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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운동에 지구화 시대 국가의 의미는?

<진저> 1998년 7월호

원 제목 = `국가와 좌파'에 대한 여성운동가 쥬디 리빅 (Judy Rebick) 인터뷰

 

진저의 기획 인터뷰로 리오 파니치(Leo Panitch) 교수에 이은 것입니다. 이 여성은 캐나다 여성운동단체인 ‘여성 지위에 관한 전국 행동위원회(NAC)’의 의장을 지낸 적이 있는 인물입니다. 캐나다의 특수한 상황 이야기가 파니치 교수 인터뷰 때보다 더 많이 나와,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운 인터뷰입니다. 파니치 교수의 생각과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눈여겨 볼만할 것 같아 소개합니다. 이 인터뷰 또한 이정훈님이 번역해주신 것을 제가 손봤습니다.


 

 

여성 지위에 관한 전국 행동위원회(NAC)의 전 의장 쥬디 리빅이 국가 안에서 그리고 국가에 대항해 형성되는 여성운동, 다른 사회운동과 연대를 바탕으로 한 여성운동의 미래에 대해 진저와 대화했다.

 

▲ 진저 : 국가에 대항하는 행동주의와 조직화는 지금에서는 10-20년전과 상당히 다른 것을 뜻합니다. 요즘은 단지 현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승리처럼 보입니다. 특히 캐나다 복지국가가 자신에 대한 공격을 스스로 주도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이 문제를 감당하려면 좌파가 어떻게 조직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리빅 : 나는 좌파가 1988년 자유무역 논쟁 때 덫에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당시 상황의 그릇됨에 대해 말하지 않은 채 당시 상태를 옹호하기 시작했습니다. 확실하게 여성운동과 좌파 - 신민주당(NDP) 좌파 -는 현재 형태의 복지국가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복지국가가 최우선이라는 환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유무역에 관한 논란 과정에서 우리는 "아무튼, 캐나다가 미국보다 낫고 우리나라 사회복지 프로그램의 악화를 막아야만 한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 이래 우파쪽으로 기울고 있는 사민주의는 복지국가를 근본적으로 옹호하는 것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보는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좌파내 우파는 대안이 없는 곳에 있었고, 반면 좌파와 여성운동은 현상태를 유지한다는 덫에 걸렸습니다.

 

반면에 자유주의자들은 복지국가를 수호하길 포기했습니다. 복지국가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자유주의적 부분은 지배계급안에 항상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복지국가를 포기했을 때 그것을 -원한다면- 보호할 세력으로는 좌파만 남았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우리가 행동위원회에서 단순히 감축은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좀더 급진적인 해결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지만 우리의 연합 상대방에 의해 압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압박을 받은 것은, 그들이 우리에게 "하지마"라고 말해서가 아니라 자유무역 논란중에 매우 긍정적이고 그 이후에도 계속 그런 연합을 그들과 형성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탈퇴할 생각이 없는 각종 그룹이 참여한 이 연합에는 부정적인 면이 한가지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70년대에 여성운동은 적극 행동계획(affirmative action)을 위한 싸움을 원했지만, 노동조합은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여성운동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스텔코(캐나다 최대 제철회사=옮긴이)가 여성 입사를 허용하도록 요구하는 싸움에 전미철강노조(미국, 캐나다 연합 노조단체=옮긴이)는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여성운동은 회사는 물론 노조를 상대로 싸움을 벌였습니다 - 정확하게 그랬습니다. 노조는 일단 수긍을 한 뒤에는 재빨리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알다시피 한 그룹이 연합에서 탈퇴하거나 앞서 나가거나 때로는 연합에 적대적이 되는 것은 요즘은 시도하기 아주 어렵습니다. 우리 모두 공격을 받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행동위원회가 샬로트타운 합의(Charlottetown Accord) 토론에서 그렇게 했는데, 그것은 여성운동내에서 2년동안 토론한 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행동위원회는 그 토론에서 초반부터 주도권을 쥐었습니다.

