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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맑스코뮤날레 제2차 쟁점토론회 <계급 그리고 시민, 민중, 다중> 참관기

  • 등록일
    2005/03/12 14:17
  • 수정일
    2005/03/12 14:17

맑스코뮤날레 제2차 쟁점토론회
<계급 그리고 시민, 민중, 다중>
참관기

-깨철이

1. 계급

맑스코뮤날레 토론회에 다녀왔다. 토론회의 취지는 계급적 관점에서 시민, 다중, 민중을 어떻게 볼 것이고 변혁의 새로운 주체성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토론회의 기본 발제문도 그렇고, 발제자도 그렇고 그런 토론회의 취지에 정확히 부합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시민’에 대해 발제문을 작성한 신광영만이 취지에 부합했고, 김세균의 ‘민중’은 ‘다중’에 대한 비판과 비교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토론회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문제의식은 ‘계급’에 관한 것이었다. 시민, 민중, 다중에 대한 개념적 규정은 서로 이야기되었지만 계급에 대한 개념규정은 사전에 이미 전제되고 합의되었다는 듯이 진행되었다. 맑스레닌주의의 계급개념은 크게 세 가지 기준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것을 정리하면, ‘①착취의 정도 ②생산수단의 유무 ③생산관계에서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요소 중 계급을 가르는 가장 중심적인 요소는 ②이며, 나머지는 보조적 기준이다.

맑스레닌주의의 계급개념에서 생산수단의 유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은 생산관계에서 착취가 생겨나고 지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생산관계’라고 하는 영역이다. ‘생산관계’를 공장이라고 하는 협소한 틀로 한정지어 생각하면, 가치와 잉여가치는 공장에서만 생산되며 잉여가치의 착취 또한 공장 내에서만 가능한 것이 된다. 그 외의 영역에서는 생산도 착취도 없다. 이렇게 생각한 것이 기존의 전통적 맑스레닌주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에 따라 자본주의내에서는 크게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만이 있으며, 자본주의의 발전정도에 따라 그 사이에 자유주의적 부르주아나 쁘띠부르주아와 같은 중간계급이 있을 수 있으나 자본주의의 발전 경향은 중간계급이 소멸될 수밖에 없고 주요한 두 계급으로 된다는 것이다. 좀 더 설명을 보태자면 여기서 중간계급은 그 불안정성으로 인해 계급으로서의 동일한 이해를 가질 수 없고 그래서 자기계급으로 조직되기도 힘들다. 따라서 중간계급은 고유한 자기계급으로 형성되지 못하고 자본가계급이나 노동자계급에 흡수된다.

생산수단이 없지만 생산관계에서 주도적 역할이 없는 실업자, 학생, 여성 등은 ①과③의 기준에 의해 실업자, 학생, 여성 등은 산업예비군이나 룸펜프롤레타리아 등으로 불렸으며, 이들 또한 독자적인 이해를 지닌 계급으로 조직될 수 없고 노동자계급에 흡수된다. 기존에 우리가 불렀던 ‘민중’이라는 것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착취의 정도와 생산관계에서의 역할 등에 의해 노동자계급과 가까운 피지배자 일반을 통칭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계급구분에 대해 다음의 의문을 가진다.
첫째, 계급을 가르는 기준인 생산관계의 ‘영역’에 대한 의문이다. 과연 생산은 공장에서만 진행되고, 착취는 공장안에서만 발생하는가? 이것은 자본주의의 생산의 발달과 생산지형의 변화에 대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둘째, 자본주의 발달은 과연 전통적인 계급인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으로 가속화되고 중간계급은 소멸하고 있는가? 즉, 전통적인 계급구분의 기준에 의해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가?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두 개의 계급으로 경향적으로 나눠질 수밖에 없다는 명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셋째, 과연 정치경제학적 이해관계의 측면에서 실업자, 학생, 여성 등등은 자기를 변혁이라는 사회적 전망을 지닌 고유한 계급으로 조직될 수 없는가? 가령, 실업자는 노동자가 되어야만 그리고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되어야만 계급으로 조직될 수 있는 것인가?

각각의 의문들은 계급구분에 대해 서로 다른 층위를 지니는 의문들이다. 이 세 가지 의문 속에서 나는 전통적인 계급개념에 반대한다.
첫째, 현재의 생산은 공장이라는 틀을 뛰어넘어 생산의 사회화가 삶 전반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그녀가 공장에 있던 오피스텔에 있던 가정에 있든 학교에 있든 거리에 있던 생산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실업자, 학생, 여성 등등이 생산에 참여하고 있으며 착취당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즉, 그런 의미에서라면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라는 두 개의 계급으로 나눠지는 것이 경향적으로 가속화된다는 명제를 받아들일 수 있다. 다른 말로 ‘사회적 노동자’라는 새로운 주체성을 발견할 수 있을 때 이 명제는 타당할 수 있다.
셋째, 현실에서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정규직의 이해와 비정규직의 이해가 동일하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일한 이해로 자기를 조직하는 계급이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다고 해야 하거나, 전통적인 노동계급의 동일성의 이미지가 종말을 맞았다고 해야 한다. 반대로 실업자나 여성 등등은 공통의 이해를 통해 자기를 조직할 수 없다는 가정은 점점 현실과 맞지 않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 현상을 통해 변혁의 주체인 계급개념으로 분석해내고 조직해내야 한다면 우리는 계급에서 동일성의 이미지나 단일성의 이미지를 지워내야 한다. 다양한 자기조직화를 통해 공통의 이해를 향해 나가는 주체성으로서의 계급이라는 재정의가 필요하다.
                



