.” 하며
곧바로 질펀하고 야한 농담들의 향연으로 이어진다.
한 분이 “우리 선생님이 우리 흉보겠어. 고만해.” 하길래,
나도 이미 갈 데까지 간 유부녀이니 괘념치 말라 응수했다.
남성 중심적인 부르주아 성도덕이 끼어들 틈이 없는 유쾌한 대화들이었다.

만들기를 즐겁게 마치고
잠시 레비스와 여성들이 중심이 된 소규모 유기농 사업단의 비전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레비스가 생각하는 것은, 우선 여성 일자리 창출에 큰 의의가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실제적 자활과 자립을 위해서는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개인 귀농이나 이상을 지향하는 공동체운동으로는 안 된다.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인 농업이면서도 어느 정도 수익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농업 전반의 현실로 볼 때, 쉬운 문제 같지는 않다.

친환경적이고 생태적으로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통과 판매가 정말 중요할 텐데,
여기서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물어보았다.
작은자리 영농단에서는 그 지역 주민들로부터 알음알음 주문을 받고
직접 레비스가 차로 배달한다고 한다.
그래서 피자매를 비롯한 여러 홈페이지에 유기농 생산물들을 선전하고 주문을 받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에,
유기농 농산물은 지역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맞고,
작은자리도 되도록 지역중심으로 판매하려고 한다는 대답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생협에 관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레비스는 초기 생협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다부지게 현 상황을 요약했다.
최근 웰빙 바람 이후에 계속해서 번져나가는 녹색가게, 유기농가게 등은 말할 것도 없이,
기존의 생협들도 점점 소비자 중심으로, 지역보다는 대도시 중심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과 생산자에 기반한 초기 생협운동이 점점 자본과 시장으로 포섭해 들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면 맛과는 상관없이 더 때깔 고운 것, 더 배송이 빠른 것,
더 편리한 것에 집착하게 되는 것이 당연시되고,
결국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지역의 자립과 자연의 순환리듬에 맞춘 생태적 가치관이 다시 속도와 가격 경쟁으로 대체된다.

생산이나 유통, 판매 어느 것 하나 쉬운 문제가 없어 보인다.
단순히 도시빈민여성의 부수입이 아닌 생계를 건 유기농업이란 도무지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한 사회의 변혁이란 도도해 보이는 대세의 흐름에 편입하거나,
중간에 막아서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지지 않고 지줄대는 다양한 비폭력 직접행동과
끊임없는 개개인들의 자립실천의 노력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인도에 가서 반다나 쉬바를 직접 만나보고 올만큼
쉬바의 반세계화 운동과 에코페미니즘에 깊숙이 공감하고 있는 그녀와 소통하는 일은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지역과 여성의 진정한 자립은 아나키적인 저항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지 않겠냐는 그의 말은
평소 마음 속 깊이 담아두고 있던 내 생각을 그대로 공명해주고 있었다.
앞으로 레비스와 작은자리 식구들을 자주 찾아가 많은 걸 배워야겠다고 다짐해본다.



* 아래 글은 레비스의 홈페이지 ‘죽기살기’에서 퍼온 달거리대 만들기 워크샵 후기이다.



소리없는 저항의 손놀림-농한일기(22)  

"사람이 집을 짓는 것은 새가 둥지를 드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만일 사람이 자기 손으로 집을 지어 단순하고 정직하게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면
새가 그런 일을 하면서 언제나 노래하듯이 사람도 시심이 깊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아! 우리는 찌르레기나 뻐꾸기처럼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고 있지 않은가?"
-헨리 데이빗 소로우



농한기 학습 2회분은 <생활과 공예>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자료 학습을 하고
26일 대안생리대 만들기 교육에 대비한 '왜 생리대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해야 하는가?'
에 대한 이론적인 공부를 하였다.
도시소비적 삶의 기생성을 배운 터였고 자급자족의 생활을 경험하기 위해 팀원들
에게 유용하며 자녀들에게도 학습효과를 줄 수 있는 것을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대안생리대 만들기>였다.
또한 친환경 유기농업을 표방한 우리로서는 생리대의 원료에 대한 것까지 미칠
수 있는 것이었다.
간디가 물레를 돌리는 일을 왜 저항의 수단으로 사용했는가에 대해 설명하면서
대안이란 결국 저항성을 띌 수 밖에 없음을 설명했다.
(2회분 학습 자료는 본 홈페이지 펌자료실에 있음)





26일 대안생리대 교육을 진행할 선생님은 내 홈피 방문손님 중의 한 분인 매닉
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피자매연대 이미영씨였다.
그 분은 나의 취지에 공감을 해서 무료강습을 하러 짧지 않은 거리와 시간,더더욱
월차까지 내어서 와 주었다.