 

액스워디(Axworthy) 사회정책 검토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었지만 못한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제안은 생활비와 보편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의 연간 수입을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빈곤 산업(poverty industry)을 -가난한 이들이 그렇게 부르죠- 폐지하라는 거죠. 국가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을 위해 매년 4만~6만달러의 임금을 중산층에게 지불하는 이 전체 체계를 없애라는 것입니다. 그 체계를 없애고 돈이 직접적으로 가난한 이의 주머니로 갈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실업보험 문제를 제기하게 됩니다. 점차적으로 실업보험 체계를 폐지하고 단기 실업자와 장기 실업자의 구분을 없애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소수 실업자만 실업보험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노동운동은 아마도 기꺼이 그 문제를 검토하려고 할 겁니다. 그러나 3,4년 전만해도 그들은 그렇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행동위원회는 이러한 생각에 거리를 둬야했을 겁니다. 그런데, NAPO(National Association of Professional Organizers로 추정 곧 전국 직업조직자 협회, 바로 밑 이 단체 홈페이지의 자체 소개를 참고하세요.=옮긴이)도 연간 수입 보장이 우파의 관념이라고 생각했기에 반대했습니다. 그들은 복지산업을 좋아하지 않지만 우파가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이 점에서 나는 노동시간 단축과 연간수입 보장을 결합시켜 주장하는 것이 수입보장과 완전고용에 관해 이야기하는 새로운 방법이 될거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 나는 이 주장을 폈지만, 당시 행동위원회의 아주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더 진전시키지 못했습니다.

(** 전국전문조직자협회는 조직 상담자, 연설가, 교육훈련가, 저자, 조직화 상품 생산자 등을 회원으로 하는 비영리 전문직 협회이다. NAPO는 전세계에 회원을 두고 있는 조직가들의, 조직가들에 의한, 조직가들을 위한 유일한 전국적 협회이다.=이 설명으로도 어떤 단체인지 잘 모르겠군요.)

 

자신을 방어-유지-하는 데 보낸 이 긴 기간동안의 결과로 좌파에 영향을 끼쳐온 정치적 보수주의는 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깨지는 방식은 논쟁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서고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개발할 때는 논쟁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지금 논쟁을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동의하는 것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것에 대해선 침묵합니다. 음, 그것의 핵심은 무엇일까? 내가 말하는 것은 공손함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성과도 주지 못합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는 이해할만 하지만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좀더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파의 추락 (Decline of the right)

내가 보기에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우파의 강력한 힘을 지금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완전히 틀린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이미 퇴락하고 있습니다. 삼년전이 그들에겐 전성기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도 약속을 지킬 수 없습니다! 내가 뜻하는 것은 그들의 커다란 약점에 맞서자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들은 적자를 줄였습니다. 그들은 사회복지제도를 처참히 뭉갰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좀더 나졌다고 느낄까요? 삶이 나아가고 있다고 느낄까요?

 

우리는 그들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낙태 투쟁을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나에게 "쥬디, 당신은 절대 이길 수 없어. 정부, 경찰, 법정 모두 당신에게 반대하고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불가능한 것에 대해 적극적입니다. 나는 지금이 더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국제적 힘이 주도하는 광범하게 퍼진 이념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국가적 수준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대안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믿지 않더라도 그것의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의 기가 꺾였다고(demoralized)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신이 연간수입(annual income)이라는 아이디어를 소개하기 시작할 때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반대 제안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한 메커니즘일 뿐입니다.

 

적자는 실재했다. (The deficit was real)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국가의 재정위기가 있었던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적자는 실재했습니다; 매워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좌파에게 또 하나의 문제점입니다. 일종의 음모이론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1달러당 40센트를 은행에 줬다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전망은 뭔가? 이 적자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내가 생각하기에 좌파의 반응은 아주 아주 느렸습니다. 당신이 아는 것처럼, 적자가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가 말했을 때 그것은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문제라는 걸 알았습니다. 우파에 관해 그동안 토론하면서 내가 배운 것은 우리의 힘은 대안이 될 수 있는 가치를 제안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파가 할 수 있었던 것 중 하나는 좌파를 낭비꾼(big spender)으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우파는 자신들을 재정적으로 책임을 지며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좌파는 큰 낭비꾼이며 큰 정부를 지향한다고 규정합니다. 음,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좌파 - 심지어는 사민주의적 좌파까지도 -는 아닙니다. 사민주의적 정부는 이 나라에서 가장 재정적으로 책임감 있는 정부입니다. 그것은 우파냐 좌파냐와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파가 그렇게 하는 것을 그냥 뒀습니다. 그들에게 그러한 식으로 논란을 규정하게 했고, 그것은 우리에게 약한 기반이었습니다. 누가 큰 정부를 원하겠습니까? 나는 큰 정부를 원하지 않습니다.