2. 다중과 민중, 시민


민중과 시민은 주권 속에서 표현해낸 주체 개념이다. 우선 민중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계급적 구분 속에서는 노동자계급을 위시한 피착취 대중들을 가리킨다. 이때 노동자계급과 일반대중을 나누는 기준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생산관계에서의 분석, 그리고 생산관계에서 각 역할에 대해 전통적인 분석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계급적 민중이 주권적 주체로 설정된다.
시민개념은 민중과 다르게 계급적 표현이 아니다. 시민은 기본적으로 생산관계와 독립적으로 설정된 생활영역 속에서 주권적 주체를 설정한 것이다. 이것은 민중이 그렇듯이-생산관계를 공장으로 한정하고 그 외의 영역(생활영역)을 생산영역으로 포함하지 않으며 구분하듯이-시민개념 또한 그러한 영역의 구분(생산영역과 그 외의 영역)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중이 생산관계의 측면에서 본 주권주체라면, 시민은 생활영역에서 본 주권주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중과 시민의 구분법은 ‘사회적 노동자’라는 주체성의 출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시대착오적인 것이 된다.

김세균씨는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가 관철된 민중’을 그대로 고수하며, 민중권력의 국가를 달성해야한다는 것을 고수한다. 신광영씨는 계급운동으로부터 자신을 나누었던 기존의 시민운동과는 다르게 그 둘의 결합을 주장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신광영씨 자신이 철저하게 의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기존의 노동운동과 기존의 시민운동이라는 영역의 구분이 점점 좁혀지고 있으며, 통합된 영역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을 신광영씨는 계급불평등이 심화됨에도 불구하고 계급정치가 탈구된다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렇게 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세계화는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빈곤층의 증가와 부의 불평등 심화, 실업자 증가, 환경파괴 심화 등 다양한 사회 영역에서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대응은 생산현장에 중심을 둔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세계화의 피해자들이 생산현장 뿐만 아니라 외부에 더 많이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신광영씨는 현실의 변화에 대해 나름대로 인정하고 적절하게 지적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가 생산영역과 사회영역(생활영역)을 여전히 구분하면서 ‘세계화가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분석하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세계화가 사회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빈곤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세계화가 기존의 한정된 생산영역을 스스로 파괴하고(넘어서서) 사회 전체로 이미 생산영역을 확대한 체계를 바탕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운동이 시민운동의 요구를 포함하고, 시민운동이 노동운동의 요구를 포함하는 식의 방법으로는 자본의 착취에 저항하는 현실 주체성의 변화를 제대로 포착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는 신광영씨가 “실업, 비정규고용, 저임금 등으로 인한 빈곤층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이 국민국가 내적인 요인보다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출입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전통적으로 계급관계가 국민국가 틀 내에서 형성, 발전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국민국가 외부에 존재하는 지구적 금융자본이 계급성원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여전히 국민국가의 주권적 주체인 ‘시민’이 변혁의 주체가 되기 위해 어떤 변화를 수반해야 하는지 언급할 수 없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적어도 나는 신광영씨의 지적으로부터 변혁의 주체를 국민국가적 틀을 넘어서는 주체성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으로 나아갈 때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국민국가적 틀을 넘어서는, 주권적 주체성을 넘어서는 것에서 우리는 변혁의 주체를 구성해야 할 것이다.

민중은 말할 것도 없고 신광영씨에 의해 제기된 시민은 다음의 한계를 지닌다.
첫째, 생산영역과 사회영역을 구분하고 있음으로 인해 생산의 사회화, 그리고 지구화 수준에서의 변화와 새로운 주체성의 등장을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여전히 국민국가의 주권적 주체를 변혁의 주체로 설정함으로써 지구화된 자본주의에 제대로 저항할 수 없다.
이러한 한계들은 현실투쟁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전통적인 노동운동인가, 아니면 시민운동인가? 전통적인 노동운동을 고수하는 입장은 그들이 구분한 전통적인 사회영역이라 불려지는 곳에서의 이주노동자들의 많은 문제들에 대해 무능하다. 전통적인 시민운동은 인권의 문제로 이주노동자 문제에 접근하고 있으나 ‘비시민’인 이주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문제가 우리에게 제기하는 것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이 구분하는 것처럼 사회적 생산과 착취의 심각성에 있어 생산영역과 사회영역을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조금 신랄하게 말하자면,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이주노동자 투쟁을 사업장 내의 문제로 축소시키며 이주노동자들을 한국의 파업현장과 투쟁현장 즉, 사업장으로 끌고 다니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런 투쟁에도 불구하고 상호연대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주노동자투쟁을 노동운동의 강화라는 노선에 맞춘 이러한 투쟁들은 전체 이주노동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무엇보다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유리한 정국으로 이끌어나가는데 실패한 것이다. 또한 특징적인 것은 전통적으로 노동운동이 아닌 새로운 주체들이 이 투쟁에 결합했는데 그것을 조직하는 것을 방기하거나 회피했으며 단순동원체계로 전락시키려함으로써 연대에 있어 완전한 실패를 맛보았다. 이것은 계급에 대한 전통적인 구분법을 고수한 결과이며 투쟁에 있어 새로운 주체성들의 등장에 대해 둔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예로 반전투쟁을 들 수 있다. 민주노총에서 반전투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지만 노동조합을 비롯한 기층의 노동자조직은 반전투쟁에 무관심하다. 노동운동진영의 많은 좌파 활동가들이 ‘반전투쟁의 우경화’를 지적하고 있지만, 이 지적의 타당한 측면에도 불구하고 노동운동진영의 무관심에 대한 변명처럼 들린다. 이것은 지금까지 ‘반세계화 투쟁’이라 불려 졌던 많은 의제들에 대해 조직된 노동자들의 냉담한 반응에 대한 후퇴적 변명의 반복이며, 그 투쟁을 전통적인 노동운동이 주도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그 투쟁의 새로운 주체성들을 의심하는 방향으로까지 나아가는 징후를 보이는 것이다.
‘사회운동적 노조주의’는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결합이라는 문제의식에서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과 같은 개량화된 노선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바로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결합이라는 관점이 지닌 한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시민운동의 문제의식을 받고, 시민운동이 노동운동의 문제의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변혁의 주체성을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사회적 노동자’라는 새로운 주체성과 더불어 새로운 조직형태가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중’은 공장을 뛰어넘는 사회적 노동자를 가리키면서 국민국가적 틀을 뛰어넘는 비주권적 주체성을 가리킨다. 여기에 전통적인 노동운동, 사회운동의 이분법적 도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맑스코뮤날레의 이번 토론회는 그 주제의 현실밀착성에도 불구하고 발제자들의 의도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사전에 토론회 주제와 의도에 대한 충분한 사전토론과 숙지, 그리고 합의가 있어야 하리라 본다. 그냥 대충 주제만 정하고 자기 마음대로, 편의대로 주제에 대해 써와서는 토론이 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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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국

  • 등록일
    2005/03/12 14:15
  • 수정일
    2005/03/12 14:15

1. 국물은 멸치국물이나 조개국물을 이용

2. 콩나물을 넣고 국물이 끓어 오르면 파, 다진마늘, 국간장을 넣고 간한다.