"이거 안 새요?"
팀원들의 첫질문이었다.
"샐 수도 있지만 키퍼라는 것을 이용하면 거의 안 새요"
알록달록한 융천이 펼쳐지고 이미 만들어진 샘플을 내어놓은 것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호기심을 표현했다.

강사의 진행에 따라 팀원들은 제단을 하고 박음질를 하기 시작한다.
예쁘게 바느질하는 것에 전혀 자신이 없는 팀원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모두 정성을 다해 바느질을 해나간다.
속도가 천차만별, 강사가 한 사람 한 사람 지도를 한다.




제일 먼저 완성을 하는 이는 역시 손놀림이 빠른 2005년 반장님이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완성을 해 나간다.
옆사람이 완성하면 어떤 그 옆사람은 긴장을 하기도 한다.
어떤 그 옆사람은 아랑곳없이 한 땀 한 땀 손바느질을 해나간다.
시작한 지 2시간 30분이 지나자 거의 모든 팀원들이 완성을 했다.





한 곳에 모여서 직접 만든 생리대를 들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생애 처음 자신이 몸을 위해 생리대를 만든 팀원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00 가 처음 생리하게 되면 내가 직접 만들어서 선물해야지"
엄마가 만들어서 자식에게 주는 생리대.




70년대, 그 당시에는 거의 모든 가정이 집 밖의 재래식 화장실을 가지고
있었다. 아침에 나는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뒷처리를 하는데 종이에 빨간 피가
묻어 있었다. 나는 '엄마'를 울부짖으면서 뛰쳐나왔다.
울면서 엄마에게 엉덩이에서 피가 나왔다고 했고, 엄마는 '왔구나'라고 태연자약하게
방 안 서랍에서 뭔가를 꺼내 주었다.
빨간 팬티와 가제 수건같은 것으로 도툼한 기저귀였다.
팬티에 조그마한 기저귀를 대고 입으라고 했다.
"아픈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하는 거야. 여자가 된 거야."
여중생이었지만 월경이라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랬다.
중학교 때는 이렇게 가제 패드를 사용하였다.
저녁에 돌아오면 빨아서 부엌 빨래줄에 널어서 말렸다.
빨 때도 오빠가 볼까봐 서둘러서 일을 끝내곤 하였고 어떤 때는
세수대야에 담궈놓고 있다가 깜빡 잊어서 엄마한테 혼나기도 했었다.
그래서 월경을 하는 날이면 화장실에 앉아서 월경신에게 기도를 올리곤 하였다.
"제발 월경을 안하게 해주세요."
월경할 때 배가 아픈 것만이 아니라 불편하기 그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회용 패드를 사용한 것이 아마도 여고시절이었던 것 같다.
'후리덤'이라는 기저귀만한 것이 나오고 약국에서 팔았다.
월경하는 날이면 8살 아래인 남자 막내에게 약국 심부름을 시켰고
그 녀석은 멋모르고 생리대를 사오곤 하였다.
막내가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심부를 하기를 거부했다.





어떤 여성들이든 월경이 불편스러운 일이지만
자신이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는 더욱 불편한 일을 하는 것이지만
이것에 익숙해지면 그것도 그리 불편한 것이 되지 않는다.
나의 나이대에서는 최소한 중학교 때까지는 집에서 만든 생리대를 사용했고
우리의 부모 세대들은 거의 평생을 만들어서 사용했던 터였다.

일회용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생리대(달거리대)를 깃점으로 손수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일회용을 폐기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교육을 받은 우리 팀원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생리대 만들어 사용하기
운동을 위해 학교, 기관 등에 교육자로 나서게 될 것이다.
진정한 농의 가치는 자신만을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니듯이.

일회용.
'넌 일회용이야' 이런 말을 듣기 원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 일회용이 되지 않기 위해 소리없는 저항을 해나가기 시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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