 

▲ 진저 : 국가 외부에서 대안적 조직화를 추구하는 그룹들이 제안하는 역제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를 들면, 많은 그룹은 지역사회개발과 식품이나 다른 생필품의 생산과 유통의 대안적 형태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효과적인 전략입니까?

 

▲ 리빅 : 이런 것들은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조직화 방식이 나올 수 있는 바탕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각 사람이 각각 다른 부분을 맡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권력으로부터 등을 돌리면 당신은 매우 작은 소수만을 위한 대안으로 끝내야 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대응 주장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내 말 뜻은 이것이 60년대 히피족과 급진주의자들 사이에 벌어진 토론같다는 것입니다. 히피족은 중산층 젊은이들의 작은 그룹을 위한 것에 불과한 대안 문화와 사회를 만들려 했습니다. 작은 그룹만을 위한 대안을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정부가 많은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국가의 힘을 다루지 않고 그 힘을 제한하려고 싸우지도 않고, 적어도 가끔은 국가가 대다수 사람의 이익을 위해 활동한다고 주장하지도 않으면; 이런 수준에서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그 수준에서는 어떤 목소리도 내지 못하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아무도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들으려하지 않기 때문에 당신은 어떤 운동도 조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점조직식 일대일 운동을 만드는 것입니다. 파시스트 국가에서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권위주의 독재국가에서도 지하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다수에게 접근하는 통로가 있으며 그것을 이용해야 합니다. 권력에게 진실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진보적인 세력은 국가적 규모의 논쟁에 참여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 진저 : 좌파에게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좀더 확장된 연합을 만들기 위해 운동세력 사이를 넘나드는 것입니다. 노동운동과 함께 반 빈곤(anti-poverty) 활동가들을 연결하거나 또는 반인종차별주의 활동을 페미니스트 조직의 활동과 통합시키는 등의 활동을 하면서 말입니다. 개별 노조의 일부에서 그러한 노력이 시도됐습니다. 예를 들면, 가난 반대 온타리오 연합(Ontario Coalition Against Poverty) 또는 NAPO(전국 직업조직자 협회?)와 연대를 형성한 것입니다. 현장 전반의 관점에서 좀더 많은 세력을 대표하는 연합을 바탕으로 한 운동을 구축하려 했던 당신의 경험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 리빅 : 음, 이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조합이 움직이면서 강력한 적대자가 됐기 때문에 136조 법률을 철회하려는 해리스(Harris) 정부가 있는 곳 곧 온타리오에서 당신은 지금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반대 편에 온타리오의 경우와 같은 힘이 없기 때문에 복지정책 변화를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60년대 또는 70년대에 지녔던 것과 같은 것이 없으면 사람들을 조직화하기는 매우 힘듭니다. 복지제도의 축소가 노동법률의 변화만큼 자신들에게 중요하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하기는 매우 힘듭니다. 그들은 아마도 수표를 보내거나 노조 총회에서 결의를 통과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 거리로 뛰쳐나가는 것 또는 파업하겠다고 위협하는 것 - 그것은 요즘 같은 시대에 생길 수 있는 연대의 수준으로는 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가장 약한 사람들은 나가 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이미 일어났습니다.

 

해리스가 처음 했던 두가지가 무엇입니까? 복지 예산을 21% 줄이고 평등고용법을(the employment equity legislation) 취소시킨 것입니다. 가장 주변부에 있는 집단이 소수 민족과 가난한 이들입니다. 물론 연합체에는 더 많은 집단이 있습니다. 여성운동 이외의 경우 소수 민족 또는 가난한 이들이 많이 참여하는 경우를 보기 어렵습니다. 토론토 메가시티 싸움에서는(Toronto Megacity fight) 거의 못봤습니다. - 대부분 백인이었죠. 노조가 136조 법률에 대항해 싸웠던 것처럼 이 새로운 142조 법률에 대해서도 싸워야 한다고 노동운동 내부에서 주장해야 합니다. - 그러나 이것은 매우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정말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의 하나가 이런 연대입니다.

 

원문: www.web.net/~beng/ginger

번역: 이정훈

(윤병삼님께서 위의 전국전문조직자협회(NAPO)의 자체 소개문을 직접 번역해주시고 몇가지 잘못된 번역을 꼼꼼하게 지적해주셔서 내용을 고쳤습니다.)

2004/07/15 16:22 2004/07/1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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