   고춧가루를 넣어 시원한 맛을 낸다.

 

옵션: 잘게 다져놓은 마른 표고버섯

        배추 신 김치

        청양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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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채조림

  • 등록일
    2005/03/12 14:15
  • 수정일
    2005/03/12 14:15

1. 고추장, 설탕, 맛술, 물, 물엿, 마늘을 섞어 조림장을 만든다.

2. 조림장을 끓인 뒤에 불을 끄고, 다듬어 놓은 오징어채를 팬에 넣어서 양념을 골고루 뭍혀 주세요

3. 통깨를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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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무우조림

  • 등록일
    2005/03/12 14:14
  • 수정일
    2005/03/12 14:14
1. 고등어는 싱싱한 것으로 골라 대가리를 자르고 찬물에 우선 씻는다.
2. 씻은 고등어는 꼬리, 지느러미, 내장을 제거하고 다시 찬물에 깨끗하게 씻는다.
3. 손질한 고등어는 5cm로 길이로 토막을 내고 무는 나박하게 썬다.
4. 배추 김치는 먹기 좋은 길이로 썰고 대파와 풋고추, 홍고추는 어슷썰기 한다.
5. 냄비에 무를 깔고 김치, 고등어를 올린다.
6. 고춧가루, 설탕, 다진생강, 다진마늘, 후춧가루, 간장, 소금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7. 양념장을 고등어 위에 끼얹고 물을 붓는다.
8. 센불로 끓이다가 끓어 오르면 불을 줄여 끓인다.
9. 국물이 거의 조려지면 대파, 풋고추, 홍고추를 넣고 양념이 잘 들도록 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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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뜨물 이용법

  • 등록일
    2005/03/12 14:14
  • 수정일
    2005/03/12 14:14

출처: 녹색연합 http://www.greenkorea.org/ [삶속의 초록] 박경화님의 포스팅

 

비누가 없던 시절엔 무엇으로 얼굴을 씻었을까? 조선시대 궁중의 여인이나 양반집 규수들은 녹두가루나 창포가루를 썼고, 서민들은 쌀겨, 쌀뜨물, 밀가루 같은 곡물을 썼다고 한다. 쌀을 씻으면 나오는 뽀얀 물, 변강쇠전에 나오는 '방앗간집 딸년, 저 하얀 피부 좀 보소'라는 구절 역시 방앗간집 딸이 비누를 자유롭게 쓰는데 유리한 위치에 있었음을 뜻한다. 하루에 세 번, 혹은 한 번 밥을 지으며 그냥 흘려 버렸던 쌀뜨물은 얼굴을 씻는데도 좋지만 영양분을 품고 있어 요리할 때도 물 대신 넣으면 구수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우리 시골집에서는 영양분이 잔뜩 들어있는 쌀뜨물을 받아두었다가 소죽을 쑬 때 넣었다. 집안의 재산목록중 손꼽히는 소에게 따로 좋은 걸 먹일 순 없지만 쌀뜨물과 '당가루'라고 하는 쌀겨를 방앗간에서 가져와서 함께 넣었다. 물을 더럽히는 오염원은 산업폐수와 축산폐수, 생활하수 같은 종류가 있는데 이 중에서 생활하수가 90% 정도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집집마다 밥을 지으니 쌀뜨물 양 또한 만만치 않다. 한차례 세숫물도 아끼고, 피부도 보호하고, 요리에도 쓰는 일석삼조. 오늘부터 주방에 쌀뜨물을 받아둘 양동이 하나 준비하자.

1. 불순물이 많은 처음 씻은 물은 받아두었다가 설거지물로 쓴다. 기름기 묻은 그릇을 씻거나 손에 밴 비린내를 없애는 데 좋다. 김치통이나 생선을 담았던 그릇처럼 냄새가 배인 플라스틱 그릇에 쌀뜨물을 부어서 30분 이상 두면 냄새가 없어진다. 야채를 씻거나 걸레를 빨 때 써도 좋다. 코팅이 벗겨졌거나 기름때가 생긴 프라이팬에도 쌀뜨물은 요긴하다. 프라이팬은 사용한 뒤 열기가 남아 있을 때 귤껍질이나 과일껍질로 기름을 한번 닦아내고 쌀뜨물로 씻으면 손쉽다. 음식물이 눌어붙거나 기름때가 생긴 프라이팬은 쌀뜨물을 붓고 뚜껑을 덮어 끓인다. 충분히 불으면 물을 버리고 나무숟가락으로 찌든 부위를 긁어내고 부드러운 수세미로 닦으면 된다. 알루미늄 제품을 처음 쓸 때도 잘 씻은 뒤 쌀뜨물을 넣고 10분에서 15분간 끓이고 쓰면 더 오래 쓸 수 있다.

2. 쌀뜨물에는 비타민 B1, B2, 지질, 전분질이 녹아 있어 된장국이나 여러 찌개의 국물을 낼 때 물 대신 넣으면 구수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이때 불순물이 적은 두 번째 씻은 물이 맑아서 좋다. 카레소스를 만들 때 넣어도 좋고, 우엉이나 죽순, 감자, 토란 무 같은 하얀색 채소를 삶을 때 쓰면 전분입자가 표면을 감싸 산화를 방지하므로 흰색이 더욱 살아난다. 감자의 아린 맛, 우엉의 떫은맛도 없어진다. 죽순은 독성이 있어서 반드시 익혀 먹어야 하는데 잡맛을 없애고 맛을 부드럽게 하는데 쌀뜨물이 더없이 좋다. 죽순을 삶은 뒤 찬물에 담글 때 쌀뜨물에 넣으면 수산이 잘 녹아 나고, 죽순의 산화도 막아 주며, 더 부드럽게 해 준다.  

3. 화분에서 키우는 화초나 채소의 영양제를 어떤 것으로 살까 고민을 하고 있는가? 쌀뜨물을 주면 물과 거름을 한꺼번에 주는 것이니 더없이 좋다.

4. 더러워진 유리창을 닦을 때 하루 전에 분무기로 쌀뜨물을 뿌려두었다가 다음날 닦으면 반짝거린다. 걸레에 묻혀 마루를 닦으면 왁스칠을 한 것처럼 윤이 난다.

5. 흰빨래를 삶을 때 넣으면 한결 뽀얗게 되고, 삶은 뒤 쌀뜨물에 헹구듯이 몇 번 주물러 주어도 좋다. 이때 첫 번째 나오는 쌀뜨물은 화분의 영양제로 주고, 두 번째 나오는 쌀뜨물을 쓰는 것이 낫다.

6. 쌀뜨물로 설거지를 하면 손이 아주 부드러워진다. 쌀이 담고 있는 각종 영양분이 그대로 녹아내려 쌀뜨물로 얼굴을 씻고 머리를 감으면 훨씬 부드러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각종 비타민류나 미네랄이 풍부한 현미 씻은 물이 더 좋은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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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미생물도 숨쉴수 있는 세제쓰기

  • 등록일
    2005/03/12 14:13
  • 수정일
    2005/03/12 14:13

출처: 녹색연합 http://www.greenkorea.org/ [삶속의 초록] 박경화님의 포스팅

 

기원전 5,000년경 이집트 사람들은 목욕을 할 때 천연 탄산소다로 몸을 문지른 뒤 ‘샤프’라고 하는 점토를 개서 만든 것으로 몸을 씻었다. 그리고 피부가 건조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향유를 발랐다. 물의 세정력을 높이는 탄산소다가 바로 ‘탄산나트륨’으로, 최초의 세제였다. 희랍어로 ‘강과 강 사이에 있는 토지’를 뜻하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그곳 가까이에 있는 슈멜문명 유적지에서 발견된 점토판에는 설형문자로 비누의 제조방법과 용도가 새겨져 있다. 피부병엔 유황비누를 썼고, 기름 1리터와 탄산칼슘 5.5리터로 비누를 만들었다고 한다. 약 3,000년 전 초기 로마시대에는 사포(sapo) 언덕에서 양을 구워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는데, 양을 구울 때 생긴 기름과 타다 남은 나무재가 빗물에 씻겨 내려가 다이빠 강으로 흘러갔는데, 이 물에서 빨래를 하던 사람들은 때가 잘 빠지는 사포의 땅에서 놀았다고 한다. 이 ‘sapo’가 지금의 ‘soap’의 어원이라는 설이 있다.

먼지나 땀 같은 때는 물에 잘 녹고, 세탁물을 물에서 비비고 문지르면 먼지가 떨어진다. 그러나 기름처럼 물만으로는 떨어지지 않는 오염물질이 있다. 이 때 물의 세정력을 높이기 위해 넣는 것이 세제다. 기름때가 물만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은 기름은 기름끼리 뭉쳐지고 물은 물끼리 뭉쳐지기 때문이다. 물이나 기름 같이 2개가 접하는 경계면을 ‘계면’이라 하는데 이 계면에 작용해서 본래 합쳐질 수 없는 기름과 물을 섞는 활동을 ‘계면활성작용’이라 하고, 그 활동을 하게 만드는 것이 ‘계면활성제’다.

계면활성제의 분자는 물에 잘 섞이는 친수기와 기름에 잘 섞이는 친유기 두 가지 성분인데, 친유기가 더러움에 붙고 친수기가 물과 결합해 때를 물로부터 분리시킨다. 이 활동을 한층 효과있게 하기 위해 손으로 비비거나 세탁기를 돌리는 것이다. 문제는 합성세제에 들어있는 이 계면활성제가 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 세제에는 세정력을 높이려고 형광표백제와 효소 같은 화학물질을 첨가해서 넣는데, 때를 없앨 뿐 아니라 하얗게 물들이기 위해 넣는 형광표백제가 쌓이면 발암위험이 있다고 한다.

거칠어진 손, 갈라진 손, 습진이 모두 이 합성세제의 왕성한 활동 때문이다. 빨래를 씻고 설거지를 하는 동안 손으로 흡수되고, 옷에도 미세한 성분이 남아 있다. 샴푸나 린스, 치약에도 들어 있어 두피나 머리카락, 혀와 입 점막에서 우리 몸 세포를 파괴한다. 계면활성제가 든 주방세제로 과일과 그릇을 씻은 뒤 남아있던 잔여물이 입 속까지 들어간다. 비누는 일정 농도보다 낮아지면 계면활성작용을 잃어버리고 하루만에 분해가 된다. 하지만 합성세제는 아무리 약해도 계면활성작용을 잃지 않고 분해도 좀처럼 되지 않는다.

본래 자연에는 물을 정화하는 힘이 있다. 유기물이 물에 들어가면 우선 박테리아가 분해하고 그것을 원생동물이나 동물성 플랑크톤이 먹고, 다시 새우나 물고기가 이것을 먹는 방식으로 연쇄를 통해 분해되고, 맨 나중에 남은 유기물은 물과 탄산가스로 바뀐다. 유기물에 함유된 질소나 인은 무기물로 변하고, 물풀이나 돌에 붙어 있는 부착조류 같은 것을 흡수한다. 그러나 하수구로 흘러든 합성세제는 물 속에 사는 박테리아를 죽인다. 유기물을 분해하는 박테리아가 죽어버리면 정화능력이 떨어져 유기물 오염이 진행되고, 생물간의 균형이 깨진다. 또, 합성세제는 하수처리 능력을 떨어뜨리고 강물과 바다까지 오염시킨다. 마지막 헹굼물에 넣는 섬유유연제, 청소할 때 쓰는 락스, 변기 안에 넣어두는 변기 세정제 역시 유효미생물을 죽이는 세제들이다.

냄새를 없애고 싶다면 청소 마지막에 식초를 뿌려두면 되고, 폐식용유를 재활용하여 만든 무공해비누나 천연세제가 많이 나와 있다. 집에서 만들기 번거롭다면 생협에 가면 빨리 분해되고 우리 몸에도 해가 없는 천연세제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주방용, 세탁용, 목욕용으로 종류별로 구할 수 있다. 이사한 집을 방문할 때도 합성세제보다 무공해 비누나 식물성 천연세제를 선물하자. 거품이 일어나듯 좋은 일이 많이 생기라는 마음을 전하는 선물이 이왕이면 해가 없고, 우리 땅에도 좋은 것이라면 더 기분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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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이 홈리스 축제

  • 등록일
    2005/03/12 14:10
  • 수정일
    2005/03/12 14:10

 

from Independent Media Nagai Homeless Fest- A successful People's Dignity fest! 現在の点数: 1 jen より Eメール: kindlady76 (nospam) hotmail.com (未確認!) 09 8 2004 Osaka Nagai Park's first ever homeless festival was a success for both those with and without a home. Though hardships still exist, the festival brought soldidarity and fun into what will hopefully be a traditional free space for years to come. Read here for more... Nagai Homeless Fest A Successful Dignity Fest! It had taken months for the Nagai Park homeless residents to plan the July 24 and 25th matsuri (festival) event. Being the first of its kind for them, it was a well planned out event organized under the blue tarps of Nagai Park’s homeless squatter community. The community has existed for about 4 years and has been under constant threat by the Osaka government to move further and further away from the park. Currently they occupy the outskirts of the park, but during a tour of the park, I saw barbed wire, fences, and intimidating signs that barred them from most of the park. The “Dairin” matsuri, Big wheel festival, was created to encourage solidarity between both those with and without homes. The desire was to create a space of dignity where people could dance, drink, speak out, share, do sumo, make instruments, eat, and just have fun together as nakama- friends, comrades. With over 100 volunteers and homeless helping to create the event and over 200 participants, most thought of the event as a success. Being a foreigner interested in the movements in Japan, I have always felt that the one thing that is generally missing from activism here is empowerment and…fun. So when k and I suggested that Nagai Park do what everyone else does in Japan, a matsuri, but make it their own, they took the idea and rolled with it, being an idea that was something they had already been thinking about. Contrary to my knowledge, a homeless matsuri is nothing new to the homeless communities in Osaka as the Kamagasaki area, the heart of the day laborer’s struggle in Japan, has been doing fests for years and Ooigimachi park has been doing it for the past 2 years. While I sensed some division amongst different homeless groups in Osaka, there was support on making this event possible for Nagai Park. And many groups helped to create the event: Nagai Park, Nakama no kai, Kamagasaki patrol, Kamagasaki Elder’s Union, Nishi-nari park homeless support group, Yuai Koubou- the handicapped people’s work warehouse, youth and students, those with DIY sentiments, and more… I contacted one organizer and good friend, Jill, who has been working with Nagai Park for over 4 years now. While critical of the event, his feeling (and mine as well), was that one of the biggest successes was that there were a lot of youth helping to create this event, something both of us rarely see in activist Japan. The event included music ranged from enka to punk to a samba line around the stage area, making the event way more appealing to youth than the typical “senso hantai!” no war monotone chants. People danced, sang both old and young. And for my girlfriends, and me the sumo ring was one of our highlights as women have always been banned from entering the sumo ring in Japan. (I won once, yata! But then totally lost on the second round.) To end the event, one of the main organizers got up on stage and made a powerful speech about the struggle of the homeless to the tune of emotional and encouraging drum beats, yips and yells. While getting half of what he said (getting bits and pieces of translation), his voice and the music evoked a strength that left all of us entranced. When the drumming stopped, the samba line began and what a wonderful way to end 2 days of workshops, music, fun, speeches and solidarity. There are 2 more fests planned for August which I encourage all to join and you are all welcome- 8/13, 14, and the 15th at Kamagasaki, this is the largest homeless festival with a long tradition. Contact Kanatsu san- (both English and Japanese ok)- kamapat (at) infoseek.jp and Oogimachi park’s fest will be on 8/22. Contact Jill (both English and Japanese ok)- rebel_jill98 (at) yahoo.co.jp While being a success in most people’s eyes I spoke to at the event, Jill made some good criticisms, something that will hopefully be changed for next year’s event. One was that there was some division between the homeless themselves and some chose not to join the event due to disagreements. Another was that there was not enough English and Japanese information to explain the history of Nagai Park and their amazing activism and how people can volunteer and get involved. While there was communication between homeless and participants, maybe making a better defined space for questions both in English and in Japanese would have encouraged more dialogue. But, while not perfect, it was really better than what we had imagined. It was great to see people getting together and really creating something for free. We left the park feeling elated, feeling like community and support is really possible in Japan. If you are in Osaka or plan to visit, I recommend you contact Jill and visit Nagai park, Jill or someone can give you a personalized tour of the place and other areas if time- or ask him about volunteering for the Nagai park’s organic garden, night patrol, and soup kitchen. Nagai Park has really has been one of the most remarkable experiences for me in Japan. I thank them for opening my eyes not only to homeless issues here, but in my home country as well. This is not just something about people receiving food and shelter, but it’s about all of us being able to have dignity in our lives, by choosing to live where we want, how we want. It’s about being able to create our own communities and having jobs that support us, not kill us. これも見てね: http://de.geocities.com/nagaipark_nakamanokai/ http://www.geocities.co.jp/WallStreet-Bull/8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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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박정희 경제발전논리와 여성 재생산권-2

  • 등록일
    2005/03/12 14:10
  • 수정일
    2005/03/12 14:10
박정희 경제발전논리와 여성 재생산권-2


이진옥 기자
2004-08-15 19:00:21  
한국의 가족계획이 주목 받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가족계획어머니회의 존재다. 몇몇 여성학자들은 제3세계에서 진행해 온 인구정책이 여성의 재생산권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실행되기 위해선, 여성들의 이해를 반영할 수 있는 모임을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가족계획어머니회는 그 가능성 여부를 살펴보게 하는 선례가 될 수 있다.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된 가족계획어머니회

1968년 대한가족계획협회는 스웨덴이 보급한 다량의 경구 피임약과 미국 국제개발처의 원조를 받아 당시 인구의 70%가 거주하고 있던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그 해에 1만6천868개의 가족계획어머니회를 조직했다. 가족계획 어머니회의 주 목적은 ‘피임약과 콘돔을 나눠줄 수 있는 거점을 확보해 현장요원들의 부담을 경감시키며, 피임약 사용을 권장한다’, ‘각 마을에 가족계획 교육과 정보전달 통로로 기능한다’, ‘수치 달성을 위해 새로운 수용자 발굴을 돕는다’, ‘마을의 여성지도자들이 가족계획사업에 우호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게 한다’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가족계획어머니회는 기본적으로 동네 이장들에 의해 추천된 중등교육 수준을 지닌 여성들 중에서 7-8명 가량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어머니회 대표들은 읍 단위 사무소에서 상황 보고와 정보 입수, 훈련 등을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다. 그러나 각 보건소에 파견돼 피임약을 공급하고 수용자를 감독하고, 후속작업 등에 대한 기록을 책임을 지는 139명의 경구약 행정관과 지역 관리관이 모두 남성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봐, 가족계획어머니회는 남성들에 의해 기획되고 관리되는 조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어머니회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1970년에는 수직적인 조직 체계가 마련된다. 대한가족계획협회는 면장 협회에서 선출된 어머니회 대표로 구성된 군 지도자회를 결성한다. 대한가족계획협회가 관료적인 위계체계로 통합되어 있는 것을 미뤄봤을 때, 어머니회 또한 수직적 관리 형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여성이 정책결정 과정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상의하달의 통제방식에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 조직 체계에 참여한 여성 개개인의 지위는 향상됐다고 볼 수 있다. 가족계획어머니회에 대해 연구한 정경균씨는 “어머니회 지도자들의 동의 없이 마을의 어떤 행사나 정치적 활동도 계획되고 실행되기 어려웠다”는 한 면장의 진술을 인용한 바 있다.

유신선포 후 강제성 띤 새마을부녀회로 전환

정경균씨는 연구논문을 통해 어머니회가 가족계획 사업의 문화적 저항감을 피하고, 어머니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며, 지역개발을 위한 협동을 증진시키고, 이런 활동들을 통한 가계수입 창출 등의 효과를 낳는 활동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족계획어머니들의 무노동 자원봉사가 부족한 가족계획 요원을 보충하는 인력으로 사용된 측면이 있지만, 당시 기혼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봉쇄된 것을 고려하면 여성 지위향상 또한 도모했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가족계획 자체를 기피하는 보수적인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한편 어머니회의 활동은 가족계획 사업을 넘어서 무임금 노동을 제공함으로써 지역 개발에 이바지한 바 크다. 각 마을에 어머니회의 관리를 위해 분배된 기금으로 집단적 소득을 창출하고, 마을회관을 건립하거나 부엌 위생시설을 개선시키고, 노인을 위한 마을잔치를 열거나, 빈곤한 이웃을 지원하는 일에 사용했다. 이는 어머니회가 구성원의 활발한 참여로 이루어졌고 당시 여성들의 다양한 필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여성들의 공적인 활동에 우호적이지 않은 당시 마을사람들에게 이익을 환원함으로써 자신들의 활동을 안착화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가족계획어머니회가 지역 개발에 공헌한 성과는 정부의 주의를 끌기 충분했다. 박정희 정권은 가족계획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있어 어머니회의 효율성과, 여성의 지역사회를 위한 무임금 자원봉사, 수직적 관리체계 하의 여성조직이 국가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많은 이들이 가족계획어머니회의 활동이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되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박정희는 1972년 대통령령으로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 규정을 제정했다. 이는 유신체제 선포 이후 당시 여촌야도의 정치적 기반 위에, 어머니회의 적극적 활동을 정권유지를 위한 전국적 계몽운동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 이중 멤버십을 허용하며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졌던 가족계획어머니회를, 강제성을 띠었던 새마을부녀회로 전환했다.

한국가족계획연구원이 1978년에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당시 가족계획 사업에서 기층 단위들이 국가 기구와 철저히 통합돼 있어 위계적인 관료 체계 하에 실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가 가족계획사업 조직구성도를 보면, ‘가족계획어머니회’가 있을 자리에 ‘새마을부녀회’가 위치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논리 맞서 인구정책에 여성의 이해 피력해야

“누구의 이해를 위해, 누가, 무엇으로, ‘필요’를 정의하는가?” <난폭한 습관: 현대사회이론에서의 권력과 담론과 성>의 저자 낸시 프레이저는 ‘필요담론’(needs talk)이란 불평등한 자원을 가진 집단들이 사회적 필요에 대한 각자의 이해를 설파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다투는 가운데 생성된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의 모든 재원이 경제논리로 동원되고, 정권이 시민사회 위에서 기능할 수 있는 힘을 장악한 박정희 체제하에서 여성의 필요담론은 국가에 의해 선점됐다. 따라서 여성의 이해는 국가의 이해에 종속되고 말았다. 또한 가족계획의 성공신화는 다른 여타 국가에서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던 여성건강권 운동을 한국사회에서는 상당히 지연시켰다.

2004년 현재 한국사회는 출산율 저하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올해 초, 보건복지부는 “정관, 난관을 묶는 수술을 보험적용에서 제외하고, 정관, 난관을 푸는 수술을 보험적용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출산율 저하에 대한 국가적 위기담론은 국가경쟁력 하락을 우려한다는 점에서, 박정희 시대의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이라는 경종과 그리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지금의 시기엔 과거의 전철-여성의 이해가 국가의 이해에 종속되고, 여성들이 재생산권과 건강권을 보장 받지 못한 채 국가의 경제논리에 의해 통제되었던-을 밟지 않기 위한 여성들의 대항적 ‘필요담론’이 시급히 요청된다.

사회가 먼저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양육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 양육뿐 아니라 가사노동과 부양노동을 여성에게만 짐 지워선 안 된다는 것, 결혼제도의 틀 안에서만 출산과 입양, 인구정책을 논할 것이 아니라 비혼의 영역까지 확장시켜야 한다는 것 등이 그 예일 것이다. 현재의 국가적 위기담론을 과거의 상황과는 구분 짓고, 여성의 이해를 반영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도록 한 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여성운동의 역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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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병역거부자 최진씨의 활동수기: 차 없는 날

  • 등록일
    2005/03/12 14:09
  • 수정일
    2005/03/12 14:09
병역거부자 최진 씨 활동수기) 차 없는 날 최진(초등학교 교사, secretroad@hanmail.net) 최진 씨는 현재 문경 용흥 초등학교 교사로 5월 15일 입영을 앞두고 병역거부를 선언했습니다. 최진 씨와 함께하고자 하는 분은 후원회 홈페이지: http://cafe.daum.net/naagaljin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6월 25일 구속판정을 받았으나, 6월 28일 구속적부심에서 최종적으로 불구속 결정되었고 현재 재판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차 문짝을 수리하기 위해 아침 출근길에 차를 맡겼습니다. 날이 조금 더워졌지만 그럭저럭 퇴근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유있게 컴퓨터를 끄고 전원을 뽑고 문단속을 하고 교무실에 열쇠를 걸고 신발을 갈아신고 문단속을 하러 오신 아저씨에게 인사를 드리고 주차장으로 나갔습니다. 아무도 없더군요. 아침에 차를 맡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교문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부랴부랴 고개만 까딱이며 인사를 드린 구멍가게 할머니께 “안녕하세요!”하며 목소리를 들려드렸습니다. 할머니의 주름진 웃음이 걷는 속도만큼 느리고 길게 따라옵니다. 마을을 벗어나자 성주봉의 뒷머리가 초여름의 생생함으로 빛나고 바람불때마다 하얗게 뒤집어지던 참나무들의 색이 짙어졌습니다. 길 옆이나 산 허리에는 하얀 찔레꽃이 은하수 별무리처럼 한창입니다. 아이들이 코를 쿡 쳐박고 찔레꽃 냄새를 맡다가 코끝에 노란 꽃가루 묻히고선 땡벌처럼 웃는 모습이 떠올라 저도 빙그레 웃습니다. 물길 따라 가던 길이 갈라집니다. 새로 난 길을 버리고 가로 막은 옛 길에 몸을 올립니다. 인적은 드물지만 몇 대 지나 다니는 차마저도 길을 제대로 걷기엔 번거로운 탓입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덜컥 겁을 집어먹고 새로 난 길로 걸음을 돌립니다. 산의 속살이 벌겋게 드러난 비탈에서부터 제 몸집만한 바위돌이 서너개 굴러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여기는 제작년부터 소형 댐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낙엽송이 거의 다 베어지거나 꺾여져 나가고 몇 그루 남은 나무들만 흘러내리는 흙과 돌과 폭파음에 맞서고 있습니다. 출퇴근 길에 늘 보는 풍경이지만 오늘처럼 가슴 저리지는 않았지요. 댐이 완공되고 수위가 높아지면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명들마저 지워질겁니다. 그저 끝까지 생을 포기하지 않는 형제들을 향해 침묵으로 존경과 아픔을 전했습니다. 이라크라고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아무런 감정도 없이 굴러가는 포크레인과 불도져의 굉음이 산과 산의 생명들을 짓누루고 살해하듯이 이라크 사람들을 향한 무심한 총부리가 그들의 평화를 부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빼앗고 생명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와 같은 사람이고 나와 같은 생명입니다. 그들은 어쩔 수 없는 절망의 나락에서 총을 들고 몸에 폭탄을 두릅니다. 삶의 기쁨과 감사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그것을 빼앗아가는 폭력 앞에서 저는 이 땅의 교사로서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저의 병역거부는 그 절망 앞에서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몸부림입니다. 정말 답답한 마음에 선택한 길일 뿐입니다. 마음에 난 길이 이즈음 닿자 유치원 선생님의 차가 옆에 섰습니다. 도자기를 보고 내려오시는 길이라 만날 수 있었습니다. 1시간 정도 발품을 덜었네요. 그러고도 마을까지 가는 버스를 놓쳐 30여분을 더 걸었습니다. 나즈막한 비탈을 오르는데 아랫마을까지만 가는 버스가 서더군요. 어둠이 멀지 않아서 이 버스라도 타야했습니다. 간만에 걸어서인지 허기가 지더군요. 버스기사 아저씨가 저녁을 드시는 사이 터미널 옆 포장마차에서 만두와 오뎅을 먹으며 허기를 지웠습니다. 제가 버스에 오르자 다시 버스가 출발하였습니다. 모퉁이를 돌자 커다란 바위산인 희양산이 하얗고 훤한 이마를 드러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희양산에게 경례를 붙이고 양산천 계곡을 따라 집을 향했습니다. 저녁 바람이 뺨을 어루만집니다. 물냄새 풀냄새가 계절의 추억을 되살려주네요. 어둠이 오는 것이 이제 눈에도 보입니다. 가늘게 눈뜬 초생달 옆으로 개밥바라기(초저녁에 뜨는 금성의 우리말 이름)가 떠있네요. 전에 아이들이 개밥바라기를 보고 “하늘에 누가 압정을 박아놨어요!”하며 놀라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무성한 느티나무 그늘처럼 오늘 같은 밤엔 추억도 무성합니다. 아, 이제 마을에 접어들었습니다. 논둑을 따라 난 지름길을 지나 마지막 비포장길에 닿았습니다. 고개를 넘자 마을 전경이 가늘게 남은 저녁 빛을 타고 눈 앞에 펼쳐집니다. 저 앞에 우리가 손수 지은 집들이 고즈넉히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물댄 논에는 검어진 산이 몸을 담그고 있습니다. 보석함 같은 그 속에 물까치도 날고 감나무도 서 있고 초생달도 개밥바라기도 가만가만히 흔들리며 담겨있습니다. 논에 담긴 개구리 울음소리가 발걸음소리에 놀라 지워졌다가 다시 개골거리며 길 가는 이의 걸음을 응원합니다. 이 속에 연두빛 모가 서고 여름으로 자라올라 물댄 논의 풍경들을 덮을 겁니다. 그러나 걱정마세요. 아름다운 풍경은 덮여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나락 하나 하나에 같이 영글어 있지요. 아이들의 눈동자 속에 담긴 풍경 역시 삶으로 영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세상이 오늘 내가 본 풍경처럼 아름답기를 소망합니다. 삶은 너무나 아름답기에 절망도 큽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지요. 우리의 아름다운 일상을 되찾는 싸움은 이제 시작입니다. 져도 지지 않는 싸움이 우리의 일상이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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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불법 장기체류 자들에게 '영주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며...

  • 등록일
    2005/03/12 14:05
  • 수정일
    2005/03/12 14:05

http://www.stopcrackdown.net

 

무더운 더위가 계속 되고 있군요. 오늘 국회 앞 1인 시위에 다녀왔고,
후기를 써야 된다고 하길래 후기 대신,
지난 목요일 공동실천단에서 내걸게 된 '영주권'에의 요구에 대해
간략하게 이 사이트를 찾아오시는 분들께 설명하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는 현재 강제추방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불법 장기체류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강제추방을 즉각 중단'하고, (그들을 그냥 불법으로 방치하자는 것이 아니라) '영주권'을 주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해 '영주권'은 한국 정부가 큰 인심 한번 쓰고 베풀어야 할 시혜가 아닙니다. '영주권'은 불법이었든, 합법이었든 이 땅에서 5년에서 10년 이상 일해왔던 이주노동자들에 당연히 주어져야 할 정치권 보상이자, 이 땅에 사는 우리로써는 당연히 지불해야 할 '사회적 비용'이라는 것입니다.

자본가에게, 투기자들에게 어떻게 '영주권'이 주어지는 생각해봅시다. 그들은 3년 동안 50만 달러를 투자하면 이 정부는 '영주권'을 보장해 줍니다. 고용창출에 기여했다는 명목으로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이 '사회에의 기여'가 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상황인지 이 정부가 정당하고 명확하게 답변할 수 있겠습니까?

'영주권'은 사회적 기여도에 따르는 정치적 권리의 문제입니다. 사태는 명확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은 분명 한국정부와 한국기업들의 필요를 만족시켜왔고, 그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생산한 사회적 부는 이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3년간 50만 달러를 투자하는 투기꾼 보다 이주노동자들이 더 큰 사회적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투기꾼들은 자신이 이익을 남기고 돈을 빼내서 이 땅에 나가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별적인 법률들은 자본가에게 해당하는 법률과 노동자를 비롯한 가난한 자들에게나 해당되는 법률을 따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양극화된 사회, 자본가들에게는 모든 권리가 주어지고 가난한 자들에게는 무권리가 주어지는 이중사회가 된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겠죠. 따라서 우리는 이 '무권리'에 대항해 싸움을 시작합니다.

현재 '영주권'의 요구를 부정하는 어떤 논리도 이주노동자들의 단결을 분쇄하거나, 자국 중심주의 논리에 갇혀 결국 지구화 시대에 노동에 대해서만 통제와 압력과 제한을 가하는 행위라고 단언합니다.

목요집회 후 한 조선족 아주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조선족도 이주노동자인 거냐?"고 묻더군요. 당연히 조선족도 이주노동자가 맞고, 불법 장기체류자인 조선족에 대해서도 영주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통화를 하고 나서 우울했던 것은 이주노동자를 민족별, 국가별, 문화별로 끊임없이 잘게 나누려는 자본의 끈질긴 공세에 이 사회가 제대로 대항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뻔해 보이는, 조선족도 이주노동자다라는 사실도 뻔해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모든 불법 장기체류자들에게 '영주권'을 보장하라! 이것이 우리의 변함없는 구호가 될 것입니다.

둘째, 현재 불법장기체류자들이 아닌 앞으로 충원될 이주노동자나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단기적인 합법 신분을 가지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고, 시간제한도 최소 5년의 장기순환형 노동허가제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노동허가제'로 5년, 그 이후에 이주노동자가 한국사회에 더 머무르고 싶다면 이제 자유롭게 일하고 거주할 수 있는 '영주권'을 선택할 수 있는 틀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이 틀을 그리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현행 불법장기 체류자인 이주노동자들에게 '영주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무시하고 도외시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그러니 불법장기체류자들은 일단 다 나가라!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국에 온 지 몇 년인데, 새로이 1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일차적으로 현재 불법 장기체류자에게 '영주권'을 보장하고, 향후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이는 틀은 '영주권'과 '노동허가제'로 가자는 것입니다.

가령, 이후에는 노동허가제로 들어와 5년을 채운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정치적 보상과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서의 '영주권'에 대해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게된다면 결국 불법체류자는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 정부를 비롯해 한국사회의 제단체가 이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또한 민주노총을 비롯한 제노동단체와 이주노동단체들이 현행 불법장기체류자들에게 '영주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권리주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때까지 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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